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산업계는 이제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 미디어믹스 가치 중심
2020년대 중반 이후, 웹툰 산업은 더 이상 ‘좋은 스토리’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웹툰 산업계는 이제 ‘확장할 수 있는’ 좋은 스토리를 원한다. OTT와 숏폼 플랫폼의 급격한 성장, 글로벌 유통망의 통합 시스템 구축, 그리고 AI 기반의 개인 창작자들의 제작 효율화 등의 기술 발달은 IP가 다양한 매체로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 산업의 표준을 만들었다. 이러한 급진적인 기술의 발전 환경에서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IP 생존의 조건이 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산업 측면에서의 가치 사슬 구조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웹툰 플랫폼과 제작사가 완결된 작품을 공급받아 트래픽과 매출을 유도하는 구조였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각 콘텐츠 매체별 플랫폼과 제작사가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IP의 확장 가능성을 수치화하고, 권리·비용·회수 구조를 구축하여 제작한다. 산업의 질문이 이제는 “잘 팔리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매체로 확장할 수 있는가?”로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무자가 마주하는 회의 테이블의 논점 또한 변화되었다. 과거의 프로듀싱 내용이 소재의 참신함, 작가 개성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매체별 호환성, 소비 주기, 세계관, 캐릭터 간 관계 및 감정선, 시즌·스핀오프 가능성, 글로벌 확장성 등의 변수를 기본 항목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항목들은 단순한 ‘감’이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과 제작사가 누적해 온 데이터를 분석한 지표와 가설을 근거로 하는 사업 구조의 특징이다.
이처럼 이제는 미디어믹스(=OSMU, One Source Multi Use)는 후행 사업이 아니라 콘텐츠 기획의 전제가 되었고, 그 전제는 제작·편성·마케팅의 모든 하위 의사결정의 중심이 된다. 다만, 산업이 구조를 먼저 구축한다고 해서 콘텐츠 소비자 관점에서의 휴머니즘 감정을 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조를 먼저 정립하는 이유는 원천 IP의 흥행을 더 오래 살리기 위해서다. 산업 구조가 약하면 아무리 메가 IP라도 금세 잊히고, 구조가 단단하면 스토리의 여운이 매체가 변화하더라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에 실무자에게 이 관점은 IP 리스크 관리의 출발점이고, KPI 측면에서 IP 수명의 지속성을 늘리면서 산업의 데이터 구조로 변환하려는 시도다.
오늘날 웹툰 콘텐츠의 성패는 기획 이후가 아닌, 기획 이전에 결정된다. 작품 소개서의 첫 장, 세계관의 컨셉 문서 등이 향후 3~5년의 가치사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웹툰 PD와 같이 작품을 기획하는 ‘편집자’는 제작의 출발점에서부터 세계관·캐릭터·감정·매체 형식 등을 작가와 함께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스토리는 더 이상 천재적인 작가에 의한 완성품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 형식에 따른 조립 설명서를 품고 탄생하며, 그 설명서를 쓰는 사람이 웹툰 콘텐츠 편집자이다.
이에 이번 4화에서는 편집자의 설계를 중심에 놓고, 현장에서 스토리의 확장 가치를 가르는 판단 기준과 절차, 실패의 원인과 회복 가능한 지점을 분석한다. 콘텐츠 산업은 자본주의 측면에서 차가우면서도, 한편에서는 낭만적으로 움직인다. IP의 확장, 즉 미디어믹스를 통해 원작의 감동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오래 도달시키기 위한 조직화된 기술이자, 이러한 기술의 첫 단추는 곧 편집자에 의한 기획 단계에서의 설계임을 상기시켜 본다.
플랫폼의 요구 구조 : 시장이 설계를 규정한다
웹툰의 확장을 결정하는 것은 ‘콘텐츠 매체별 시장 구조’, 그리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이다. 단순히 자본이 플랫폼을 통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매체별로 다른 플랫폼의 구조가 곧 각각의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 소비자의 시간 단위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OTT를 포함한 대다수의 콘텐츠 플랫폼은 시청 시간, 체류 시간, 완주율 등의 지표를 분석하며, 일시적인 소비자 관심이 아닌 관심의 유지력을 분석하고 있다.
‘시즌의 분절’은 영상 콘텐츠 소비 주기가 짧아지는 시대에 있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정보의 압축 구조의 기본 언어로 그 중요성이 대두되는 중이다. OTT 플랫폼의 드라마 시리즈별 권장 회차 구조는 통상 8~12부이며, 각 회차의 중간에 6~8분 주기로 리듬이 한 번씩 변해야 한다. 과거 방송사의 16부작 일반 드라마나, 50부작 대하드라마와 비교하였을 때, 이는 단순한 분량의 축소가 아니라 완주율 알고리즘에 맞춘 최적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제작비 문제나 시청 피로도 때문만이 아니고, 소비자 경험 측면에서 10시간 내외의 총 상영 시간 내에서 지속성이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알고리즘의 기술이 고객의 특성에 맞춰 진화한 것이다.
또한,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와 같은 웹툰 플랫폼은 소비자와 상호작용 관계이다. 독자는 회차를 클릭하고, ‘좋아요’, ‘찜하기’ 등과 같은 관심도, 댓글, 외부 공유를 통해 본인의 소비 경험을 공유한다. 이러한 독자의 소비 경험은 다음 화수의 노출 순위를 바꾸는 플랫폼 내부의 데이터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때 실무자에게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경험 크기가 아니라, 소비자 반응의 지속성이다. 소비자의 반응이 강하더라도 반복되지 않으면 플랫폼 내부의 생태계는 순환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현실은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기술적으로 바꾸는 기점이 되었다. 플랫폼이 단순히 이야기만 유통하는 통로가 아니라, 스토리의 형태를 규정하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지난 화에서 다룬 매출, 트래픽 중심 구조를 넘어, 이제는 작가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언제, 어떻게 소비자 반응이 발생하는가?”를 고려하여 스토리를 압축 구조의 언어로 설계해야 한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편집자가 작가의 의도된 소비자 경험 유도를 시스템적 언어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편집자는 웹툰의 기획 단계에서 감정선 흐름에 대하여 회차별 데이터 구조로 시뮬레이션하고, 소비자의 완주율과 체류 시간을 고려하여 스토리의 전개 속도, 캐릭터 간 감정 리듬을 조정한다. 감정선이 약화하는 지점을 확인하면 컷 구성 및 간격, 대사의 속도감을 수정하여,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형성하며 IP 소비에 대한 지속성을 늘린다.
즉, 실무자에게 콘텐츠 매체별 이해란 서사의 소비 리듬을 해석하는 일이다. 소비자 경험이 매체의 리듬에 맞지 않으면, IP는 시스템 구조에서 일탈 현상을 겪는다. 반대로 리듬을 정확히 해석한다면, 소비자 경험이 여러 형식으로서 유지된다. 이러한 플랫폼의 구조는 결국 소비자 경험을 유지하게 하는 기술적 장치의 문제로서, 플랫폼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수치는 서사의 내적 감정 구조에 대하여 시장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여준다.
매체별 맞춤 설계 전략 : '형식의 언어'를 읽는 편집자
매체별 문법이 다르다는 것은 편집자라는 직무에서 상식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차이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차이를 설계 단계에서 어떻게 병렬 구조로 다루고 개선할 수 있느냐이다. 즉, 문제는 각 매체의 문법을 따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다층적으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이고, 편집자는 각 매체가 요구하는 서사의 밀도를 구체화하는 숙제를 지닌다.
OTT, 애니메이션, 게임, 상품, 출판 등 주요 매체 구조는 대부분 시간 단위로 소비된다. 편집자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소비자 감정 소모에 대한 전체적인 서사를 각각의 단위로 환산하여 설계해야 IP의 매체 확장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시로 OTT의 시간 단위는 ‘정보의 압축률’로 측정된다. 1분당 사건 전환이 두 번 이상 일어나야 몰입이 유지되고, 3분 이상 정적 상태가 지속되면 시청률이 하락한다. 애니메이션은 컷 간의 리듬이 핵심이다. 콘티 단계에서 컷의 길이를 평균 2초로 고려하면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반면, 게임에서는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컨트롤 리듬’(=Loop)이 감정의 지속성을 결정하는데, 이러한 루프가 3분 이내면 반복 플레이율이 높고, 5분 이상이면 피로도가 누적된다. 상품은 단순 소비재가 아닌, IP를 소비하는 감정의 매개체이다. 이는 곧 소비자가 결핍이나 고난, 결핍의 극복 서사가 반영된 캐릭터에 더 강한 연대감을 느끼며, 그들의 재구매율과 CLV(Customer Lifetime Value, 고객생애가치, 특정 고객이 특정 기업의 고객으로 있는 전체 기간에 해당 기업에 제공할 것으로 추정되는 재무적인 공헌도의 합계)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
지난 2020년,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최초로 TV 쇼 부문 글로벌 3위까지 진입했던 <스위트 홈> 성공은 단순히 원작 웹툰의 인기에 기댄 것이 아니다. 원작 웹툰은 인간 내면의 공포를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방식으로 작동하였지만, 드라마는 이 구조를 위에서 언급한 정보의 압축률로 재해석하였다. OTT 포맷에 맞게 사건 밀도를 압축하고, 회차별로 감정의 완급 조절을 분명히 했다. 서사의 감정 구조를 웹툰의 ‘공간적 관계’에서 드라마의 ‘시간적 리듬’으로 재배열한 것이다. 여기에 원작이 지닌 현대인의 욕망을 투영하는 괴물에 대한 기술적 리얼리티가 흥행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노블코믹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화 과정에서는 감정보다는 행동의 반복성이 강조됐다. 주인공의 성장보다는 ‘패턴의 반복’을 통해 소비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원작 웹소설이 가진 게임적 구조를 매체의 문법으로 정확히 변환한 결과다. 반복적 패턴 중심의 쾌감은 단지 액션이 연속되는 구조 때문이 아니라, 원작에서 ‘퀘스트, 보스 격파, 레벨업/보상’이라는 루프를 애니메이션 문법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는 주인공 성진우의 감정 변화보다는 ‘다음 단계에서 어떤 패턴이 깨질 것인가?’라는 기대와 이러한 소비자 기대의 실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몰입하게 된다. 해당 작품이 감정보다 행동의 반복성으로 작동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작가가 고도로 설계한 전략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국내외 시청자에게 ‘즉각적 피드백-다음 패턴 기대’라는 게임 유희적 감각을 제공하는 웹소설 장르 창작의 정석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감정의 시각화를 상품화 과정을 통해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감정’을 캐릭터화하고, 캐릭터를 시각적 아이콘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소비자 경험을 상품화했다. 세포라는 작품의 설정은 ‘감정’을 매체 간 이동 가능한 고객 경험의 주체로 만들었고, 이 덕분에 드라마·애니메이션·MD·광고로의 확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을 엮는 하나의 원리가 바로 형식의 언어를 먼저 이해한 기획이 소비자 감정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매체별 맞춤 설계 전략은 ‘매체별 형식의 문법’을 소비자 언어로 재해석하는 일이며, 편집자는 이러한 언어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 성공의 원인 : 설계 없는 확장은 붕괴한다
이렇듯 미디어믹스의 성공과 실패는 더 이상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소재의 자극, 연출력, 마케팅 전략 등의 완성도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은, 기획 단계에서 매체 이동에 대한 구조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는가이다. 이 설계가 부재한 상태에서 확장을 시도하면, 아무리 탁월한 원작이라도 다른 매체 안에서는 그 생명력을 잃는다.
최근 웹툰 IP의 영상화 흐름이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2025년 상반기 영화 개봉작 <전지적 독자 시점>이 그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지난 8월 기사에 따르면 <전지적 독자 시점>의 노블코믹스 웹툰은 전 세계 누적 조회 수 20억 회를 기록한 메가 IP였지만, 지난 25년 7월 개봉한 영화는 약 106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는 데 그치며 손익분기점인 600만 명 달성이 한참 미달하였다고 한다.1)
첫 번째 문제는 이야기의 부재가 아니라 ‘형식의 부재’이다. 원작 웹소설의 핵심 구조는 ‘내적 독백’이었다. 주인공이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예측할 수 있는 세계가 무너지는 긴장감 속에서 주인공 자신을 다시 독자로 체험하는 것이 작품의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긴장감을 시각적 연출로만 변환하였고, ‘예측과 붕괴’라는 작품 전체적인 구조적 긴장을 ‘액션과 서프라이즈’로 대체했다. 결국, 내적 독백이 중심이었던 감정 구조가 단순 사건 발생이라는 서사로 변하면서, 영화는 서사의 깊이를 잃고 시각적 장식품만 남게 되었다.
타 매체와 달리, 웹툰 콘텐츠는 순전히 독자 시점에서의 경험 구축이 필요하다. 스크롤을 통해 직접 소비의 정보량을 조절하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을 독자가 직접 경험하며 감정의 속도를 스스로 결정한다. 다만, 위에서 말했듯이 영화는 감정을 시각적 속도로 전환한다. 정보량이 과도하면 관객은 피로를 느끼고, 전개 속도가 느슨하면 감정의 맥이 끊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 속도 전환을 전혀 설계하지 못한 채 원작의 사건을 순서대로 재현했다. 결국, 관객은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따라가면서도, 사건의 인과와 정서적 몰입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잃은 것이다. 서사의 정보량은 풍부했으나, 감정선의 연결은 사라졌다.
또 다른 문제는 ‘서사의 오독’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원작 웹소설은 메타 서사에 기반하는데, 주인공은 자신이 인식한 이야기 안이라는 액자식 구조에서, 독자의 시점을 체험하는 관찰자이자 체험자 설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설정을 캐릭터 중심의 영웅 서사로 단순화했고, 그 과정에서 원작의 철학적 깊이감, 독자와 작중 캐릭터의 경계가 붕괴하며 그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이러한 ‘서사의 오독’ 원인은 시스템 측면에서도 분석할 수 있다. 웹툰은 주간 연재라는 구조를 통하여 소비자 경험의 피드백 루프를 갖는다. 앞서 말했듯이 독자 반응이 이야기의 다음 전개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반면 영화는 일회성 매체로서, 개봉 이전에는 관객 반응을 미리 감지할 수 없다. 따라서 원작의 피드백 구조를 다른 방식으로 대체해야 했지만,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를 설계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영화는 원작 웹소설에 대한 웹툰과 달리 ‘상호작용적 감정 구조’를 단순한 시각적 볼륨으로만 대체하는 오류를 범하였고, 이는 명백히 매체 확장의 설계 실패로 볼 수 있다. 단순히 화려하기만 한 시각적 연출은 감정의 깊이를 대신할 수 없으며, 사건의 규모가 소비자가 경험하는 감정의 지속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한편 <전지적 독자 시점>과 달리, 같은 달에 개봉한 <좀비딸>은 정반대의 방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10월 기사에 따르면 <좀비딸>은 지난 7월 30일 개봉한 후 누적 관객 수 약 563만 명을 기록, 2025년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는 이 작품은 원작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영화 구성에 맞춘 적절한 각색과 연출로 재미를 더해 원작 팬과 일반 관객 모두 만족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고 한다.2)
해당 작품은 웹툰 원작의 소비자 감정에 대한 속도감을 유지하는 각색을 통해 성공함으로써, 미디어믹스 설계의 교과서적 사례로 손꼽힌다. 원작 웹툰은 규모가 크지 않은 가족 코믹물이었고, 좀비 장르를 블랙코미디로 비튼 감정의 구조가 핵심이었다. 영화 또한 이러한 구조를 현실적 정서로 과하게 옮기지 않고, 오히려 매체 변환 과정에서 장르적 과장을 통하여 감정선을 증폭시켰다. 사실주의가 아닌, 장르의 속도감 자체를 감정의 매개체로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 영화 <좀비딸> 주인공 조정석 배우의 리듬감, 타 배우들의 개인 능력과 호흡, 좀비물에 대한 감독의 재해석 등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팬과 원작자 모두를 만족시켰다고 감독은 말한다.3) 편집자 관점에서 <좀비딸>은 철저하게 IP의 확장 방향을 사전에 예측하고, 그에 맞는 연출·촬영·마케팅 구조를 동시 설계한 것이다. 또한, 제작사는 초기 단계에서 OTT와 극장 버전 두 가지 시나리오를 병렬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형식 간 전환에 따른 손실률을 최소화했다. 쉽게 말해 이 작품은 ‘통합 설계형’ 구조로서, 흥행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잘 이루어졌다 볼 수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과 <좀비딸>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자는 ‘기획과 제작의 분리형’, 후자는 ‘통합 설계형’이다. 전자는 IP 확보 후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구조를 끼워 넣었고, 후자는 IP 확보 이전에 이미 미디어믹스 구조를 시뮬레이션하고 진행하였다. 비록 통합 설계형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플랫폼 적합성, 소비자 감정의 유지성, 콘텐츠 시장의 적응도에서는 월등히 높은 성과를 보인다. 실제로 영화 <좀비딸>이 개봉 후, 관객의 긍정적 반응을 얻으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보다 평균 예매율을 크게 웃돌았는데, 이는 관객의 소비 패턴이 매체 과정의 변환된 작품의 형식적 리듬에 정확히 맞물렸다는 증거다.
결과적으로 이 두 작품이 보여주는 산업적 교훈은 명확하다. IP의 확장은 반응의 문제가 아니라 반응을 수용할 구조의 문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구조가 맞지 않으면 매체 소비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세계관의 규모를 확장했지만, 소비자 경험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좀비딸>은 세계관을 축소했지만, 소비자 경험의 구조를 정밀하게 이해하고 이를 확장했다. 미디어믹스의 흥행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 경험이 형식 안에서 작동하는 법칙을 설계하는 문제인 것이며, 결과 차이는 기획 단계에서 ‘설계의 완성도’, 하나의 문구로 요약된다.
결론 : 설계의 끝, 인간의 언어로 돌아오다
웹툰 콘텐츠 산업에서 근무하는 편집자들은 흔히 프로젝트 관리자로 인식된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 그들이 담당하는 역할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다. 그들은 소비자 경험과 자본, 예술과 시스템이라는 구조 관계를 통역하는 인력이다. 앞선 화수에서 말했듯이 웹툰 플랫폼 및 제작사가 철저한 정량적 수치와 효율의 세계라면, 작가의 언어는 감수성의 세계이다. 이 두 개의 언어가 충돌하는 회색지대에서 편집자는 균형을 조율하며, 이들의 언어를 통역하여 사업 측면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 구현한다. 즉, 작가가 표현하는 감정선을 소속 기업이 요구하는 KPI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미디어믹스가 표면적으로 차가운 자본의 언어로만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부에는 언제나 인간의 감정에 깃든 해석 과정이 분명히 발생한다. 시스템 구조 속에서 데이터는 분석되고 효율성이 계산되지만, 그 효율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직관과 감정이다. 웹툰 산업의 중심에는 거대한 플랫폼도, 유명 작가도 아니다. 매일 구조를 설계하고 데이터를 해석하며, 작품의 생존을 위해 구조를 다듬는 실무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이 스토리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숨겨져 있다. 그 질문이 사라진다면, 웹툰 콘텐츠 산업은 단순한 IP 공장으로 변한다. 산업의 구조가 인간의 감정을 잡아먹으려 하는 순간에도, 편집자는 그것을 다시 인간의 감정적인 언어로 돌려놓으려 노력한다. 이 점이 플랫폼과 제작사의 고도화 된 시스템 속에서도 예술이 살아남는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미디어믹스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스토리를 다른 형식으로 옮기는 과정은 사업의 시선을 뛰어넘은 인간의 이해 방식에 대한 실험이다. 형식은 바뀌어도 감정이 남는 이유는, 그 감정을 설계하는 편집자들의 무수한 노력으로 인해 시스템을 인간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기 때문이다. 웹툰 산업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언어에 달려 있다. 효율과 데이터의 시대에도 결국 이야기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며, 그 감정을 구조로 번역하는 힘은 편집자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산업이 점차 비대해질수록, 시스템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다시 소비자를 울고 울리는 감정의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 웹툰 콘텐츠 IP의 부흥을 위한 설계의 끝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인간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5화에서는 플랫폼과 제작사가 추진하는 글로벌 진출 전략과 현지에서의 로컬라이징을 어떻게 설계하고 국가별로 어떻게, 어떤 콘텐츠를 판매하는지 관찰하고자 한다.
[출처]
1) 김세아, 「제작비 300억원 들었는데…쏟아지는 웹툰 원작 작품, 흥행 뒤 숨겨진 그림자 [TEN스타필드]」, 『텐아시아』, 2025.08.31., https://www.tenasia.co.kr/article/2025082904114
2) 장아름, 「[단독] '좀비딸' 주역들, 500만 축배 안끝났다…흥행 기념 대만 여행」, 『뉴스1』, 2025.10.31., https://www.news1.kr/entertain/movie/5960067
3) 이선필, 「결말 바꿨지만, 팬·원작자 모두 만족시킨 '좀비딸'의 매력」, 『오마이뉴스』, 2025.07.29.,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15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