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 만화의 동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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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서 구현되는 미시사와 거시사 (1) : 웹툰 <26년>을 중심으로

웹툰 <26년>은 5.18 민주화운동을 다루며, 거시사(역사적 사건)와 미시사(개인의 이야기)를 연결해 개인의 상처가 모두의 역사로 확장되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는 복수를 소재로 삼아 사회가 외면한 역사적 책임을 고발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5.18의 현재성을 드러낸다.

강다연

만화에서 구현되는 미시사와 거시사 (1) : 웹툰 <26년>을 중심으로

서문. 개인의 역사가 모두의 역사로 향해 가는 법

미시적인 역사는 어떻게 거시적 역사가 되는가. 대부분 개인이 겪는 사건은 개별적이고 일회적이기에 개인의 역사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판단되었던 사건이 객관화되고 보편성을 얻는다. 사람들의 기억과 기념이라는 수단으로 개인의 역사는 일회성의 틀을 깨부순다. 일회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칭하던 개인의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된다.

5.18 민주화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한정성에서 탈피한다. 그러므로 5.18 민주화운동은 개별적이지 않다. 보편성을 획득한 객관적인 역사.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의 역사인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해야 한다.1) 기억은 다양한 방식을 따라 행해진다. 그중에서도 본 칼럼은 만화를 5.18 민주화운동을 증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있다. 바로 <26(강풀 글, 그림)>이다. 주요 인물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의 자식이다. 그들의 목표는 모든 일의 근원이었던 책임자, ‘그 사람을 제거하여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어떻게 5.18 민주화운동을 다뤘을까.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 개인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1. 거시사로서의 '26년'

본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거시사를 소재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는 그 사람이 등장한다. (시민들이 구호를 외칠 때를 제외하고) 이름은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사람으로 표기된다. 웹툰에서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 내내 그 사람그 사람이다. 하지만, 독자는 그가 누구인지 안다. 전두환이다. 사회는 전두환과 그의 세력들을 처벌해야 했다. 국가가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며 권력 찬탈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이는 역사적 의무와 책임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치라는 이름 아래 역사적 의무는 무력해졌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본 작품의 목표는 그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책임자 청산이라는 과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은 사적 제재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주청문회, 전두환-이순자 구속 투쟁, 그리고 1995년 광주 특별법 제정과 1997년 전두환의 특별 사면까지의 과정에서 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2) 작가 강풀은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영리하게 이용하여 청산을 시도한다. 만화는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다음 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들이 그 사람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게 해서라도 역사적 과제를 이행하고자 한다.

본 작품은 근현대사 속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인물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다룬다. 모든 인물이 19805월 광주와 관련이 있다. 이를 통해 방대하고 거대한 역사가 개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역사는 현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본 작품의 등장인물을 통해 피력한다. 본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거시사에 상상력을 더해 역사적 책무를 강조한다. 개인이 대기업 회장이라는 조력자와 함께 사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는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 본 작품은 이렇듯 우리 모두의 역사인 거시사를 담는 동시에 개인의 역사인 미시사를 구현해 낸다.

2. 미시사로서의 '26년', 개인의 역사가 증명하는 우리의 역사

미시사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를 통해 역사를 주목한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역사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무명의 개인을 조망한다. 또한, 미시사는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시사는 더 나아가 개인의 역사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시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여태까지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 내렸던 수많은 개인을 개별적으로 조망한다.3)

본 작품은 거시사를 다루는 동시에 미시사 또한 주목한다. 등장인물들에게는 모두 전사가 있다. 모든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에게 19805월 광주와 관련된 서사가 존재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사연으로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렇기에 5.18 민주화운동은 26년이 지난 2006년에 인물들을 만나게 한다. (작품 연재 시기는 2006년도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2025년을 기준으로 45주년을 맞이했다.)

작품 내에서 피해자의 2세들은 26년이라는 세월을 먹고 자라나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날의 일이 상흔으로 남아 여전히 고통 속에 산다. 작품은 개인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상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강풀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 속 개인을 주목한다. 이는 작품 속에 드러나는 미시사다. 그렇다면, 작품은 어떤 개인을 조망하는가. 작품 속 인물에게는 어떤 서사가 있는가.

미진은 그 사람제거 계획에서 저격수로 활약한 국가대표 사격 선수다. 만물공작소에 시합용 총을 들고 가는 뒷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미진은 기술자에게 시합용 공기총을 살상이 가능한 총으로 개조해달라고 의뢰한다. 김갑세가 미진에게 그 사람의 업보를 청산하는 계획을 제안하기도 전에 이미 미진은 그 사람을 살해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으로 미진의 전사 회상이 배치된다.

미진은 198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미진의 아버지는 데모를 위해 전남도청으로 향했고, 집에는 생후 2개월 된 미진과 어머니 단둘이 남는다.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의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공수부대가 광주에 왔다는 소문까지 들려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에 휩싸인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미진을 데리고 금남로로 걸음을 옮긴다. 거리에는 시위하는 광주 시민들이 가득했고, 그 안에서 아버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얼떨결에 시위 대열의 앞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레 무차별적인 총성이 연쇄적으로 울려 퍼진다. 미진의 어머니는 미진을 끌어안은 채로 목숨을 잃었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서.

아버지는 서울로 상경한 후, 헌책방을 차린다. 미진은 서울에서 자라난다. 미진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지만, TV에서 그 사람이 나올 때마다 분노를 표출하며 그를 쏴 죽여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그 사람의 골목 성명이 있던 날에도, ‘그 사람의 재판 결과가 있던 날에도 아버지의 증오는 멈추지 않는다. 최종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던 그 사람2년 만에 대화합의 의미로 사면되고, 미진의 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달려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쏴 죽여야 한다고 외쳤고, 사람들에게 제압당한다. 결국 미진의 아버지는 쓰러지고, 수척해지다가 눈을 감는다. 아버지는 미진에게 자신만의 삶을 살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미진은 그럴 수 없었다. 미진은 국가대표 사격 선수가 된다. 그런 미진에게 김갑세의 비서 주안이 찾아온다. 미진은 그 사람제거 계획에 동참한다.

그 사람제거 계획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이들 중 한 명은 건달 곽진배다. 진배의 어머니는 진압군에게 폭행당한다. 그 모습을 본 진배의 아버지는 시민군이 되어 도청으로 향한다. 그리고 527일에 계엄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 살아간다. 사이렌만 울리면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사이렌 소리에 진배의 어머니는 계엄군이 와서 자신을 때리고 남편을 쏴 죽일 것이라며 공포에 떨고 발작 증세를 보인다.

진배는 어느덧 성년이 되고 군대에 간다. 믿을만한 친구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지만, 친구 역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진배는 첫 휴가를 받자마자 어머니에게 향한다. 민방위 훈련과 휴가가 겹쳤기 때문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네를 급하게 달린다. 요리 중이던 어머니는 부엌칼을 손에 쥔 채로 장롱 안에 숨는다. 진배는 어머니를 찾아내서 진정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어머니는 진배를 계엄군으로 착각한다. 어머니는 진배의 얼굴을 칼로 공격한다. 그로 인해 진배의 눈가에는 커다란 흉터가 생긴다.

진배는 복무 기간을 마치고 제대한다. 진배는 얼굴의 흉터 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당한다. 그 어떤 회사도 진배를 받아주지 않는다. 결국 취업에 실패한 진배는 포장마차 창업을 시작한다. 그런 진배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죄책감을 가진다. 그는 포장마차에서 건달에게 영업 방해를 당한 것을 계기로 그들의 대부 안수호를 찾아간다. 안수호는 1980년 광주에서 자신이 강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죽음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경멸하고 후회한다. 안수호는 진배에게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진배는 그렇게 수호파 건달이 된다. 수호파에서 입지를 굳게 다져 자리 잡은 진배에게 김갑세가 찾아오고 그 사람과 관련한 계획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안수호와 수호파 건달들 역시 진배를 돕는 조력자가 된다.

치영과 정혁 역시 김갑세의 제안에 응한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가 5.18 민주화운동 때 목숨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치영은 아버지의 묘소에서 만나게 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치영과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어깨에 기댄다. 치영은 조각가가 되어 업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 이제야 겨우 평안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때쯤, 치영에게 김갑세가 찾아오고 그 사람의 흉상 제작을 의뢰한다. 치영은 드디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다시 삶에 균열이 일어난 것에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결국 김갑세의 계획에 동참하며 그 사람의 흉상을 만들고, 그 안에 총을 숨길 공간을 제작한다.

정혁은 올바른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에 끊임없는 노력 끝에 경찰이 된다. 어머니 역시 정혁의 꿈을 응원했고, 그가 경찰이 되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정혁이 맡은 업무는 그 사람이 신호에 걸리지 않고 통행하도록 신호등을 조작하는 일이다. 정혁은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어머니에게 향한다. 정혁은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으며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TV에서는 현직 경찰이 그 사람을 위해 신호등을 조작해 준다는 이야기가 보도된다. 그리고 자료화면으로 정혁의 모습이 나온다. 어머니는 정혁을 때리며 크게 분노한다. 정혁 역시 무력한 자신을 한탄하며 김갑세의 복수 계획에 동참한다.

김갑세와 마상열은 계엄군이었다. 김갑세는 그 사람집에 찾아가서 그날의 일을 묻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발포 명령을 내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명령에 따라 시민에게 총을 발포한 계엄군이 있다. 그리고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시민도 있다. 그런데 명령을 내린 자는 없다. 이것이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히틀러가 없는데 아이히만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끝까지 일말의 반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 사람의 억지 주장은 작가적 상상력이 아니다. 강풀은 그 사람이 실제 발언을 참고하여 작품에 반영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책임을 회피하고, 발포 또한 보고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발포가 자위권 발동이라는 핑계를 댄다.4)그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도.

2024123일에 발생한 내란 이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곧 도덕이라고 맹신했다. 그는 군인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것을 정당화했다.5) 독재 체제 아래에 어떤 개인은 아이히만과 닮은 얼굴을 한다. 대체로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독재자가 있었고, 그가 명령을 내렸으며, 사유하지 않았기에(혹은 죽음이 두려워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그들이 살인자가 된 것이다. 악은 이토록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작품에서는 마상열이 그러한 인간군상의 상징이다. 마상열은 사유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을 호위하며 살아있는 역사라고 추앙한다. ‘그 사람의 잘못이 인정되면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증명받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김갑세와 마상열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 김갑세는 치영과 진배의 아버지를 살해했고, 마상열은 미진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이는 결코 동정받아서는 안 되는 살상 행위이며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그들의 죄가 정당화될 수 없다. 둘은 독재 체제에 순종하며 부당한 명령을 실행에 옮겼기에 변명해서는 안 되는 죄를 저질렀다. 두 사람은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고통받았고, 정신적 후유증을 앓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후에 보여주는 행보는 전혀 다르다. 김갑세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데 열중한다. ‘그 사람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회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갑세는 그 사람을 살해하고자 한다. 그는 평생을 후회하며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또한, 분노하는 유가족에게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한다. 김갑세는 그 사람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진배와 치영이 김갑세를 용서한다. 하지만, 김갑세는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라면서 미진이 그 사람을 사격할 수 있도록 장애가 되는 건물과 함께 자폭한다. 그 덕에 미진은 그 사람을 사격한다.

마상열은 김갑세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 사람의 경호실장이 되어 그 사람을 보호한다. 또한 그 사람이 역사 그 자체이며 자신이 그 사람의 명령에 따라 시민을 살상했던 행위는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김갑세는 주차타워에 있는 저격수 미진이 26년 전 마상열이 살해한 여성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김갑세가 자신은 먼저 용서를 빌었기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고 덧붙인다. 마상열은 김갑세가 자폭으로 미진을 돕는 것을 보며 동요한다. 그는 그제야 미진이 그 사람을 저격하도록 걸음을 옮기며 너무 늦은 사과를 건넨다.

이렇듯 본 작품은 주요 인물(심지어 반동 인물까지도)에게 전사를 부여하여 미시사로서의 개인을 주목한다. 본 작품 속에는 거시사를 다루면서도 미시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역사와 개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처럼 개인의 서사가 모여 역사가 된다. 강풀은 등장인물의 전사를 작품 내에 자세히 삽입하고, 개인의 사연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겪은 집단의 고통을 조망한다.

본 작품은 그렇게 피해자의 고통과 상실을 그려낸다. 또한 그것에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의 명령에 따랐던 가해자를 둘로 나누어서 내세운다. 한 명은 끝까지 속죄하는 것을 택하고 한 명은 진실을 회피하고 변명하는 것을 택한다. 둘의 선택을 대비하면서 독재 체제 아래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본 작품은 부당한 명령을 따르는 일만큼 비겁한 일은 없기에 개인은 끊임없이 스스로 사유하고 부끄럽지 않은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피력한다. 이처럼 강풀은 개인의 역사를 통해서 모두의 역사를 드러내고, 독자에게 과거를 증언하며, 책임자에게 역사적 책무를 묻는다.

결론. 강풀이 거기사를 미시사로 풀어내는 방식

본 작품의 결말은 모호하다. ‘그 사람의 건물은 그를 지키려는 경호원과 경찰, 그리고 그를 암살하려는 주요 인물들로 아수라장이 된다. 미진은 주차타워에서 그 사람을 저격하지만, 옆 건물이 장애물로 걸려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갑세는 그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의 옆 건물로 이동한다. 삐삐로 위장한 폭탄 스위치를 이용하여 자살한다. 김갑세의 자폭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주차타워에서 그 사람을 수월하게 저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작전을 막기 위해 그 사람의 경호원이 총으로 미진을 저격하고 경고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이 만화의 결말이다.

독자는 작전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다. 미진이 끝내 복수에 성공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 강풀은 단행본 작가의 말에 결말의 의도를 서술한다. 그는 본 작품이 단지 계획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야기로 기억되게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작가는 본 작품을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아픔을 지니고 살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랐다.6) 또한, 이것이 그가 작가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라고 피력한다.

본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의 성공 여부가 아니다. 작가가 역설하듯이 본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본 작품의 주인공들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그 일은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된다. 주요 인물들은 그 사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위해 엮인다. 작품은 그 사람을 살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물론 그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주요 인물의 목표이며, 인물들은 그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작품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작전 그 자체가 아니다. 작전을 실행에 옮기게 만든 동력이다.

작품은 그들이 무엇때문에, ‘누구에게, ‘분노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주요 인물들은 그 사람의 명령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 미진은 어머니를 잃었고, 진배와 치영, 정혁은 아버지를 잃었다. 미진의 아버지와 진배의 어머니는 배우자를 잃어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2년 만에 특별사면 된다. ‘그 사람을 향한 그들의 분노와 상실의 고통은 26년이라는 시간으로 희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김갑세의 제안에 응하고 사적 복수를 시행한다. 사회가 그 사람을 처벌하지 못하기에 그들이 직접 그를 처벌하고자 한다.

1980년 광주에서 진배와 미진, 치영, 정혁이 겪었던 일은 그들의 아픔과 분노가 된다. 그 감정은 복수라는 목표를 만들고,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작품 내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에게는 모두 전사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자식들이 그날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온 전사를 나열한다. 그렇게 자연스레 거시사를 개인의 삶 속에 녹여낸다. 강풀은 5.18 민주화운동을 개인의 사연을 통해 풀어나간다.

본 작품은 역사를 인물의 사연을 통해 증언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책무를 청산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2006년에 연재된 본 작품은 여전히 시의성을 지닌다. 현실 속 그 사람2021년도에 사망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끝내 책임을 회피했고, 사회는 그의 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4년에 123일에 다시 한번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2024년에 우리는 무장한 계엄군을 다시 목도했다. 이 모든 일이 1980년도의 광주가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라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본 작품은 동시대적이고, 개인과 역사는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본 작품은 그저 사적 복수를 하는 이야기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본 작품은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이며 누군가가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이다. 본 작품이 연재 중이던 2006년 당시에는 그날로부터 26년이 흘렀기 때문에 <26>이라는 제목으로 독자와 만났다. 지금은 그로부터 19년이 더 흘러서 45년이 되었다. 20대 중반이던 미진이 계획에 성공해서 살아남았더라면 40대 중반이 되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2024년 겨울에 떨어진 계엄령으로 본 작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시에 급작스레 계엄령이 선포되어 계엄군이 국회에 침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은 역사와 완벽하게 유리될 수 없으며, 과거와 현재 역시 분리할 수 없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피력하는 것처럼 우리는 광주를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광주에서 실존했던 개인을 지워서도 안 된다. 개인의 역사는 곧 우리 모두의 역사이기도 하다.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미시사는 거시사와 연결되어 있다. 작품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거시사 속 미시사를 찾아내듯이.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강풀, 26, 카카오페이지


1)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도서출판 길, 2008), 319~320p.

2) 천정환, “1980년대와 민주화운동에 대한 세대 기억의 정치”, 대중서사연구 제203: 202p.

3) 조한욱, “미시사의 이론과 실제”, 역사학보 제167(2000.9) : 147p.

4) 강풀,263, (재미주의, 2012), 214p.

5) 박은주, “아렌트(H. Arendt),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드러난 사유와 도덕의 관련성의 교육적 의미”, 교육문화연구 제26권 제5(2020) : 1134

6) 강풀,261, (재미주의, 2012), 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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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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