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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논문]이희재의『예술로서의 만화에 대한 철학적 분석』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말은 외모만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 밖으로 보여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 너와 나를 구별되게끔 하고 있을 터이다. 생각하는 바가 모두 틀리기에 세상은 다양함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일이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되지 않는 것은 각자의 개성들이 밀고 들어간 틈으로 생긴 바이다. 그렇기에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하는 얘기에도 재미있다, 재미없다에서부터 무엇 때문에 재미있다, 그 장면은

2002-02-01 김미진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말은 외모만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 밖으로 보여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 너와 나를 구별되게끔 하고 있을 터이다. 생각하는 바가 모두 틀리기에 세상은 다양함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일이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되지 않는 것은 각자의 개성들이 밀고 들어간 틈으로 생긴 바이다. 그렇기에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하는 얘기에도 재미있다, 재미없다에서부터 무엇 때문에 재미있다, 그 장면은 아니다 등등 나름의 생각들이 드러나게 된다.

만화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이유를 다 제쳐두고 우선 재미있어야 팔리기 때문이다. 왜 팔리는가? 당연히 독자들이 재밌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헌데, 재미있게 만들어진 만화를 머리아프게 보는 이들도 있다. 머리아프게 보는 이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는다. 그건 만화를 보는 이들의 생각이 모두 틀리기 때문이다. 이계언의 『예술로서의 만화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그런 점에서 쉽게 읽혀질 만화를 하나하나 분석해 나가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순간 웃고 넘어갈 만화의 장면장면들에서 만화가 가져야 할 예술의 문제를 짚어나가고 있다.

예술이 미술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등장한지 오래되었지만 삶과 예술의 경계는 여전히 벌어져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미학 이론이 일반적으로 실제로 경험하는 바의 예술에 관한 고민과 논쟁과 판단에 적용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나 참고사항을 제공해야한다는 것으로 문제의식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서 만화의 성격에 관한 원론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길이 시작된다. 즉, 예술에 관한 일반적인 고찰에서 시작하는 것이 만화는 예술인가에 대한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질문에 저자의 연구는 빈틈이 없다. (사실, 철학도로서의 논리정연한 글은 이제까지의 대중문화와 연관된 어떤 만화관련논문보다도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글에서 빈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화란 예술인가라는 질문의 본래적 의미인 만화가 예술의 정의적 규정을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이 우선 답변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예술에 대한 정의적 규정을 제시하고 만화가 그 규정을 만족시키는가를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제시되는 예술에 관한 정의적 규정은 그 자체 모든 예술을 포괄할 수 있는 규정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해 저자가 선택한 것은 제도론적 접근이며, 이는 예술 작품 자체의 내부가 아니라 그것이 처해 있는 외부적 상황(맥락으로서의 제도)을 본질적으로 사고하는 외적 접근 방식이다. 제도론적 예술 정의를 수용한 하에서 만화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만화라는 형식에 대한 질문이며, 이 형식이 제도를 갖춘 예술로서 예술계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묻는 분류적 질문(즉 만화가 좋은 예술인가 나쁜 예술인가를 판단하는 문제와는 별도의 영역에 놓여 있는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답은, 제도론의 요구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만화는 예술이다라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한줄의 답을 이끌어내기까지 그 기나긴 글의 여정을 싣지 못하는 것은 다소 안타까움이다. 물론, 이글의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어떤 이들에게는 그러한 이갸기들이 재미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증거로 다른 예술 형식들이 갖고 있는 창작과 경험의 방식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영역이 만화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새로운 예술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에서 연구자는 만화라는 장르를 읽고 있는 자신의 사유방식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자신의 논의를 인쇄만화에 국한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쇄만화의 형식이 웹만화와 만화영화를 파생한 근본이기에, 인쇄만화를 살피는 것이 만화의 고유한 독자적 특징을 찾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만화가 실재를 담거나 반영하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은 만화의 묘사방식과 그것이 담는 서사의 내용 양자에 걸쳐 있음을 먼저 얘기한다. 그런 후에야, 그런 모습들이 만화를 회화보다 열등한 것으로 판단하는 근거로서 받아들여질 것이 아니라, 만화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특징으로 보아야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만화에서 그림의 역할을 서술의 술어로서 뚜렷한 의미 고정을 갖는다고 말하며, 그러한 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들을 비롯한 여타의 회화들과 구분된다고 밝혀나간다. 가령, 실제에 있어 띠만화의 형식에 고정되어 있는 띠만화의 조형(논문에서 밝히기로는 3등신 내외의 단순한 인물조형과 간단한 필치)이, 즐거리 만화의 형식에 고정되어 있는 줄거리 만화의 조형(등신비에 가까운 보다 복잡한 인물 조형과 세밀한 필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어의 성격으로 볼 때, 띠만화에서는 술어의 일반성(의미고정)이, 줄거리 만화에서는 술어의 특수성(의미非고정)이 서술의 수행에 있어 주된 역할을 맡게 된다고 얘기한다. 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얘기로, 만화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 죽, 띠만화체 조형과 줄거리 만화체 조형의 성격은 외형상의 단순함과 복잡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술을 위한 술어로서의 각 양식의 조형들이 술어의 일반성에 의존하느냐 특수성에 의존하느냐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이다. 결국, 만화의 그림체 구분은 그 조형의 외적 특성을 살피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림이 술어로서 수행하는 기능을 관찰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 그러나, 여기서 저자는 그러한 자신의 얘기에 반대되는 만화의 장르가 있음을 놓치고 있다. 가령, 통칭하는 명랑만화의 경우 줄거리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형식은 띠만체인 경우로, 그림이 수행하는 술어의 기능이 일반성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또한, 대부분의 순정만화에 관한 논문에서 한번씩은 걸리게 되는 성역할의 문제에 관하여, 연구자는 성차진술을 맡는 일반적인 술어가 보통 젖가슴의 구현이며, 높은 의미 고정성(가슴이 없으면 남성, 있으면 여성)을 가진다는 예를 들고 있어서, 연구자 나름의 생각(그런 현상자체를 보는 것은 보편적이지만, 그에 대하여 높은 의미고정을 갖는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의 만화에 대한 예술로서의 철학적 분석은 다음에 이르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만화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진술은 어느 측면에서는 옳은데, 만화가 외부 세계의 정확한 외관이나 물리적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은 만화가 서술을 위한 그림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재현을 위한 그림(회화)이 실재의 외관과 가까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3차원적 환영을 만들어 내는 원근법 등의 고안들을 사용한다면 서술을 위한 그림들은 실재의 외관이 아니라 서술의 효과에 관심을 둔다. (중략) 예를 들어, 줄거리 만화는 띠만화보다 인체의 정확한 데생이 중시되는데 그것은 실재를 정확히 재현하는 목적을 가진 것이라기보다 그 만화가 서술하고 있는 서사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야 한다. 이제 얼마큼은 준비된 게 아닐까? 어쩌면, 만화를 예술로서 본다는 것은 한낱 이론가들의 몽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선도 처음에는 당치않을 꿈이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졌듯 이러한 노력들이 모이면 이제 곧 만화를 당당하게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런지...

처음 논문의 차례를 보면 그다지 새로운 점이 보이진 않는다. 즉, 만화는 예술인가와 새로운 예술로서의 만화의 고유성 이 두 맥락으로 이루어진 글의 목차는"만화에 대한 대강의 개념 정리 후 만화의 특징에 관한 몇가지 나열이 있겠네.."라는 단순한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그저그런 내용이 아니라, 저자 나름대로 만화에 대한, 만화 자체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여러 곳에 담겨져 있다. 이 논문이 갖는 장점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까지 대부분 그냥 수용해버린 기존의 연구(가령, 만화와 커뮤니케이션의 해리슨이나 만화의 이해의 맥클루드)에 대해서도 반론제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제까지 연구에서 나타나는 차이점들을 나름대로 분석해내고 있는데, 이는 이론의 체계화를 기다리고 있는 만화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다.

이제 우리는 만화를 본다와 읽는다의 차이점에 대해 수긍하게 된다. 논문의 저자 이계언은 겉으로 드러난 만화적인 현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만화 속에 내재된 思考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예술로서의 만화에 대한 성찰은 이다지도 복잡한 내용들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 1998년 이희재


격변하는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함께 해온 가자 대중적인 시각매체인 만화는, 오늘날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장르로서, 만화라는 고유의 영역 이외에도 광고, 애니메이션, 팬시·캐릭터 산업, 게임, 테마파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고부가가치성으로 인해, 만화는 20세기 이후 문화산업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으며, 대중문화로서의 만화의 비중도 앞으로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 본고에서는 대중문화로서의 만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만화의 내러티브를 주목하였다. 모든 만화는 아무리 미약할 지라도 그 안에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이렇게 만화가 내러티브를 통하여 독자들과 관계를 맺게 될 때, 그것은 단순히 만화그림체라는 범위를 넘어서 어떤 의미를 만들고, 그 고유의 가치를 획득하여 상징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징성을 띠게 된 만화의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독자들에게 더욱 생동감있고 현실감있게 다가갈 수 있으며, 따라서 만화관련 산업의 주된 대상으로서 쓰여지고, 만화를 인기 있는 대중문화의 하나로서 정착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대중문화로서의 만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만화 내러티브에 나타나는 현대문화의 특징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기준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특히, 현대문화의 여러 특징들 중 "이야기 문화의 해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만화 내러티브의 특성들을 전통적 내러티브와 내러티브의 해체의 이항대립적 관계로 대비시켜 그 기준을 제시하려 하였다. 본고에서 제시된 분석기준으로는 사건배열의 순차성과 비순차성, 사건의 인과성과 비인과성, 인물의 전형성과 비전형성, 인물관계의 명확성과 모호성, 그리고 만화 시점의 일관성과 다양성이 있었다. 사건배열의 순차성, 사건의 인과성, 인물의 전형성, 인물관계의 명확성, 만화시점의 일관성 등은 기준을 세우고 범주를 구분하는 논리적 특성의 모더니즘과 연결될 수 있었고, 사건배열의 비순차성, 사건의 비인과성, 인물의 비전형성, 인물관계의 모호성, 만화 시점의 다양성 등은 범주를 만들 수 있는 경계를 파괴하려 하고 일회적이고 감각적인 호소를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이 기준들로 1960년대 작품인 방 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와 1990년대 작품인 허 영만·박하의 비트를 분석해 본 결과, 전자는 전통적 내러티브의 성격을 띠고 모더니즘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후자는 전통적 내러티브의 해체적 양상을 보여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결과에서 볼 때, 만화는 그 내러티브를 통하여 해당되는 문화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따라서 만화에 대한 문화적인 측면의 접근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본고에서 제시된 분석기준들은 만화에 나타나는 전통적 내러티브의 해체적 특성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고 보여지며, 광고·영화·게임 등 내러티브의 특성을 갖는 다른 시각 장르에도 적용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울러 이렇게 만화내러티브를 문화적 기준으로 분석해 보는 것은 앞으로 대중문화로서 만화의 방향을 예측케 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학문으로서 편입되고 있는 만화의 연구에 하나의 방향 제시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