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예술을 묻다
교보아트스페이스 <무브먼트 쾅> 전시를 다녀와서

지난 6월 10일부터 8월 3일까지 광화문 교보문고 내에 있는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만화가 그룹 ‘쾅’의 <무브먼트 Movement> 전시가 열렸다. 만화축제나 만화 관련 시설이 아닌 일반 갤러리 공간에서 열리는 만화 전시인 데다, 만화가 그룹 ‘쾅’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전시 소식이 더욱 반가웠다.
이번 전시는 전시 서문을 통해 예술가들의 '연대'가 예술가 개인의 창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나아가 혼자 만들어 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예술가들의 작업이 함께 하면 어떻게 성장하고 에너지가 쌓이는지 관찰하고자 기획되었다고 그 의도를 밝히고 있다. <무브먼트 Movement> 전에는 현재 ‘쾅’의 멤버인 김예신, 박재인, 손혜연, 안유진, 이규태, 임나운, 조예원, 최성민, 최재훈 작가가 참여하였다. 원화뿐 아니라 작업의 과정에서 발생한 고민의 부산물, 스케치, 콘티 등과 함께 ‘쾅’ 그룹 멤버들의 인터뷰가 전시되었다.

전시장은 광화문 교보문고 내의 교보아트스페이스란 공간으로, 서점 속에 만들어 놓은 개방형 갤러리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고, 교보문고를 찾는 사람들이 책을 사러 왔다가 쉽게 발견하고 관람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개방형 화이트큐브 공간으로 설계되었기에 서점 내에 있지만 서점과는 분위기가 단절되어, 전시를 관람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무브먼트 Movement> 전은 전시장 입구에 쾅 그룹 로고 모양을 간판형 오브제로 설치하여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공간을 크게 구획하는 흰 파티션을 이용하여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을 전시하고, 벽과 나무 파티션, 테이블 등을 이용하여 원화, 콘티, 스케치 등을 전시하였다. 일반적인 만화 전시가 출력물을 많이 사용하고, 만화가 가진 시각적 요소들을 가공하여 다양한 전시용 오브제로 제작하여 설치하는 데 반해, <무브먼트 Movement> 전은 작가의 터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메모, 스케치, 콘티, 원화, 만화책만을 전시했다. 디지털 프린트가 된 작품도 있었지만, 그것은 원화 작업이 디지털로 이루어진 경우라 원화의 개념을 담은 프린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시 방식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지문과 터치가 배어있는 원작과 오브제를 통해 관람객들과 더 가까이 교감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재가공되거나 리디자인(re-design)된 전시물이 아니라 작가들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물성 있는 원본들만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물성 있는 원본을 통해 관람객들과 교감하려는 전시 의도는 전시 설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시장에는 일부 원화와 스케치 콘티 등을 관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노출해 설치했다. 보통 만화 전시에서 작가들의 스케치, 콘티, 원화 등은 일종의 신성화된 오브제의 지위를 지닌다. 그래서 이들을 전시할 때, 관람객들의 손이 닿을 수 없도록 투명한 관에 넣거나 투명한 판 아래 넣어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무브먼트 Movement> 전에서 ‘작가의 원본’은 이러한 신성화된 공간을 벗어나, 맨몸으로 관람객들을 만난다. 전체 전시물을 만질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니지만, 전시장 중앙에 있는 나무 파티션에 설치된 작품들은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대부분 노출하여 설치하였다.
이것은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벽을 깨뜨리는 시도이자, 예술가들이 내 작품을 너무 무겁게 신성화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행위로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원화 전시를 액자를 사용하지 않고 가벼운 필름에 끼워 전시하거나 아무 장치도 하지 않은 채 벽에 핀으로 고정하는 등 가벼운 설치 방식을 많이 선택함으로써, 작품이 가진 권위와 무게감을 내세우기보다는 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액자에 넣은 작품도 있지만 라인을 통일하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리드미컬하게 설치함으로써 무게감을 낮추었다.
‘쾅’ 그룹의 매력은 작가들이 차별화되는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개성 있는 각자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데, 만화와 일러스트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독특하고 실험적인 단행본들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실험적인 만화 작업이 점점 설 자리가 없는 한국 만화계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예술적 지향이 넘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브먼트 Movement> 전은 ‘창작자들의 연대가 갖는 상호작용과 시너지’가 주제이기 때문에, 전시에서 어떤 한 작가나 작품이 두드러지게 전시되지 않는다. 디스플레이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거나, 강렬하거나, 시각적 임팩트를 주는 기술적 방법을 도드라지게 선택하지 않고 전시 밸런스를 수평적으로 고르게 유지했다. 하지만 각 작가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작은 오브제들을 섬세하게 전시하여, 작은 공간에서도 많은 정보들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만화 전시는 만화 작품 전체를 전시하기엔 어렵기 때문에, 작품의 부분만을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전시장이라는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긴 이야기, 커다란 세계의 일부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전시에서 드러났던 ‘쾅’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스타일, 작업의 지향은 과연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활동을 펼쳐왔을까? 이들이 15년간 활동을 이어올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전시를 한층 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만화가 그룹 ‘쾅’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만화가 그룹 ‘쾅(QUANG)’
만화가 그룹 ‘쾅’은 15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만화가 그룹이다. 1990년대부터 많은 만화 작가 동아리, 그룹 등이 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활동한 곳은 매우 드물다. ‘쾅’은 2010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니던 친구 4명이 함께 시작한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쾅’이 활동을 해나가면서 서서히 뜻이 맞는 작가들이 합류했는데, 현재까지 ‘쾅’을 거쳐 간 멤버들은 모두 26명에 달한다.
2010년 온라인 <코믹아트매거진 쾅>을 발간을 시작으로, 2014년 오프라인 잡지 1호를 발간하였고, 이는 2020년 10호 잡지까지 이어졌다. 잡지를 발간하면서 전시, 워크숍, 굿즈 제작, 행사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활동들을 벌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쾅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프라인 잡지 10호 발간 후로는 외부 활동보다는 내부적 활동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쾅 매거진>은 온라인 잡지 형태로 발행을 이어가다가, 현재는 한 시즌 작업의 결과물을 묶어 발행하는 내부 잡지로 제작하고 있으며 2025년 8월 현재, 73호를 준비 중이다.1)
‘쾅’ 그룹은 만화를 문화산업의 콘텐츠로서 다루는 만화계의 주류 분위기 내에서 꾸준하게 ‘예술로서의 만화’를 탐색하며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어쩌면 기존의 만화 독자들보다는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시각예술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활동하던 무대도 만화축제나 만화 행사보다는 서울아트북페어(언리미티드에디션), 홍대, 성수동 등 새로운 감각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주로 펼쳐졌다.

‘쾅’은 시각예술 언어로서 만화 실험을 추구하는 예술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쾅’이 발간한 매거진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쾅’이 10호까지 발행한 오프라인 매거진 이름은 <Quang Comic Art Magazine>이었다. 왜 ‘쾅 코믹스’가 아닌 ‘코믹 아트’ 매거진이라고 지었을까? 이에 대해 ‘쾅’의 이규태 작가는 “‘Comic Art’는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전통적인 칸과 말풍선에 국한되지 않고 만화의 범위를 더 넓게 확장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포함하고 있어요.”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대중적인 만화의 지향이 ‘다수의 독자’들에게 향해있다면, ‘쾅’은 ‘다수의 독자’를 위한 작업보다는 ‘작가로서 내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이러한 지향은 2017년~2018년 진행했던 <쾅 코믹스 워크숍>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쾅 워크숍은 ‘내 작업을 한다는 것’에 고민해 보는 것에 집중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워크숍에서도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더욱 중심에 둔 것이다.
‘쾅’이 지향하는 예술로서의 만화의 관점은, ‘리미티드 만화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들이 때론 10권, 20권 정도의 적은 수량으로 만화책을 만들고, 책마다 에디션을 부여해 판매한 것이다. 이것은 만화를 판화나 사진처럼 에디션을 가진 예술품으로 다루려고 하는 시도로 보인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공예적인 요소들을 더하거나, 실험적인 형태로 제작하여 소량 발행하는 행위를 통해 ‘만화라는 매체는 대량 생산되는 콘텐츠’라는 인식을 전복시킨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것이 얼마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는지나, 상업적으로 성공했는지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전에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예술품으로서의 만화책’이라는 형태를 고민했다는 행위 자체가 갖는 예술적 의도가 평가되어야 한다. ‘쾅’이 대중 지향적이지 않지만, 이러한 실험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멤버들이 이러한 만화, 예술에 대한 태도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쾅’의 멤버들은 만화가로서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등으로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쾅’의 원년 멤버인 이규태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유명한데, 2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구찌,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들과도 아트워크를 진행했다. 최재훈 작가 역시 ‘쾅’의 원년 멤버로, BTS RM의 뮤직비디오 〈Forever Rain〉을 연출했고, 미국 NASA에서 열린 몽블랑 글로벌 캠페인의 비주얼 작업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쾅’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만화, 그리고 시각 예술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만화보다 다른 장르에서 더 유명한 작가들이 포함된 이 그룹이 좀 더 폭넓은 '아티스트 그룹'이 아닌 '만화가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이규태 작가는 “쾅은 작업 속에서 만화를 놓지 않기 위한 장치이자 공간이에요. 멤버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쾅에서만큼은 만화를 중심에 두고 작업을 이어갑니다. 쾅의 멤버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이야기의 구상과 연출을 놓았을지도 몰라요.”라며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만화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만화에 대한 애정, 만화가 가진 예술적 확장성이라는 부분이 그룹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만화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만화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가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술적 행위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장르 자체에 속해있다는 것으로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로서의 인식과 태도, 그리고 지향이다. 그러한 면에서 만화가 그룹 ‘쾅’의 멤버들은 만화가이자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만화적 표현 방식의 실험과 확장을 고민하고 있는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예술로서의 만화, 만화로서의 예술을 고민하는 사람들

<무브먼트 Movement> 전은 그동안 만화 전시 큐레이터들이 했던 만화 전시와 또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작가 스스로 전시의 구체적인 오브제들을 구상하고, 배치하고, 설치했다는 점이다. 기존 만화 전시에서도 작가들이 직접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한 사례들은 있지만, 일반적으로 만화 전시는 큐레이터들이 작가에게 허락받아 원본을 다양한 전시물로 가공하고 디자인하여 전시에 적합한 전시물을 만들어 전시한다. 만화 작가들은 대부분 전시 경험이 없거나 전시 자체를 고민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미술 전시와는 다르게 원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하거나 추출하여 전시물로 만드는 부분까지 보통 만화 전시 큐레이터들이 담당했다.
하지만 <무브먼트 Movement> 전에서는 교보아트스페이스와 협업 하에 작가들이 전시물을 선택하고, 제작하고, 설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만화 전시보다는 미술전시의 형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는 설치되어 있는 작품을 미술 전시품과 같은 태도로 다룬다.
이러한 태도는 전시물 캡션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적인 만화 전시에서는 작가, 작품, 제작 연도 등이 주로 강조되는 것에 반해, 이 전시에서는 회화작품의 캡션처럼 작품을 그리는 데 사용된 재료를 모두 표기하고 있다. 흑연 가루, 연필, 파스텔, 잉크와 펜촉 등 지면 위에 표현된 재료들의 이름을 상세히 서술함으로써 전시된 작품을 하나의 회화작품같이 다루고 있다. 전반적인 전시의 설치 방식은 경쾌하고, 관람객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지만, 작품을 다루는 태도와 무게감은 가볍지 않은 것이다.
만화계에서 예술로서의 만화에 대한 조망은 항상 변방의 주제였다. ‘쾅’에 대한 조망도 만화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런 것 같다. ‘쾅’은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15년이라는 역사를 쌓았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고민과 태도를 유지하며, 그룹의 멤버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창작을 이어 나가고 있다.
독립출판마켓이나 '언리미티드에디션'과 같은 행사에 가면 ‘쾅’과 같이 예술로서의 만화를 고민하는 작가들을 간간이 만날 수 있다. 많은 독자가 아니라 내 세계, 내 이야기를 알아봐 주는 소수의 독자를 향해 고군분투하며 자신만의 작업을 해 나가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작업이 지속되고, 한국 만화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의미 있는 실험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이를 읽어주는 독자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독자들은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수가 만들어가는 건강한 질문, 작업은 항상 대안적 실천으로써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만들 가능성을 내포한다. 다수를 바라보는 시장이 아닌 곳에서 중요한 활동들은 늘 이루어져 왔다. 만화의 예술성을 고민하는 것 역시 매우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질문과 실험들이 계속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쾅’과 같은 그룹이 더 많은 실험과 창작의 무대를 얻을 수 있기를. 예술을 고민하는 독립 만화가들의 작업이 더 많이 호명되고 빛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1) 만화가 그룹 '쾅'에 대한 소개는 이규태 작가 서면 인터뷰, 인터넷 정보, 쾅 페이스북 등의 정보를 참조하여 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