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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동정의 대상일까요, 개성일까요? 대한민국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만화가가 자신의 일상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는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라일라 작가의 작품입니다. 2012년 8월 네이버 도전 만화에서 통해 첫 선을 보였던 이 작품은 2014년 2월부터 연재가 재개된 뒤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게 더 쉽다’는 베스트 도전 만화의 경쟁을 거쳐 지난해 8월 정식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돌직구처럼 직설적인 제목이 주는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독자들에겐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소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동정을 유발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귀여운 캐릭터들을 앞세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오해와 편견, 현실, 좌절, 극복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기준 85화를 연재하며 별점 9.98의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일라 작가는 중증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일반 학교에서 다녔습니다. 서울대 미대에 진학해 동양화를 주전공,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습니다. 어머니의 남다른 열정 덕택입니다. 라일라 작가는 손으로 말하는 수화(手話)가 아니라, 상대방 입술을 읽어 대화하는 구화(口話)를 사용합니다. 어머니는 어린 딸의 배에 쌀가마를 얹어 복식호흡을 가르치고, 입에서 나오는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도록 입 앞에 휴지를 대고 발음을 익히게 했습니다. 또 당신의 입과 혀를 손으로 만지게 해 발음에 따른 움직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꿈에서는 소리가 자막으로 보인다는 라일라 작가. 소리 없는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며 소리 있는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라일라 작가에게 만화에 대한, 웹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사실 인터뷰는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받았던 인상도 큰 몫을 합니다. 그런데 작가 사정상 부득이하게 e메일을 통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또 얼굴 사진 대신 작품에 사용됐던 원화를 올립니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인상이 녹아 있다는 생각에 답변 원문을 거의 그대로 싣습니다. 원고량이 적지 않아 질문은 간소화 했습니다. 일부 노코멘트를 원한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Q. 정식 연재를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어갑니다. 이 정도 인기를 예상했나요.
A. 솔직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으리라고 예상을 못 했었습니다. 웹툰을 통해 여러 사람과 여러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뜻깊은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Q. 그간 가장 기쁘고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반대의 경우는 없었나요.
A. 청각장애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보니 가장 가까운 관계이어야 할 가족에게 종종 이해받지 못하고 겉도는 청각장애인들이 많았는데 웹툰을 통해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단 이야기를 볼 때마다 매우 기쁩니다. 또는 웹툰을 보시고 제게 자신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파져 오곤 합니다.
청각장애인 조차 청각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많아 웹툰 연재 결심만화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레드문’,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요시나가 후미
Q. 작품을 보면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헌터X헌터?) ^^ 작가님에게 만화란 어떤 존재였는지요. 또 어떻게 웹툰을 그리게 됐는지요.
A. 음, 제 안에서 만화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세계를 그려내는 것’, ‘무언가를 자신의 견지대로 그려내어 독자들에게 다시 전달하는 것’ 이 정도인 것 같네요. 그렇기에 만화를 본다는 건 작가나 누군가의 세계를 본다는 맥락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렇기에 저마다의 만화가 소중합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접했던 만화는 토끼와 고양이의 일상을 그려낸 ‘센타로의 일기’였던 것 같습니다. 만화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만화방에서 빌려온 황미나 작가의 ‘레드문’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은 너무 많아서 열거할 수가 없네요. 대체로 재미있는 만화는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한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만화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작가는 요시나가 후미입니다. 만화계에서 이 작가를 따라올 작가는 없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무척 좋아하는 편이에요.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청각장애인조차 청각장애인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오해가 많단 생각에서였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제가 선천적 청각장애인인 걸 몰랐던 한 청각장애인 친구가 제게 ‘선천적 청각장애인을 만나지 마라. 걔들은 언어 능력이 뒤떨어지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른다. 성격파탄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걔들을 만나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말 외에도 여러 충격적인 발언을 계속 듣게 되어서 웹툰 연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나요?
A.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에 대해 아버지는 찬성하셨지만, 어머니의 세찬 반대에 취미 생활로 남겨두려고 했는데 이렇게 만화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무척 놀랍고 기쁩니다.
Q. 미술 전공에 국문학이 부전공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작 통로가 미술이나 소설, 시가 아니라 왜 만화였을까요.
A. 아무리 관심이 가지 않는 소재나 장르여도 만화로 접하게 되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게 되잖아요. ‘고스트 바둑왕’이 일본 열도에 바둑 열풍을 불러왔던 일화라든가 ‘이원복의 세계만화 시리즈’도 거대한 문화의 집대성을 그려내고 있지만 무척 재밌잖아요. 이같이 만화의 접근성과 오락성에 주목해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Q. 40화에서는 가슴이 서늘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요,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준 작품이 최유기가 맞나요. 작가님에게 힘이 되어준 또 다른 작품이 있는지요.
A. 네, 최유기가 맞습니다. 이 시기에 보았던 수많은 작품들이 재미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 인생을 지탱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화 ‘패왕별희’도 이 때 처음 봤었는데 제가 막연하게나마 오락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영화’란 관념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장국영 연기를 볼 때마다 마치 코끼리 다리에 짓밟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매우 놀랍고 흥분되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명작이 내가 아직 살지 않은 인생에 많이 남아있다’, 이 두근거림만으로도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장애를 주제로 작품을 그리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장애에 대한 지식을 그리는 만화다 보니까 ‘이 만화도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편견을 심을지 않을지’, ‘이 만화를 재밌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재가 겹치지 않는지’에 대해 가장 고민하면서 콘티를 짜는 편인 것 같습니다.
장애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 많아졌으면
Q. 다른 일상툰에 견줘 작가님의 작품은 마치 일기장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데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A. 그래서 연재 직전에 고민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저는 주변 인물이 남에게 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무척 싫어할 정도에요. 하지만 이 만화를 그려내는 일이 제 사적인 부분보다 더 크다 생각했기에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Q. 현재 전업으로 작업하는 것인가요. 연재하며 맞닥뜨린 애로사항은 없나요.
A. 네, 현재 전업으로 웹툰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다른 일까지는 무리예요. ㅠㅠㅠ 아직까지는 애로사항에 대해 따로 드릴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Q. 작품에 긍정적이고 유쾌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러한 긍정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A. 제가 제 장애를 제 육체의 부족함이 아닌 제 정체성으로 인정했으며, 제 정체성으로 인해 비장애인들의 삶과 미묘하게 다른 삶을 산다는 게 신기해서 웹툰에 그린 것이 독자님들 눈에도 긍정적으로 비춰졌던 것 같습니다.
Q. 학창 시절이 궁금합니다. 작품을 보면 중학교 때 왕따 경험도 나오고, 고등학교 때는 경쟁이 편견을 부추기는 상황도 나옵니다.
A. 네, 웹툰에 나오는 그대로입니다. 큰 상황도 있었고 작은 상황도 있었고 친구와의 갈등도 있었으며 물론 싸움도 있었고 화해도 있었어요. 그저 큰 파도와 작은 파도가 번갈아 오는 것처럼 다른 이의 학창시절 같이 평범했습니다.
Q. 미술 고등학교에 이어 미대를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좋아하는 예술가, 또는 영감을 받은 예술가들은 누가 있을까요.
A. 음. 미술을 좋아하고 잘 하니까 미대를 갔겠죠...?ㅠㅠㅠㅠ 좋아하는 예술가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화가는 베르메르, 알퐁스 무하, 오도자, 마그리트, 서위, 소설가는 토마스 만, 좋아하는 시인은 김소월, 이상, 윤동주, 박목월, 서정주, 김수영, 기형도, 릴케, 랭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요즘 억수씨의 ‘ho!’나 영화 ‘좋아해줘’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청각장애인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습니다. 또 장애를 갖고 있는 작가들이 만화를 포함해 창작 분야에서 활약하는 일도 늘고 있습니다.
A. 여러 모로 좋은 일이죠. 저 말고도 장애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Q. 진동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들었습니다. 퀸 이외에 즐겨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A. 레드 제플린이요. 개인적으로 진동적인 면에 있어서는 레드 제플린을 따라갈 만한 밴드가 없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밴드인 것 같습니다.
Q. 이전에 퀸과 레드 제플린의 팬툰을 블로그에 연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장편을 그릴 계획은 없나요.
A. 네, 여러모로 구상하는 게 많습니다. 판타지 장르도 그려보고 싶고 일제 강점기 배경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특이한 초능력을 가진 한 소년의 일상을 그리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Q. 웹툰을 보면 영화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A. 주변에서 ‘추격자’에서의 하정우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많이 들어서 ‘추격자’도 보고 싶고 개인적으로 대사가 찰진 작품을 좋아하기에 ‘타자’와 ‘신세계’도 보고 싶습니다.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봄여름가을겨울’도 보고 싶고 B급 감성이 충만하다는 ‘지구를 지켜라’도 매우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DVD 빌려서 송강호 주연 ‘관상’과 ‘변호인’을 봤었는데요. 그래서 송강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살인의 추억’도 보고 싶습니다.
Q. 이전 인터뷰를 보면 영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가요.
A. 영화 공부에 대해 현재진행형인 것이 아니라 영화를 제작하고 싶단 꿈이 현재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시가 매우 아름답다 생각하기에 영상미를 극대화시켜 우리나라 시인과 시를 아름답게 그려내 세계 널리 알리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Q. 장애를 뛰어넘어 창작 분야에서의 활약을 꿈꾸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말씀 해주신다면.
A. 그저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자신의 꿈을 따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Q. 작품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따금 저마다의 입장에서 논쟁이 벌어지는데요, ‘나는 귀머거리다’가 어떤 작품이 되었으면 하나요.
A. 댓글을 다 읽어보는 편입니다. 독자들이 그저 ‘우리 세계에 장애인도 있구나’라고 인지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Q. 캐릭터가 귀엽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모티콘 출시 계획은 없나요?
A. 출시 제안이 들어온다면 할 용의가 있지만 제안이 들어오고 있지 않네요. ㅠ
Q. 청각장애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급한 정책이나 지원을 몇 가지 꼽아주신다면.
A. 제도적 지원 같은 경우는 사람들마다 바라는 것이 다르겠지만 교육적인 면이 가장 시급할 것 같습니다. 초중고의 장애인 인식 교육이라든가 청각장애인의 자존감 형성 관련 교육이 가장 급해 보입니다.
Q. 끝인사 한 말씀.
A. 문장력이 서투르다 보니 매끄럽지 않은 답변이 곳곳 눈에 띄네요. 흥미로운 질문이 많아서 인터뷰 내내 즐거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