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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봉성 작가 |
만화가 박봉성은 1949년 3월 29일 부산에서 출생, 16세때 만화가 오명천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만화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1974년「떠돌이 복서」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데뷔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무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때문에 한동안 만화계를 떠나 사업에 투신했다가 1982년「20세 재벌」을 발표하며 만화가로 복귀한다.
이듬해 내놓은 1983년「신의 아들」은 그를 인기 만화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일조했으며 이후 여러 작품을 내놓으면서 자신의 이름값을 높여나갔다. 작가로서의 활동 외에 한국 만화가협회 부회장, 부산 예술문화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한바 있다.
‘이현세 / 설까치-오혜성’, ‘허영만 / 이강토’, ‘이상무 / 독고탁’처럼 한 작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있듯이 박봉성의 작품에는 ‘최강타’가 등장한다.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였을 때는 당시 대본소 만화계에서 유행이었던 ‘설까치’의 아류로 인식됐지만 점차 박봉성의 화풍이 바뀌고 ‘최강타’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가미되면서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게 되었다.
또한 작가 자신이 사업을 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경제를 소재로 하는 기업 극화들을 속속들이 발표했는데 이런 차별화된 전략은 박봉성이 만화계에서 장수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의 대표작「신의 아들」같은 경우 기업 극화와 스포츠라는 두 소재를 한데 아울러 색다른 재미를 선사,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동 작품은 1986년 지영호 감독 / 최민수, 조민수 주연으로 영화화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바 있다.
박봉성은 일찍이 <박봉성 프로덕션>이라는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해 스토리는 작가 본인이 맡고 작화는 문하생들에게 맡기는 공장 시스템을 적용, 대본소(만화방)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이 공장 시스템은 현재까지도 만화계에 잔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많은 찬반양론이 오가고 있다. 대본소를 통한 활동 외에도 잡지 (『보물섬』 - 「괴소년 최강타」), 신문 (『일간스포츠』 -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마피아 캅스」 / 『소년한국일보』 - 「매직 헌터」) 지면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대작에 열중했는데 신문 연재 후에도 계속 후속 시리즈가 발매중인「신이라 불리운 사나이」가 그것이다. 자신의 기 발표작인 「집행인」, 「말소인」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세계 최강의 사나이 ‘피터 팬’이 현존하는 악의 조직들을 상대로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에 박봉성이 그렸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보다 스케일이 방대해졌으며 해외의 거대한 조직들을 차례차례 괴멸시켜 나가는 주인공의 활약은 독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작품으로 박봉성의 이름은「신의 아들」이후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그러나 지난 2005년 10월 15일 산행 중 심장마비로 급사, 오랜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