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 : 김병수, 권창호, 용호성, 이성용
서울시내 아무곳에서나 택시를 타고 ‘문화관광부 가자’고 하면 떨떠름한 기사아저씨의 표정을 되받기 쉽다. 그러다 ‘미국대사관’이라고 하면 금새 엔진소리가 경쾌해진다(문화관광부는 광화문 미국대사관 바로 다음 블록에 있다). 필자는 우리사회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과 척도를 가끔 택시를 타면서 느끼곤 한다. 일반 여론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택시기사의 머리속에 문화관광부는 국방부나 재경부처럼 각인된 지명이 아닌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문화는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이라고 말하면 무리일까?‘먹고살기 바쁜데 영화 볼 시간이 어딨어’. 이 한마디로 압축되던 ‘문화 뒷전 현상’은 그러나 몇 해 전부터 국산영화의 선전, 가요계의 한류 열풍, 온라인 게임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연간 예산이 사상 처음 국가예산의 1를 넘어서고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나라 안팎에서 문화산업이 미래산업의 한 축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택시 타고 문화관광부 바로 찾아가기’는 이제 시간 문제 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잔치판 한 켠에 몸져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만화다. 몇 년째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길고 끝없는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만화산업은 대여점이라는 복병과 청소년보호법이라는 철퇴를 맞아 설상가상의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다.지난해 5월 출판신문과에 소속되어 있던 정부의 만화정책이 새로 설립된 문화 콘텐츠 진흥과로 이관되면서 만화계에도 새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비로소 문화산업의 한 축으로 정당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이 우리 만화계는 유래없는 변화를 겪었으며 만화계에서는 미흡하나마 바람직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문화관광부내에서 내노라하는 인재들이 모여있다는 문화콘텐츠진흥과는 이제 한국만화산업정책 기획과 입안의 산실로써 당당히 자리 매김하고 있다. 설립 1년을 맞은 콘텐츠진흥과를 찾아 한국만화정책 기획의 핵심분야를 맡고 있는 용호성사무관으로부터 한국만화의 정책과 장래에 대해 들어 보았다.이 자리에는 한국만화정책 담당 최일선 실무책임자인 이성용씨도 함께 자리했고 지금은 망하고(?) 없어진 만화웹진 야만X의 전 편집장 만화가 권창호씨가 동행하여 사진과 기사 정리를 맡았다.필자는 이날, 택시 대신 지하철 5호선을 탔다Q : 문화콘텐츠진흥과라고하면 만화산업과의 관련해서 굉장히 포괄적으로 들린다. 또 일반인들은 생경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뭐하는 곳인가? A : 만화전반의 모든 것을 다루는 부서는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진흥과’가 만화와 캐릭터는 ‘콘텐츠진흥과’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문화 예술과 산업적 의미’에서의 지원과 기반조성 필요한 정책 입안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 출판분야(필자 주 : 출판신문과)에 소속되어 있던 ‘만화’가 독자적 문화산업분야로 독립한 것으로 보면 된다.Q : 부서가 설립 된지는 얼마나 됐나?A : 5월이 중순이 1주년이었으니,1년 조금 넘은 상태다.(참고로 이 인터뷰는 5월 30일에 이루어졌다)Q :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스스로 평가한다면?A :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 봐야 할 것 같다.문화 예술로서 만화, 또 하나는 산업으로서의 만화다.문화 예술적 측면에서는 만화 관련 자료의 전승과 보존, 교육 차원에서 추진된 부천만화박물관 건립과 만화의 날 제정,김종래, 고우영 선생님 등 만화작가에 대한 최초의 훈, 포상 등이 이루어졌다.산업적 측면으로는 정보통신부 기금과 국고 등 콘텐츠진흥사업에 소요될 예산이 대폭 늘었으며 그 가운데 상당한 액수가 만화산업에도 지원될 것이다. 지금 현재는 오는 7~8월쯤 발표 될 ‘ 만화산업발전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시기가 되면 공청회 등을 통해 만화계 안팎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산업현황과 외국사례 등 만화와 관련된 포괄적인 내용을 담으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Q : 종합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A : 사업적인 부분 외에도 대여점 문제를 포함한 만화도서 유통 문제 개선과 저작권에 대한 법개정 방안 마련이 중점과제로 포함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만화산업’이 자생력을 길러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그 점에 주력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만화작가들의 소득불균형에 몹시 우려하고 있다. 연봉 1억을 넘기는 잘 버는 작가 몇몇을 제외하고 월소득 3~400 만원대의 중간소득 계층의 작가군이 많아야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만화작가들의 소득분화가 잘 이루어져야 산업전체가 자생력을 가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Q : ‘유통문제의 개선’이라면 대여점 문제 해결을 의미하는가?A :꼭 집어 대여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근본적으로 유통방식이 전산화되어 투명해야 한다.지금과 같은 전근대적 만화유통방식으로는 몇 부가 팔렸고, 몇 부가 남았고, 어떤 장르의 만화가 유행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출판사에서 총판과 소매상들의 재고 파악을 못해 책을 더 찍었다가 나중에 재고가 반품되어 황당한 경우를 겪는 것이 만화유통의 현실이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시장에서 퇴출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우리나라 만화산업은 만화자체의 경쟁력을 떠나, 산업적 가치에 비해 시장구조가 오히려 만화의 산업경쟁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따라서 아까도 언급했듯이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도 산업으로써의 만화가 자생적으로 유지,발전 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직한 만화유통환경을 조성하는 틀을 만드는 것을 고민중이다.Q : 대여점과 관련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A : 현재 대여점은 자유업종이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물리적으로 대여점을 없앤다는 것은 현행 제도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여점과 서점의 균형있는 발전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Q : 만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에는 유통구조나 여타 다른 문제 말고도 ‘검열’이 중요한 이슈로 도사리고 있다. 가까운 예로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아직 깔끔하게 문제해결이 안됐는데... A : 검열이나 심의는 우리 부서와 다른 문제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의 보편적 잣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욕설이나 성적 표현수위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폭이 넓어졌는데 유독 만화만 뒤쳐져 있고 제약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균적 사고방식을 사법당국이 못 따라 가는 것 같다. 만화가 갖고 있는 대중파급력과 친근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Q :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콘텐츠진흥과’와 ‘콘텐츠진흥원’의 차이점을 설명해 달라A : 우리는 정책을 기획, 입안하고 집행은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담당한다. Q : 만화정책 담당자로서 우리나라 만화의 장래에 대한 생각은?A :요즘 만화시장이 많이 위축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대여점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으나 만화시장의 대척점에 게임이나 인터넷, 이동통신 소비 시장이 있는 것이 불황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화의 주요 소비층인 청소년들의 용돈 지출 우선 순위에서 게임이나 휴대폰, 인터넷 요금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만화가 밀려난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이것이 만화불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만화 소비시장의 창출이 시급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코믹스 시장은 일정정도 한계에 도달한 게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학습만화나 기획, 실용 전문 만화 등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일반출판사들의 만화시장진출도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며 실제 시장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산업과의 연계도 중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원 소스 멀티 유저’의 최저층에 만화가 자리해 있는 만큼 다양한 콘텐츠로의 부가가치 창출에도 공을 많이 들여야 할 것이다. 해외시장의 개척 또한 가능성이 크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 만화시장에 우리의 우수작품을 샘플로 제작 유포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에 있다.Q : 내년에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한국만화특별전을 개최한다고 알고 있다. 해외시장 개척과 관련해서 총체적으로 말해달라A : 내년 1월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30주년을 맞아 한국만화특별전을 개최하기로 조직위와 합의된 상태다. 현재 유럽만화 전문가인 -성완경 교수를 추진위원장으로 위촉해서 행사를 준비중인데 시일이 촉박해서 걱정이다. 성완경 교수의 구상대로라면 내년에는 한국만화를 소개하는 차원으로 가고 내후년에는 한국만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로, 3년 차에는 동아시아 만화를 아우르는 대단위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다.해외진출 제작지원 등에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 출판사와 손잡고 100 작품 정도를 선정, 현지어 버전 제작을 계획 중에 있다. 해외 진출시에는 100 순수 창작물, 그림과 글을 분화하는 공동제작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Q : 만화산업이 다시 살아나려면 어느 정도의 시일이 필요하다고 보는가?A :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성장하는데 10년 걸렸다.만화는 영화와는 다르겠지만 3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진행중인 만화산업발전을 위한 종합계획이 입안되고 구체적으로 집행이 되어 큰 틀이 잡힐 때까지 그 정도 걸릴 것이고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성과가 나타나려면 그보다 더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부처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Q : 만화가나 혹은 만화 기관, 단체들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A : 우리나라 만화가들의 상상력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는 느낌이다. 억압된 제도교육 아래 입시경쟁에내몰리는 현실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우리 만화가들이 아무쪼록 지금보다 더욱 다양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다.그리고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시장개척 노력 또한 기대한다. Q 지금까지 너무 무거운 질문을 해서 딱딱해진 것 같다. 가벼운 질문 하나 하자. 만화를 자주 보는 편인가?A :무척 좋아한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만화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예전에 휴가 때는 하루 종일 집에서 만화만 봤다.직업으로써 만화산업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만화 매니아다. 한 달에 30권 정도는 직접 구해서 읽고 업무와 관련해서는 훨씬 더 많이 보고 있다. Q : 감명 깊게 읽은 만화세 가지만 꼽는다면? A : 김혜린님의 북해의 별, 김수정님의 신인부부, 김수용님의 힙합을 감명 깊게 봤다. 만화책 선물하기 운동 같은 것을 펼치면 어떨까? 인터뷰 전에는 정부에서 만화를 산업으로 투자 ,지원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실제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만화가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유와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추궁(?)하려 잔뜩 기대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해 가면서 일견 수긍가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를 산업적 시각으로 접근하게 된 것이 1년 남짓이고, 이제 막 그 첫발을 내디딘 시점이니 아직은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용호성 사무관도 밝혔듯이 구체적 정책이 이제 막 수립되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실현되는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미래예측과 분석은 차치하고 우선 일선에서 우리나라 만화산업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기획하는 당사자가 우리만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그 애정과 관심으로 구체적 성과가 더욱 깊이 있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권창호)정리 : 김병수, 권창호
김병수
만화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교수, 前 목원대 웹툰애니메이션·게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