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웹툰의 세계화는 '수출'이 아니라 '시스템'의 확장이다
웹툰 산업의 세계화는 더 이상 ‘수출’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초창기의 해외 진출은 작품을 번역해 다른 나라 플랫폼에 공급하는 단순한 수출 구조였다면, 지금의 확장은 콘텐츠가 아니라 시스템의 이동에 가깝다. 한국에서 구축된 플랫폼 구조, BM 등 데이터 기반의 운영 체계가 통째로 해외로 이식되고 있다. 즉, 웹툰의 세계화는 작품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전이를 의미한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세로 스크롤 형식부터 세대별 BM, 작품 노출을 결정하는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PD·MD 등 프로듀싱 조직으로 이루어진 플랫폼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까지···.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 웹툰 글로벌 플랫폼은 소비자 감정의 흐름이나 서사의 속도감을 수치화하여 데이터로 관리하고 여기에 각국의 소비 패턴에 맞춰 노출 알고리즘을 조정한다. 또한, 구축된 시스템 속에서 현지의 플랫폼 담당자들이 각국의 문화적 정서를 읽어 스토리 큐레이션을 최적화하고, 사용자의 체류 시간과 결제 빈도를 근거로 BM을 결정한다.
이처럼 한국의 웹툰 산업은 10년이 넘도록 디지털 플랫폼 유통 구조를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고, 이것은 웹툰 산업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운영 문법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현재 그 문법은 해외 시장으로 전파되어 더 고도화되고 있다. 한국의 플랫폼이 북미,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은 ‘콘텐츠 시장성’보다 ‘시스템’의 전이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다. 작품 하나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서비스 운영 측면에서 현지화하는 편이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매출과 트래픽을 발생시킬 수 있다. 가령 네이버웹툰은 북미에서 ‘광고형 유료화 모델’을, 카카오 픽코마는 일본에서 유료 결제 모델을 중심으로 시장과 BM을 확장 중이다. 소비 경험을 설계하는 산업 구조체로서의 ‘플랫폼’을 수출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플랫폼은 현지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다.
이는 2000년대까지 이어진 초기의 한류 열풍의 본질과는 다소 다르다. 한류는 한국의 정서와 서사적 특성이 해외 시청자에게 감정적인 공명을 일으키며 시장이 확장된 사례다. 반면에 웹툰의 세계화는 단순 ‘소비자 감정’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수출이다. 웹툰의 글로벌 확장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문화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의 표준화 및 현지화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웹툰 플랫폼 구조가 여러 문화권에 복제되지만, 각국은 그 안에서 자신들에게 맞는 서사의 감정과 문화로 플랫폼을 재배열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웹툰 산업이 시장을 수출한 것이 아니라, 운영 방식을 보급한 산업의 확장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플랫폼과 제작사의 글로벌 진출 전략과 함께 글로벌 주요 지역별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2. 플랫폼의 구조 확장: 시스템과 자본
웹툰의 글로벌 확장을 주도하는 산업 요소는 당연히 플랫폼이다. 웹툰이란 개별 콘텐츠는 국가별로 번역과 현지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플랫폼은 하나의 시스템 구조를 다양한 국가로 바로 이식하여 서비스한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확장성을 가진다.
1) 플랫폼 확장의 두 축: 시스템 이식과 자본 이동
웹툰의 글로벌 확장에서 두 축을 담당하는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네이버웹툰은 ‘시스템 이식형, 분산형’ 모델, 카카오는 ‘자본 확장형, 집중형’ 모델로 구분된다.
네이버웹툰의 세계화 전략은 한국의 플랫폼 구조를 그대로 옮기는 것에 가깝다. 세로 스크롤 형식, 회차 단위 결제 시스템, 작품 추천 알고리즘 등 한국에서 검증된 구조를 일본, 북미, 유럽, 동남아 등 가릴 것 없이 해외 지사에 그대로 이식했다. 즉, 한국식 플랫폼 문법을 글로벌 표준으로 삼았고, 이를 토대로 플랫폼 현지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반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픽코마를 통해 검증된 유료 결제 기반의 BM을 다른 지역에 현지화하며, 글로벌 자회사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일본 내 디지털 만화의 성공 이후 북미, 동남아 등으로의 확장이 이어졌다) 이 모델은 한국 본사의 시스템을 직접 이식하기보다는 자본과 운영 인력을 현지 기업에 투입해 ‘한국형 BM’을 현지화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재 글로벌 점유율이 낮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해외 시장에서 철수하며 효율화를 추진 중이다1)
2) BM의 세계화: 결제 모델과 소비 구조의 현지화
글로벌 확장의 핵심은 ‘어떤 이야기를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팔 것인가?’다. 한국의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해외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콘텐츠의 질이 아니라, 결제 구조와 소비 경험을 세밀하게 현지화한 운영 전략 덕분이다. 플랫폼 구조가 웹툰 산업의 지속성을 좌우하는 만큼, 앞선 두 회사는 효율 중심의 한국형 BM과 노련한 운영 방식을 바탕으로 현지화를 진행 중이다. 이때 세계 각국의 창작자들에게 안정적 수익 기반을 제공하는 방식 또한 두 회사는 차이를 보인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인 예시는 픽코마의 BM이다. 픽코마는 ‘기다리면 무료’ 모델을 통해 일본 독자에게 ‘소비자가 시간을 투자해 콘텐츠를 무료로 이용’하는 관념을 정착시켰다. 이 BM은 곧 소비자 인내심을 데이터로 변환하는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고, 웹툰을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반복 접속형 플랫폼 상품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기사에 따르면 카카오픽코마가 일본에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으로 투 트랙 전략이 꼽히는데, 픽코마는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일본의 만화를 전자책 형태의 전통적인 출판만화와 웹툰으로 함께 서비스함으로써 만화 독자와 웹툰 독자를 함께 겨냥하며 잠재적인 수요까지 확보했다는 점이다.2
반면 네이버웹툰은 다소 실험적인 BM을 해외 시장에 적용 중이다. 현재는 국내에도 적용된 5세대 ‘광고 보호 무료’ 모델과 함께, 북미에서는 ‘후원제’ 모델도 함께 적용하고 있다. 또한, 네이버웹툰이 미국 상장 후, 현지의 굵직한 IP 글로벌 회사와 연계하며 개별 IP 힘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도 시도 중이다. 즉, 재무적으로 안정적인 ‘선택과 집중’을 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다르게 네이버웹툰은 상장사로서 BM 및 IP 연계를 통한 ‘전방위적 다각화’를 시도 중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웹툰의 글로벌 확장을 위해 운영 구조를 전파하고, 현지의 독자 경험과 감정을 데이터로 구조화하여 분석하며, 이 지표를 바탕으로 노출 알고리즘을 수정하여 플랫폼을 현지화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진화한다는 점이다. 즉, 현재 글로벌 플랫폼의 경쟁력은 ‘좋은 스토리’를 찾는 것보다는 현지에 최적화된 ‘좋은 운영 방식’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제작사의 글로벌 확장 전략
플랫폼이 글로벌 확장의 중심으로 개편되는 시장에서, 안타깝지만 제작사의 사업 주체로서의 역할은 약화하고 있다. 글로벌 확장 과정에서 플랫폼과 제작사의 상생 관계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는 제작사가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BM의 구조 측면에서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과 권한의 비대칭이 심화하는 방향으로 권력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초창기에는 제작사와의 IP 제작 협업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협력의 대부분은 실질적으로 플랫폼이 설계한 구조에서의 분업일 뿐이었다. 제작사가 플랫폼과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협력 구조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들은 기획 주도권은 축소되었고 수익 분배 요율은 낮아졌다. 앞선 화수에서 언급하였듯이 국내 대부분의 웹툰 플랫폼은 발생한 총매출에 대해 60~70%를 제작사에 수익 배분한다. 하지만 글로벌 서비스의 경우, 번역 및 현지화 서비스 운영 비용 등을 근거로 해외에서 발생한 총매출의 20~30%를 분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웹툰의 해외 시장에 나선 플랫폼이 소수인데, 이것은 곧 반독점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앞선 시리즈에서 언급하였지만, 제작사는 결국 플랫폼의 구조에서 IP를 생산하는 공급자 역할을 한다. 다만, 해외 서비스를 진행 중인 모든 플랫폼은 작품 계약 시, 작품의 해외 서비스 권리를 기본적으로 확보한다. 해외 서비스를 확정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아닌 이 조항으로 인하여 제작사는 수익성을 위한 해외 업체와의 별도 계약을 진행할 수도 없고, 이는 한정된 플랫폼에서만 움직이는 허들이 되어 버린다. 또한, 웹툰이 서비스될지언정 해외 서비스의 경우, 한국으로 정산되기까지 최소 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환율, 세금 구조 등의 이슈로 자금의 흐름을 방해받는다. 즉, 제작사는 플랫폼의 글로벌 확장이 잘 될수록,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고 사업의 주도권이 상실되는 모순성을 지닌다. 작품을 공급하는 제작사의 입장에서 플랫폼이 깔아놓은 망 없이는 서비스가 불가한 현재, 제작사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상생 관계가 아닌 플랫폼의 의사결정 구조에 종속되는 관계가 된 것이다.
2) 생존 전략
하지만, 이러한 플랫폼 중심의 구조 속에서도 일부 제작사는 독립적인 생존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우선 플랫폼 의존형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IP 확보와 글로벌 직접 유통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가령 메가 IP를 보유한 스튜디오는 작품의 저작권과 브랜드를 직접 소유한 채로 해외 OTT와의 협업을 통해 판권을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는 제작사는 웹툰 콘텐츠의 2차 IP 사업의 주체로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고, 플랫폼은 ‘프로젝트 참여자’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일부 스튜디오는 해외 직배(直配) 방식을 시도한다. 제작사가 제작한 작품을 자체 번역하여 해외 플랫폼과 직접 협상을 통해 수익 요율을 더 확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해외 지사를 설립하여 각국의 창작자들과 현지에 최적화된 IP를 기획 제작한다. 이는 단기적인 비용과 업무량 측면에서 위험성은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돈독한 네트워킹, IP 흥행에 따른 수익성 강화와 역수입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전략이다.
물론 제작사의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고 한계도 명확하다. 결제 시스템, 노출 알고리즘, 마케팅 네트워크 등 플랫폼이 장악한 인프라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제작사가 독립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플랫폼의 검색·추천 구조에 노출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힘들다. 플랫폼이 정의한 시스템 언어를 따라야 하나, 제작사의 이같이 작은 시도들은 플랫폼이 잠식해 가는 구조 속에서 유의미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4. 국가별 웹툰 특징
위에서 본 것처럼, 한국형 웹툰 플랫폼을 이식해 구축한 시스템 안에서도 현지의 문화 코드는 다르게 변주되고 있다. 이제는 플랫폼의 노출 알고리즘 내에서 소비되는 감정이 각국에 따라 어떠한 문법을 따르며, 각국의 소비 패턴에 따라 시스템이 다르게 현지화되는지 국가별로 확인해 보자.
1) 일본: 출판 기반에서 디지털 전환으로
일본은 전통적으로 세계 최대의 만화 소비국으로, 2023년 기준 디지털 만화 판매 비중이 약 70%로 종이 판매를 추월했다. 또한, 2024년도 디지털 만화 시장 규모는 5천122억 엔에 이르며, 23년도에 비해 6.0% 증가했다.3 일본의 디지털 만화 플랫폼인 라인망가와 픽코마가 양대 축을 이루면서, <원피스>, <블리치> 등 유명 작품을 보유한 일본 만화 출판사 슈에이샤(Shueisha)는 웹툰과 같은 세로 스크롤 형식의 만화를 서비스하는 ‘점프툰(Jumptoon)’이라는 플랫폼을 출시하였고, <진격의 거인>, <리벤저스> 등 유명 작품을 보유한 코단샤(Kodansha)도 ‘K-망가(K-MANGA)’라는 플랫폼을 출시하며 디지털 시장에 진입했다.4 이러한 흐름은 한국식 연재 운영·추천·결제 운영 방식이 출판 시장과 융합되는 모습으로 보인다.
일본 만화 산업은 오랫동안 종이책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이 늦었던 이유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소비 방식’의 문화 차이 때문이었다. 일본의 종이 만화는 여백과 침묵,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정서적 간극을 통해 독자의 감정선을 이끄는 매체였다. 반면, 한국식 웹툰은 세로 스크롤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연속적으로 압축하는 구조를 가졌다. 이러한 상충한 두 문법이 충돌하면서, 일본의 웹툰 시장은 가장 복잡한 문화적 조정을 거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2016년 출시된 픽코마는 ‘기다리면 무료’ 모델을 통해 기존 종이 만화 시장의 소비 습관을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한 분기점이 되었다. 특히 픽코마는 단순히 결제 모델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일본 독자들의 감정선을 세로 스크롤 안에 재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을 늘리고, 감정 묘사의 밀도를 유지하며, 한국식 속도감을 일본 독자의 정서 리듬과 맞도록 느리게 번역했다. 더불어 일본 현지 작가들 또한 한국식 시스템을 수용하되, 여전히 일본 문화에 적합하게 감정의 여백을 남겨두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웹툰이 3~4컷 내에서 소비자의 급격한 감정 전환을 유도한다면, 일본의 웹툰은 같은 장면도 6~8컷으로 세밀하게 그리며 감정 묘사에 비중을 두는 편이다. 일본이 마니아의 본고장이면서도 한국형 콘텐츠에 대해서도 문화 할인이 크지 않은 지역인 만큼, 이와 같은 현지화 작업을 진행하며 글로벌 수익이 하향 추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일본 지역에서는 2025년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5% 이상의 유의미한 매출 상승률을 보였다.5
2) 북미: 서사형 콘텐츠 소비 구조
북미 시장에서 웹툰은 한국식 회차 단위 연재 시스템이 북미의 숏폼과 같이 짧은 콘텐츠 체류 시간 구조와 맞아떨어지면서, 웹툰은 ‘짧고 강렬한 서사’의 대표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북미 만화 시장은 전통적으로 슈퍼 히어로 중심의 ‘코믹북’과 일본 만화(MANGA), 웹툰은 ‘그래픽 노블’로 분류된다. 이때 30대 이하 남성이라는 특정 팬층을 겨냥하는 코믹북과 달리, 그래픽노 블은 성숙한 주제와 다양한 장르로 보다 폭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기에 현지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로어올림푸스(Lore Olympus)>와 같이 현지에서도 메가 IP가 등장하면서 북미 웹툰 이용자 수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웹툰 이용자들의 80% 이상이 30세 미만의 여성층으로, 그간 코믹북의 타깃 독자와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더불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다른 팬들과 댓글, 좋아요, 공유 기능으로 소통하고 작가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즐기는 문화가 웹툰의 스낵 컬처 소비문화와 맞아떨어지기에, 북미 시장은 앞으로도 웹툰 산업 전망이 좋을 것이라 예상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6
북미 시장에서도 각각 데이터 중심 추천 시스템과 장르 중심 큐레이션 모델로 차별화되는 중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형은 넷플릭스나 틱톡 같은 미디어 숏폼 환경에 익숙한 북미 세대에게, 웹툰은 단시간 내 감정을 전달하는 서사 상품으로 작동한다. 이 때문에 스토리의 완성도보다는 매 회차가 주는 감정선과 속도감을 좀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런 흐름에서 북미 웹툰은 서사 압축형 콘텐츠로 재편되고 있다.
그리고 북미 시장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현지 작가들의 성장’이다. 네이버웹툰의 경우, 북미 맞춤형 BM(후원제, 광고 등)과 더불어 Webtoon CANVAS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인디 작가가 웹툰의 창작 산업에 진입했다. 이들은 한국식 세로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서사 구조를 간결하게 줄여, 자신들만의 문화 리듬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북미 시장 또한 한국 시스템을 바탕으로, 현지의 새로운 서사 압축 문법을 창조하는 실험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3) 유럽: 감정보다 미감의 시장, 예술적 언어로 재해석되는 웹툰
유럽은 다른 지역과 달리 웹툰을 단순히 디지털 만화 형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럽은 그래픽 노블과 작가주의 중심의 만화로서 오랜 전통을 가진 시장이기 때문에, 웹툰은 현지 소비자에게 새로운 문화이자 실험적인 예술 언어로 접근 중이다. 특히 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을 대표하는 프랑스 만화 시장은 2023년에는 6억 7,600만 달러 규모로 집계되었고, 2024년에는 더욱 성장세로 돌아서 2028년에는 9억 4,8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 또한,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과 같은 세계적인 만화 축제를 개최하며 다양한 국가와 출판사들을 연결하고 있기에, 프랑스 만화 시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계속해서 강화할 것이라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7
다만, 프랑스 만화는 '방드 데시네(Bande Dessinée, BD)'라 불리며 '제9의 예술'로 불릴 만큼 높은 문화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BD는 예술성과 작가주의가 짙은 작품이 많고, 독자들은 좋아하는 작품을 돈을 주고 소장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러한 문화를 고수하는 성향으로 인해 카카오의 자회사 픽코마는 지난 2025년 9월 서비스를 중단하였는데, 프랑스 디지털 만화 및 웹툰 시장의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더딘 점, 유럽 법인 설립 이후 지속적인 영업 손실을 기록한 재무적 부담이 가중된 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렇지만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여신강림>, BL/GL 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성과 서사와 미적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에 대하여 전례 없는 성공을 보이며 유럽의 출판 시장의 새로운 독자층을 창출하고,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8
4) 동남아: 감정/가족 중심 콘텐츠 소비 시장
동남아시아는 한국식 시스템이 가장 빠르게 확산되면서도, 가장 다채롭게 변형되는 지역이다. 동남아 시장은 스마트폰 보급률 상승을 기반으로 디지털 만화 소비가 급성장 중이며, 네이버웹툰의 활성 이용자는 1,30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약 2억 7,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1억 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모바일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데9, 인도네시아 오리지널 웹툰 <가제 커플(Pasutri Gaje)>는 누적 조회수 9억 뷰를 기록하며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10 각국은 협회 설립과 정부·민간 주도의 산업 행사 개최를 통해 창작 생태계가 확대하며, 현지 오리지널 콘텐츠의 글로벌 전파에 이바지하고 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은 한국형 웹툰 플랫폼 내에 자국의 감정 코드에 맞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중이다. 동남아의 경우, 청춘·가족·일상 중심의 감정 코드가 콘텐츠 산업의 핵심 감정이다. 한국처럼 경쟁적 구조보다는, 공감과 유대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주로 전개하는데, 예시로 인도네시아 Webtoon Original 시리즈들은 ‘연애보다 가족’, ‘성공보다 관계’를 다루며, 한국형 신파의 따뜻한 감정선을 덧입힌다. 이러한 작품들의 전개 속도는 한국 작품들보다 대체로 느리지만, 대사량은 더 많고 감정 표현이 구체적이다. 즉, 시스템의 외형은 같더라도 타 문화권과 같이 서사 콘텐츠를 대하는 감정 소비의 속도는 다르다는 것이다.
5. 결론: 글로벌 확장, '한국형 시스템'의 이식과 현지의 소비자 문화 반영
현재까지 웹툰 산업의 세계화는 ‘한국형 시스템 이식’이란 1단계에서 매우 성공적인 모습이다. 세로 스크롤 형식, 회차 단위 결제, ‘기다리면 무료’ 등의 BM은 이제 글로벌 플랫폼의 표준이 되었고, 각국의 웹툰 콘텐츠 시장은 이 시스템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다만, 그 구조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후 2단계에서 이러한 시스템의 단순 복제를 넘어선 현지 소비자 감정의 재편 과정이 필수 불가결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시스템이 세계로 확장된다는 말은 곧 세계가 한국의 감정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 속에서 각국은 자국 문화에 맞는 운영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웹툰의 세계화는 산업의 표준화이자 감정의 다원화다. 한국이 만들어낸 플랫폼 문법은 세계의 창작자와 독자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형식을 제공하지만, 그 문법을 사용한 감정의 언어는 현지 문화마다 다르다.
비록 시스템이 중심인 웹툰의 산업 현장이지만, 역시나 중요한 것은 시스템 문법을 반영하고 유지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웹툰 PD, MD, 번역가, 마케터 등의 손끝에서 산업의 문법이 번역된다. 여기에 플랫폼은 효율을, 제작사는 생존을, 창작자는 자신만의 스토리 창작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각 산업 요소의 유기체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웹툰 산업은 조금씩 한국형 시스템의 복사본이 아닌, 현지의 자체적인 운영 방식으로 발전시킨 글로벌 확장 시스템으로 완성해 가는 중이다.
이번 5화에서는 국내외 웹툰 산업의 구조에 대하여 파악해 보았다. 다음 6화에서는 보다 현실적으로 실제 현장에서 체결하는 계약서, 고료·MG·매절 등 용어의 이해를 도모하고 정부에서 배포하는 표준계약서와 실제 현장 적용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고자 한다.
[참고 문헌]
1) 백연식, 「웹툰 전략 마이웨이···네이버 ‘너머로 너머로’ vs 카카오 ‘안으로 효율로’」, 『이뉴스투데이』, 2025.07.17., <https://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4646>
2) 임유진, 「만화강국을 뒤흔들다…일본에 ‘웹툰’ 이식한 카카오픽코마 [K웹툰, 탈(脫)국경 보고서④]」, 『이투데이』, 2024.07.26.,https://www.etoday.co.kr/news/view/2383898
3) 김경윤, 「日디지털만화 시장 5조원 육박…이젠 웹툰 소비 넘어 생산까지」, 『연합뉴스』, 2025.02.13., <https://www.yna.co.kr/view/AKR20250212173900005>
4)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12.20., 396쪽.
5) WEBTOON Entertainment Inc., 「Form 10-Q: 8-K: Current report」,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2025.08.12., <https://www.sec.gov/ix?doc=/Archives/edgar/data/0001997859/000199785925000096/wbtn-20250812.htm>
6)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12.20., 397-399쪽.
7)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12.20., 220쪽.
8) (주)EAN 신항우 대표, 최정원 책임연구원, 「프랑스 콘텐츠 산업동향 (프랑스 만화 산업과 한국 웹툰 진출 현황)」,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10.16., 16~20쪽, 30쪽.
9)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12.20., 699쪽.
10)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12.20., 6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