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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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시대를 넘나드는 소통의 스토리, SF와 여성작가 그리고 SF소설

90년대 순정만화 여성 작가들이 구축한 감성적 SF 서사와 비인간 타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현재 한국 SF 문학 르네상스의 K-감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5-12-09 이철호

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시대를 넘나드는 소통의 스토리, SF와 여성작가 그리고 SF소설

- SF를 대하는 K-감성, 90년대 순정 만화와 동시대성의 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쾌거 뒤에는 B급 장르문학과 섬세한 감성으로 성장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창작과 작품이 있다. 특히, 정세랑, 김초엽, 천선란 등 SF와 판타지 영역을 넘나드는 최근의 여성 작가들은 한국 문학과 장르의 수준과 성취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감성의 스토리텔링은 90년대 일군의 순정 만화와 그 작가들과 연결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강경옥을 비롯한 90년대 여성 작가들은 특유의 감성과 젠더 감수성 등으로 새롭게 환상 문학을 해석해 시각화의 모델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SF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성은 지금 새롭게 발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스타일과 감성이라는 것은 가장 깊숙하고, 내밀하면서도 그 바탕은 끊임없이 전승되는 DNA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최근 SF는 가장 각광 받고 있는 장르이다.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의 만화라도 대표적인 SF 장르의 만화를 몇 편씩 가지고 있다. 특히 만화 왕국이라는 일본은 데즈카 오사무부터 <은하철도999>, <아키라><에반게리온> 등 전 세대의 팬층을 확보하는 다양한 작품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가 그 작품에 일정 정도 빚을 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일본과 한국의 SF 장르와 스토리텔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북미와 유럽의 그것과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명확하다.

최근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웹툰과 문학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 확장하고 있다. 그중 한국 SF한류라는 독특한 콘텐츠의 붐 중심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는 일본과도 구분되는 우리만의 스타일과 감성이 90년대에 발현되어 현재로 이어지는 오래된 미래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지금 SF를 말하는 이유

최근 한 출판사에서 만화웹툰 장르대백과 사전을 만들고 있다. 사실 이전에 시작했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제라도 진행하고 있음을 감사해하면서도 아직 우리 만화·웹툰계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그 프로젝트의 초기, 교수, 연구자, 평론가들이 함께 모인 기획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화두는 장르를 어떻게 나누느냐는 것이었다. 다양한 소재의 융합과 장르를 넘나드는 파격으로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는 한국 웹툰계였다. 특히 판타지‘SF’는 다양한 소재와 문법을 오가거나 파괴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도 마치 스피드 퀴즈처럼 각종 작품이 화두로 제시되었고, 그 작품에 대한 장르를 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르의 기준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결국 ‘SF’는 단 0.1%라도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자 배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작품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기준이 참으로 모호하다. 현실과 과학과 판타지를 나눌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우리의 합의에 의한 가능성이라는 이상이기에 어쩌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보편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예전 한 50대 가장이 집에서 주로 과학 영화를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놀라 무엇을 최근에 봤냐고 바로 물어봤었다. 사실 “‘과학영화라는 게 있나요?”라고 묻고 싶은 걸 돌려 말한 것인데, “최근에 <앤트맨>을 봤다라는 대답에 농담하나 하고 쳐다봤던 기억이 생생하다참으로 SF를 단어 그대로 해석한 것인데, ‘과학의 기준이 그만큼 다채로우며, 우리가 과학의 발전과 미래에 대해 대단한 기대와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만큼 만화에서 현실 가능성이라는 건 특수성을 포괄하는 저 멀리의 보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건 SF고 이건 판타지라는 구분은 아니다. 다만 그게 우리에게 주는 재미, 그리고 상상력의 한계와 현실과의 조응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각예술이자 콘텐츠가 호응을 받는 이유이며, 우리만의 SF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처음 인간은 달을 보고 그곳을 상상하다가 로켓을 발사하던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점차 과학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소설로만 꿈꾸던 것들을 현실 속 존재처럼 불러오기 시작하였고, 작아진 인간, 과학으로 만들어진 인간 그리고 바다와 지구 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극으로 발전시켰다. 마침내 인류가 우주로 올라서자, 그때부터 <스타워즈>는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지난 10년은 SF 전성시대로 불릴만하다. 마블이 구축한 어벤저스의 세계는 영화와 엔터테인먼트의 지형도를 바꾼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무려 15년간 이어져 온 서사는 이제 더 이상 슈퍼 파워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반복되는 위기와 익숙한 영웅의 등장은 더 큰 자극을 줄 수는 있지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코스튬이 바뀌고, 위기의 형태가 달라진다고 구조가 달라지진 않는 장르의 한계이고, 이는 지금 우리가 한국의 SF 서사를 돌아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미와 일본과 한국의 SF

SF의 등장과 그 역할은 시대와 국가별로 참으로 다양하다. 물론 지역별 단순화는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다. 그런데도 간략하게 정리한다는 건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정리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사실 근대 산업혁명 이후 과학의 시대와 거대한 전쟁의 시대는 비슷한 시간대와 상상을 공유하고 있다. 신화와 전설에서 SF로의 발전을 이뤄낸 시기가 전쟁과 함께 하니 당연히 그 이야기 속에서는 당시의 절박한 기대와 환상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북미의 코믹, SF 장르를 보면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슈퍼 히어로들의 무대였다. 외계에서 날아온 슈퍼맨(1938.6)부터, 거미에 물리거나 방사능에 빠져 돌연변이가 되거나, 아마존의 여전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슈퍼맨, 원더우먼(1941.12), 스파이더맨(1962.8) 등 미국은 히어로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호하고, 핵전쟁 등 공포로 다가오던 위협과 적대적 세력에 강력하고도 단호한 대응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준다. ‘캡틴 아메리카’(1941.3)는 가장 대표적인 그들의 히어로이자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듯하다.

유럽은 그에 비해 좀 더 복잡하고, 내밀하며, 불안해 보인다. 비록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전쟁의 무대였던 그곳의 공포는 <판타스틱 플래닛>(1973)에서 보여주는 놀랍고도 기괴하고 폭력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뫼비우스(장 알리 가스통 지로)의 작품이나 <설국열차>처럼 그들의 공포와 그에 대한 대응은 참으로 사실적이다. 그들의 문화적 배경 속에 기억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일본 역시 전쟁 이후의 두려움과 희망에서 SF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 같다. 원자력과 외계의 침공 그리고 아톰과 같은 영웅의 등장이 그렇다. 물론 여기서 각국의 SF 역사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정서와 이야기하는 방식 중 하나를 말하고자 함이다. 그건 과학을 배경으로 하지만 과학의 놀라움과 스펙터클에 기대지 않는 한국적 서사의 특징을 말하고자 함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창작자에게 SF빌런이라는 원인과 해결이라는 스펙타클한 재미로 만든 결말이 아닌, 오직 인간 그리고 감성에 몰입하기 위한 소재로써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어느 정도 공유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의 SF 만화는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다. <아키라>,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 등과 같은 고전이 아니더라도, <문라이트마일>이 보여준 격렬하고도 디테일한 과학기술의 세계 속 드라마도 있고, 화성에서 출현한 알 수 없는 공포의 존재에 도전을 그리는 <극한의 별>도 있다. 그리고 화성에 뿌려져 진화한 바퀴벌레와 곤충 DNA를 이식한 범죄자들의 대결로 시작하는 <테라포마스> 등 기묘한 상상력과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지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인간의 본질과 슬픔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장을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우주 청소부의 이야기를 다룬 <프라네테스>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행성에서의 삼대 이야기를 그린 <스타더스트 메모리즈>가 있다호시노 유키노부의 SF 단편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의 단편 중 하나에 한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우주 비행사 세스 아이보리가 나온다. 세스가 구조를 받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21, 하지만, 이 행성은 단 2일 만에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다. 구조를 받기 전에 늙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스는 유전자 복제를 시도한다. 동일한 DNA를 가진 어린 자신을 만들고, 그 아이는 구조를 받을 아이를 다시 만들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다. 12일째 첫 번째 세스는 늙어 죽는다. 17일째 세 번째 세스가 탄생한다. 두 번째 세스는 절규한다. 엄마는 과거가 있고, 세 번째 세스는 미래가 있지만 자신은 무엇이 있냐고. 며칠 뒤 어릴 때 본 외계행성의 동물에게 두 번째 세스는 잡혀가고, 21일째를 맞이한 세 번째 세스는 도착한 구조대를 따라 행성을 벗어난다.

또 다른 작품으로 유키무라 마코토의 <프라네테스>라는 참으로 사실적인 SF가 있다. 2070년대, 우주개발이 한참 진행되어 스페이스 데브리(우주 쓰레기)가 많이 생겨서 이를 제거하는 우주 청소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거기에는 한 중년 청소부가 나온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청소부는 어느 날 하나의 쓰레기를 줍고는 격정에 휩싸인다. 그건 우주에서 목숨을 잃은 부인이 남긴 유품. 지구의 인력에 이끌려 궤도를 돌고 있는 그 유품을 찾기 위해 아득한 우주에서 청소부 일을 해온 것이다여기서 우주는 감성과 관계가 만나는 장소이며, 과학과 기술적인 상상은 어긋나는 법칙과 아득한 심연으로 이야기에 절실함을 심어주는 배경이 된다. 감성으로 다가오는 SF지만 여기서 한국과 일본은 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일본의 만화들을 보면 상당히 많은 작품이 성장 서사를 다루고 있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귀멸의 칼날> 그리고 위에 언급한 <프라네테스> 역시 한 청년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켜켜이 쌓아가는 성장의 과정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공감의 연출은 일본 만화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힘이기도 하다. 이는 SF 만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더불어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다. <문라이트마일>에서 나오는 달과 다양한 자원 그리고 기술의 현재와 미래는 실제 과학 관련 뉴스에서 뒤늦게 확인될 정도이다. 그런 묘사와 상황에서 일본의 만화는 감정을 깊고, 예리하게 절개하고, 드러내고, 의외지만 나름 명확한 결말을 보여준다. 보여주기 싫은 심장의 안을 섬세하게 절개한 후 그 안을 내비치는 해방감과 불안을 깊은 감정의 요동과 여운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서사는 깊게 들어가지 않고 모호한 편이다. 또한 감정을 예민하게 만지지만, 마치 복원력이 낮은 물체를 깊게 누르고 서서히 복원되는 모습을 다독거리며 보여주는 듯하다. 거기에 상처와 해결은 상당히 열린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단호한 감정의 떨림보다는 되새기는 질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SF, 한국에서의 여정과 살아나는 장르문학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SF 만화는 1952년 최상권이 발표한 <헨델 박사>라고 한다. 그리고 59<라이파이>를 시작으로 한국의 슈퍼 히어로 만화가 시작되었고, 60년대는 한국전쟁과 냉전 시대의 기억과 흔적을 우주전쟁과 지구침공 등의 재난으로 그려낸 <우주인 가우스>와 같은 SF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북미와 일본과 마찬가지지만)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한국 SF 만화는, 여러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유성 작가의 <로보트 킹>이나 김형배 작가의 <20세기 기사단> 등과 함께 70~80년대 중흥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시작된 다양한 작품과 도전은 1990년대 시작된 PC 통신을 기반으로 한 참여와 과학의 시대에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이후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그래서 박인하·김낙호는 <한국현대만화사 1945-2010>(2010)에서 1960년대를 액션영웅의 시대, 1970년대를 거대로봇의 시대, 1980년부터 2010년까지는 초라한 시기로 한국 SF 만화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 순정 만화 30년사를 기록한 <순정 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를 발간한 전혜진(40) 작가는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SF물 유행은 1980년대 순정 만화에서 예고돼 있었죠.”라고 말한다. 1950년 전후 탄생한 후 한국의 순정 만화는 시대별 궤적을 달리하며 독자층과 주제 의식을 다양화했다. 이에 순정만화라는 용어의 적절성에 문제 제기가 있을 정도로 당시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SF, 판타지, 역사, 스포츠 등 장르적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되었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던 순정 만화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강경옥 작가의 <별빛 속에>(1987~1990)<라비헴폴리스>(1989~1992), <노말 시티>(1993~2001), 김진 작가의 <푸른 포에닉스/외전>(1988), 김혜린 작가의 <아라크노아>(1992)와 신일숙 작가의 <1999년생>(1992)을 비롯해 원수연 작가의 <휴머노이드이오>(1992~1993), 이미라 작가의 <남성해방대작전> (1997), 황미나 작가의 <레드문> (1994) 등을 창작, 연재하면서 한국만의 독특한 SF 장르와 고유의 팬덤을 형성하였다. 특히 1985년 김혜린 등 순정 만화 작가 9명이 만화 동인 '나인'을 결성해 만화 잡지 르네상스를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순정 SF 만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재평가하고 있다.

 


신일숙 작가의 <1999년생> 단행본 앞부분을 보면 ‘1999년생을 내면서라는 작가의 서문이 있다. “<1999년생>198811월부터 12회에 걸쳐 르네상스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이것은 기본 골격이라 할 만한 거의 모든 것들을 꿈에서 얻은 작품으로, 나의 잡지 데뷔작이다출판사로부터 연재 청탁과 함께 시대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SF물을 하겠다고 주장했고, 내 주장은 관철되었다. 그건 아마도 시대물 작가로 남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반영된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중략)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만화관이며, 포부이다. 이 때문에 그 어느 작품보다 내게 의미가 있는 <1999년생>을 다시금 여러분께 내놓을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_ 199541일 신일숙

김진 작가 역시 SF 한 편을 싣기 위해서는 일상물 한 편을 더 그려야 했고, 정작 일상물을 끝내고 SF를 그리려고 시작하면 잡지가 폐간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당시 SF의 창작이 쉽지 않은 여정이었고, 도전이었음을 알려준다.

돌아보면 한국의 SF는 먼저 식민지 기억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던적인 비판과 풍자 의식을 정체성, 식민주의, 제도적 억압이라는 주제를 통해 다양하게 표출해 왔다고 말해진다. 또 분단과 급격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비롯된 권위적이고 대립적인 정권과 가치관은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디스토피아와 단선적이면서도 일관된 지향의 수용과 반발에서 생기는 상상의 토양을 만들어주었다. 여기에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민담과 신화 속 캐릭터와 감성이 접목되면서 차별화된 SF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SF 만화는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성과 정에 더욱 끌리는 서사 구조와 서구의 것에 비해 덜 냉소적이며, 개인을 중심에 놓는 영웅주의보다는 집단적 생존과 화해에 더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80년대부터 시작돼 90년대 절정을 이룬 순정 만화의 SF는 그동안 축적되고 억압된 감성과 이미지가 폭발하는 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중 강경옥의 <별빛 속에>는 성찰적 우화(Speculative Fabulation)라는 한국 SF 만화의 독특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별빛 속에>는 먼 외계행성 카피온을 주 무대로 벌어지는, 외계의 공주였지만 지구인으로 살아왔던 시이라젠느레디온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스페이스 오페라이자 대하드라마라고 불릴 정도의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사람이고, 그 감정과 관계이다. 여기에 강경옥 작가 특유의 심리묘사를 기반으로 계층의 문제, 시간과 문명의 멸망, 그리고 신에 대한 고찰까지 담아내고 있다.

특히, 레디온과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을 비롯해, 함께 살아온 가족, 외계의 종족 등에 대한 미묘한 갈등과 포용,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적 모호함과 물음이 이어지면서 SF 판타지의 입체적이며 감성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호자이면서도 대립의 축이 되고, 사랑하면서도 외면해야 하는 갈등이 거기에 있고, 섬세한 과학과 낯선 우주의 풍경은 감성적인 모호함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감동과 사색으로 이어지게 된다. 거기에 순정 만화 특유의 시처럼 읊조리는 나레이션, 말과 칸의 감성적 배치는 우주를 비롯한 SF와의 교감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더없는 효과가 된다.



이 작품에서 발견된 감성 SF적 요소는 차기작 <라비헴폴리스><노말시티>로 계승되고 있다. SF 사회의 군상과 소소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방식으로 그려주는 방식인 <라비헴폴리스>는 달 왕복선이 오고갈 정도의 근미래 2025(지금 현재이다!)의 가상의 자유도시 '라비헴'에서 둔감한 여순경 하이아 리안과 훈남인데 훈남 같지 않은 순경 라인 킬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볍고 훈훈한 개그 센스를 담고 있지만, 특유의 심리묘사도 여전한 작품이다. 거기에는 우주선을 함께 타지 않은 연인을 찾아오는 유령의 이야기가 나온다. 뒤늦게 알게 된 연인의 배신, 하지만 결말은 예상을 벗어난다. 그 미묘한 인간의 마음이 우주를 배경으로 가볍게 툭 건들 듯이 지나간다. 이는 정상인들만이 가득한 도시 '노말시티(Normal City)'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 <노말시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각자 아픔과 사연을 지닌 캐릭터들이 방황하며 자신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아득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른 여성작가의 작품들에서도 이런 심리적인 탐닉과 관계가 그려지는 모습이 보편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당시의 작가들이 정서적인 공통 분모를 가지고 창작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감성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 당시 SF 순정 만화가 숨겨진 감정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작가들은 초능력자, 외계인, 사이보그, 인간 복제, 게임 속 가상현실까지의 소재를 단순히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나 인간()의 생존 또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고착된 공식으로 활용하는 것에서 탈피하고 있다. 타자의 고통을 나로 확장하는 감수성은 포용과 교류, 갈등으로 이어져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캐릭터와 함께 여운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시대적으로 90년대는 미래과학 기술에 대한 양가의 감정이 팽배했던 시대로 1999년 종말에 대한 세기말적 감수성이 대중문화인 만화에도 투영되던 시기였다. 일례로 1993년 유전자 복제를 통해 공룡을 부활시킨 할리우드 공포영화 <쥐라기 공원>은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1996복제 양 돌리에 관한 뉴스는 생명과학에 대한 희망과 불안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애마부인><전원일기>를 넘나들던 여성상이 8~90년대에 한국 여성작가들의 SF 만화를 통해 여왕이자 리더였고, 초능력자이며 전사나 장군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신일숙의 <1999년생>에서 나온 주인공과 주변의 모습은 확실히 현대적인 여자와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이런 여성 작가들의 SF적 서사와 감수성 및 독창성은 현재 SF 문학과 새롭게 시작된 21세기 광장문화에서 2030 여성의 움직임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건 짐작이 가능할 듯하다.

 

90년대 순정 만화의 감성과 한국적 SF의 르네상스

한국의 SF2010년대 후반을 맞아 3세대 SF 작가들과 함께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먼저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알린 한국적 SF는 이미 드라마와 영화로 진출한 정세랑 작가부터, 10만 부가 넘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 그리고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작가 등 SF 문학과 소설에서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단지 대중적인 성과와 작품의 완성도를 넘어 최근 한국 SF 작품들은 놀랍고, 독창적인 서사와 감성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 꽃은 씨앗을 통해 피기 마련이다. 한계가 명확한 것처럼 보였던 한국의 SF는 순정 만화가 구축해 온 장르적 관습과 만나면서 새로운 서사적 특징을 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각종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보편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보자. 거기에는 우연히 인지 능력 칩이 들어간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가 나온다. 로봇이면서도 인간보다 인간적인 콜리는 연골이 무너져가는 말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 낙마를 선택한다. 그렇게 반쯤 박살 난 콜리는 폐기되기 직전 '연재'를 만나고, ‘연재의 가족인 언니 은혜그리고 엄마 보경의 가족이 간직한 아픔과 사랑 사이로 얽혀 들어간다. 타자이자 외물이 등장하는 SF이지만, 한국의 이야기에는 이들이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인간의 본원적이거나 이상적인 감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SF 순정 만화가 비인간의 형상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리는 것과 닮아있다. 기본적으로 순정 만화의 장르 법칙인 미형의 그림체 때문이기도 하며, 숨겨진 감정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는 순정 만화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처럼생기거나,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순정 만화 속 비인간은 인간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종적 이질감이 갈등 요소로 작동하지 않는다. 더불어 순정만화식서사라고 여겨진 멜로 드라마적 감정 과잉과 타자와의 합일을 꿈꾸는 로맨스는 비인간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SF 순정 만화의 비극적 낭만성은 비인간에 대한 학대와 착취와 같은 사회 갈등 및 부조리를 폭로한다. 타인의 고통을 나로 확장하는 사랑이라는 감수성은 비인간을 유일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 SF 순정 만화는 비인간을 애도할 수 있는 대상이자 애도할 수 있는 죽음으로 상정하고 이들 존재의 위태로움을 미학적으로 표출함으로써 비인간 타자에 대한 포용과 애도의 정치학을 발휘하는 것이다.

김초엽의 단편소설집 <행성어 서점>에 들어있는 선인장 끌어안기시몬을 떠나며를 보자선인장 끌어안기에는 마흔 살, 경력의 최고점을 달리던 중 수술 후유증으로 하루아침에 어떤 물체에도 닿을 수 없는 상태가 된 한 건축가 파히라가 나온다. 그러나 사람이 어느 무엇에도 닿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고통은 스물네 시간 그를 조이고 있었다. 지난 반 년 간 네 개의 보조 로봇이 갈아 치워졌고, 파히라의 여섯 번째 보조 로봇인 는 그 불안한 파괴를 피하기 위한 대화를 나눈다.

이봐, 네 주인을 그렇게 피해도 되는 거야?”

당신이 저를 파괴하려고 하시니까요.”

넌 닿아도 아프지 않잖아. 부서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잖아.”

아프지는 않죠. 하지만 부서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요.”

?”

그렇게 만들어졌거든요.”

대화를 통한 상대방에 대한 이해, 타자에 대한 섬세한 감성이 그 안에 스며듦이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시몬을 떠나며에는 독특한 행성, 모두가 기하학적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곳을 떠나는 그녀에게 한 주민이 그들의 진실을 알려준다.

수십 년 전 우주를 탐사하던 연구선 하나가 시몬에 도착했습니다. 먼 곳에서 발견한 생물 샘플이 연구원의 실수로 유출되었어요. 그게 바로 이것이랍니다.”

재앙이었지요. 난데없이 외계에서 도착한 기생생물들이 얼굴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기하학적 문양의 외계 기생물이 시몬에 사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대신해 버렸어요.”

우리는 그냥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어요.”

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불친절할 정도로 모호하게 시작된 소설들은 깊고도 잊히지 않는 감성으로 깨닫듯 마무리된다. 그리고 SF와 판타지의 경계에 있는 만화에도 그 감성은 유효하게 살아남아 있음을 보게 된다.

 

 

산호 작가의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다채로운 SF를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로,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위기를 맞은 세상 속에 살아가는 마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우리는 많은 것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여름을 보냈다. 폭염에 말라 바스러지고, 가차 없는 폭우에 녹아 문드러지고 휩쓸려 갔다. 이처럼 지독한 여름이 해를 거듭할수록 길어지고 있다. 지금 마녀들은 만신나루라는 마녀 보호구역에 유폐된 처지다. 마름병을 앓는 잎사귀처럼 온몸 곳곳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불치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은 오 년 전 자취를 감춰버린 초원을 그리워한다. 다른 마녀들처럼 마름병을 앓는 산은 이제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때마침 기자 송주가 취재를 위해 만신나루에 내려온다. 산은 송주와 힘을 합쳐 초원의 행방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마녀란 전설일까? 그들의 능력은 과학일까? 기후 위기는 현실이고, 생존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은 항상 과학이지만, 기원과 원천은 결국 신화 속 존재와 능력이다. 편견과 경제적인 욕망 그리고 파괴와 방해는 현실이지만, 그 속에 다시 자라는 새싹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지와 그리움은 또한 이상이다.

그렇게 만화는 현실과 전설, 현재와 상상 사이를 불규칙적으로, 사람의 감성과 기억을 따라 움직여간다. 때론 불친절하게 던져주고,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단편처럼 스쳐 가게 하면서 안타까움과 공감의 깊이를 더해준다. 바로 한국적인 모호하고, 따뜻하면서도 나른하게 젖어 들게 하는 SF적 감성과 서사가 그곳에 있다고 말해본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에서 만나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와의 관계, 김초엽 소설에서 얽히는 타인/타자에 대한 관심과, 모호하지만 집요한 애정 등은 그리고 90년대 순정 만화 속 시선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정세랑 작가는 한국 SF를 읽고 SF 작가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순정 만화 작품이 자신을 SF 작가로 만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문득 여행을 생각해 본다. 처음 인간은 생존을 위해 정말 넓은 거리를 아득한 시간 동안 이동하면서 지구라는 행성에 안착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오랫동안 생존을 위한 더 좋은 조건을 위해 이동과 개척을 반복하는 생활이 지속되었다그렇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여행은 최고의 오락이었고, 모험이 되기 시작했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로의 휴양을 귀족의 취미로 여겼고, 마르코 폴로 등은 새로운 세상과 놀라운 기회를 꿈꾸며 실크로드를 넘어갔다그리고 대항해시대에 사람들은 지구라는 행성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기꺼이 바다를 건넜고, 황금을 찾았다.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더 높게, 더 깊게 들어가고 싶어 했다. 지구의 극지들이 하나둘씩 정복되었다. 직접 가지 못하면 쥘 베른의 소설을 통해 그곳을 상상하고, 꿈꿨다. 그러면서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시골의 오래된 가게와 아무도 찾지 않을 듯한 골목을 탐닉하고 있다. 그곳에서 사람과 깊이 어우러지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SF의 장르가 발전해 온 여정과도 유사하다. 대립을 극복하는 자극과 상상의 세계에서 마치 우주 속 우리를 발견하듯 과학 속 감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듯, 반복되는 문화산업의 순환 사이를 다윗의 돌멩이와 같이 날아가는 한국의 감성과 SF의 서사를 지금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순정과 SF의 조우 90년대 SF 순정만화 속 비인간 타자들 ’ _ 김은정, 2021

한국 SF만화에 나타난 냉전 시대의 공포 1960년대 초, 우주 소재 SF 만화를 중심으로’ _ 서은영, 2019

필진이미지

이철호

만화웹툰전문매거진 위클리툰 대표기자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회원 
한국출판만화가협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