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키모토의 콧노래와 함께 경기가 타임슬립을 시작한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 탁구대 전체를 조망하던 만화의 펜선은
라켓의 핌플 한올한올이 보이는 시점까지 순식간에 조여들어온다.
방심하던 독자는 여백 사이사이 방점을 찍는 음표들에 황홀하다.
한없이 멈춰있을 듯하던 백구(白毬)가 라켓과 조우하는 순간, 마법은 거짓말처럼 풀린다.
잽싸게 도망가듯, 컷 사이에 못박아뒀던 시간이 빛살처럼 가속했다. 찰나는 영원보다 빨랐다. -「핑퐁」 2권」
1967년의 도쿄에서 태어난 평범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장래희망은 J-Leaguer. 프로 축구 선수였다. 허나 신은 공굴리기의 재능을 그에게 내려주지 않았고, 소년은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만의 하나 소년의 체중이 조금만 더 가벼웠더라면, 그가 조금만 더 축구에 재능이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우리는 그의 만화를 보지 못할 뻔했던 게다.신은 그에게 축구의 발재간 대신, 위대한 만화가의 손을 선사했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アキラ)」 이후 일본 만화계의 최대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그 사내아이의 이름.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 바로 그다.
△ [핑퐁 ピンポン(96)] 한국판 표지이미지중
농구 이야기를 그린「STRAIGHT」로 <코믹 모닝 Comic morning>에 준입선하며 데뷔한 18세의 마츠모토 타이요. 곧이어 대학을 중퇴하고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화남(花男, 92년)」, 단편집「푸른 봄(?い春, 93년)」, 「일본의 형제(日本の兄弟, 95년)」 등의 작품을 연이어 내놓으며 만화계의 돌풍을 일으켰다. 잡지 ‘빅 코믹 스피릿’에 연재하기 시작한 「핑퐁 ピンポン(96)」은 세주문화사에 의해 한국에도 발매되었으며, 1998년 일본만화 사상 가장 훌륭한 만화 50선에 꼽히는 영예를 거머쥔다.
얼핏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의 펜선은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딱 한 컷’에 국한된 얘기다. 그는 페이지 전체의 구도를 사용한다. 컷의 구도와 구성, 페이지 전체의 한 컷 한 컷이 잘 짜여진 직소퍼즐처럼 미리 맞추어져 있다는 식이다. 더구나 그 구성이 페이지 단위가 아니라 만화 전체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야말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셈이다. 광각렌즈로 바라보는 듯한 왜곡된 그림체, 영화풍의 독특한 컷 분할. 그의 그림이 한국의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더라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만화의 장점을 어쭙잖은 언어로 제대로 표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권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아쉽게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들은 거의가 그러하다. 평범한 만화라도 설명하기 어렵거니와, ‘만화가 아니면 불가능한 표현’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천재’가 그린 만화임에야 더더욱 그렇다. 그가 그린 만화의 매력을 범인(凡人)이 한칼에 잘라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만화는 언제나 그렇다.
△ 일러스트집 [100(95년)]표지이미지
cf)이외에도 그의 작품은 일러스트집 「100(95년)」, 신세기아동통쾌오락만화라고 불리는 「?コン筋クリ?ト(철근 콘크리트, 93년)」 등이 있다. 「花」, 「ナンバ?ファイブ」, 「ZERO」, 「GOGOモンスタ?」, 「101」.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화보들이요 작품들이다. 글로 쓱쓱 만화의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냐마는, 그래서야 만화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실제로도 불가능하다.
cf)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
△ 푸른 봄 (2002) 토요다 요시아키 감독. 마츠다 류헤이 주연.
△ 핑퐁 (2003) : 소리 후미히코 감독. 쿠보즈카 요스케 주연.
△ 철근 콘크리트 (2007) :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