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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만화의 클리세

클리세는 (cliche)는 원래 프랑스어로 인쇄 용어인 연판을 뜻하지만 만화에서는 틀에 박혀 있는 일종의 진부한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일종의 전형적인 공식이나 (로맨스에서 돈 많은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구도 등을 이야기 하는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성인만화에서 나왔던 클리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2017-06-02 김태원



여는 글
클리세는 (cliche)는 원래 프랑스어로 인쇄 용어인 연판을 뜻하지만 만화에서는 틀에 박혀 있는 일종의 진부한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일종의 전형적인 공식이나 (로맨스에서 돈 많은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구도 등을 이야기 하는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성인만화에서 나왔던 클리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다만 이 글에서 성인만화의 클리세를 이야기 할 때 시대적 한계로 인하여 1980년대 초반부터 오늘날까지로 한정하고자 한다.

시대별 성인만화의 공식
만화산업 현장에서 일할 때 만화계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만화에 무슨 공식이 있느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 사실 만화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그리는 공식을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찾아보면 만화를 그리는 것에도 어느 정도의 공식이 존재한다.

군부독재가 서슬 퍼렇던 1980년대의 한국성인만화시장을 주름잡았던 <만화광장>, <주간만화>, <매주만화>등의 성인만화 잡지는 은 완전성인용을 표방하며 걸출한 만화가들과 함께 검열의 억압을 견디며 성(性)에 목마른 어른들을 위해 매주, 매월 출간을 하였었다.
당시의 성인만화잡지들은 검열이라는 시대적인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에로물 위주의 일본 성인만화 보다는 부부간의 이야기나,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이야기 등 다양한 성인만화들이 존재했었다. 또한 기본 코드는 유머와 위트를 기반으로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 80년대의 성인만화 잡지들

1990년대는 만화계의 최전성기였다. 그에 발맞추어 다양한 만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성인만화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빅점프, 미스터블루, 투엔티세븐, 화이트 등의 잡지는 시대를 대변하는 듯 엄청난 성인만화를 쏟아냈다.
물론 당시의 성인만화라고 해봐야 일본 성인만화 스타일의 포르노 만화 급의 수위는 아니었다. 그 전 보다 조금 더 농도 짙은 에로씬이 등장하거나 그 동안 어느 정도 금기 되어 있던 BL코드(※ 필자 주 : 성인만화는 아니었지만 BL코드가 들어가 있는 작품은 이정애 작가의 <열왕대전기> 등이 있다.)가 들어가 있는 만화들이 일부 보이기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1990년대의 성인잡지 트렌드 중 하나는 당시 출판되던 만화잡지가 그러하듯 연재 작품 중에 일본 성인만화들이 연재 되었던 것인다. 지금도 열심히 출간되고 있는 <시마과장>(※ 필자 주 : 국내 첫 연재는 빅점프에서 진행되었으며, 이후 일요신문으로 연재처가 변경되었다)도 이때 한국에 처음 들어와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스포츠신문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다만 스포츠신문은 지면의 특성상 수위 높은 성인물을 연재가 되지 못하였다. 당시 허영만작가의 <타짜>는 사회적으로 허용 될 수 있는 수준의 성인만화가 아닐까 한다.
1990년대 만화잡지, 스포츠신문과 함께 성인만화의 한축을 이룬 것은 소위 일판만화라 불리는 대본소만화들이 아닐까 한다. 대본소 만화들은 만화잡지, 스포츠신문에 비해 다소 수위 높은 애로신을 보여주면서 성인남성을 만화방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김성모 작가의 <용주골>은 대본소 만화 최고의 작품이 되면서 김성모 작가는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다.
세 작품 모두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고, 시리즈로 제작되어 작가들의 대표작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 좌)<시마과장> 히로카네 켄시 (서울문화사, 1996년 출간) / 
(중)<타짜> 허영만 (도서출판 채널, 2,000년 출간) / 
(우)<용주골> 김성모 (청솔, 2,000년 출간)

2000년도 초반에 들어오면서 일본 성인만화들이 모바일과 온라인을 통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불법으로 유통되던 일본 성인만화를 각종 모자이크를 넣어 수위를 조절하고 인터넷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하여 국내에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필자가 2,000년도에 만화계에 처음 입문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인만화의 편집이었다. 일본에서 출판된 성인만화를 국내로 수입하여 도서로 제작된 것을 각각의 페이지로 분리한 후 스캔하고 포토샵을 이용하여 각종 성행위 장면 중 주요부위(성기부분)를 의성어와 의태어로 가리고 그렇게 제작된 페이지를 하나의 컷 단위로 분리하던 일이었다.
당시 접했던 수많은 일본의 성인만화들은 단 하나만의 공식이 존재했었다. 오직 남성만을 타깃으로 하는 만화였기에 스토리에서는 성행위만을 해야 했고, 만화 표현에서는 많은 살색과 농도 짙은 에로 장면만이 존재했었다.
국내 성인만화 또한 대부분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소비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한 컷 단위로 그려지는 모바일 전용(※ 필자 주 : 당시는 스마트폰이 아닌 피쳐폰이 주를 이루었다.) 성인만화들이 등장하였는데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스캔을 하고 포토샵을 이용하여 컬러를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국내 만화든 일본 만화든 당시 성인만화의 플롯은 대부분이 단편 위주로 한명의 주인공을 통해 벌어지는 에피소드 단위의 스토리 라인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모 통신사에서 서비스 한 <유럽의 섹스투어>는 어마어마한 히트를 기록하여, 당시 모바일 만화로서는 쉽지 않은 월 1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하였다.

한동안 성인만화는 출판만화시장에서 대본소용 만화로만 출판이 되었고,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의 웹툰은 전연령층을 독자로 하는 웹툰 만을 연재하여 다소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었다.
그러나 2014년 레진코믹스의 서비스 시작과 함께 성인만화 시장의 판도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포털사이트들이 서비스를 하지 않던 성인용 웹툰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레진코믹스는 유료플랫폼의 성공 모델로 유료 성인웹툰 시장을 열었고, 다양한 유료 웹툰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그에 맞물려 다양한 성인웹툰이 시장에 나타났다.
초창기 성인용 웹툰은 자신의 성 경험담을 독백하듯이 풀어낸 <썰 만화>류가 강세를 보였으나 점차 시들해지자 특정장면을 연출하여 사진을 찍은 뒤 말 풍선을 입혀 만화같이 처리하는 <포토툰>이 유행하였다.
물론 포토툰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까지 낮은 퀼리티의 성인용 웹툰들이 등장하였으나 내용도 조잡하고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강간, 감금 등을 주로 다루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으며 스스로 사라졌다.
초창기 성인용 웹툰은 특별한 스토리가 없이 시각적으로만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독자들은 점차 시각적인 것에서 스토리가 있는 성인용 웹툰을 찾기 시작한다.
레진코믹스의 <맛있는 남자>, 탑툰의 <천박한 년>, 북큐브 웹툰의 <데스엔젤>을 비롯해 다양한 성인용 웹툰이 등장하였으며 이 만화들은 어디에 내 놔도 손색없는 높은 퀼리티를 자랑하였다.
또한 그 동안 동인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BL물이나 백합물 등의 동성애물도 유료플랫폼을 타고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그 수위는 일반 성인물에 못지않았다.

△ (상 좌)<몸에 좋은 남자> 이원식, 박형준 (레진코믹스) / 
(상 우)<천박한 년> 태발, 돌콩 (탑툰) / 
(하)<데스엔젤> 야한생각 (북큐브 웹툰)

△ 플랫폼의 BL장르 모음(북큐브 웹툰)

성인웹툰의 표현
앞서 이야기했듯이 초기 유료 웹툰 플랫폼은 썰만화가 유행했었다. 컬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흑백도 아닌 일종의 초벌 컬러 상태에서 독자들에게 서비스를 하였는데 의외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독자들 의 작품 보는 눈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높은 퀼리티의 성인 웹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일부 작품은 흑백으로 작업하고 중요 포인트에서만 컬러를 조금씩 넣는 방법을 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입술을 클로즈업하여 붉은색으로 표현하는 방법 등이다.
표현 수위는 각 플랫폼 마다 별도의 기준을 갖고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성기의 직접적인 묘사나 비정상적인 성교행위, 근친, 난교, 마약류의 흡입 미화, 과도한 폭력미화 등은 절대로 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플랫폼들의 표현수의에 대한 자정작용으로 인해 초기 모자이크를 사용하여 과도한 위법사항만을 피해가던 방법에서 하얀색이나, 흐림효과로 덧칠하여 과도한 장면의 노출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을 택하고 있고, 일부 작품에서는 도입부에 공지를 통해 독자들에 이러한 사실을 미리 공지하기도 하고 있다.

△ <인천행> 케이, 김재환 (투믹스)

마치며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다. 과거 성인들이 만화를 대하던 기준도 변하였고, 성인물에 대한 인식도 변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성인만화의 독자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인만화는 아직도 유해콘텐츠로 인식되고 숨어서 보는 만화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성인만화가 출판되고 그 속에서 양질의 성인만화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양적, 질적 성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인물을 읽는 독자의 수가 늘어나면, 성인물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다. 과거 만화가 사회악으로 평가되던 시절에서 현재 만화가들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된 시절이 온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양한 성인만화가 나올 수 있도록 작가의 표현에 자유를 보장하는 창작환경이 필요하다. 일본이 만화의 강국이 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작품이 나왔기에 가능하였다. 만화의 스토리가 아닌 몇몇의 장면에 의해 규제를 하고 있는 지금의 심의 제도에 대해 논의를 할 시점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이런 자유로운 창작 환경 속에서 성인이 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이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