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저작권자가 될 수 있을까? 저작권의 의미와 종류에 관하여
“잘난 척하기는! AI가 더 발전하면 제일 먼저 없어질 직업 1위가 변호삽니다!”
15분으로 정해진 전화상담을 30분째 끊지 않으려는 노인 분에게 ‘죄송하지만, 이제 끊어야겠다’고 했더니, 벼락같은 호통이 날아옵니다.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겠지만, 그닥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뭐 AI로 대체하려면 못할 게 어딨겠습니까. 그보다는 저렇게 나이 드신 분도 관심 있을 정도로 AI 이슈가 상용화되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인터넷에는 ‘AI가 그린 것과 사람이 그린 것 구별하기’, ‘AI가 생성한 이미 구별하는 법’ 같은 것들이 팁처럼 돌아다닙니다. 생성형 AI는 단순한 지시문이나 대사를 가지고 한 편의 웹툰을 만들어 주고, 웹툰이나 웹소설을 가지고 짧은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숏츠’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거기에 자동으로 목소리를 입혀주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램프의 요정 지니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서 기존의 법률로는 해석하거나 규제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기는 게 문제인데요. 바로 저작권입니다.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란, 창작물을 만든 사람인 저작자가 가지는 원천적인 권리를 의미합니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인류는 거의 그 시작과 동시에 창작에 종사해 왔지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비교적 짧습니다. 인쇄술 개발로 출판이 발달한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저작권법이 만들어졌고, 18세기 영국에서 저작권의 보호 기간이 정해졌으며, 1886년 저작권법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베른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저작권법을 두고 있는 대다수의 국가들은 바로 이 베른 협약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해서 다 저작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적, 문화적 창작 표현물’이어야 하는데, 어문 저작물(소설, 시, 희곡, 대본 등), 미술 저작물(회화, 서예, 조각, 공예 등), 사진 저작물, 교육 저작물(논문, 강연 등), 음악 저작물(곡, 가사), 영상 저작물(드라마, 영화, 광고 등), 디지털 저작물(웹사이트,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등)이 있습니다. 대본과 음악, 미술 세트, 배우의 연기 등이 전부 합쳐져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나 뮤지컬 등의 경우는 결합 저작물로 분류합니다. 여러 저작물 중 유독 늦게 포섭된 것이 무용 저작물인데, 무용이나 안무는 다른 분야보다 약 300년이나 늦게 저작물로 인정받았습니다. 고정된 형태가 아니어서 권리 관계를 설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죠. 지금에야 그 누구도 무용이나 안무가 창작물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으니, 저작물의 범위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정 요리에 대한 ‘레시피’ 같은 경우도,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화하면 언젠가 특정한 그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들을 갖게 될까요? 우리나라는 우선 저작권을 저작인격권(moral right)과 저작재산권(economic right)으로 나눕니다. 저작인격권은 오로지 저작권자에게만 귀속되며, 저작권자 본인이 원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이전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상속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반면, 저작재산권은 저작권자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처분할 수 있고, 양도, 대여, 상속 등이 모두 가능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저작권을 언급하게 될 경우, 그때의 ‘저작권’은 맥락상 저작인격권보다는 저작재산권 얘기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상 저작재산권의 유지 기간은 작가 사후 70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저작인격권은 단 세 가지만 포함하는데, 바로, 공표권(저작물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거나 발표하지 않을 권리), 성명 표시권(저작물에 저작자의 이름을 표기하거나 표기하지 않을 권리), 동일성 유지권(저작물의 내용을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할 권리) 이렇게입니다. 반면 저작재산권은 일곱 가지 종류가 있는데,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입니다. 용어가 쉬운 듯 은근히 어려운 데다 쌍둥이들처럼 서로 구별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그 세부적인 항목에 대해서는 한 번씩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복제권은, 복사, 인쇄, 사진 촬영, 녹음, 녹화 등의 방법으로 저작물을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유형물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형체를 가진 물건을 뜻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인쇄물인 책을 복사기에 넣어 또 다른 인쇄물로 만들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무용가의 공연을 녹화하여 영상 파일로 만들거나, 녹음하여 음성 파일로 만들거나 사진으로 찍어 인화하는 것, 디지털화된 저작물 파일을 복사 붙여넣기 하여 여러 개의 파일로 만드는 것도 전부 ‘복제’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공연권은, 저작물을 상연, 연주, 가창, 구연, 낭독, 상영, 재생 등의 방법으로 불특정 다수의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연’에 방송을 포함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몇 번의 논의와 개정이 있었는데, ‘공중송신권’이 따로 생김으로써 이견이 없게 되었습니다. 2006년 신설된 ‘공중송신권’은 유선이나 무선 통신의 방식으로 저작물이나 그에 대한 실연, 방송 등을 송신, 방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 방송, 일대일 방송 등도 모두 이에 포함됩니다.
전시권은, 저작물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대중이 관람할 수 있는 곳에 진열하거나 게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보통 회화, 조각, 설치미술 등 미술품을 전제로 하지만 그 대상에 제한은 없으므로, 건축저작물, 어문 저작물, 디지털 저작물 등도 다양한 형태로 전시가 가능합니다. 그 장소는 반드시 갤러리, 전시관이어야 할 필요가 없으며, 길거리, 공원, 건축물의 외벽, 건물 로비 등 여러 명의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됩니다.
배포권은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을 대중에게 양도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료 배포와 무료 배포를 모두 포함합니다. 배포권에는 특이한 예외 규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최초 판매의 원칙’입니다. 이게 뭐냐면, 저작권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저작물 원본이 아닌 그 복제물을 판매한 경우, 그 한 번의 판매로써 배포권은 없어지고, 구매자에게 배포할 권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소비자는 그 책을 당근마켓에 팔든, 다른 사람에게 주든 맘대로 할 수 있고, 그때마다 일일이 작가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배포권에 ‘대여’의 개념이 들어가므로, 굳이 ‘대여권’을 따로 두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저작권법상 ‘대여권’은 단 두 종류의 저작물에만 인정되는데, 바로 공표된 상업용 음반과, 공표된 상업용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이 두 종류의 저작물은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대여가 이루어질 경우 저작권자의 판매 수익을 감소시킬 수가 있으므로, ‘영리 목적의 대여’에 한해 저작권자가 금지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인데요.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별로 없어진, 그리고 음반과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영화의 불법 업로드와 다운로드가 저작권자의 수익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는 요즘은, 대여권 범위에 대한 재정비가 확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차적 저작물 작성권(Right of the Production of Derivative Works)’인데요. 원 저작물을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 제작하여 만든 또다른 저작물을 ‘2차적 저작물’이라고 합니다. 단순 복제와 다른 것은, 2차적 저작물은 ‘사회 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로의 수정’과 ‘새로운 창작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내 남편과 결혼해줘’ 웹소설이 원 저작물이라면, 그걸 가지고 만든 웹툰이나 드라마는 2차적 저작물이 됩니다. 드라마의 인기 주연이나 조연을 가지고 새로운 시리즈를 만드는 ‘스핀오프’, 과거의 히트곡을 요즘 감성에 맞게 편곡해서 새로운 가수가 부르는 ‘리메이크’ 전부 2차적 저작물입니다. 그 밖에도 한국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경우의 일본어 소설도 2차적 저작물로 보는데, 그 이유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번역가 개인의 창작성과 예술성이 반영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차적 저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원작자는 손해배상이나 배포 금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게 ‘2차적 저작물 작성권’입니다. 물론 저작권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별개로, 2차적 저작물을 만든 사람은 그 저작물에 대하여 저작권자로서 권리를 갖습니다. 단, 원 저작물을 단순히 잘라내어 모아 붙인 편집 영상이라든가, 원 저작물 여러 개의 링크를 모아 만든 웹사이트는 새로운 창작성을 부여할 정도로 수정되지는 않았다고 보아서 2차적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저작재산권은 존속기간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작가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난 옛날 작품은 패러디하거나, 오마주하거나, 2차 창작을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저작권자는 저작물에 대하여 거의 절대적인 권리를 갖습니다. 심지어 이 권리는 굳이 등록하지 않더라도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로 자동으로 부여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저작권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현행 법의 테두리에 들어오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 출연했을 때는 모두가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챗 GPT 개발사가 헐리웃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모방한 AI 음성을 사용하다가 배우 본인의 항의로 서비스를 중단하고, 네이버의 유명 웹툰이 한 회차의 모든 컷을 생성형 AI로 만들었다가 별점 테러를 당하는 등, AI와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AI를 학습시킬 때 그 학습에 제공되는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라’는 권고안을 냈지만, 아직 권고안일 뿐입니다. 저작권자의 창작물이 함부로 이용되고 소비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법적 보호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