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웹툰 <단지>는 가정폭력을 말한다. 단지 작가가 가정에서 겪어온 무시, 폭행, 차별, 성추행 등이 1인칭 시점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단지>가 다룬 가정폭력에 대해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단지>는 레진코믹스에서 최단기간 최다조회수를 기록한 작품이 되었다. 웹툰 리뷰 팟캐스트 웹투니스타에서 단지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과 가정폭력에 대해 물었다. 단지 작가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떨렸다.
Q. 쉽지 않은 소재를 선택했다. 어떻게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나?
A. 원래 시트콤 같은 발랄한 만화를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되게 우울한 사람이라, 즐거운 만화를 그리려고 하니 잘 녹아들지 않았다. 타 플랫폼에 계시던 편집자님이 “이거 재미없어. 니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라고 물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없다면서(웃음). 그 편집자님이 계속 이렇게 자극을 주셨고, 마침 그때 <단지>의 에피소드로 소개된 일이 있기도 했다. 그때 ‘내 이야기를 풀어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Q. 워낙 예민한 문제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주변 분들은 연재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들었다.
A. 단지가 처음 올라오고 나서 일주일 만에 그 편집자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거 너지?”라고. 내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주위 분들은 다 알아봤다. 신기했고, 뿌듯했다.
Q. 웹툰 단지는 주인공 단지가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묘사한다. 초반부에는 주인공 단지가 계속 피해자로 그려지지만, 이후에는 캐릭터의 눈이 바뀐다. 더는 피해자가 아닌 관전자의 느낌이랄까. 실제 본인 심경의 변화를 반영한 것인가
A. 가정폭력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겪는 일이라 스스로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기가 힘들다. 나도 그랬다. 스무 살 중반 이후로는 엄마랑 사이가 더 악화되었는데, 하루는 오빠가 엄마한테 ‘왜 그렇게 애를 잡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던 오빠가 보기에도 내가 당하는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때 뭔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다. 그 이후에는 엄마랑 싸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의 글을 봤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Q. 주인공 단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 가정 폭력을 당하고도 엄마나 김장하러 오라거나 오빠가 맥주 한잔 하자고 부르면 꼬박꼬박 나간다. 왜 계속 나가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A.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일부는 “나도 그래,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식의 댓글을 달기도 하셨다. 불편하다거나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한순간에 확 쳐내기가 힘들다. 단호하기가 힘들었다.
Q. 마음 한쪽에 ‘가족이 언젠간 날 돌아봐 줄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건 아닐까.
A. 맞다. 그렇게 생각하는 단지들이 정말 많다. 인터넷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주로 ‘평생 너 안 볼 거니까 괜히 챙겨주지 말아라’, ‘돈 허투루 쓰지 말라고, 너나 챙겨라’고 댓글이 달린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나도 느낀 게 많았다. 나이를 먹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
Q. 작품에서 단지를 그리게 된 이후로 계속 불려가고 휘둘리는 일들이 딱 끊어졌다고 나온다. 단지를 그리는 게 도움이 된 것인가.
A.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딱 끊어진 건 아니지만, 단지가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끊어졌다.
Q. 작품에서 작가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게 신기했다. 보통 다른 웹툰은 시작과 완결이 짜여 있는 느낌인데, <단지>는 SNS를 보는 느낌이었다.
A. 나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연재하면서 약간의 판타지도 섞을 생각이 있었다. 앞부분은 사실대로 그리고 마무리는 만화적인 허구로 꾸며서 해도 되겠다 싶었지만 <단지>가 일상툰으로 분류되었고, 많은 관심이 쏠리니까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뒤에 가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연재했다.
Q. 시즌1이 본인의 자전적 얘기라면 시즌2는 독자들의 사연을 받아서 연재한다. 시즌 1 때보다 목적이 조금 더 커진 것인가.
A. 처음 작품 기획할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부분이다. 어디서 쉽게 하기 힘든 본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Q. 독자들이 보낸 사연 373개 중 86.3%가 일반 가정 폭력, 9.1%가 근친 간 성폭력 및 추행, 2.9%가 칼을 이용한 가정폭력이라고 작품에서 말했다. 시즌 2에서도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A.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을 칼로 자른 사연이 가장 많이 회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목숨의 위협을 받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혹시 소설 아니냐고 물어보신 분도 있는데, 피해자를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니 실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Q. 해당 사연에서 친아버지가 자른 손가락을 양어머니에게 부탁해서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하고 본인은 숨어있던 부분이 특히 안타까웠다.
A. 그분이 너무 착하셔서 슬펐다. 사연을 보내주신 분을 인터뷰할 땐 여러 가지 감정을 살려가면서 그려야 하니까 감정적인 부분을 세세하게 물어본다.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그분께 물어보니까 되게 걱정됐다고 하더라. 숨어있던 가게에 아빠가 와서 그분들을 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상황에서 다른 분을 걱정하시더라.
Q. 피해자들과 면대면 인터뷰를 하면서 세세한 질문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A. 그래서 처음에 양해를 구한다. 이것저것 세세하게 물어볼 텐데, 상황 표현을 위해 그런 것이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라고 이야기를 한다.
Q. 작품 안에서 너무 소개하고 싶지만, 웹툰이라는 매체 특성상, 혹은 소재의 애매함 등 때문에 그리지 못했던 사연이 있나?
A. 너무 사연이 세서 그릴 엄두가 안 났던 것들이 몇 개 있었다. 하나를 소개하자면, 계모가 한 여성분을 학대하다가 도를 넘어서 그 분을 유흥업소에 불법으로 넘겼다. 아빠는 집에 거의 없었고. 그렇게 업소에서 일하다가 그곳에서 알게 된 언니가 또 그분을 이용하고 도망친 일이 있었는데, 그 언니가 경찰에 잡혀서 전말이 드러났다. 경찰에 엄마, 아빠가 잡혀 들어갔는데 아빠가 선처를 부탁한 일도 있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그분이 미혼모가 되어서 혼자 아기를 키우고…. 이런 사연은 내가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만화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단지>로 그리진 못했다.
Q. 앞으로도 <단지>는 작가님처럼 아픔 받은 분들을 위한 대나무숲 같은 공간이 되는 것인가.
A. 연재가 끝나고 난 뒤에도 페이스북 페이지는 계속 열어둘 생각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 정도면 정말 어디서도 도움을 못 받았던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방향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단지 널 사랑해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ilovedangi)
Q. 단지 작가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연령별 계층별 사연이 폭주할 정도로 온 사회에 만연한 가정폭력의 가장 큰 원인을 무엇으로 보나.
A. 무지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벌어지는 일이 많다. 무지한 부분을 교육하면 그 수가 굉장히 많이 줄어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새로운 세대를 잘 교육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법적인 처벌도 강화되어야 한다.
Q. <단지>가 연재 종료를 앞두고 있다. 차기작은 생각해두었나.
A.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릴지, 창작을 다시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단지라는 필명은 <단지>에서 끝난다.
Q. 수많은 단지들이 본인이 겪는 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단지>의 가장 큰 의의다. 또한, 단지는 가정폭력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다시 환기시켰다. 마지막으로 단지들을 만든 가해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A. 질문지를 받고 나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내 입장에서 ‘우리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없다. 말한다고 가해자들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들에게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