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 만화의 동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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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서 구현되는 미시사와 거시사 (2) : 웹툰 <낮에 뜨는 달>을 중심으로

웹툰 <낮에 뜨는 달>은 대가야 정벌이라는 거시적 역사 사건을 배경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갈등에 얽힌 남녀 주인공의 1500년을 초월하는 비극적인 사랑과 증오(미시사)를 판타지적 요소와 함께 그려낸 작품이다.

2025-11-14 강다연

만화에서 구현되는 미시사와 거시사 (2) : 웹툰 <낮에 뜨는 달>을 중심으로


서문. 지배와 피지배 속의 개인 

원수 간의 사랑 이야기는 고전적인 소재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동명의 오페라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 등 다양한 고전 로맨스에서도 원수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꾸준한 호응을 받는 플롯이기에 현대 작품 중에서도 원수 간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는 지배국과 피지배국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을 다룬 이야기도 존재한다.

뮤지컬 <아이다> 역시 이집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수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아이다는 누비아의 공주이다. (원작인 오페라에서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이다) 하지만 이집트가 누비아를 정벌하면서 아이다는 노예로 전락하고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의 하녀가 된다. 아이다는 암네리스의 약혼자이자 이집트의 장군인 라다메스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둘을 파멸로 이끈다.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반역자가 되어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원수 사이의 사랑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들의 사랑은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또한, 사랑과 정반대되는 감정인 증오가 동반된다. 그들은 온갖 감정이 뒤엉켜 파멸을 향해 걸어간다. 서로를 미워하고 갈등하다가도 서로의 결핍을 발견하고 동정하거나 공감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이들처럼 사랑을 한다. 사랑 때문에 비이성적인 선택을 해서 위험에 처한다. 그러면서도 목숨을 담보로 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관객이나 독자는 그들의 위험한 사랑에 매료된다.

우리나라 역사에 실존하는 지배국과 피지배국을 배경으로 개인 간에 싹트는 사랑을 다룬 웹툰도 존재한다. 웹툰 <낮에 뜨는 달(, 그림 혜윰)>이다. 웹툰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진흥왕 시대에 신라가 대가야를 정벌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원수 간의 사랑을 다룬다. 과거와 현대를 이어서 약 1500년을 초월하는 사랑과 증오를 다루는 작품이다. 지배국과 피지배국 사이의 갈등을 다룰 때 등장인물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본 작품은 거시사 속 개인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또한 어떻게 역사와 현재를 하나로 연결할까.


1. 흘러가는 시대, 고여 있는 인물

본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과거 편과 현재 편으로 구분된다. (도하를 제외하고는) 등장인물도 다르고 갈등 구조도 다르지만, 두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인물은 남자주인공 도하이다. 현재 편은 심장병으로 사망한 고등학생 준오가 장례식장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준오는 죽기 전과 다른 태도를 보인다. 형 민오와 엄마에게는 관심도 없고, 옆집 대학생 영화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집착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민오를 짝사랑 중이었고, 준오와는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에 준오의 변화가 당황스럽다.

사실 준오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1500년 동안 천도하지 못한 귀신 도하가 준오의 몸에 빙의했다. 도하가 준오 몸에 빙의한 것은 현재 편의 인물들에게 여러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도하의 목적은 영화를 살해하는 것이다. 영화는 도하를 살해한 아내 한리타의 환생이었고, 도하는 천도를 위해 영화를 몇 차례나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리타를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도하는 끝내 영화를 죽이지 못한다. 영화는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도하가 천도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자각몽을 꾼다. 꿈속에서 영화의 전생, 한리타가 되어 그가 겪은 일을 영화가 다시 겪는다.

 

현재 편의 주요 갈등은 과거에서 끝맺지 못한 증오와 사랑에서 비롯된다. 도하는 한리타에게 영문도 모른 채 살해당했고, 귀신이 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한리타 곁을 맴돈다. 한리타는 병에 걸려 죽고 여러 차례에 걸쳐 환생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태어날 때마다 다른 이에게 살해당한다. 도하는 한리타를 향한 원망과 배신감, 그리고 사랑 때문에 이승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하와 한리타를 기억하는 인물이 있던 시대는 진작 흘러갔지만, 도하는 여전히 한리타에게 고여 있다.

도하의 감정은 현재 인물들의 갈등을 촉발한다. 도하는 준오의 몸을 빼앗았고, 준오는 영혼인 상태로 이승에 남아있다. 그 결과, 도하와 준오는 계속해서 준오의 몸을 두고 갈등을 일으킨다. 준오는 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엇나가서 불량배들과 어울리기까지 한다. 민오 역시 악귀 도하를 동생 몸에서 내쫓고 준오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준오의 친구인 도현 역시 민오를 조력한다.

도하는 귀신이었기 때문에 다른 귀신을 보거나 삼킬 수 있었다. 대학 선배 지원의 동생은 사고사를 당했는데, 도하는 영화에게 사고사가 아니라는 듯한 말을 남긴다. 이 말 때문에 지원은 자신이 동생을 살해한 것을 영화가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영화를 죽여 없애려고 한다. 영화는 간신히 지원에게서 살아남는다. 지원은 현재 편에서 영화와 끈질기게 대립한다. 결국 모든 갈등의 근원은 도하이다.

현재 편과 과거 편을 잇는 근본은 도하이지만, 곳곳에 과거와의 연결점이 존재한다. 지원은 과거 한리타를 증오했던 동영의 환생이다. 동영은 과거 편에서 몇 차례나 한리타를 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하를 증오하는 화랑 미도와 한패가 되기까지 한다. 가야인이 신라인에게 온갖 차별과 혐오를 받고 추방당하던 때, 동영은 한리타를 공격하다가 도하에게 살해당한다. 끈질긴 악연이 1500년의 세월을 타고 다시 재현되도록 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도하가 준오의 몸에 오랜 시간동안 빙의할 수 있는 이유는 준오와 도하 사이에 연결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복선이 등장한다. 또한, 도하와 민오의 비슷한 외모 역시 그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작중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준오와 민오가 도하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도현은 준오가 도하의 후손이기 때문에 도하가 준오의 몸에 빙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었냐는 도현의 질문에도 한리타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서 키웠을 리가 없다고 대꾸한다. 도하는 끝까지 한리타와 자신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천도한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듯 연결되어 있다. 도하는 세월을 흘려보내며 고여 있는 존재였고, 작가는 도하를 통해서 현대와 과거를 잇는다. 도하와 한리타는 신라 진흥왕의 대가야 정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만난다. 한리타는 가야인이었으며, 도하는 대가야를 정벌하는 데 앞장선 진골 귀족이었다. 과거 편은 역사적 사건으로 원수가 된 개인이 여러 사건을 거치며 끈질기게 얽히는 과정을 그린다.

도하와 한리타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장 혼인을 하며 부부가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튼다. 하지만 도하를 향한 한리타의 마음은 애증이었고, 한리타가 도하를 살해한다. 도하는 한리타와 제대로 끝맺지 못한 관계 때문에 1500년의 세월을 관통하여 영화에게 닿는다. , 본 작품은 거시사가 촉발한 개인 간의 갈등을 담으며, 그 갈등은 현대 인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떤 개인은 시간이 흘러 모두가 한 시대를 잊어도 여전히 그 시간대에 머무른다.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갈등이 도하와 한리타에게 사랑과 증오라는 상반되는 감정을 부여하고, 1500년이 지난 현재를 꿰뚫는다. 작품은 남자주인공 도하를 통해 역사와 현재를 하나로 잇는다. 작품은 판타지적 요소인 귀신을 과거 편에서 끝맺지 못한 갈등을 현재 편으로 가져오는 장치로 사용한다. 또한, 이는 로맨스 장르에 부합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한리타를 향한 도하의 마음이 1500년을 초월하여 한리타의 환생 영화에게 닿았으므로.


2. 실화에 허구적 로맨스를 입히는 법

본 작품은 대가야 정벌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개인의 갈등과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커다란 구조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전부 허구이다. 등장인물 중 유일한 실존 인물은 사다함과 무관이다. 사다함은 내물왕의 7대손이었고, 생전 천 명 정도의 낭도를 이끌었다. 또한, 본 작품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사다함은 미실의 연인이기도 했다. 사다함은 대가야 정벌을 위해 출정을 떠나고, 전승을 거둔다.

진흥왕은 공을 세운 사다함에게 가야인 300명을 하사하지만, 사다함은 가야인에게 자유를 준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다함은 연인 미실이 이미 세종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심지어 그의 벗이었던 무관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진다. 사다함은 무관과 미실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무관이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화랑 사다함과 미실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사다함과 무관의 우정 이야기는 오늘날의 문화 콘텐츠에서 종종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1

본 작품 역시 실존 인물 사다함과 무관을 등장시키되 만화적 재미를 위해 허구를 결합한다. 과거 편에는 대가야를 정벌한 신라인이 가야인을 억압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 과정에서 도하와 사다함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만화는 사다함이 진흥왕에게 하사받은 가야인을 풀어주었다는 사실과 무관과 함께 요절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도하와의 대립이라는 허구를 더한다. 사다함은 올곧은 화랑이다. 작중에서는 도덕적으로 부당한 일을 참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로 표현된다. 무관 역시 도하와 사다함 중간에서 곤란을 겪으면서도 사다함이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다함과 무관은 과거 편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덕만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과거 편의 주요 인물들은 무관과 사다함을 제외하고 입체적인 동시에 문제가 있다. 과거 편의 주인공 도하와 한리타마저도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다. 작품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인물은 도하이다. 도하는 부모님을 여의고 소리부 이찬의 밑에서 자라난다. 소리부 이찬은 권력을 위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었다. 도하는 그의 밑에서 더러운 일을 해가며 살아남는다. 그는 자신을 소인배라고 정의 내린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대의를 저버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역시 어린 시절 사다함처럼 이상을 꿈꾸었으나 소리부에게 여러 차례 꺾여버린다. 그렇기에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냉소적인 사람이 된다.

도하는 가야인이 병마를 옮긴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그는 가야인들이 스스로 서라벌을 떠나도록 만들기 위한 최선의 일이라고 판단한다. 말득이라는 노인에게 가야인에게 병이 옮은 것처럼 연기하라고 사주한다. 도하는 노인 말득을 서라벌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이찬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말득을 살해한다. 사다함은 도하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실존 인물 김사다함이 그러했듯이 가야인을 풀어준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나눠준다. 도하는 대의를 추구하며 가야인들을 지키기보다는 사다함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다함이 이찬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사전에 사다함의 뜻을 꺾는다. 도하는 사다함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고, 사다함은 도하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두 사람의 대립은 커진다.

사다함이 베푼 선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가야인들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 때문에 신라인들은 가야인을 증오하고 차별한다. 사다함이 나누어준 물자는 가야인들이 도둑질해서 얻은 것이라는 누명으로 되돌아온다. 사다함은 도하에게 약자가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며, 목소리를 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 사다함은 노인 말득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해서 죽을 위기에 처한 한리타를 숨겨준다. 또한, 노인 말득의 시체를 찾아서 말득의 사인이 병사가 아닌 살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리부 이찬이 사다함의 행동을 주시한다. 그리고 이찬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아들 미도가 도하를 내치는 조건으로 사다함을 제거하겠다고 말한다. 미도는 가야인 승려 동영에게 한리타를 제거하는 조건으로 사다함을 살해하라고 사주한다. 동영은 부적에 독이 든 쇳조각을 넣어 사다함에게 보낸다. 이 사실을 몰랐던 사다함은 부적을 박음질한 비단옷을 무관에게 선물한다. 결국 무관은 쇳조각에 찔려 목숨을 잃고, 사다함은 커다란 무력감과 절망에 휩싸여 무관을 따라간다. 이는 도하가 이찬에게 복수를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듯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는 본 작품의 발단이 된다. 작품은 역사와 실화에 상상력을 입혀 재미를 더하고 스토리를 전개한다. 거시사를 통해 인물들이 서로를 조우하게 만들고, 인물들이 개별적인 미시사를 써 내려가도록 유도한다. 본 작품에서 대가야 정벌과 사다함은 과거 편 스토리의 주요 축이자, 로맨스를 담당하는 장치인 위장 혼례를 올리게 되는 원인이 된다. 작가는 본 작품 속 허구적 로맨스의 근원을 거시사와 실존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를 거부할 수 없는 개인의 모습을 시사한다. 특히, 도하가 한리타에게 마음을 쓰게 되는 이유는 주목할 만하다.

물론, 한리타의 부모를 도하의 손으로 살해했다는 죄책감과 도하를 향한 한리타의 섬세한 시선도 도하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도하가 유난히 한리타를 신경 썼던 이유 중 하나에 사다함도 포함된다. 한리타가 사다함을 닮았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하는 이상주의자적인 면모가 한리타에게도 있었다. 도하는 한리타와 사다함을 겹쳐 본다. 본 작품의 사다함은 과거 편 초반부에 등장해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도하라는 인물을 움직이는 계기를 제공한다. 도하는 사다함 때문에 한리타를 눈여겨보고, 사다함으로 인해 이찬 소리부에게 복수할 결심을 한다. 작가는 이렇듯 시대극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실존 인물과 역사를 등장인물의 로맨스에 중요한 장치로 차용한다.

도하는 한리타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한리타가 이찬을 살해하면, 도하는 가야인을 돕는 것이 조건이다. 그리고 병력을 빼돌려 이찬을 살해하기 위해서는 도하와 한리타가 혼례를 올려야 했다. 한리타는 대가야 대장군 한욱의 여식이었고, 일가족이 모두 도하의 손에 말살당했기 때문에 도하의 이러한 제안은 한리타에게 있어 패륜이었다. 그러나, 가야인을 외면할 수 없었던 한리타는 도하의 손을 잡는다.

한리타는 이미 도하에게 여러 차례 목숨을 빚지면서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싹튼 상태이다. 하지만, 그가 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시에 그를 증오하는 마음 역시 뿌리내린다. 한리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야인의 처우 개선이었다. 가야인이 핍박받지 않고 서라벌에 정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대가야의 귀족인데도 이타의 목숨을 빌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가야인들이 박해받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무력감이 한리타를 지배한다. 그렇기에 한리타는 도하와 결혼하여 원수의 원수를 대신 갚고 가야인을 구제하는 쪽을 택한다.

 

현대 편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과거 편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도하는 한리타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한리타는 정신병과 신병을 앓았으며, 미도는 도하를 증오한다. 도하와 한리타의 사랑과 가야인 구제라는 목적 모두 달성하지 못한다. 과거편의 가장 큰 갈등은 신라인과 가야인, 즉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진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하고 한리타와 도하가 얽힌다.

피지배층을 향한 지배층의 차별과 혐오는 범죄를 불러일으킨다. 연조 엄마가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과거 편 초기에 연조 엄마는 눈에 띄지 않는 면모를 보인다. 연조와 남편을 걱정하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연조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연조 엄마는 점점 수동성을 탈피해 악행을 저지른다. 연조 아빠는 신라인과 다툼을 벌이다가 연조 엄마를 공격하는 신라인을 밀친다. 신라인은 땅에 박힌 돌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다. 연조 아빠는 고문 끝에 화형당한다. 연조 엄마는 도둑질을 안 해도 도둑으로 몰린다면, 차라리 진짜 도둑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산적이 된다. 신라인의 옷과 식량을 약탈하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른다. 또한, 자기 남편에게 사형을 내린 판관을 살해하고 관아를 방화한다.

이러한 모습은 역사와 현대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약자가 강자에게 핍박받고, 약자는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강자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더한 억압을 가한다. 또는 조롱한다. 약자는 어쩔 수 없이 범법을 저지르거나 강자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한다. 강자는 약자를 일방적으로 비난한다. 약자가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연조 엄마는 미시사의 상징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적이다. 피지배층이며 나라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상실한다. 본 작품은 연조 엄마라는 가상 인물을 내세워서 신라인과 가야인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도록 만든다. 연조 엄마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범죄까지 저지르는 인물이다. 핍박받아 타인을 해치는 연조 엄마는 도하와 한리타의 가야인 구제 계획을 방해한다. 연조 엄마의 범죄 행위로 인해 가야인을 향한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이에 따라 도하가 나서서 가야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게 된다. 그 때문에 한리타의 병세는 악화하고, 가야인에게 우호적인 행보를 보이는 도하의 입지가 흔들린다. 연조 엄마의 행동은 그들의 사랑을 파멸로 치닫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본 작품은 거시사를 기반으로 가상 인물과 허구적 사건을 더한다. 또한, 가상 인물과 허구적 사건은 거시사 속에서 존재하는 미시사를 구현해 낸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갈등을 그리며, 대부분의 인물은(심지어 주인공인 도하와 한리타까지도) 각자의 사정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고 그들은 입체적이다. 실제 역사는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아넣고, 인물들은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렇게 탄생한 가상의 갈등은 도하와 한리타의 비극적 사랑을 피워낸다. 실제 역사는 도하와 한리타가 파멸로 치닫는 사랑을 하게 만드는 기반을 제공한다. 작가는 역사를 통해 도하와 한리타가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상황을 제시하면서 두 사람의 로맨스에 비극을 강화한다.

 

결론. 거시사로 인해 지독하게 엮인 개인

도하와 한리타는 살인이라는 죄악으로 맺어진 부부였고, 그들의 사랑은 시대에 용납될 수 없었다. 도하는 미도의 증오를 받았다. 도하의 전처는 소리부 이찬의 딸이었으나, 도하는 전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전처는 도하를 원망하다가 요절한다. 미도는 누이와 아버지의 죽음을 모두 도하의 탓으로 돌린다. 또한, 도하가 사다함과 무관만을 편애했다며 치기 어린 질투를 한다.

도하의 적대자가 미도라면, 한리타의 적대자는 동영이다. 동영은 이타의 오빠였기 때문에 이타 대신 살아남은 한리타를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한리타를 살해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며댄다. 한리타는 동영에 의해 독살당할 뻔했지만, 동향 사람이 그리웠던 한리타는 동영을 용서한다. 하지만, 동영은 살아남고도 한리타를 위기로 몰아넣을 생각뿐이다. 동영은 도하의 손에 죽기 직전까지 끈질기게 한리타를 노린다.

도하와 한리타가 쌓은 업보는 그들에게 그대로 돌아온다. 결국 도하와 한리타의 사랑은 그들을 증오하는 이들에 의해 무너진다. 한리타는 도하를 살해한 이후, 절벽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한리타는 자살에 실패하고 후유증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또한, 그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리타는 도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백제로 넘어가서 아이를 기른다. 한리타는 백제에서 신병과 정신병에 고통받다가 요절한다. 미도는 정황상 도하를 살해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살인죄로 처형당한다.

도하는 한리타가 자신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귀신인 상태로 1500년을 한리타 환생 곁을 떠돈다. 본 작품은 역사의 흐름 때문에 지독하게 엮인 두 사람의 사랑과 증오를 판타지적인 요소와 함께 풀어나간다. 본 작품을 이끄는 동력이 되는 감정은 애증이다. 작품은 마음껏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고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거시사와 미시사로 표현한다.

본 작품처럼 시대극은 실제 역사인 거시사를 이용하여 갈등의 기반을 마련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은 거시사로 인해 갈등하고, 그 갈등은 개별화된다. 역사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을 촉발하고, 대개 이 갈등은 필연적이다. 거시사에서 개별화된 갈등은 작품 속 미시사가 된다. 시대극에서 구현되는 거시사는 작품을 전개하는 동력이 되는 주요 갈등의 촉발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시대극 속 인물이 겪는 갈등은 개인적인 동시에 역사적이다.



1) 이상국, "[아주스페셜-화랑]화랑 사다함, 나라를 위해 싸웠고 여인과 벗을 잃고 죽다", 아주경제2018.01.25 https://www.ajunews.com/view/2018012514060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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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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