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관이나 학교에서 주관하는 아동 미술 대회에서 ‘만화 같은’ 인상을 주는 그림은 우선적으로 당선작에서 제외된다? 필자가 논문을 여는 말로 이 말을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상당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만화 같은 표현이라는 것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회화 수업에서는 구태의연한, 신선하지 못한 표현 방법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수긍은 간다. 회화적 관습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이 수시로 접하고 즐기는 만화의 그림을 회화적 관습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만화가 비록 회화의 서자로 그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치더라도 만화를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짙은 혐의를 불러일으킨다. 만화에 대한 지나친 집중이 편협한 회화관을 형성시킬 수 있지만 만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노력으로 만화적 재능을 키우고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을 자칫 오인하고 교정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그것과도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필자도 역시 만화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보다 회화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표현력 신장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기존의 미술 교육의 경향은 ‘만화의 예술성에 대하여 최근 새로운 인식과 높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재인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1장에서는 만화의 본질과 「만화적 표현」에 대해 정의하고 2장에서는 실제 아동화를 만화의 특성과 연관하여 표현 유형별로 분류, 분석함으로써 아동화에서 나타나는 「만화적 표현」의 구체적인 형식, 내용, 기법, 요소들을 고찰하고 있다. 3 장에서는 아동화에서 「만화적 표현」이 나타나는 원인을, 만화가 갖고 있는 특석들과 아동 특성간의 관련성, 그리고 아동화의 발달단계 표현 유형이 갖는 특징들과 「만화적 표현」의 관련성에서 찾아보며, 동시에 아동을 둘러싼 환경적인 요인에서도 그 원인을 규명해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아동화에 있어서 「만화적 표현」의 의의를 분석하여 기존 아동 미술 교육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만화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연령인 만 6세~만 11세의 아동으로 정하였고, 작품 수집의 수집의 필요성 때문에 연구자가 재직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아동으로 한정하였다. 또 만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선화(線畵)로 한정하였음을 밝힌다.
필자는 먼저 과연 「만화적 표현」이 과연 회화에서 배척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여러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만화에 대한 정의를 살펴본 후 종합하여 ‘인생 또는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대상을 의도적으로 과장, 생략, 변형한 그림’이 만화라고 할 수 있고 이는 곧 모든 회화가 만화의 범위에 열외이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사회를 풍자, 비판하고 어느 일면을 과장, 생략, 변형한 그림이라는 주장이다. 다소 한계적 정의의 모순에 빠져들고는 있지만 만화가 회화 안에서 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고 그 영역의 벽은 그 무엇으로도 쉽게 부식될 수 없음을, 그리고 그 독자성은 절대 회화와의 위계성을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리고 있다. 게다가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명암의 조형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화시키면 회화와 만화의 기준이 꽤 모호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서양의 화가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회화 작품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민 풍속화를 효시로 유머와 풍자가 깃든 그림 있는 회화로 변모 발전’하게 됨으로써 우리 나라 만화의 뿌리를 단원, 혜원의 풍속화에서 찾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림을 순수 회화와 만화로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열린 그의 생각은 논리적인 객관성을 유지한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아동들은 어떻게 「만화적 표현」을 도화지에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아동화에서 개념화와 「만화적 표현」을 구별하고 있다. 개념화는 ‘외적 요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반복하고 모방하며, 설명적이고 형식적인 활동으로 항상 같은 소재, 기법, 색채, 양식과 구성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정의를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고정된 사고로 인하여 색, 형, 구성이 개성적이지 못하거나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만화적 표현」과는 다른 것으로 우리가 익히 아동들의 만화에서 살펴볼 수 있는 표현은 「만화적 표현」이라기 보다는 ‘개념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개념화는 ‘똑같은 내용에 같은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삐뚤어진 선을 피하게 되면서 규격화된 선이 나타난다. 또 일정한 훈련에 의한 선, 지극히 조심스럽고 힘이 없는 선, 자로 잰 듯한 도안적 인상을 주는 선, 기교적인 선 등이 개념화에 나타나는 선’이며 이것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반면 「만화적 표현」은 ‘균일한 색채, 단순화된 선, 설명적 양식, 비현실적 요소’ 등을 포함하고 인위적인 상징의 표현이 보이거나 문자를 사용, 의인화된 표현, 순정만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장식적인 표현들을 의미한다. 이렇듯 「만화적 표현」표현과 개념화를 구분함으로써 결코 「만화적 표현」이 지양되어할 요소가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오히려 「만화적 표현」은 상상력이 활발한 아동기에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표현 방식으로 오히려 그것을 교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이들을 구속하는 것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인 아동들은 심리현상과 물리현상을 혼동하는 ‘실재론적 사고’ 단계에 있기 때문에 느끼고 본대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그림은 만화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덧붙여 켈쉔스타이너은 아동 묘화의 발달 단계별 특성을 도식형의 시기, 선이나 형에 대한 감정을 그리는 시기, 사물과 같은 현상에 적당한 묘사를 하는 시기, 형을 적합한 묘사로 정확히 표현하는 시기의 순으로 밝혔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세세한 특성을 살펴보면서 아동이 그리는 그림이 「만화적 표현」을 한다고만 볼 수 없고 발달 과정상 필연적으로 ‘만화적 형체를 그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만화적 표현」은 또한 아동에게 ‘감각과 표현 기술의 괴리로 인하여 갈등을 겪는 표현의 절망기에 아동 표현의 탈출구로서 제기능’을 다 하는 것으로, 「만화적 표현」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개념화를 탈피하기 위한 미술 교육이 갖게 된 또 하나의 정형화된 표현 형식을 극복하는 역할’로, 그리고 ‘아동의 형태 감각을 도와주며 인물의 표정 처리도 풍부’하게 해 주며 ‘현대 미술의 다양한 의도와 예술 형식에 대하여 수용적일 수 있는 개방적인 감상 태도’를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 논문은 여러 가지 점에서 탁월하다 할 수 있다. 필자가 직접 현직에 머물러 있으면서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실증적이었고, 경험적이었다는 것에 있어 우선 그 신뢰도를 확언할 수 있다는 점부터 눈길을 끈다. 더불어 아동들의 「만화적 표현」에 대한 진지하고 심도 있는 관찰과 사고는 이 논문의 그 어떤 점보다도 가장 높이 살만한 부분이다. 기존의 미술 교육에 있어 「만화적 표현」표현과 개념화를 채 구별하지 못하였던 것은 오히려 구태의연하고 반복적이며, 식상한 표현 방식을 가려내는 잣대 자체가 구태의연하였다는 것을 밝힌 것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실제 필자가 현직에 있으면서 「만화적 표현」에 대한 밀도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모아온 많은 자료들은 이 논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서 새삼 「만화적 표현」이 얼마나 아동들의 신선한 발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또, 「만화적 표현」은 아동의 발달 단계, 묘화의 발달 단계, 환경적인 요소 등이 빚어내는 결과임을 밝히고 이것을 과연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권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의 적절하게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동에게 직접,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적극적인 교육’의 입장에서 보면 「만화적 표현」은 아직 덜 성장한 회화로, 더 회화다운 회화를 위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걱정스러울 수 있는 문제이지만 기저선(base-line)이나 겹친 그림(folding-over), 투시 표현(X-ray) 등과 같은 공간 표현 방식은 아동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명암이나, 원근, 선의 추상성 등 새로운 요소들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그림에 입체감을 부여하고자’하는 노력을 분명 보일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교정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을 그 기본으로 삼아야 할 미술 교육이 지나친 주입식 교육으로 오히려 아이들의 자유스러운 표현 방식을 몰살하고 어른들의 눈에 맞는 그림을 강요하는 우리 교육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만화적 표현」이 시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교육이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올곧은 생각과 탁월한 이 논문이 우리 미술 교육에 수혈되어 아동들의 생각과 표현이 존중되는 교육다운 교육의 밑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1996년 석사 이수남 초록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