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
6화-연구 편
아마 여러분의 대다수는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공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평생 공부하고, 연구하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만화인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만화인이라면 일단 모두 만화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만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다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만화를 직접 그리는 것을 통해서 만화를 사랑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만화 굿즈를 수집하는 것을 통해서 만화를 사랑할 것이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화인들은 만화를 공부하고, 만화를 연구하는 것을 통해서 만화를 사랑한다. 이렇게 만화를 연구하는 만화인들 덕분에 우리가 더 깊이 있는 방식으로 만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오늘 소개할 만화인인 이재민 평론가도 만화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써 만화를 평론하고, 만화를 연구하는 만화 평론가이자, 만화 연구자이다. ‘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의 6화, 연구 편에서는 만화 평론과 만화 연구에 대한 이재민 평론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추상적 즐거움을 구체적 기쁨으로 바꾸는 일" - 만화 평론가, 만화 연구자
평론이란, 예술 작품, 문화 현상, 사회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분야의 가치를 평가하고 논하는 일을 말한다. 평론은 영화, 문학, 음악, 무용, 시사,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데, 그중 만화를 대상으로 하는 것을 만화 평론이라고 한다. 평론이라는 분야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평론을 작품이나 현상에 대해 자신의 감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오해하거나, 평론과 비평을 혼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평론은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석을 통해서 일반 대중의 이해를 돕는 것에 기여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감상과 다르다. 평론과 비평은 거의 비슷한 분야이긴 하지만, 비평은 좀 더 학문적인 반면, 평론은 비평보다는 대중을 우선한 글이라는 점에서 비평과도 약간 차이가 있다. 평론가와 예술 평론이라는 행위 자체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도 있기는 하다.
특히,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평론가들에 대해 아주 적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 칼럼니스트들은 자칼들이고, 한번 고기 맛을 본 자칼은, 그 고기를 누가 잡았든 상관없이, 다시 풀만 먹고살 수 없다’라고 한 번 남의 창작물을 비평하며 이득을 얻으면,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평론가들을 비판한 바가 있으며, ‘비평가란 싸움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싸움이 끝난 뒤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총을 쏘러 내려오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비평가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헤밍웨이는 평론가들이 작가에게 기생하며 작가를 평가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하지만 모든 작품에 대해 과도하게 부정적인 평가만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론은 대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사실 대중들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 교육을 받고 예술 작품의 숨겨진 맥락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주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대중에게는 그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능력을 갖췄든, 갖추지 못했든, 예술 작품을 감상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설령 그런 예술 작품을 주체적으로 감상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스스로 생각해서 작품을 분석해야 한다면, 예술 감상이 무척 피곤한 일처럼 느껴지게 되어 예술을 즐기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때 대중들은 대중들에게 그들이 아는 언어로 작품을 설명해 주는 사람인 평론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평론가는 어떤 작품에서 어떤 부분이 왜 좋은지, 혹은 왜 나쁜지,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등을 대중들에게 설명해 줄 수가 있고, 대중들은 평론을 통해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를 수가 있게 된다.
이재민 평론가는 웹툰 리뷰 팟캐스트를 운영하다가 만화 평론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만화평론가로 일을 하고 있다. 이재민 평론가는 평론이라는 작업에 대해, ‘깊이를 만드는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평론은 그냥 넘겼던 만화의 장면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내고, 설득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철학의 개념이나 사회적 현상이 만화에 어떻게 반영되고 드러나는지, 그걸 통해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지 이야기하는 일이다. 이재민 평론가는 특히 만화를 평론할 때 서사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만화의 서사가 현실의 무엇과 연관이 있는지, 인문학적 맥락에서는 무엇과 닿아 있는지 같은 지점들을 찾아내서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평론을 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평론은 작품을 깊이 이해해야 하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발굴하고, 작품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민 평론가에 따르면, 평론의 매력은 이미 지도가 있는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즐거움이다. 평론이란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고,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언어로 닦아놓는 것이며, 그것이 설득력을 갖춰서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고 한다. 실제로 이재민 평론가는 작가들이 자신의 평론에서 한 문장을 뽑아내서 곱씹을 때, 나에게 감동을 준 작가를 감동시키는 문장을 썼다는 즐거움을 느낀다. 작가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맥락을 읽어내서 작가를 설득하고, 작가가 ‘앞으로 남들이 물어볼 때 그렇게 말해야겠다’라고 하면 ‘만화 평론을 하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좋은 만화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을 통해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텍스트를 읽어보는 경험도 평론가 또는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하기도 해야 한다. 여기서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그 문제를 다각도로 해석해 보는 것인데, 논술 수업에서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자신의 취향을 미리 단정하지 말고 다양한 작품을 섭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갇힌 취향의 평론가를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 작품을 깊게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폭넓게 다양한 작품을 읽고 이해하고 만끽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대학생의 경우에는 현실 세계의 견문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대외 활동을 하거나, 본인의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등 본인의 세계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평론가 활동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이재민 평론가는 평론가를 본업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교육자, 저널리스트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중 만화 연구자로서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부설 만화문화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만화문화연구소는 말 그대로 만화 문화 전반에 관한 연구와 문화 증진을 위해 활동을 한다. 작가들은 물론, 독자, 플랫폼, 출판사 등 만화 업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살피고, 연구한다. 행사나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만화문화연구소에서는 이재민 평론가가 소장이 된 후부터 ‘이달의 출판만화’라는 상도 수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화문화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 중에 가장 대표적인 연구는 2023년에 진행했던 ‘네이버웹툰의 흥행 요소 비교 분석’ 연구였다. 흔히 ‘네이버웹툰의 인기작은 회귀/빙의/환생/학원 액션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네이버웹툰의 인기작은 대부분 기업에서 제작한 작품이다’라는 통념이 있는데, 만화문화연구소에서는 이 통념이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연재 중인 작품의 장르를 전수조사하고, 요일별 상위 30개 작품, 즉 210개 작품에 대해서 실제로 어떤지를 살펴보았다. 연구를 해 보니 210개 작품 중에서 108개의 작품이 개인 창작자의 작품이었으며, 기업에서 만든 작품은 약 35% 미만으로 나타났다. 장르 편향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들이 작가에 대해 얼마나 신뢰를 품고 있는지, 작가만의 정체성이 얼마나 잘 드러나고 있는지 등에 따라서 작품의 인기 여부가 결정된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연구를 할 때, 이재민 평론가는 작품 210개를 전부 읽어봐야 했다. 이재민 평론가는 원래 만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물론 많은 만화를 읽는 것이 즐겁긴 했지만, 이 연구를 할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느낌도 받았다. 만화를 연구하는 것은 이렇게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하므로, 아무리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있다고 한다. 만화문화연구소에서는 만화 연구를 정책에도 반영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특히, 현재 웹툰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저작권 문제와 웹툰의 세계화다. 인공지능의 대중화로 인해 웹툰 업계에서는 저작권 침해 등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만화인들의 두려움이 컸다. 만화문화연구소에서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법제화에서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토론회, 간담회 등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가 세계화되고 있는 만큼 웹툰도 세계화가 되고 있다. 웹툰이 세계화가 되는 것은 웹툰 업계에 좋은 신호지만, 문제는 웹툰의 불법유통도 세계화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웹툰 작가들이 개인 SNS에서 웹툰 불법 번역으로 인한 피해를 토로하는 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최근 웹툰 불법 번역의 문제는 심각하다. 만화문화연구소에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이러한 불법유통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 수립과 실행 단계에서 조율해야 할 문제들을 듣고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만화 평론은 ‘만화에 깊이를 만드는 일’이라고 이재민 평론가의 말을 빌려 언급했었다. 만화 평론이 만화에 깊이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만화 연구는 만화의 수평적 한계를 확장해서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만화 연구는 만화 문화의 토대가 되어줄 수 있는데, 이 연구들은 일반 대중들의 만화에 대한 인지를 확장하고, 상식 범위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이재민 평론가는 이를 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비유했는데, 양자역학이라는 개념은 과거에 상식적인 지식의 범위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 등 양자역학에 관한 연구가 점점 발표되며 양자역학이라는 복잡한 개념은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 상식의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만화 이론의 경우에는 칸의 역할이나 시선의 흐름 같은 이론들이 연구를 통해 현재 대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인식되게 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주된 만화 스타일은 웹툰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일본 출판만화를 읽는 것이 대중적인 문화가 되었고, 최근에는 유명 일본 출판만화들이 애니메이션화가 되어 연속적으로 크게 히트하며, 그전까지는 만화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일본 출판만화에 입문하고 있다. 이때 만약 칸의 역할, 시선의 흐름 등 출판만화에 적용된 이론들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면 웹툰에 익숙하던 대중들이 출판만화에 입문할 때 어려움을 느꼈겠지만, 이러한 연구들이 이미 많이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도 이런 이론들을 상식으로 인지하고 쉽게 출판만화에 적응하고 있다. 물론 전문적인 개념들이 대중에게 단기간에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준히 연구가 쌓이다 보면, 출판만화에서 칸의 역할, 시선의 흐름 등의 개념들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복잡한 개념들도 대중에게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재민 평론가는 만화 분야에 지금까지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살피는 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재민 평론가는 만화를 직접 살피고, 기록하기 위해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만화 연구를 직업으로 삼고 일하는 것의 장점은, 직접 일을 만들어서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웹툰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레퍼런스가 적고 연구를 할 때마다 새로 연구 세팅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넓은 시각과 사고가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재민 평론가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만화라는 매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만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찾아내고 그것을 다른 것들과 연결해서 설득력을 갖추게 하는 작업에서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재민 평론가가 만화 연구를 계속하는 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만화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 두면 좋을까? 이재민 평론가에 따르면, 만화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다루는 공부를 해두면 좋으며, 그것을 해석하기 위한 인문학적 지식도 뒷받침되면 좋다고 한다. 또한, 만화를 전문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도 만화 연구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 역량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만화를 볼 때 한 작품에 경도되어 거기에 빠져들게 되는 등,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찾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만화를 전문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만화 바깥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만화의 본질을 적립하고, 그것을 확인하고 끝없이 수정해 나가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방식을 키워야 한다.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있으면 연구원이 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유리할 수가 있는데, 학위가 있으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을 증명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학위는 만화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아니고, 자격요건의 일부다.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자유연구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병행하면서 연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화평론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블로그에 꾸준히 평론을 작성하는 등 자신의 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이재민 평론가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웹툰인사이트 같은 곳에서도 기고받고 있는데, 글을 기고할 때는 작은 매체부터 기고하기 시작해서 점점 큰 매체로 이어가는 전략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도 필요하고, 기존 필진들이 해당 매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재민 평론가는 오히려 다른 전공을 공부하면서 만화 연구를 하는 것이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재민 평론가도 대학교에서 영어 통번역을 전공했었는데, 전공을 활용해서 다양한 국가의 만화를 보고, 다양한 국가의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이 만화 연구자로서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만화문화연구소의 구성원들도 만화를 전공하지 않은 연구자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이재민 평론가는 진로 고민을 하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중학생, 고등학생 때 평생의 진로를 정하는 것이 정말 현명한 걸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재민 평론가 또한 중학생 때는 천문학자가 꿈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카피라이터, 대학생 때는 소설 번역가가 꿈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의 꿈들 중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하였지만, 만화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된 현재, 직업에 200%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이재민 평론가는 학부모 상담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지금의 조부모 세대부터 부모 세대까지는 이 세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세대이고, 인생에 정답 같은 루트가 있었던 시대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가 아주 빠르게 변하는 시기이고,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어떠한 직업이나 학과의 전망이 어떻고, 자녀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학부모들에게 명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그렇더라도 이재민 평론가는, 현재 부모 세대가 자라면서 가졌던 불만인 ‘왜 내가 하고 싶은 것 말고 다른 것을 이렇게 열심히 시키느냐.’, ‘왜 억지로 해야 하는가’, 최소한 이런 불만은 학생들에게 겪지 않게 해 주는 게 맞다고 학부모들에게 말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녀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싶다면, 부모가 자녀의 가치관과 흥미를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자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자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허락해 주고, 지원해 주면서도 자녀를 닦달하게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재민 평론가는 학생 상담에서는 정말로 이것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그리고 만화에서 어떤 요소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만화를 만드는 일은 정말 재미없는 일의 반복이고, 그것을 견디려면 만화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민 평론가는 장래에 만화인이 되는 것이 좋을지, 만화인이 된다면 만화가가 되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할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옳을지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 외부의 요소에 자신의 결정을 맡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고,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여담은, 여러분이 지금 아무리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 관련 업종에서 종사하겠다고 지금 정해 두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진로는 앞으로 여러분의 흥미와 주변 환경이 변해가며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만화를 좋아하게 되어서 만화 업종에서 일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처럼, 언젠가 여러분이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되어서 다른 업종에서 일하고 싶다고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당장 만화를 좋아한다고 여러분이 섣불리 진로를 확정해 둔다면, 나중에 다른 쪽에 흥미가 생기더라도, 이미 확정해 둔 진로 때문에 다른 진로를 찾아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여 억지로 만화를 계속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에서 소개한 많은 만화인들도 모두 처음부터 그 직업을 가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은 여러 외부 상황 변화와 내적인 성찰 끝에 현재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앞에서 이재민 평론가가 지금은 세계가 아주 빠르게 변하는 시기라고 말했었다. 그에 따라 여러분의 주변 환경도 아주 빠르게 변할 것이며,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맞춰서 여러분의 흥미 또한 빠르게 바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이재민 평론가가 제시한 ‘중학생, 고등학생 때 평생의 진로를 정하는 것이 정말 현명한 걸까요?’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 만화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만화를 추구하도록 하자. 그러다가 만약 여러분이 더 이상 만화 업계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졌거나, 혹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진로를 바꾸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여러분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은 여러분이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만화와 관련된 일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서 망설이고 있다면, 그럴 경우에도 여러분은 외부의 요소에 결정을 맡기지 말고, 여러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