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보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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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은 미친 짓이다, 공동저작 및 팀 프로젝트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웹툰 보는 변호사 – 만화를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알아야 할 법 이야기 4화

2024-07-14 서아람

동업은 미친 짓이다, 공동저작 및 팀 프로젝트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작가를 나누는 분류법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이렇게 나누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반짝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강한 작가, ‘세부적인 스토리를 짜고 표현하는 데 강한 작가’. 이 글을 읽는 작가 분들은 어느 쪽이실까요? 저는 단연코 전자 쪽이라, 아이디어 노트에 한 줄, 두 줄씩 적어놓은 아이템들이 한가득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들을 일일이 구체화시킬 시간이 없고 그럴 능력도 부족하다 보니,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동업자를 둘까? 회차별 트리트먼트까지 짜는 작업을 내가 하고, 구체적인 집필은 공동작가가 맡아준다면 지금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 속도와 퀄리티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행복한 상상(?)을 완전히 접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어느 웹소설 작가님의 방문 상담이었습니다. 정식 데뷔 전부터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미완성 원고가 있었다는 그 작가님은, 3년 전 웹툰 작가 지망생인 친한 친구와 함께 해당 원고를 웹툰으로 만들기 위해 거의 일 년 넘게 공동작업을 했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대폭 방향을 수정하자 완전히 새로운 길이 보였고, 신나게 작업에 매달린 작가님이셨는데요. 문제는 친구 작가의 갑작스러운 변심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싫어졌다는 친구 작가는 어느 날 휴대폰번호를 바꾸고 외국으로 훌쩍 떠나 버렸고,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디벨롭한 작품을 어떻게 하자는 얘기는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로요. 결국 웹소설 작가님은 공동으로 개발한 작품은 일단 내버려 두고 다른 글을 쓰기 시작해 데뷔했지만, 제일 아끼는 작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작품의 시놉시스를 들은 에이전시며 플랫폼에서는 당장 연재하자고 난리가 났는데,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니 함부로 계약할 수도 없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내 의지로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이다 보니, 이런 사례는 종종 들려옵니다. ‘동업은 미친 짓이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공동저작’, ‘공동저작물’, 그리고 공동저작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우선 우리는 공동저작의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전부 공동저작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에 따르면 공동저작물이란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서 각자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하여 이용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 여러 사람이 저작 과정에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참여한 부분을 콕 집어 골라낼 수 있다면 그건 공동저작물이 아닙니다. 대신 결합저작물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흔한 예시로 소설책에 들어가는 표지와 삽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소설 본문에 대해서는 작가에게, 표지와 삽화에 대해서는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각각의 저작권이 귀속되고, 이 두 저작물이 결합하여 소설책이라는 하나의 결합저작물을 완성하게 됩니다. 또한, ‘2차적 저작물 공동저작물도 구분되어야 합니다. 웹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웹툰 작가가 웹툰을 만들었다고 해서 웹소설 작가와 웹툰 작가가 웹툰의 공동저작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웹툰은 웹소설의 2차적 저작물로서, 웹툰 작가는 2차적 저작물인 웹툰의 저작권을 오롯이 혼자 갖게 됩니다. 웹소설 작가는 어디까지나 1차적 저작물의 저작자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분리할 수 없는 공동저작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보통 여러 명의 작가나 감독, 제작자 등이 관여하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에서 공동저작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소송전이 벌어졌던 OTT 드라마 안나의 경우, 연출과 각본을 맡은 감독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드라마가 8부작에서 6부작으로 축소 편집되었다면서 플랫폼인 쿠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에서는 쿠팡을 공동저작자로 인정하면서 쿠팡에게도 편집권과 저작권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2013 뽀로로를 두고 벌어진 저작권 분쟁에서도, 법원은 뽀로로라는 캐릭터의 창작적 표현에 두 개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모두 공동저작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뽀로로의 공동저작권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 통신사, 방송국까지 무려 4개의 회사가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역시, ‘뽀통령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공동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행사해야 뭐든지 공동저작자들이 협의해서 결정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다 불법이 되는 걸까요? 물론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겠으나,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제약을 걸다 보면, 저작권 보호를 위한 규정이 반대로 저작자의 자유를 해치는 결과가 될 수 있기에, 저작권법에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을 두고 있습니다. 우선, 공동저작물의 저작권을 행사할 때는 전원이 합의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공동저작자 중 한 명이 별 이유도 없으면서 다른 저작자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 낸 창작물의 공표를 반대하고, ‘영원히 발표 못 한다!’고 억지를 쓴다면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저작권법에서는 신의(信義)에 반하여 합의의 성립을 방해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신의라는 말이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보통은 다수결로 해결할 수 있다 정도로 해석합니다. 여러 명의 저작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는데, 한 명이나 소수가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이를 반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공동저작권을 행사하는 데 매번 협의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기 위하여, ‘대표자를 선임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저작자들은 대표자가 마음대로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한을 걸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전자출판 계약을 할 때 인세 분배는 7 3 이상이어야만 한다’, ‘A, B, C 플랫폼 중 C 플랫폼과는 계약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 대표자가 이 제한을 어기고 체결한 계약의 경우, 계약 상대방이 그 제한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닌 한 유효하다고 봅니다. 저작자들 내부의 합의 내용은 공표되거나 알기 쉬운 게 아니므로, 대표자를 믿고 계약을 체결한 계약 상대방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공동저작자 중 한 명은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결정만으로 포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그 권리를 담보로 설정해 돈을 빌리거나 할 때는 다른 저작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왜 이런 부분까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누구누구가 공동저작자가 되는지는 사실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 때문입니다. 공동저작물의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은 마지막에 사망한 저작재산권자를 기준으로 하여 사후 70(2013년 이전의 저작물은 사후 50)으로 계산됩니다. 그래서 여러 명의 공동저작자가 있다면, 그중 한 명은 최대한 장수하는 것이, 나머지 공동저작자들의 유족에게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 이익 배분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 법은 계약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당사자들 사이에 합의로 정한 게 있다면 그게 1순위가 됩니다. 별다른 합의가 없다면 각자 이바지한 정도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게 되는데요. 가령, , , 하권으로 나눠진 만화책의 상 권을 A 작가, , 하 권을 B작가가 창작했다면 수익 비율은 2:1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이렇게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기여도를 가리기가 어렵겠죠. 그럴 때는 모든 공동저작자에게 동등한 비율로 분배가 이루어집니다. 만일 공동저작자 중 한 명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그 사람의 지분은 각자 갖고 있는 지분 비율에 따라 나머지 저작자들에게 분배됩니다. 공동저작자 중 한 명이 사망한다면 기본적으로 그 지분은 상속인에게 상속되나, 상속인이 없는 경우에는 포기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저작자들이 나눠 갖게 됩니다.

  이렇게 법 조문만 놓고 보면, 공동저작물에 대한 규정은 상당히 공평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왜 주변에서는 공동저작은 미친 짓이라며 말리는 걸까요? 그 이유는, 실제 업계에서 공동저작권 계약을 원래의 취지와 다른 목적으로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대한민국 저작권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검정고무신 사건이 그렇습니다. ‘검정고무신 출판사인 형설앤 대표는 사업화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원작자인 고 이우영, 이우진 형제 작가로부터 캐릭터 저작권의 일부 지분을 받아 저작권위원회에 해당 작품을 공동저작물로 등록하고 자신을 공동저작자로 올렸습니다. 그 후 작가들에게 사전 고지나 동의 없이 2차적 저작물에 대한 사업을 임의로 진행하고, 굿즈를 판매하고, 수익 배분은 매우 적은 비율로 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형설앤 측에서 이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농장에 검정고무신 그림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고, 이 작가 측에서는 검정고무신 극장판이 동의 없이 개봉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격화됩니다. 장기간 이어진 재판에 고통받던 고 이우영 작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7,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형설앤 측에 미배분된 수익을 정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고,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형설앤 대표의 캐릭터 공동저작 등록을 직권으로 말소하였습니다. ‘창작과 무관한 사람이 저작자에 이름을 올렸으므로, 이는 등록을 신청할 권한이 없는 자가 등록을 신청한 것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작가의 고유한 권리인 저작권을 공동저작물 등록이라는 편법으로 슬쩍 탈취하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입니다.

  그런데 검정고무신 사건이 널리 알려진 요즘도, 회사와 공동저작권 계약을 체결하는 작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동기가 보통은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인데요. 과거 업계의 관행처럼 지속되었던 매절계약’,  저작권 양도계약을 체결하는 것보다는 공동저작권 계약을 체결하는 게 그나마 작가에게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공동저작물의 저작권은 저작권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행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만일 한 명이 임의로 행사하더라도, 법원은 이를 저작권 침해행위로 보진 않습니다. , 저작권법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정말 악질적인 회사를 만났을 경우, ‘까짓거 나중에 돈 몇 푼 주면 된다는 식으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웹툰 업계에서는 제작사가 작가의 권리를 사실상 거의 다 가져가는 불공정한 공동저작계약서를 만들어 사인하게 한다든가, 글 작가와 그림 작가에 대하여 따로따로 공동저작계약을 체결하는 이른바 공동저작자 갈라치기를 함으로써 제작사를 제외한 나머지 공동저작자들이 소통하거나 단합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품이 작가의 자식이라면, 공동저작권은 내 자식에 대해 공동양육권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공동저작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아예 체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부득이하게 공동저작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든 이해 당사자가 투명하게 소통하고 협의하여 공정한 내용의 계약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변호사 등 전문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으시고요. 가정법원에서 양육권 다툼을 하는 부부와 자녀를 보는 것만큼 슬프고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작가님들에게는 그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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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람

필자 서아람은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로서, 카카오페이지 추미스 공모전 2회 수상으로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후 에세이, 웹소설,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출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주로 다루는 분야는 사기, 성범죄, 보이스피싱 등 형사사건과 학교폭력, 저작권 관련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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