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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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불안과 공포의 심상

‘불안과 공포’를 심리학적으로 탐구하며, 만화가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다룬다.

2025-10-28 전운

말풍선의 심리 (임상심리사의 만화 읽기)

3회-불안과 공포의 심상

불길함이 깃든 시대

세기말을 앞두고 있던 어린 시절 세상은 흉흉했다.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공비가 출현했으며 배가 침몰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뉴스는 재해로 인한 이재민들을 보도했고 학교에서는 아동 납치의 위험을 경고했다. 뉴스 속에서 벌어지는 세기말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이유 없이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과시하는 불량배들이었다. 언제나 긴장된 상태로 어딘가에서 일어날 폭력을 피해 생활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맞고 때리는 것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곳은 결국 가정과 학교였다.

그때의 아이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폭력과 바른 생활을 가르치는 교과서의 모순 속에서 묵묵히 커가야 했다. 어디에서든 아이들이 넘쳐나서 아무렇게나 막 다뤄도 되는 듯이 굴던 역설 가득한 시절.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마냥 천진한 역할을 하거나 눈치 빠르게 약해 보이는 다른 아이를 착취하며 힘의 논리를 배워갔다. 약육강식으로 대변되는 남중·남고에서 내 위치는 조금씩 착취당하는 쪽에 가까워졌고 학업과 교우 관계 모두 열등감에 눌려갔다. 학창 시절을 요약하면 경쟁과 도태 사이에서 눈 가린 경주마였다. 학교와 가정은 좌절감이나 무기력조차도 걸리적거리는 군소리라는 듯이 채찍질만 해댔다. 그런 현실을 견디기 위해 나는 딴생각을 하거나 딴짓을 해서 메마른 삶을 유지했다.

시대를 휩싸고 있던 긴장의 배경들이 잊혀져버린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궁상스럽게 느껴지지만,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음이다. 만화 속에는 그런 자기 연민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했고, 덕분에 외딴섬 같던 현실에서 도피하게 해주는 가장 손쉬운 매체로 만화가 선택되었다. 행복한 꿈을 꾸듯이, 마치 환상이 존재함을 보여주면서 그런 가능성이 언젠가 내게도 나타날 여지가 남아 있으니 현실을 버텨가라 하는, 서랍 속 희망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중반 이후, 집착하듯 읽어나가던 만화들까지 내가 스스로 꽁꽁 싸매고 덮고 있던 환상이라는 이불을 벗겨 내고 현실을 목도하게 만들었다.

유유백서는 주인공 우라메시 유스케가 영계 탐정이 되어 인간계와 마계를 넘나들며 요괴들을 퇴치하는 이야기다. 드래곤볼처럼 배틀 만화로 인기를 고조시켜 가던 작품은, 유스케 이전의 선대 영계 탐정이던 센스이가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해 도전해 오는 에피소드에서, 그 당시 소년만화답지 않은 어두운 정서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영계 탐정으로 정의감 넘치던 센스이는, 요괴들을 추적하던 중 오히려 인간들이 요괴를 고문하는 가학적인 장면을 목격한 뒤로 말 그대로 흑화해 버린다. 이후 영계에서 인간의 모든 악행만을 모아 놨다는 흑의 장이라는 비디오테이프를 훔쳐본 후 마계의 문을 열어 인류를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비록 중요한 듯 다뤄지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소재이긴 했으나 내게는 유난히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림 1  유유백서 완전판11/ 토가시 요시히로 / 대원씨아이 / 리디북스 ()

불길한 것을 찾던 심리

90년대에는 선정성과 폭력성 등의 이유로 검열되어 국내에 정식 발매되지 않은 불법 비디오테이프들이 청계천 등의 상가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기도 했다. 과거에는 불량 불법 유통 서적,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되는 검색어가 비슷할 것이다. 종류가 무엇이든 검열의 선 밖에 있는 매체들은 과격함을 담고 있기에 그것을 수용할 때의 심적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불법 매체들은,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는 그 불길한 특성 덕분에 오히려 그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불안을 넘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유유백서이후로 어둡고 불길한 것들에 대한 관심은 내 안에서 고조되었지만, 실제로는 나에게 금지된 도서 대여점의 성인용 만화를 곁눈질할 뿐이었고 결국 손에 쥐게 된 것은 그마저도 아닌 이토 준지 공포 컬렉션,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드래곤 헤드였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펼쳐진 지옥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흉흉한 현실의 소식을 만화로 외면하고 있었지만, 세기말의 불길함을 담아내던 만화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만화 속 처절한 삶을 목격하면 할수록, 만화를 읽는 독자로서 살아가는 현실이 상대적인 천국일 수 있다는 묘한 감각을 발견했다. 일어나길 바라던 행운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우울함보다, 꿈에서도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현실에서 겪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더불어 절망적인 운명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몸부림을 목격하다 보면, 현실에 대하여 낙담하고 있을 핑계를 대기 어려웠다. 무기력감이 깔려 있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최소한 만화를 읽을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동안에는 아직 현실을 직면할 힘도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겁 많던 아이는 내면의 불안을 견디기 위한 도구로 괴담과 공포만화, 호러물에 의지하게 되었다.

불안과 공포의 심리학

어째서 사람은 일부러 불길한 것들을 찾아보는가. 그 이유를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탐구해왔다. 이 모든 것을 프로이트 정신분석에서는 본능적 불안에 대해 자아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의 작동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은 기본적으로 리비도적 충동을 자아가 충분히 다루지 못해 발생한 신경증적 불안의 해소를 치료 목표로 삼는다. 프로이트는 불안에 대해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개념화했는데, 그리스 신화에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따르는 두 아들, 두려움의 신 데이모스와 공포의 신 포보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불안과 공포가 개념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오래된 인식이었지만, 프로이트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게 발생하여 모호하게 지속되는 상태인 불안과, 대상이 분명하게 발생하여 주의가 집중되는 상태인 공포를 구분했다.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신경증적 질환들 대부분이 개인의 성적 발달단계와 그 갈등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무의식적 충동과 그것을 억압하려는 자아의 긴장 상태가, 대상을 알 수 없는 신경증적 불안을 유발하거나 또는 대상이 존재하여도 근본 배경에는 결국 무의식적 충동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코린 마이에르가 쓰고, 안 시몽이 그린 작품 프로이트를 통해 그의 이론을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이 유럽산 그래픽 노블은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남긴 행적들을 재구성해 일대기를 소개하는데, 그가 담당했던 유명 환자들의 사례도 담아 그의 주요 이론을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중에는 말에 대한 공포증에 시달리는 어린 한스의 사례가 있다. 극히 단순화되어 있기는 하나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한스의 공포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로부터의 거세불안이라는 무의식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 불안에 시달리는 아이였던 것일까?

그림 2 프로이트 코린 마이에르, 안 시몽 / 거북이북스 리디북스

불안은 그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가만두지 않을 듯 몸 안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감각은 심리적 현상 이전에 생리적 현상이다. 뇌하수체와 교감신경계가 위협을 감지하면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을 유발해 신체를 각성시킨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적 충동의 상당수는, 현대 심리학으로 보면 자율신경계가 일으킨 신체적 각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물이 적으로부터의 심각한 위협을 앞에 둔 상황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하여 싸우거나 또는 도망칠 수 있도록 신체에 경보를 발생시킨 결과인 것이다. 정신분석의 이론적 가치와 별개로 프로이트가 무의식적 충동이라고 불렀던 것들은 대부분 자율신경계가 발생시킨 신체적 각성들로 해석해도 충분한 것들이 많다.

건물에 불이 난 상황에서 스프링클러가 터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적 상황일 것이다. 땀에 젖고 입은 말라붙으며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들 모두는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다만 그것을 우리 스스로가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스프링클러가 지나치게 작은 불씨에도 작동해서 생긴 결과에 가깝다. 현대의 인간은 대체로 안전한 생존 환경에 놓여 있기에 적당한 일상 스트레스를 대뇌가 적절히 조절하면서 운동과 자극의 균형을 맞추며 지낸다. 하지만 대뇌 간섭 없이 활동하는 자율신경계는 심각한 생존 위협과 구분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경보를 발신한다. 실제로 위협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면, 즉 투쟁-도피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그것은 공포로 여겨져서 싸우거나 도망쳐야 하는 정상 반응이 된다. 하지만 대뇌가 신체 내부의 각성 신호를 해석할 만한 적절한 외부 단서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요컨대 스프링클러가 왜 터졌는지 알 수 없다면 경보 신호였던 각성은 대상을 찾기 위한 경계 태세로 변화하며 긴장 상태를 지속하려 한다. 이러한 신체 각성과 심리적 경계 태세가 오작동해서 꼬이기 시작하면 과각성과 과부하로 혼란에 빠지는 공황장애나, 반대로 과잉 진정하여 얼어버리는 미주신경실신이 생기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연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던 인류의 선조와 달리 문명에 둘러싸인 현재의 인간들은 공포의 대상이 될 만한 실체적 위협들이 많지 않다. 과거와 달리 동물의 침입, 번개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는 현대엔 일상적인 불안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고작 수천 년 정도인 인류 문명에 비해서, 이전 수백만 년의 압도적인 기간 동안의 선조들은 자연적 위협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기억은 인류에게 각인되어 특정 대상들과 관련해서 더 빠르게 투쟁-도피 반응을 하도록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공포는 사후적으로 경험을 통해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공포증의 대상은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허나 결국 흔한 빈도로 발생하는 공포증은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여 대표적인 4가지로 수렴됨을 발견했다. 동물-벌레, 재해-환경, -절단-주사, 기타 특정 장소-상황. 이와 같은 대표적 공포 조건들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는 특정 공포증이라고 부른다. 과거부터 이어져 문화 초월적으로 발생하는 공포의 특성 덕분에, 오랜 시절부터 소설, 영화, 만화와 같은 매체들은 선험적 공포를 자극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해왔다.

선험적 공포의 파편

죠스쿠조, 피라냐같이 한때를 풍미했던 괴수 영화들의 핵심에는 동물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허나 호랑이나 곰 같은 현실의 맹수들이 인류 서식지 밖으로 몰린 채 동물원 구경거리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킹콩, 처럼 상상력을 결합해 거대해지거나 더 흉포해진 변이체를 출몰시켰다. 어지간한 동물과 벌레들을 전부 돌연변이화하고 나서는, SF적인 아이디어를 가미해 더 씽, 에일리언처럼 기존에 없던 미지의 존재들을 탄생시켰다. 이토 준지는 공포의 물고기를 통해 물고기들을 SF적으로 변형시켜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괴수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 냈다.

그림 3  공포의 물고기』 1권 이토 준지 / 서울미디어코믹스 리디북스 ()

자연환경에 대한 공포는 의도 없는 압도적 무자비함에 있다. 태풍, 폭우, 폭염, 폭설, 홍수, 가뭄, 한파, 화산, 벼락, 지진, 해일 등은 인간이 붙인 재해들의 이름이지만 역학적으로 지구를 둘러싸고 정기적으로 방출되는 에너지들일 뿐이다. 바람, , 더위, , , , 추위, 파도처럼 일상적이고 현상들이 마치 악의를 가지고 작정한 듯 거대하게 몰아칠 때 어떤 것보다 무서운 재난이 된다. 재해는 일상적인 것이 거대한 사건이 된다는 점 때문에 공포물보다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의 이해 체계로 자연이 가진 무자비함을 수용하기 위해서 어떤 존재의 의지를 상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는 소용돌이적인 모든 자연 현상과 요소들을 끌어모아 공포 소재로 삼은 독보적인 소재의 만화이며, 지옥별 레미나를 통해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코즈믹 호러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림 4  소용돌이 이토 준지 / 시공사 리디북스 ()

생명이 상해를 입거나 출혈이 발생하는 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실체적 공포에 해당한다. 때문에 잔혹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고어물은 대중 사이에서 가장 호불호가 강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 가깝게 그려질수록 결국 사고, 폭력, 죽음, 재난 등의 불쾌한 맥락과 강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기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피범벅이 될 정도의 출혈이나 신체 훼손의 형상들을 담고 있는 이미지는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피터 잭슨의 고무 인간의 최후처럼 비현실적으로 과장하여 묘사하거나 익살스럽게 다뤄지기도 하며, 그렇게 끔찍함을 다루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호러 코미디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히요도리 사치코의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을 거야역시 그런 잔혹 코미디의 특성을 본받은 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림 5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을 거야 / 히요도리 사코 대원씨아이 리디북스 ()

마지막은 어두운 곳, 갇힌 곳, 높은 곳, 트인 곳 등의 특정 상황들에 대한 공포들의 묶음인데, 앞서 언급한 공포의 조건들까지 함께 살펴보면 이 모두가 인류의 선조들이 피해야 했던 위협적인 환경들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언제든 환하게 빛을 켤 수 있고, 스스로를 방안에 가둘 수 있으며, 수십 층 높이의 빽빽한 도심 속 현대 문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저것들이 어째서 공포를 일으키는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저 안전하지 않은 상황들이어서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뱀과 벌레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 훨씬 살상력이 강한 칼이나 총에 대해 혐오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은 드물다. 칼과 총은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위험할지라도 문명적인 것을 선호하고 위험치 않더라도 자연 그대로에 노출된 상태 자체를 본능적으로 무서워한다. 인간은 태생부터 겁쟁이라는 사실을 문명 뒤로 숨긴 채 어느새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당연한 듯 살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종교들에서는 일종의 종말론적 묵시록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환경과 문명의 대립 구도 속에서 자연에게 패배한 이후를 상상한 이야기들은 무수히 많았다. 거대한 의지가 담긴 재난에 의해 인간이 의지해 온 문명이란 도구를 잃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문명이란 검열 속에 있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장막을 치워버린 공포심은 흑의 장이 담고 있는 불길함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인류가 가진 근원적 공포는, 아이의 모습으로 적대적인 자연을 마주해야 하는 유기의 두려움 아닐까?

『드래곤 헤드』: 인간이 가진 공포의 근원

모치즈키 미네타로 작가의 드래곤 헤드는 독자에게 그런 불길한 가능성이 주는 공포의 심상을 직면시킨다. 90년대 말 일본, 신칸센을 타고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고등학생 테루는 열차 전복 사고를 겪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승객들은 모두 죽어 있고 열차는 붕괴된 터널에 갇혀 있었다. 테루는 생존자인 노부오와 세토를 발견하고 생존을 위해 노력하지만, 위기를 헤쳐 나갈수록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며 점점 내면의 공포에 물들게 된다. 만화는 세 청소년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들을 처절하게 묘사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리 되었는지는 한참을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문명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림 6  『드래곤 헤드』 1권 모치즈키 미네타로 서울미디어코믹스 리디북스 ()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간들이 벌인 일인지 궁금한 것은 쌓여간다. 독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의 완결까지 다가가지만, 이야기 내내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공포의 정체는 파악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보여주는 것은 문명의 파괴로 인한 절망적 정서와 공포심의 판도라 상자를 풀어냈을 때 퇴행한 인간들이 보이는 광기이다. 폐허가 된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이 다른 인간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인간 사이의 적대가 시작하며 무망감은 지속되며, 파국적인 긴장은 확장된다. 독자는 작품이 만들어 낸 인물들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며 독자 내면에서도 불안의 경계 태세를 반복한다.

드래곤 헤드가 독자들을 이 불길한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처절하고 적나라한 재난 상황의 묘사와 그에 처한 인물들의 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다른 만화들보다 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대부분의 만화는 눈을 데포르메, 즉 단순 왜곡하여 표현하는데 현실의 눈이 그대로 묘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동자와 흰자위, 동공, 눈썹, 눈두덩이, 주변 근육 등을 포괄적으로 단순화한 채 눈동자와 눈매 정도를 남긴 결과로써 만화 속눈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그런데 모치즈키 미네타로 작가는 눈을 거의 데포르메하지 않고 시선의 방향뿐 아니라 눈동자와 동공의 확장, 눈썹의 찌푸림, 눈두덩이의 그늘짐까지 가능한 세밀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인물의 눈을 중심에 두고 연출한다. 광기에 빠져 가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다른 부위를 생략하고 오로지 눈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존 만화에서 다루던 방식의 눈의 코드화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만화 속에서 보여주는 정서를 더욱 낯설게 느끼게 되며, 덕분에 다른 만화들보다도 더 깊은 심연까지 불길함의 불길이 도달하게 된다.

그림 7  드래곤 헤드』 2권 모치즈키 미네타로 서울미디어코믹스 리디북스 ()

심리학에서 눈은 세 가지 통로적 역할을 한다. 첫 번째는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적 지각의 입구 통로, 두 번째는 눈길이 향하는 것이 반영하는 관심과 욕망의 매개 통로, 세 번째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갖게 되는 관계와 감시 및 자기검열의 관문 통로이다. HTP라고 불리는 인물 그림을 통한 심리검사에서도 눈의 상징은 중요한 단서로 다뤄지는데, ‘보면서도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기에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는거울과 같은 다중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하고 다시 만화의 인물을 보자.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고 드러내는 정서는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을 지각한 결과이다. 등장인물들은 만화 속의 절망적인 세상을 보고 있기에 절망의 눈동자를 하고 있다. 한편, 실제로 등장인물들의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에 있는 것은 독자이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혼란과 괴로움의 순간에 만화 밖에서 관객으로 관전한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의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그들의 고통은 만화 내부에만 존재하지 않게 되며 독자의 마음으로도 전달된다. 우리 뇌 안의 거울뉴런이 작동하여 타인의 감정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애정하는 어떤 캐릭터를 응시할 때 어떤 사랑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면, 혼란스럽고 불안한 눈동자의 캐릭터가 독자를 응시할 때 역시 독자 내부에서 불안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물이 독자를 향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독자는 자신 안에도 존재하는 불안함을 자각하게 된다. 인물들의 불안정한 눈동자들이 독자를 향하고, 등장인물들의 광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할 때면 독자는 자신의 내면에도 흔들리기 쉬운 마음의 어둠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는가?

그림 8  드래곤 헤드』 2권 모치즈키 미네타로 서울미디어코믹스 리디북스 ()

공포 만화가 낳는 역설적 불안의 해소

이 모든 과정에서 다른 어떤 책보다 독자의 만화 읽기 위치가 중요해진다. 현실의 위협과 놀람은 예고 없이 덮치지만, 만화 속 위협은 내 손안에서 조절 가능한 위협이다. 언제든 페이지를 덮을 수 있고, 읽는 속도를 늦출 수 있고, 두려운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한 컷을 오랫동안 주의 깊게 응시할 수 있다. 독자의 시선은 보이는 것에 있지만, 독자의 내면은 보이지 않는 간극에 더 오래 머문다. 그리고 그 머무름 자체가 불안을 안전하게 경험하는 체험이 된다. 공포 만화의 리듬은 독자에게 빠른 호흡의 박자를 제시하지만, 독자들은 각자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통제할지 선택할 수 있다. 마음챙김 명상(MBSR)에서 호흡 훈련을 통해 지향하는 바와도 같이, 행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통해 자율신경계를 조율하며 자각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공포 만화를 읽는 것은 두려워하던 대상을 외재화한 뒤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천천히 다가가는 지속 노출(prolonged exposure) 치료 과정과 유사한 길을 간다. 작가는 혐오스럽고 공포를 자극하는 이미지를 통해 인간들이 가진 불안을 외재화한다. 독자는 외재화된 이미지를 자기 내부에 맞는 심상으로 내재화하여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으로 자율적인 통제를 해나간다. 이 활동이 반복될수록, 개인마다 편차가 있던 안도감의 구역은 점점 넓어진다. 공포 만화가 주는 공포스런 이미지는 감각을 흔들어대기도 하지만, 이미지의 연속을 거쳐서 서사가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을 때, 독자의 내면은 결과적으로 그것을 다루는 과정을 연습하게 된다. , 불안을 없애는 대신 불안이 유발하는 내적 각성을 체험하며 불안을 다루는 권한을 회복하는 것이다. 흔히 공황장애나 공포증에 대한 인지행동치료를 할 때 환자들에게 공포 영화를 보라고 권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앞선 이유들 덕분에 공포 만화가 더 권장할 만한 치료 도구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에밀 페리스 작가의 2018년 작 몬스터 홀릭처럼, 스스로를 호러 매니아로 고정시키고 마음 안에 존재하던 불안의 형상을 외부로부터 찾아 교차 검증해 나가며 다룬 것이 내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원제가 My Favorite Thing Is Monsters몬스터 홀릭의 주인공 캐런은 스스로를 괴물로 묘사하는 소녀인데, 아파트 위층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이와 관련된 주변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작가인 에밀 페리스의 자전적 측면이 반영된 듯한 일기 형식의 이 그래픽 노블은, 역사성과 공간적 배경이 상상력과 교차하며 호러에 빠져 있는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그림 9  몬스터 홀릭 에밀 페리스 / 사일런스북

사각형의 화면 속에서 절망에 빠진 인물의 표정이나 괴기스러운 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은 단순 호러물의 소비가 아니다. 무서운 것을 견딤으로써 생기는 아이의 우쭐댐, 불안한 현실에 질식당하는 것에 대한 도피를 넘어 끝없이 불안을 직면하고자 했던 혼자만의 싸움이었고, 공포 만화는 그 도구였다. 그렇게 보면 캐런과 어린 시절 나의 공통분모는, 공포 대상의 외재화와 재현된 내재화로서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대상 그 자체가 되기로 한 브루스 웨인도 껴줄만 하다.

불안과 공포는 과거의 인류가 남긴 오래된 기억의 잔재이다. 어떤 이가 지나가버린 시절을 추억하는 것처럼, 불안과 공포는 인류가 이미 극복해버린 것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다른 방식의 불안을 마주한다. 무엇이 자신을 위협하는지,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 채로, 무엇인지도 모를 목표를 찾아 헤매는 파편들과 공존하며 느껴야 하는 부조화와 혼란의 감정들. 이어서 다룰 이야기는 방향을 잃은 시대에서 작동하는 긴장과 불안의 양상을 관조적인 방식으로 기록해 낸 그래픽 노블에 대해서이다.

필진이미지

전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