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
7화-교육자 편
교육자는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방향을 설정해 주고, 힘들어하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제자들이 좌절할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독려해 주는 사람들이다. 만화 분야에서도 좋은 교육자들이 많이 있다. 좋은 만화가가 있기 위해서는 그 전에 좋은 스승이 있어야 한다. 물론 만화를 독학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만화를 독학하기만 해서는 좋은 만화가가 되기 어렵다. 혼자서 그림 연습과 스토리텔링 연습을 아무리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연습이 적절한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만화라는 상업 예술 매체는 독자들에게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연습 단계에서도 타인에게 자신의 작품을 자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럴 경우에 좋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좋은 교육자가 곁에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교육자 편에서는 활발한 웹툰 작가 활동과 동시에, 후배 만화가들과 만화가 지망생들을 이끌어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산하 작가를 만나보았다. 그동안 많은 만화가를 양성한 산하 작가가 작가로서 쌓은 노하우들과 후배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만화가 지망생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만화를 생각하고, 가르치는 사람" - 멘토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전문 분야나 인생의 길에 관해 조언해 주고 이끌어주는 스승을 멘토라고 한다. 사실 한국 만화 업계, 특히 웹툰 분야에서는 오랜 현장 경험을 쌓은 좋은 멘토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가 있다. 웹툰이라는 매체가 단기간에 아주 빠르게 발전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출판만화 시절에 경력을 쌓은 작가 중에서도 웹툰 시장에 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작가들도 많고, 웹툰 작가 중에서도 몇십 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출판만화 스토리 작가 활동을 하다가 웹툰의 시대 이후에 웹툰 스토리 작가가 되어서 현재까지 다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경력 40년, 멘토 경력 28년의 산하 작가는 전문적인 현장 경험과 지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최고의 멘토라고 할 수 있다.
산하 작가는 만화 스토리 작가다. 만화 스토리 작가라는 직업은 그냥 글을 쓰거나 콘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만화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 스토리 작가는 만화 스토리를 비롯해 연출과 컷까지 머릿속으로 그린 후에 작화가도 그것을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도록 작화가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토리 작가는 선화, 색채, 보정 효과 등 그림 작가의 영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산하 작가가 만화 업계에 뛰어든 것은 40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만화로 이야기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글쓰기보다 쉬운 줄로 착각하고 만화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만화 작가가 된 후에 만화가 그 어떤 스토리 전달 매체들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하 작가는 스토리 작가가 된 후에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시나리오, 소설, 만화를 모두 작업해 보았으나, 그 중에서 만화는 다른 매체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 이유는 회차당 컷이 너무 적기 때문이었다. 다른 매체들에 비해 만화는 한화에 전달할 수 있는 분량의 한계가 크기 때문에, 적은 컷 안에 많은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하고, 그 압축력에서 다른 매체와의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1분 분량의 대본이었던 것이, 만화에서는 100컷 분량의 대본이 된다. 영화에서는 이 분량을 줄일 필요가 없지만 만화에서는 한 회차당 분량을 적당하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이 분량을 압축시켜야 하고, 이것이 만화를 다른 매체보다 더 어렵게 만든다. 산하 작가는 만화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만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만화를 해내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공부를 다 끝낸 후에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만화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만화가 너무 어렵고 어려운 것에 비해 그만한 가치가 없는 듯하여 몇 번이나 은퇴를 했었다. 은퇴 후에 영화나 드라마 작업을 하니 만화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고, 그만큼 성과도 좋았다. 그러나 산하 작가는 만화에 비해 너무 쉬운 영화/드라마 시나리오 작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고, 다시 만화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잡지 만화를 작업하다가 산하 작가는 웹툰 스토리를 써달라는 친한 작가들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웹툰 스토리를 쓰게 되었다. 첫 작품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웹툰 공부를 시작했다. 산하 작가는 1년 동안 오피스텔에 틀어박혀서 당시 존재하던 모든 웹툰을 전부 다 읽으며 웹툰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만든 다음 웹툰은 히트를 쳤고, 그 이후로 계속 스토리를 써달라는 지인들의 부탁을 받게 되며 한 번에 6작품씩을 연재하기까지 했다.
산하 작가는 무려 40년 동안 만화 현장에서 스토리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하나의 직업, 심지어 프리랜서로서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어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동하는 비결을 질문하였다. 마침, 이 질문은 산하 작가가 제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라고 한다. 산하 작가는 제자들의 이러한 질문에 ‘작가의 기본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거나 쫓겨날까 봐 걱정하지 말아라. 제대로 된 작가가 되면 선생님처럼 오래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다.’라고 대답을 한다고 한다. 산하 작가는 자신이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 오랫동안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하 작가는 지망생들에게 오래 활동하는 작가의 비결보다는 오래 활동하지 못하는 작가의 과오를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하 작가의 분석에 따르면, 작가의 은퇴 시기는 독자가 정해주는 것이고, 독자들에 의해 은퇴 시기가 앞당겨진 작가들은 자기만족이 너무 빨랐다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차기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늘 마음을 먹고 있어야 한다. 칭찬을 듣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부족한 점들을 채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롱런하지 못하는 작가들은 이런 부분에서 몇 가지 실수를 한다. 자신이 이룬 성공이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실제 성취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믿는다. 한번 성공한 작가는 자신의 성공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야기의 생명력은 그 이야기를 끝내는 순간 반은 없어지게 되며, 이전의 트랜드를 반복하게 되면 다음 이야기의 생명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산하 작가는 작가로서 계속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첫 번째는 이전에 한번 썼던 것은 아예 버리고 새로운 것을 쓰는 방법이다. 만화가는 죽을 때까지 버리는 작품을 전부 포함해서 몇백 편을 써야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변주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다. 변주를 연구하지 않고, 계속하던 것들만 하게 되면, 독자는 계속 같은 것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독자는 계속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는데, 그걸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전에 아무리 성공했던 작가일지라도 신인 작가들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게 된다. 마지막 방법은 마치 집밥처럼, 독자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은 너무 자극적이지 않되 볼수록 느낌이 오는 만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산하 작가는 이 방법이 가장 어려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산하 작가를 3번째 은퇴에서 복귀하도록 만든 것은 제자들이다. 은퇴하였으나 계속 제자들이 눈에 밟혔고, 제자들을 가장 잘 가르치고 제자들을 만화가로서 먹고 살게 해주는 방법은 제자들에게 스토리를 써주는 것이기 때문에 3번째 은퇴로부터 복귀하여 지금까지 스토리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만큼 산하 작가는 제자들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다. 산하 작가는 만화에 도전하는 지망생들을 보며 깊은 물 근처의 얕은 물가에 어린이가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럴 때 어른은 어린이를 물 밖으로 꺼내 주거나, 혹은 헤엄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한번 물에 들어간 어린이는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에 헤엄치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라는 비유로 지금까지 멘토 활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산하 작가는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들이 모두 비슷한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극소수의 천재가 있기는 하지만, 독자는 천재와 노력으로 천재와 비슷하게 보이게 된 수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산하 작가는 이 비슷한 재능을 가진 수재들에게 천재와 비슷하게 보이는 방법을 가르친다. 산하 작가는 그 방법으로 ‘올바른 방향’과 ‘올바른 습관’을 꼽았다. 여기서 방향이란,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방법이 무언인지, 이것을 익히기 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며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습관은 방향에서 제시하는 공부 방법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다.
산하 작가는 이번 인터뷰에서 칼럼 독자들을 위해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일부 공개해 주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보고 많이 겪는 것이다. 소설도 많이 읽어야 하고, 만화, 영화, 드라마도 많이 봐야 한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작품을 볼 때 독자의 눈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보면, ‘이걸 이렇게 바꾸면 재미있을 것 같아’ 등 작품에 대해 대안이 없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이런 평가는 자칫 작품을 더 좋게 바꿀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일차원적인 평가는 독자라면 누구나 내릴 수 있고, 이러한 평가는 한 장면에 대한 평가일 뿐, 그렇게 바꾼 설정을 작품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면, 작가는 자기 작품을 쓸 때도 대충 ‘이렇게 바꾸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그래서 만화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작품을 볼 때 작가의 눈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로 그 작품에서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것은 왜 좋고, 나쁜 것은 왜 나쁜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최종적으로 변주까지 할 수 있어야 하며, 못 만든 작품을 보고도 잘한 부분을 찾아내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작가의 시선에서 작품을 볼 때는 취향이 아닌 작품도 모두 봐야 하고, 어떤 작품이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그 작품이 재미있게 느껴질 때까지 계속 봐야 한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좋아하는 작품은 이유가 있고, 작가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취향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대중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취향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작가의 내면에 독자를 키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보다 보면, 작가의 내면에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가진 독자가 생기게 되는데, 이 독자를 작가 자신과 분리한 후에 이 독자를 만족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쓰면, 작품의 대중성을 유지할 수 있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만족하게 되어서 어느 순간 다양한 작품 보는 것을 멈추며 이 독자를 훈련하지 않게 되면, 갈수록 독자는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작가는 그 독자가 재미를 느끼고 있지 않음에도 반응을 강제로 유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작가가 갈 수 있는 최악의 길이 된다. 산하 작가도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많은 대중들은 공포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공포영화를 봤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산하 작가는 대중들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해했고,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다루는 박자를 코미디의 박자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응용도 하게 되었다. 산하 작가는 그림을 연습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미래에는 AI가 굉장히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이는 만화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산하 작가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제자들을 교육한다. 어떤 공식을 따른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미래에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AI로도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그림을 찾기 위해서는 좋은 그림들을 무조건 다 베껴야 한다.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잘 그린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무작정 베끼며 그림 그리는 기능을 충분히 훈련하다 보면 자기 그림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산하 작가는 그림 실력이 충분하기 이전에 자기 그림체라고 인지되는 그림체는 어린 시절에 그리던 그림이 습관화된 것일 뿐이며, 진짜 자신의 그림체는 그림 실력이 충분해진 후에야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하 작가는 늘 제자들로부터 ‘제가 데뷔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산하 작가는 앞에서 이야기한 ‘올바른 방향성’과 ‘올바른 습관’만 가지고 있다면 100% 데뷔가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보통 많은 사람들은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관두거나, 어시스턴트 등이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문하생 제도가 있어서 점점 배경, 터치, 마스크, 데셍, 작가 등으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노동 착취이긴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적어도 계속 남아있는다면 언젠가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현재 만화 업계에서는 어시스턴트들이 비용은 충분히 받으면서 계속 그 단계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산하 작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어시스턴트가 되지 말고, 작가를 목표로 방향성을 가지고 끝까지 걸어가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신인 작가로 데뷔한 후에도, 급하게 성공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성공 여부는 독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작가는 그냥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 데뷔한 신인은 명성을 키우려는 생각보다, 실력을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해야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산하 작가가 가지고 있는 가르침의 철학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멘토링을 할 때는 자신의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멘토링을 하며 멘티를 지도하는 것은 산하 작가 본인의 인생 문제가 아니라, 멘티의 인생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멘티를 지도할 때는 오롯이 멘티에게 집중해 주어야 한다. 멘토가 어떠한 말을 하여서 멘티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멘토는 거기에 책임을 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멘토의 입장이 아니라, 멘티의 입장에서 보며 최대한 멘티에게 집중하고, 멘티에게 이입해서 부족한 것을 봐야 하는 것이다.
산하 작가는 이렇게 많은 제자들의 멘토가 되어서 스토리텔링의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는데, 이런 산하 작가에게도 멘토가 있다고 한다. 바로 일본의 만화가인 아다치 미츠루와 대만의 무협소설 작가인 고룡이다. 산하 작가는 이 작가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이들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다. 산하 작가는 아다치 미츠루 작가로부터 컷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집밥 같은 만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고 한다. 아다치 미츠루는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재미있다. 이 부분에서 산하 작가는 반복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다치 미츠루가 이야기를 반복하더라도 재미있는 이유는 절묘한 컷 점프 때문이다. 삭제된 컷이 독자의 마음 안에 많은 장면을 불러일으키고, 독자가 다음 컷을 예측하는 박자가 흐트러져서 반복되는 장면들이 오히려 더 많은 재미를 줄 수 있게 된다. 아다치 미츠루의 이러한 기법은, 산하 작가가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다음으로 대만의 무협소설 작가인 고룡을 통해서, 산하 작가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창작된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품 속의 캐릭터들은 진정성을 갖는데, 창작 스토리에서 진정성이라는 것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끝까지 캐릭터성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룡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기괴하고 이상하지만, 그 캐릭터들은 모두 끝까지 그 캐릭터성을 유지하고, 그래서 고룡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독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독자들은 ‘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인 것을 원한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낮은 수준에서는 개연성과 당위성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더 높은 차원에서 보자면, 스토리가 충분히 자극적이라면 개연성과 당위성이 10% 수준이더라도 독자는 그것을 충분히 개연성 있고, 당위적이라고 받아들인다. 고룡 작가는 단순한 캐릭터들만 가지고도 이것을 해낸다. 또한, 산하 작가는 고룡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캐릭터는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라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캐릭터는 자기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캐릭터들의 리액션을 통해서 캐릭터가 빛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만화가이자 멘토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산하 작가의 꿈은 바로 ‘은퇴’다. 산하 작가는 이미 3번이나 은퇴를 했던 만큼, 지금도 은퇴를 바라고 있지만, 제자들이 아직 충분히 크지 못해서 은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산하 작가는 제자들이 다 크고 나면 멘토뿐만 아니라 만화가로서도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직 만화가로서 가치가 있을 때 은퇴하고 싶다는 산하 작가의 꿈이기도 하다. 또한 산하 작가는 이제 점점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가 작가는 이렇게 작가가 자기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작가 치매’라고 불렀다. 작가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산하 작가는 지금까지 자기 확신을 가져왔지만 언젠가 자기 확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산하 작가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과 올바른 습관만 있다면 만화가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하 작가는 28년쯤 전, 처음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며 당시 제자들을 전부 좋은 만화가로 성장시켰고, 그때 만화가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만화가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혼자서만 노력을 하려 하거나, 지망생끼리만 모여서 피드백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노력을 하면 자신이 만화가라는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검증을 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때 지망생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지망생들끼리 서로 칭찬을 해 주다 보면 스스로 만족하게 되고, 그러다가 현실을 보지 않고 외면하게 될 수가 있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산하 작가는 학생들에게 좋은 작가 선생님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변에 작가 선생님이 없다면, 직접 수소문해서 좋은 작가를 찾아가 작품 피드백이라도 받아야 한다. 대학교나 학원 등의 만화 교육 기관 입장에서도 좋은 강사를 찾기 위해서는 구하기 쉬운 강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부탁을 하더라도 좋은 강사를 구해야 한다고 산하 작가는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산하 작가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쥐고 있다고 믿을 것이고, 그걸 놓치면 큰일 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올 때, 이미 쥐고 있던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받을 수가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그것이 충분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뜻이니, 쥐고 있던 것을 놓고, 손바닥 위에 제대로 된 것을 올려라.’라는 조언을 남겼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손에 쥐어 목표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