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의 심리 (임상심리사의 만화 읽기)
7화-그려진 일상이 그려내는 의미
새벽 6시 20분,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지끈거리는 머리의 통증과 시큰한 눈의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욕실로 가서 온기를 뿜는 뜨거운 물을 튼다. 눈도 뜨지 않고 정신없이 면도하다 살짝 피가 난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후에 몸을 닦으며 나온다. 거기까지 15분이면 끝난다. 아직 여유가 있다. 느긋하게 옷을 챙겨 입은 후 양말까지 신으면 출근할 준비가 되었다. 신발을 신고 반려묘 조조의 배웅을 뒤로 한 채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다. 11년간 반복했던 어떤 날의 기억이다. 셀 수 없는 여러 날이지만 기억 속에선 하나의 날로 뭉뚱그려진다. 11년간의 반복 속에서 복수이던 하루하루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단수가 되었다.
일상이란 뭘까. 일상(日常)의 한자어가 형성된 유래를 찾아보면 원래는 집에서 항시 입고 있는 편한 옷을 의미했다고 한다. 경조사 때 입는 예복이 아닌, 매일 걸치는 평상복으로 지내는 날들. 그런 ‘보통의 나날’의 의미가 확대되어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누구나 삶에서 어떤 특별한 날들을 맞이하기는 하지만, 모든 이의 삶 대부분은 특별하지 않은 보통날의 연속들로 채워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맞이하는 보통의 매일,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행위들. 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날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가 ‘세인(世人, das Man)’이라 불렀던, 어디에나 존재하는 누구나처럼 사는 삶. 나도 '그중 하나'로 사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보다 어디서 근무하는지가 더 중요했고, 무엇을 하는 지보다, 어떤 대가를 받는지가 중요했다. 판단 기준은 ‘세상 사람들’이었고 가장 안심이 되던 말은 ‘남들도 다 그래’였다. 당연하게도 그런 타성과 일상성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하이데거도 우리가 그런 일상성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 순간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기에 타성으로 책임을 미루고, 일상성으로 잠수하여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잠겨있다 보면, 일상성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욕구,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역시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매일 매일의 반복 속에서 견딜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출근 버스 안에서 확인하던 신간 소식이었다. 좋아하는 만화의 신간이 나올 때나, 좋아하던 만화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을 때, 무엇보다 완전히 새로운 재미난 만화책을 발견했을 때의 특별한 기분.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이미 일상이 아닌 일화(逸話)이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는 일화의 순간이, 현실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성에 침식되지 않게 했다. 어떤 작품들은 작품 그 자체로서 일상성과 일화성의 경계 사이를 넘어 자아의 욕구를 건드리기도 한다. 모든 만화가 일화적 의미를 주기도 했지만, 일상성 자체를 일화적으로 다루는 의미가 있는 만화들의 목록을 나열해 본다(이번에도 상당한 스포일러들이 많은 리스트들이다).
자립을 향한 반복의 일상: 『도라에몽』

그림 1 『도라에몽』 / 후지코 F. 후지오 / 대원씨아이/DCW / 리디북스
『도라에몽』은 항상 빵점만 맞는 답 없는 문제아 진구를 위해 진구의 자손이 22세기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통해 보낸 고양이 로봇이다. 덕분에 매일 퉁퉁이에게 괴롭힘 당하던 진구에게도 언제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가 생긴다. 후지코 F. 후지오 작가의 『도라에몽』은 초등학생 진구가 겪는 현실적 일상의 여러 위기를 각종 신기한 도구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매 에피소드마다 진구를 위해 도라에몽이 내놓은 새롭고 기발한 미래의 도구들은, 학업이라는 지루한 일상에 시달려야 했던 어린아이들에게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탄산수였다.
50년 넘게 미디어 믹스가 이뤄지고 있는 『도라에몽』은 작가가 멈추고 싶었음에도 멈추지 못한 이야기이다. 도라에몽을 통해 현실을 견디던 독자인 아이들에게, 도라에몽으로 상실을 겪는 것은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라에몽과 진구의 일상은 지금까지도 끝이 나지 않게 되었고, 진구는 영원히 자라지 않은 채로 초등학생을 보낸다. 영속적인 이야기의 구조와 반복되는 리메이크 덕분에, 진구와 도라에몽은 세대를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함께 하는 친구인 기억을 갖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도라에몽』 속에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날 뻔했던 에피소드 역시 모두가 가지게 되는 기억이기도 하다. 작품 초기에 완결을 지으려 했던 ‘안녕, 도라에몽’이라는 에피소드는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 결정된 도라에몽이 걱정 없이 편하게 떠나도록 만들기 위해서, 진구가 자립을 다짐하는 이야기이다. 진구는 퉁퉁이에게 끝없이 괴롭힘 당하면서도 평소와 달리 도라에몽에게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다. 도라에몽과 떠난 뒤의 하루가 시작하고, 진구는 도라에몽이 없던 때처럼 다시 혼자서의 일상을 시작한다. 응석받이처럼 굴던 진구조차 도라에몽과 함께하는 일상이 끝날 때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던 것이다. 비록 곧장 다음 에피소드인 ‘돌아온 도라에몽’에서 감동적인 재회를 하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만, 초창기에 그려졌었던 이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인해 『도라에몽』의 이야기는 단순히 영속적으로 이어지던 세계에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조를 남기게 되었다.
일상성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것은, 자립하지 않고 돌봄 받는 원초적 상태 그대로 남길 바라는 유아적 욕구에서 기인한다. 결과적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도라에몽』의 세계에서 일상이 종결되는 것이 필연적임을 상기시킨 이 에피소드의 존재는 우리에게 어떤 아이러니를 깨닫게 한다. 성장의 계기는 일상 안에 있지만, 성장의 결과는 일상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라에몽』은 성장한 결과로 어린 시절의 일상 밖에서 새로이 적응한 일상을 살던 우리에게 과거에 가졌던 그 욕구가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했음을 추억하게 한다. 추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각난 일상의 킨츠키: 『보노보노』

그림 2 『보노보노』 / 이가라시 미키오 / (주)거북이북스 / 리디북스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의 『보노보노』는 아기 해달 보노보노가 살아가는 숲속 마을을 배경으로, 다람쥐 포로리와 너구리 너부리, 표범 고양이 형을 비롯한 여러 친구와 얽혀가며 알아가는 세상살이 이야기이다. 귀엽게 의인화된 동물들의 모습과 함께, 특이한 캐릭터성으로 특징되는 『보노보노』는 40년에 달하는 장기 연재 만화이다. 전반적으로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를 띠며 중심 사건이 존재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원작은 4컷 만화 형태로 중심 사건 없이 보노보노의 일상사를 관찰하듯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원작은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아기 해달 보노보노의 관점으로, 알 수 없는 세상을 보고 느끼며 배워가는 것이 주된 에피소드이다.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떤 새삼스러운 일도 없는 일상의 묘사지만, 아직 세상사에 충분히 적응해서 익숙하게 느끼지 못하는 보노보노에게는 모든 것이 발견이고 깨달음이다. 보노보노가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 한 템포 늦게 반응하는 것도, 친구인 포로리가 매사 “때릴 거야?”라고 묻는 것도, 툭하면 아무에게나 성질을 내는 너부리의 모습까지도, 발달 중인 아이들이 타인과 자신 사이의 행동 한계를 배워가는 성장 과정을 담은 장면이 된다.
『보노보노』는 분명한 성장 만화지만, 단순 아동 만화라고 말하기에는 특이하다. 47권이 넘는 장기 연재 만화이지만, 정말로 소소하고 대단한 것 없는 동물들의 일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서사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귀여운 캐릭터를 내세우지만, 누구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기에 아무나에게 추천하는 것도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상실과 상처로 마음의 동요가 심한 사람에게 추천하게 되는 만화이다. 처음 <보노보노>를 보았을 때, 고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마음속의 동요가 정화되는 듯한 위안을 받았었다.

그림 3 『보노보노』 / 이가라시 미키오 / (주)거북이북스 / 리디북스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는 동물을 의인화한 아동용 개그만화를 많이 그려내긴 했지만, 인간들을 등장인물로 꽤나 섬뜩한 공포 스릴러도 종종 그려냈다. 그가 인간을 묘사할 때는 『보노보노』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극화체를 띠며 일상이 조각나 버린 불행한 서사들을 음울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보노보노가 인기를 끈 2000년대 이후에도 『아이』라는 심리 호러물을 통해 죽음의 의미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저 낙관적이거나 몽실몽실한 그림책만 그려내는 작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작가가 보노보노를 그리기로 결심한 때에는 부친을 잃고 몇 년 간의 휴식 시기였다고 한다. 『보노보노』에는 초기부터 보노보노 아빠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의 부자 관계 이야기에 만화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보노보노』 초기에 깔려 있는 관조적이고 다소 비관적인 측면들은 지금처럼 『보노보노』가 하나의 아이콘으로 상품화되기 이전, 작가만의 정서와 관념이 더 많이 묻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보노보노』는, 그가 상실을 통해 조각났었던 자신의 일상을 킨츠키(金継ぎ :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것) 하듯이 조심스럽게 재조립해 낸 뒤,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만든 그릇일지도 모른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길에서 자신도 모르게 명상적인 편안함과 위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 덕분일 것이다.
영속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시선: 『천재 유교수의 생활』

그림 4 『천재 유교수의 생활』 / 야마시타 카즈미 / 학산문화사 / 리디북스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하여 밤 9시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Y 대학 경제학부의 유택 교수. 그는 정해진 길로만 출근하고 세상의 모든 규칙을 준수하며 자신의 연구를 해나가는 것을 일과로 삼는다. 작가 야마시타 카즈미가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아 그렸다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유택 교수를 중심으로 그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만화의 주된 에피소드이다.
유택 교수의 머릿속은 교육과 연구로 가득 차 있으며 경제학도로서 자신의 삶에서도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며 똑바로 걸어간다. 공적인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기에 그의 일상은 경직되어 있고 융통성이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을 관찰하는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지루하고 심심할 것이라 예상되지만,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대하는 유택 교수의 시선을 엿보는 것은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중심 가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굳건히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변화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노숙자가 된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에서 친구는 “너하고 난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면이 있었어.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 수 없는 거.”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유택은 “타협이 아니라 전 제 의지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라고 반응한다. 친구는 자신이 변화를 따라갈 수 없었고, 그 결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꽃이나 팽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다른 건 모두 변했어도 이것만은 안 변했다라고 말한다. 유택은 “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림 5 『천재 유교수의 생활』 / 야마시타 카즈미 / 학산문화사 / 리디북스
대학 앞에서 노숙하고 있는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서, 모른 체 하지 않고 그와 추억을 나누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유택이 변하지 않은 것은 ‘편견 없는 태도’라는 올곧은 가치이다. 전 세계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하고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이 달라지고 각자의 사정과 가치관도 크게 바뀌는 세상에서, 유택 교수가 타협하지 않는 가치는 '경험에 열려있는 태도'이자 '누구의 주장이든 존중하는 태도'다. 지성 추구와 인간애 추구는 시대 초월적이지만, 한편으로 지성주의와 인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주류였던 적이 없다. 오히려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대에 뒤쳐진 과거의 가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래되어 낡아버린 것과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세계 속에서,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는 잊혀가는 가치들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묘사한다. 유택 교수가 남다른 것은 범상치 않은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유택 교수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의 연령은 전반적으로 다른 만화들보다 높은 편이며 다뤄지는 시선 역시 세월을 관통해 온 관조에 가깝다. 이 때문에 그들이 보여주는 삶과 가치들은,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세대보다 앞서 보낸 세대에 대한 그리움이 무의식적으로 담겨 있다.
그것이 단순히 복원적인 노스탤지어를 보여주기만 하면 그저 추억을 복구하는 이야기에 그치고 말겠지만, 작가의 조망은 과거에 머무른 이들의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과거에만 매달려 있는 것을 경계한다. 유택 교수는 그저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변함없이 자신의 의지를 견지하는 태도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일상을 지켜가는 본질임을 말해준다. 비록 만화가 묘사하는 노스탤지어가 다소의 모순과 공허함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누군가는 그런 노스탤지어의 잔향에서도 성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6 『천재 유교수의 생활』 / 야마시타 카즈미 / 학산문화사 / 리디북스
아쉽게도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이야기적 완결을 내지 않은 채 10년이 넘은 휴재로 미완의 작품이 되어 버린 상태이다. 실제 유택 교수의 모델이 되었던 작가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도 몇 년이나 더 작품을 그려 나간 야마시타 카즈미 작가의 심경이 어떠했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어린 진구와 다르게, 노년인 유택에게 일상이 종결될 일화는, 자립이 아닌 죽음일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나에게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다. 나에게도 유택 교수의 일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끝나지 않은 채 평화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종결 없는 일상성에 투영된 소망의 반영일 지도 모른다.
모두가 겪는 일상: 『누구나의 일생』

그림 7 『누구나의 일생』 / 마스다 미리 / 새의노래
나쓰코는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저녁에는 일상 경험과 사유를 담아 자신을 대입한 캐릭터로 ‘화과자 가게의 하루코’라는 만화를 자신의 계정에 올리고 있다. 한편으로 자신을 대입한 만화를 그리면서도 자신의 캐릭터가 하는 대사를 보며 한숨 쉬거나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작가이자 독자인 유쾌한 인물이다. 이야기 속의 나쓰코가 지내고 있는 세상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이다. 나쓰코는 연재 데뷔를 제안받고 고민하다 자신이 주인공인 만화를 떠올리며 만화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누구나의 일생』은 에세이 만화를 그리는 나쓰코라는 여성의 일상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마스다 미리는 현대 직장인 여성의 일상을 진솔하게 포착해 그려낸 수짱 시리즈로 유명하다. 기존의 작품들은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였기에 이 작품 역시 평소와 마찬가지의 일상 에세이일 거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일상 만화를 기대하고 책을 펼친 독자는 심장이 덜컹거리는 반전을 만나게 된다. 작품은 일상을 그리는 만화가가 자신의 일상 만화의 끝을 상상하는 메타적 구조를 띤다.
이 이야기는 마스다 미리가 코로나19가 한참이던 시기에 고안한 이야기라고 한다. 감염과 죽음이 숫자로 표현되고, 모든 이가 고립되고 파편화되어 각자만의 삶을 이어가던 시기, 작가가 경험했을 법한 다양한 상흔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작품 중반, 작가는 자신이 그린 만화 속 캐릭터 나쓰코의 죽음을 표현한다. 매일 죽음이 알람처럼 일상화되던 시기에, 작가 자신의 죽음과 그리고 일상 만화의 끝을 상정하는 아이러니의 순간이다.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평소의 작가다운 사유가, 작가가 그동안 그려내던 일상의 장면에도 시작과 끝이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다.
자신을 투영해 그려내던 일상 만화의 결말이 어떤 모습이 되면 좋을까, 일상을 그리고 남겨진 만화는 남겨진 이들의 일상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에 대한 작가의 다층적인 마음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언제나와 같이 잔잔한 마음속 울림을 일으키지만, 그 잔향은 다른 작품들보다도 더 깊다. 그것은 마쓰코의 이야기가 단순한 숫자가 아닌 유일무이한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후 구성되는 일상의 의미: 『100일 후에 죽는 악어』
키쿠치 유우키 작가가 SNS에 연재하던 4컷 만화를 작품화 한 『100일 후에 죽는 악어』는, 제목이 소개할 이야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하루마다 의인화된 주인공 악어가 생활하는 평화롭고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 보여준다. 특이한 점이라면 페이지마다 “죽음까지 앞으로 100일”이라 써진 숫자가 하루씩 줄어드는 것이다. 독자는 D-day에 무슨 사고가 일어나는 것인지, 그사이에 어떤 위기가 있는 것인지를 긴장된 마음으로 따라가 보게 된다. 독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악어는 1년 후 수령 가능한 상품을 주문하고, 영화의 후속편을 기대하거나, 아르바이트 선배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지 말지 고민한다.

그림 8 『100일 후에 죽는 악어』 / 카쿠치 유우키 / 대원씨아이 / 리디북스
『100일 후에 죽는 악어』의 작가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를 모델로 하여 그려낸 이 작품을 매일 하나씩 올렸다고 한다. SNS라는 특징과 D-Day를 향해가는 작품의 서사적 특성이 상호작용한 덕분에 이 작품은 기묘한 완결성을 만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에 찾아오는 갑작스런 종결, 그리고 지나간 일상의 의미는 사후적으로만 구성된다는 작품의 의미를 위해, 악어는 이야기 내에서 반드시 죽는 것이 결정되어 있다. 악어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일반적으로는 질병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시한부가 선고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이야기는 완전히 서사적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성과 죽음은 공존할 수 없다. 죽음은 언제나 유한성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한성을 직면할 때 인간은 조각나버린 일상에서 불안과 공황을 경험한다. 100일 후 사망하는 것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악어의 일상은 일상적이지만, 만약 악어가 자신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직감했다면, 일상에서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론적 불안’을 마주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유한성을 마주하고 죽음을 의식하며 일상을 다시 돌이켜 볼 때 일상은 더 이상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게 된다. 일상성이라는 방어막에 균열이 일어난 자리에서, 일상의 의미에 대한 역행적인 사후작용이 발생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사후성(afterwardsness)은 과거의 사건이, 시간이 지난 후에 재해석되거나 의미가 부여되면서 그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효과가 뒤늦게 발휘하게 되는 현상이다. 악어를 포함한 작품 안의 캐릭터들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상 안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의미는 100일 후 다시 지나간 페이지를 돌아보며 지나쳐버린 일상을 되새길 때 발생한다. 독자 역시 남겨진 악어 주변인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사후성을 띤 악어의 일상이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이 부분만큼은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과 이별은 일상을 깨트리며 갑작스레 찾아오게 되는 것을 모두가 생의 어느 순간 겪게 된다. 상실을 겪지 않은 이들도 언젠가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자신에게도 일어날 이야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스쳐 지나간 일상을 그리워하고 복구시키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다시 흐르며 조각났던 일상이 복구되어 간다. 회복된 일상은 다시 유한성을 잊으려 노력하며, 회복된 일상 에서 떠난 이의 공백을 재발견하게 하며 일상을 완전히 재구성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인'의 양식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소중한 이들이 처할 결말을 다시 또 망각한다. 하지만, 바로 그 망각 덕분에 상처를 회복할 수 있고, 일상성으로 돌아감으로써 일상의 종결이 필연적으로 언젠가 다시 또 다가온다는 사실을 견디며 떠난 이를 추억할 수 있다. 존재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완충장치이자 애도를 위한 보상적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상이라는 신화의 해체: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이하 데데디)』

그림 9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스트럭션』 / 아사노 이니오 / 서울미디어코믹스/DCW / 리디북스
도쿄의 상공에 갑작스럽게 원반형의 거대한 모선이 나타나자, 일본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자위대를 파견한다. 그로부터 3년, ‘침략자’라 명명된 이들로 인해 도쿄의 일부 지역은 피난 구역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8.31을 추모하는 행사가 이뤄진다. 상공에 침략자의 모선은 그대로 떠 있고 그들에 대한 공격이 이뤄지는 상태에서 정부는 침략자를 핑계로 병기를 증강해 나가며, 정부가 침략자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자들과 침략자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단체의 목소리가 커지며 여론은 분분해진다. 그 속에서 일상 만화 ‘이소베양’을 좋아하는 여고생 카도데와 절친 오란의 평범한 나날이 유지된다. 계속될 것 같은 일상은 ‘침략자’들의 모선이 폭발하는 인류 멸망의 위기가 예정되어 있다는 암운이 드리운다. 침략자도 인간도 아닌 케이타라는 소년을 알게 된 카도데와 오란은 인류 멸절의 위기를 막기 위한 비밀이 다가가는데…
아사노 이니오 작가의 『데데디』는 외계 함선이 나타난 미증유의 전 지구적 위협 상황조차 어느새 일상이 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시에 UFO의 출현이라는 SF적 상상력을 핑계로 삼아 일본 사회를 중심으로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과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며 분열되어 버린 인류의 모습을 다소 폭력적으로 보여준다. 독자는 이 일상이 여타 만화처럼 느긋하게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등장인물인 카도데와 오란 역시, 자신들이 누리는 일상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도라에몽』의 노골적인 패러디인 ‘이소베양’이란 만화를 단행본의 첫 에피소드로 삼는 것은, 이 만화가 『도라에몽』이 그려낸 ‘일상의 영속성’이라는 만화적 환상을 다루고자 하는 우화임을 드러낸다. 영화 『디스트릭트 9』과 『인터스텔라』와 함께 이 작품이 인용하는 만화의 목록도 다양하다. 장면이 전환될 때 타이틀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연출과 풍기는 분위기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본뜬 듯하며, 만화 속에서 사회와 정치, 미디어, 시스템 등을 빌려 인간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사채꾼 우시지마』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인류에게 구제 당하는 침략자들의 모습들은 『전원 옥쇄하라』를 연상케 하며, 인류 멸망을 그린 『20세기 소년』과 황폐된 세상을 그린 『아이 앰 어 히어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도라에몽』을 비롯해 일상 만화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유한하기에 오히려 더 영원할 수 있는 일상성의 역설적 가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림 10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스트럭션』 / 아사노 이니오 / 서울미디어코믹스/DCW / 리디북스
작중 작 ‘이소베양’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은 분명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와 인류의 존립을 건 싸움을 그리는 수많은 이야기에서 영웅이 지키려는 것은 '일상이라는 신화'다. 그 영웅 서사 속 'The 일상'은 평화롭고 고결하며, 반드시 지켜야만 할 무조건적인 가치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지킬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이 주인공의 일상이라면, 과연 그 일상은 꼭 지켜져야만 하는 것일까? 작가는 일상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주인공 카도데와 오란을 통해서 일상을 지키고자 퇴행하려는 방어기제와 일상에서 벗어나 성장하려는 욕구 사이의 딜레마를 그린다.
작품은 만화적인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냉소적일 정도로 직시하게 만들며, 인간이 만들어 낸, 부패하고 파괴적인 것들을 향한 작가의 분노 어린 시선을 표출한다. 동시에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한 다른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인간이 그려낸 일상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모순적인 애정을 드러낸다. 위니콧은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라는 말로, 최선의 양육은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성장해 겪어야 할 세상이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며 불완전함 위에 있기 때문이다. 작품 또한 만화가 아닌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이, 만화 속 이상화된 ‘The 일상’과 달리 흉측하고 모순적이며 불완전한 모습임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의 순간과 그 순간을 나눌 대상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가 가꿔나가야 할 현실도 그런 모순 위에 서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일상의 끝에서 겪어야 할 성장통이란, 대상을 반드시 지켜야 할 아름다운 것으로 이상화하거나 또는 복수하고 부숴버려야 할 것으로 적대화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 수용이다.
일상다반사의 삶
만화 속의 일상은 즐거운 부분만을 다루지 않는다. 어떤 만화는 일상의 모순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렇게 다양한 일상의 장면을 다룬 만화들을 통해 우리는 현실 속 일상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행적인 ‘사후성’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그렇게 일상 만화를 읽으며 우리는 일상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현실의 일상이 견디기 힘들 때 만화 속 일상으로 향해도 괜찮다. 그곳은 현실도 아니고 완전한 환상도 아닌 중간 영역이다. 진구가 도라에몽과의 이별을 통해 자립을 배우고, 보노보노가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서 배움을 얻고, 유 교수가 변함없는 태도로 시대를 넘나들고, 악어의 주변인들이 부재를 통해 소중함을 배우며, 카도데와 오란이 모순으로 점철된 현실을 받아들이듯. 그 만화 속 일상들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각자에게 놓인 일상의 창문이 조금 다른 빛을 투과하는 것을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복수이던 하루하루가 단수의 '일상'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간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다듬어지기도 한다. 반복 속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차이들, 같은 것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작은 다름들, 평범함 속에 내재된 특별함들, 끝이 있기에 더욱 소중한 순간들. 밥 먹고 차 마시듯 살아가는 삶 속에서 무한함의 소망을 가진 유한함을 의식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 가장 어렵기에 시도해 볼 만한 일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