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초밥왕’의 레시피를 베낀다면? 저작권의 범위와 등록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개정된 저작권법 시행규칙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웹툰이나 웹소설 같은 시리즈물에서, 최초 저작권 등록 후 두 번째 등록부터는 수수료를 대폭 인하해 주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 들었던 게 이제 1만 원이 된다고 하는데요. 길이가 짧은 웹소설의 경우 3천 회차, 심지어 5천 회차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는 걸 고려하면, 회마다 저작권을 등록한다고 가정했을 때 9천만 원 들 것이 천만 원 들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비용이 부담스러워 완결 때까지 저작권 등록을 미루고 또 미루면서 혹시 그 사이 누가 표절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에 잠을 설치던 작가들에겐 상당한 희소식인 셈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저작권을 등록하지 않으면 작가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걸까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그 긴 세월 동안 혼자 대하소설을 썼다면, 그건 등록하지 않았으니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무료 연재를 할 때도, 습작할 때도, 아니, 집에서 혼자 일기를 쓸 때도 저작권을 일일이 등록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 편의 드라마를 쓴다면, 한 장짜리 기획 메모와 세 장짜리 시놉시스와 스무 장짜리 시놉시스와 오십 장의 대본을 하나하나 일일이 다 등록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작권 등록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막연히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 건지,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상 생각하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프다는 작가 및 작가 지망생 분이 많습니다.
특허 같은 산업재산권과 달리, 저작권은 등록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천부적’ 권리입니다. 사람이 태어난 후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부인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저작권을 갖게 됩니다. 다만 그걸 외부적으로 표현하여 좀 더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작권 등록일 뿐입니다. 작품을 창작한 사람의 이름과 창작한 날짜, 작품을 발표한 날짜를 등록한 저작권등록부는 누구나 원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거 내 거!’라고 만천하에 외치는 것이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작품은 분쟁이 생겼을 때 저작자가 그걸 창작했다는 걸 직접 증명해야 하지만, 등록해 둔 작품은 그 저작권을 일단 정당한 것으로 보는 ‘추정력’이 발생합니다. 즉, 그 저작권을 부정하려면 상대방이 ‘저작권 등록자가 실제 창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무에서는 이 ‘입증책임’이라는 게 소송의 판도를 한번에 바꾸고도 남는 초강력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합니다.

저작권을 미리 등록해 놓으면, 저작권을 침해당했을 때 침해자에게 배상을 받아내는 과정도 쉬워집니다. 기본적으로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에서는, 판결을 받아내고자 하는 사람, 즉 원고가 본인이 청구하는 액수만큼의 손해를 입었다는 걸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강백호가 서태웅의 발을 걸고 넘어뜨려 서태웅이 다쳤다고 해봅시다. 서태웅은 실제 지출한 병원비 영수증과, 다친 기간 동안 농구를 하지 못해 자신이 벌지 못한 금액을 보여주는 소득정산 내역서를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그 금액만큼의 손해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작권침해의 경우 이게 엄청나게 어려워집니다. 작곡가인 팥쥐가 라이벌 작곡가 콩쥐의 노래를 표절한 곡을 발표함으로써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콩쥐가 입은 손해를 도대체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팥쥐의 노래가 발표되기 전과 후의 콩쥐 노래의 매출액을 단순 비교해 그 차액을 손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해 팥쥐가 ‘콩쥐 노래가 한물 가서 매출이 떨어진 것이다’라고 반박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저작권법은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파격적인 우대 정책을 도입했는데, 바로 저작권을 미리 등록해놓기만 하면 실제 손해액을 굳이 머리 아프게 계산하지 않아도, 저작물 하나에 대한 침해행위마다 1천만 원, 영리를 목적으로 고의로 한 경우에는 저작물 하나에 대한 침해행위마다 5천만 원을 법원에서 손해액으로 인정할 수 있게 ‘법정손해배상제도’를 마련해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호기간에도 차이가 있는데, 무명의 저작물은 그 저작권이 발표 후 70년까지 인정되지만, 저작자가 자기 이름을 등록하게 되면 발표 후가 아닌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연장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혜택을 최대한 누리려면, 작가는 저작권을 등록한 후 열심히 식이요법과 건강관리를 해서 오래오래 사는 게 좋겠죠.
자, 이제 저작권 등록의 장점을 알았으니, 나도 한 번 등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이버 강국 대한민국답게, 우리나라에서 저작권 등록도 안방에 앉아 클릭만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copyright.or.kr)에 들어가시면 메인화면의 가장 첫 번째 메뉴가 바로 ‘저작권 등록’ 메뉴입니다. 방법을 몰라도 영상을 보면서 따라할 수 있도록 매우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등록 메뉴를 들어가면 가장 먼저 뭘 등록할지 선택하여야 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어문 ․ 음악 ․ 연극 ․ 미술 ․ 건축 ․ 사진 ․ 영상 ․ 도형 ․ 편집 ․ 컴퓨터프로그램의 저작권, 실연 ․ 음반 ․ 방송의 저작인접권, 데이터베이스 제작자 권리, 출판권, 배타적 발행권 이렇게 3종 15개가 기본적으로 등록이 가능한 권리들입니다.
위 15개 중 의미가 곧바로 와 닿지 않는 것들만 몇 가지 살펴보자면, ‘도형저작물’은 지도, 도표, 약도, 설계도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림은 그림인데, 기능의 목적과 요소가 강한 그림이죠. 그래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그 형태가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나므로 저작물로 인정 됩니다. 김정호가 현대에 살아서 대동여지도를 그렸다면, 바로 이 도형저작물로 저작권 등록을 했을 겁니다. ‘편집저작물’은 어떤 소재나 저작물을 나름의 기준과 고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편집하여 만든 새로운 창작물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사학자가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하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편집해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었다면, 그건 편집저작물에 해당하는 것이죠. 저작물이 아닌 정보의 집합으로도 편집저작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필독서였던 ‘전과’나 ‘백과사전’이 좋은 예시죠. 다만 저작물이나 정보를 기계적으로 나열하거나 복사 ․ 붙여넣기 해서는 안 되며, 기존의 저작물과는 차별점이 있는 편집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편집저작물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는 게 ‘데이터베이스’인데요. 한 마디로 편집저작물의 전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나무위키’ 같은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저작권법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인적, 물적 투자를 한 제작자에게 저작권과 비슷한 권리를 부여해 줍니다.
그러면 ‘저작인접권’은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 제가 좋아하는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뉴진스의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따로 있지만, 그 노래가 인기를 끌고 팔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뉴진스겠죠. 그런데 뉴진스가 어디에 가서 노래를 부르려고 할 때마다, 작곡가가 불쑥 나타나 “저작권이 나에게 있으니, 부르고 싶으면 사용료를 내라!”고 한다면 불공평하겠죠.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라보, 연진아!” 송혜교가 드라마 속 명대사를 재연할 때마다 매번 작가에게 사전 동의를 받긴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저작권법에서는 연기자, 무용가, 연주자, 가창자, 연출자 등의 ‘실연자’, 그리고 음반제작자와 방송제작자에게 ‘저작인접권’이라는 일종의 세미 저작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작인접권에 따라 실연자에게는 실연할 권리와 그걸 녹화 및 촬영할 권리를, 음반제작자와 방송사업자에게는 복제권과 배포권, 방송권이 주어집니다. 저작물의 원활한 유통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죠.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위 15개 유형에 속하지 않으면 등록을 못하는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법을 만들 때 ‘예시’ 조항과 ‘열거’ 조항을 구분하는데요. ‘예시’ 조항은 어떤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주는 것이라면, ‘열거’는 해당 사항을 모두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령 ‘동물에는 개, 고양이, 호랑이 등이 있다’는 예시이고,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인정되는) 성별에는 남성, 여성이 있다.’는 열거입니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저작권 등록 범위 규정은 예시 조항이기 때문에, 위 15개에 속하지 않아도 창작성을 갖춘 저작물이면 ‘일반저작물’로 등록이 가능합니다. 다만 기존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등록 가능성이 불투명하긴 합니다. 게임은 저작물로 명확히 인정받을 수 있겠죠. 반대로 판결문이라든가, 법률 같은 것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요리사의 독특한 레시피는 어떨까요?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비열한 라이벌이 주인공의 비장의 레시피를 훔쳐 가 대박을 치거나 요리대회에서 이기는 장면이 꼭 나오곤 하죠. 실제로 업계에선 빈번히 문제가 되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저도 작년 일본 여행을 가서 편의점 구경을 하다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야식거리인 까르보불닭볶음면과 맛, 외양은 물론이고 포장지 색깔까지 똑같은 라면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부당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레시피는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레시피는 구체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며, 누구나 알고 있는 재료나 소스를 수적으로 배합해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게 창작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인데요. 글쎄요, 젊은 아들이 이백 년간 가업으로 운영해온 떡집을 물려받으려고 도쿄대를 중퇴하고 시골로 내려간다는 일본이나, 잘 나가는 국밥집 육수집 비결을 알아내려고 한 달 내내 그집 쓰레기통을 뒤진다는 우리나라, 미슐랭 투스타를 몇십 년간 유지하다가 별 하나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쉐프가 자살하기도 했다는 프랑스처럼, 음식과 요리에 진심인 나라 사람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작물의 범위에 대한 해석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골프 코스를 저작물로 인정해야 하느냐를 두고 현재 법조계가 시끌시끌한데요. 스크린골프 업체와 골프코스 설계업체 사이에서 벌어진 소송전에서, 법원은 1심에서는 골프 코스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하였다가, 2심에서는 그 결론을 뒤집어 부정했습니다. 골프 코스는 창작성이 아닌 기능 목적의 기술적인 조합이라는 2심이 나온 후, 한국조경가협회는 ‘골프장은 전문 조경가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개성적이고 매력 있게 새롭게 배치, 조합, 배열된 창조적 공간’이라며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골프 코스의 저작권을 관행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능적인 아이디어도 저작권법이 아닌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긴 합니다만, 그 요건도 만만찮게 까다로워서 충족시키기가 쉽진 않습니다. 결국 저작물의 범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고, 또 변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적합한 기준을 찾기 위해 멈추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여야 할 것이고요. 된장을 좋아하는 큰아이를 위해 제가 개발한 ‘미소 된장 치킨’도. 언젠가 등록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