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서 사회가 산업화, 도시화, 전문화됨에 따라 신문, 라디오, TV, 영화, 만화, 광고 등의 대중매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대중매체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는 없으므로 단순하고 즉각적인 정보를 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션 메시지의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대중에게 패션정보를 좀더 신속하고 강렬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 표현형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논문이 그 주제를 담기 위한 초기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발상을 통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좀 더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자 하고 있다. 이 논문은 만화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이론적으로 살펴보고 패션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 접목을 시도해 보고 있다.
이 상관관계를 위해 만화 속의 패션, 만화의 패션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만화적 표현이라는 단계를 통해 살펴보고 필자가 직접 패션일러스트레이션 10 작품을 통해 그 유동적인 이미지를 실현해 보고자 한 논문이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회화의 사생아다. 패션이라는 산업의 중심에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과거 오뛰꾸뛰르의 고객들에게 의상 제작 전 단계에 디자인을 소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런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응당 고객의 기호에 맞추어져야 했고 회화적이고 예술적이 기법이기보다는 의복을 얼마나 잘 표현해 내는가가 관건이었다. 더더욱 패션이 대량 산업화되면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더욱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표현을 위한 것이 되었다.
간단하고 알아보기 쉬우면서 의상을 부각시키는 이러한 그림들은 예술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패션이 점차 잃어버리고 있었던 예술의 지위를 재획득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서도 예술이냐, 예술이 아니냐 하는 논의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필자는 이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 예술적 지위로 격상됨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이 대중적 예술, 즉 만화와 같은 장르와 결합함으로서 예술성과 동시에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에 이미 만화와 패션이 접목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만화적 특성을 실현시키는 것이 기이한 발상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만화 속에 패션이 등장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만화가 시작된 시기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만화 속에 나타나는 패션은 복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복식의 사회적 유행이 만화에 나타난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패션 일러스트는 아니지만 풍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중에게 유행을 알리고 후대에 복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만화 역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포함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많은 복식학자들이 패션의 변천사와 복식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기록, 조사하기 위해 사회 현상의 중요한 반영물인 만화를 이용하여 패션에 대한 사회적 고찰을 시도하기도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 중 [복식의 역사]를 지은 블랑쉬 페인이 복식사를 연구하기 위해 과거에 그려졌던 만화의 도움을 받은 것을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하나의 좋은 예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만화가 사회를 살펴보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패션에 있어서도 그 시대상을 잘 담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증거물이 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것을 직접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캐리커쳐와 만화 잡지, 패션만화를 들고 있다. 그는 각 캐리커쳐와 만화 잡지에서 등장하는 복식들이 복식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주목하면서 그 시대를 반영하는 복식을 담아내고 있는 만화로서가 아닌 그 시대의 복식을 의식적으로 담아낸 만화를 패션만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패션만화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많이 나타났으며, 패션만화 중에서 세련된 여성의 일상적 삶을 주제로 그린 것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만화가 사회상을 반영하는 역할만을 하여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패션만을 그려냈던 것이 아니라 만화가 그려냈던 패션이 현실화되어 실제 복식사에 영향을 미쳤음도 밝히고 있다. 그 예로 찰스 다나 깁슨이 부유하고 부유하고 세련된 영국인 이레네 랭호른이라는 영국의 귀족과 결혼한 미국인 메리 레이터를 모델로 그림 만화 깁슨걸이 [라이프]지에 등장하였는데 이후 깁슨 걸 스타일이 당시의 젊은 여성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음을 지적하고 잇다. 이후 패션은 만화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캐릭터들을 수용하여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만화와 패션은 이렇듯 오랫동안 서로에게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이것을 바탕으로 일러스트레이션에 직접 만화적 기법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독특하고 새로운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패션을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은 대중성을 띄어야하고 동시에 그것을 그리는 작가로서의 양식과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너무 식상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흔한 그림 정도이거나 또는 작품이라고 불리울만한 정도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지나치게 특이한 재료와 기법으로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유리되어 외면 당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필자의 묘안책이 바로 만화적 기법을 접목하는 것인데 이것은 예술적이면서도 동시에 대중적 친화력을 갖춘 만화를 연상시키는 대중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적용할 수 있는 만화적 특징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이것을 스크린톤, 윤곽선, 행동선, 말풍선, 단순화의 과장이라는 5가지 특성으로 정리하고 이것을 직접 자신의 작품에 응용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적용시킨 그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기존의 그것보다 좀 더 깔끔하고 단순하여 높은 명시성을 주고 있었다. 또한 만화적 왜곡과 단순화를 동시에 사용하여 인지에 매우 용이하다는 만화적 특징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대로 이식되어 있는 장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말풍선을 이용하여 기존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불가능하였던 정보전달력을 갖춤으로써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연구자의 작품 중 hot style은 디자인한 작품을 착용하고 있는 여성의 머리 위로 말풍선을 띄워 마치 그녀가 hot style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림으로써 작품의 제목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었고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고 있는 작품의 이미지를 통해 명확하게 작품에 대해 알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연구자의 작품은 그 어떤 만화적 특성을 기용한 것보다 새로웠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성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사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예술적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 지니는 실제 예술적 가치나, 예술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에서가 아니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예술적 가치가 부차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예술이기보다는 하나의 산업의 일환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오고, 그것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에 있어서 디자인은 존재하지만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가장 필요한 자격은 얼마나 아름답게, 혹은 얼마나 예술적으로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 자격 요건을 말풍선이 상당부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말풍선은 마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 팝아트로 승화된 듯한 느낌까지 주어 비록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예술적 위상을 결코 격하시키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필자의 시도는 매우 신선하였고 만화와 패션간의 관계에 대해 살핀 것 역시 익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였다. 이 연구가 만화와 패션에 새로운 자극제로 양 영역에서 나름의 깊이 있는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한예성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장식미술학과 석사학위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