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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홍콩 ICC 참가기: 만화로 이어지는 세계

2025년 홍콩 ICC(International Comic Artist Conference) 참가기

2025-07-3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회 홍콩 ICC 참가기

만화로 이어지는 세계

글 문태연
사진도움 곽영유 감독

올해로 29번째 생일을 맞은 ICC(International Comic Artist Conference). 그리고 그 특별한 숫자 앞에 놓인 제20회 홍콩 국제만화가대회. 2015년 한국에서 열린 ICC에 참가한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다시 이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익숙함보다는 설렘, 기억보다는 새로운 감정이 앞섰다.

ICC는 세계 각국 만화가들의 우정과 화합의 장이다. 전 세계의 작가들이 만화라는 공통 언어로 친구가 되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웃는다. 국적도, 언어도, 그림체도 모두 다르지만, 그 차이들이 오히려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만화로 하나가 되는 축제. 그것이 바로 ICC.

뜨거운 여름, 홍콩은 습도 높은 더위로 유명하지만 내게는 무더위보단 설렘이 앞섰다. 캐리어 속 14.5kg 옷가지가 이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홍콩 공항에 도착하자, 손피켓을 들고 서 있던 현지 스태프의 환영 인사가 우리 한국팀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 마주한 홍콩 날씨는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한국의 폭염에 단련된 탓인지, 오히려 괜찮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준비된 버스를 타고 각자 배정된 숙소로 이동했다. 이번 대회에는 더 하버뷰 호텔과 글로스터 룩 퀵 홍콩 호텔, 두 곳이 마련되어 있었고, 나는 더 하버뷰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도심 속에서도 바다를 품고 있는 이곳은 첫인상부터 참 근사했다.

그리고 이번 일정에서 룸메이트 복이 매우 좋았다. 낯선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일정 내내 즐거움이 배가 되었던 건 편안한 숙소 생활 덕이 아닐까 싶다.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날씨는 여전히 덥고 습했지만, 그 더위를 잊을 만큼의 설렘이 있었다. 우리는 점심 원정대를 결성해 거리로 나섰고, 홍콩의 거리를 마음껏 누볐다.

첫 식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쌀이 왜 이렇게 가늘고 길지?’ 한 입 먹는 순간부터 느껴진, 익숙하면서도 낯선 맛. 그것이 내가 처음 만난 홍콩의 밥이었다.

 

<(좌) 홍콩의 밥 / (우) 1일차 점심 원정대>

1일차: 2025723일 수요일

환영만찬  더 하버뷰 호텔 2층 연회장

치장을 마친 우리는 하나둘씩 더 하버뷰 호텔 2층 연회장으로 모여들었다. 각국의 만화가들이 둘러앉은 풍경은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컷이었다.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이름표를 바라보았다. ‘KOREA’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지금 이 자리에, ‘한국의 만화가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왔다.

<이름표>


<한국팀>


2일차: 724일 목요일

둘째 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하버뷰 호텔의 조식은 수준급이다. 그 아침 한 끼가 원동력이 되어 그날의 일정을 버틸 든든한 힘이 되었으니 말이다.

 

개막식

오전 10, 호텔에서 가까운 홍콩컨벤션센터(HKCEC) 2층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입장과 함께 동시 통역기가 주어졌고, 포토월 앞에서는 각국의 만화가들이 자유롭게 인사를 나누며 교류의 장이 펼쳐졌다.

행사는 ICC 홍콩위원회 위원장 토니 윙의 환영 인사로 시작되었다. 이어진 행사 소개와 영상 시청, 그리고 주요 귀빈 소개가 차례로 이어졌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이번 대회의 시작을 함께 축하했다.

포럼 1 유럽 코믹마켓 포럼

디지털 만화에 대한 각국의 시선은 흥미로웠다. 프랑스의 Pierre Paquet, 이탈리아의 Davide Castellazzi, 스페인의 Meritxell Puig. 각자의 언어와 시장 환경에 따라,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스페인의 사례였다. SNS 인플루언서를 통해 만화가 유입되고, 이를 중심으로 만화가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하위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단순한 읽는 만화에서, ‘공감하고 재생산되는 문화로의 전환그 속도가 놀라웠다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이 시대, 우리의 웹툰은 유럽에서 어떤 얼굴로 비칠까그 가능성이 기대되었다.

중식 만찬 Victoria Harbour Supreme

포럼을 마친 뒤, 하버센터 3층에 있는 Victoria Harbour Supreme에서 중식 만찬이 이어졌다. 이번 일정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식사였다. 덧붙이자면, 우리 테이블의 접시가 비워지는 속도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음식이 놓이기 무섭게 젓가락이 오갔고, 웃음이 번졌다. 그 장면 자체가 만찬의 만족도를 말없이 대변해 주는 듯했다.

포럼 2 만화의 새로운 물결: 새로운 세대와의 공명

홍콩컨벤션센터에서 두 번째 포럼이 막을 올렸다.

이번 주제는 만화의 새로운 물결 새로운 세대와의 공명’.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만화의 역할, 그리고 세대 간의 감각 차이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오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김동화 선생님의 강연이었다. 주제는 한국 만화에 대한 검열의 역사. 강연 말미, 실제 원고를 보여주셨다. 일반적인 원고지라기엔 두툼한 종이, 그 뒷면을 까맣게 덮은 먹칠. 그 검은 흔적이 당시 만화계가 지나온 고통과 억압과 상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마음 한편이 뻐근해졌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가슴에 새겨졌다.

네트워킹 파티

네트워킹 파티는 숙소 인근에 있는 Taboo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부터 정성껏 챙겨온 소박한 안주를 들고 향하는 길, 그 발걸음은 들떠 있었다.

얼음 가득한 통 속엔 맥주와 와인이 시원하게 담겨 있었고, 대만팀이 준비한 위스키는 그 밤의 공기를 한층 더 깊고 진하게 물들였다. 더불어 오래도록 그 밤이 마음에 남은 건, 고경일 교수님의 캐리커처 퍼포먼스 덕분이었다. AI가 손쉽게 이미지를 뽑아내는 시대. 그 흐름 속에서 사람이 직접 그리는 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얼마나 많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한 사람을 위한 그림. 그것은 단지 얼굴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손끝에서 마음에 닿는 온기를 건네는 따듯한 작업이었다.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 행사에는 꼭 사인북을 준비하자. 전 세계 만화가들의 그림이 기록되고,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시간이 한 장 한 장, 오래도록 남을 수 있도록.

<고경일 교수님의 캐리커쳐>

 

 

<사인북을 준비한 권영작가님>


<네트워킹 파티 장소로 이동하는 한국팀>

3일차: 725일 금요일

포럼  아시아의 새로운 시각 & 폐막식

ICC의 세 번째 포럼 아시아의 새로운 시각이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국의 만화 산업을 조망하고, 급변하는 창작 환경 속에서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포럼은 홍콩의 고든 로(Gordon Lo)의 진행 아래 개최되었다. 일본의 미치루 미우라 (일본만화가협회 전무이사, 망가재팬 고문), 한국의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중국의 리지안핑 (베이징영화대학 애니메이션학부 학장), 대만의 황쭌웨이 (타이베이 만화가 연맹 회장), 홍콩의 알란 완 (홍콩 만화애니메이션연맹 부회장)이 참석했다.

각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시선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으로는 한 가지 주제를 향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세대와 매체 환경 속에서 만화의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이어서 폐막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ICC 홍콩위원회 위원장 토니 웡의 인사말이 있었고, 곧이어 홍콩, 일본, 한국, 중국, 대만 다섯 개국 상임위원회 대표들이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ICC기의 이양식이 진행되었고, 바통은 홍콩에서 대만으로 넘겨졌다.

무대에 오른 ICC 대만위원회 황쭌웨이 위원장은 2027년 제21ICC가 열릴 대만 타오위엔을 직접 소개하며, 다시 만날 날을 향한 따뜻한 인사를 전했다.

국제만화전시(International Comic Exhibition, ICE) 참관 및 개막식 – 현실보다 더 만화 같은 풍경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전 세계 만화가들의 작품이 숨 쉴 틈 없이 부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12개국 300여 명의 작가가 출품한 400점이 넘는 작품들. 그 압도적인 양은 단순한 수치를 넘어 곧바로 감동으로 다가왔다.

장르도, 스타일도, 선의 결도 모두 달랐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각국의 시선과 정서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그림으로 빚어낸 감정은 국경을 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 시간이 주어져 행사장을 둘러보는데, 여기가 정말 홍콩인지 아니면 익숙한 한국의 행사장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수많은 팬이 캐릭터에 열광하고, 굿즈를 고르고, 코스프레 사진을 찍는 모습은 말 그대로 덕후의 성지를 방불케 했다.

역시 만화는, 만국 공통의 즐거움이구나.”

그 진리를 다시금 느끼며, 자타공인 오타쿠인 나는 동질감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었는데, 홍콩 택시에서 내리던 디즈니 공주 코스프레어들. 현실과 환상이 나란히 걷는 듯한 그 찰나의 이미지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날의 홍콩은, 현실보다 더 만화 같았다.

 <한국 작가들의 아트토이 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문화탐방 1 M+ 뮤지엄

M+ 뮤지엄은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건물의 외형부터 내부 전시 동선까지, 현대 예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조와 규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처럼 느껴졌다.

입장에 앞서 모두 함께 단체 사진을 남기고, 이후에는 각자의 호흡으로 전시관을 자유롭게 둘러보았다.


환송 만찬 – Auto Plaza 13Choi Fook Royal Banquet(彩福皇宴)

행사의 마지막 밤, 환송 만찬장에는 작은 축제 같은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12간지로 만든 종이 공예, 황금빛 부채에 붓글씨로 써 내려가는 멋진 글자, 메뚜기 공예까지특히, 붓끝이 부채 위를 유영하며 한 획 한 획 살아나는 글씨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홍콩만화애니연맹 황옥랑 회장의 폐회사를 시작으로 각국 ICC 위원장들의 인사말이 차례로 전해졌다.

홍콩위원회 토니 웡, 일본위원회 노무라 유미, 한국위원회 신일숙, 중국위원회 쉬타오, 대만위원회 황쭌웨이. 만화라는 공통된 언어로 연결된 이들의 진심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건배 제의가 끝나자, 곧이어 홍콩 국제만화가대회 영상이 상영되었다. 함께했던 순간들이 화면 위로 흘러갈 때마다,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이어 축하 공연이 오르고, 만찬장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고조되었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웃음과 환호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그중 가장 기대를 모았던 건 단연 빙고 게임. 나는 아쉽게도 숫자 하나만을 남기고 탈락했지만, 우리 테이블은 다음 게임들에서 상품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역시 한국의 흥은 이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렇게 웃고 즐기며, 홍콩 ICC의 마지막 밤은 아쉬움을 안은 채 깊어져 갔다.

4일차: 726 토요일

홍콩 만화 스타 거리(Hong Kong Avenue Of Comic Stars)

ICC의 마지막 일정은 구룡공원에 있는 홍콩 만화 스타 거리 방문이었다. 이곳은 과거 구룡채성(Kowloon Walled City)이 자리했던 곳이었다. 한 시대의 혼란과 생존, 그리고 밀집된 인간 군상이 뒤엉켜 있던 공간이 예술과 상상력의 거리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은 작가로서도, 한 명의 방문자로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단체 사진을 끝으로, 즐거웠던 4일간의 여정은 마무리되었다.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야간 비행편을 기다리는 팀은 반나절의 홍콩 투어를 했다. 그 짧은 여정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간의 연결과 여운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너무 사적이니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한다.

이렇게 제20회 홍콩 ICC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10년 만에 다시 참여한 이번 대회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고, 벌써부터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결국, 만화의 힘이란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독자와의 교류, 세상과의 교류, 그리고 작가 간의 교류. 그 모든 것이 이번 ICC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만화는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정을 그림 한 장면에 담고, 그림은 이야기가 되어 언어를 건너고, 국경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는 무한한 다리가 되어준다.

이 연결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기를.

또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를 이어줄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