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출근길이나 저녁의 퇴근길, 북적거리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행이 있는 이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잠에 빠져들어 있고 누군가는 귀에 이어폰을 꼽은채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신문’을 읽고 있을 것이다.
만화를 그리 즐겨 보지 않으면서도 신문을 펼치면 제일 먼저 보는 곳이 ‘만화’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신문만화에서만 드러나는 요소 즉, 지극한 현실풍자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자그마한 네모칸에서 우롱을 당하는 거물급(?)들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우게 되는 것이다.
주완수의 『韓國 新聞漫畵 硏究 - 90년대 新聞漫畵를 中心으로』에서 가장 먼저 밝히고 있는 것이 이러한 이야기이다. 연구자는 먼저 독자들이 신문만화를 즐겨 읽는 이유에 대한 답을 먼저 내놓고 있다.
폭넓게 사실을 포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논리적 긴장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공감을 통한 대리경험, 가상체험,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 효과라 할 수 있다. 신문 연재만화는 어떤 것이건 일정한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털털하고 우직하여 주변머리 없고 힘없는 서민 대중 계층의 인물들이다. 바로 이러한 주인공이 강자와 대결한 약자란 점은 소수의 강자가 형성한 공감권보다 다수의 약자가 형성한 공감권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화’가 아이들‘만’을 위한 매체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겠지만, 적어도 ‘신문만화’의 경우에 있어서는 아이들이 들어설 자리는 극히 미약하다. 그곳은 ‘만화’가 처음 생기면서 가졌던 자신의 얼굴, 즉 ‘풍자’와 ‘해학’의 정신이 수많은 세대와 시간을 거치면서도 유유히 살아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어른’(단순히 나이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들이 상주하고 있다. 그래서, 신문을 보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보이고, ‘신문만화’를 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희노애락을 알수 있는 것이리라. 이에 주완수는 『韓國 新聞漫畵 硏究 - 90년대 新聞漫畵를 中心으로』에서 신문만화 자체의 형식적인 변화는 물론, 1990년대라는 시대상황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다.
논문은 크게 ‘한국신문만화의 역사’, ‘한국신문만화구조분석을 위해 도입된 제 이론’, ‘한국신문만화의 유형분석’, ‘한국신문만화의 조형형식 분석’, ‘한국신문만화의 내용성 분석’ 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주의깊게 보아야할 부분은 ‘한국신문만화의 조형형식 분석’과 ‘한국신문만화의 내용성 분석’이다. 즉, 2개의 글은 형식과 내용이라는 차원에서 신문만화를 분석하고 있으며 각 분석항마다 실제 신문만화의 예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 조형형식 분석에서 나타나는 신문만화의 24가지 특징은 한칸 혹은 네칸의 신문만화에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미학’적인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내용성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가 가지는 모순점들이 신문만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풀어간다.
논문의 서론에서 연구자는 랜달 P. 해리슨의 「만화와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관련, ‘한국신문만화의 유형 및 방향성의 분석은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밝히고 있다. 더불어, 만화에 관한 몇가지 진술들을 되새김으로써 만화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발전 경로로 삼고 현재의 한국만화 상황에 대한 스펙트럼이 된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하여, 연구자는 연구 범주를 설정하게 된다.
만화에 대한 (위의) 대중적 인식을 전제할 때 그 한 중요한 내용 및 형식으로서의 한국 신문만화가 갖는 역사성, 특질, 방향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 범주의 설정이 가능해진다. 한국 신문 만화 역시 위 도표에서 나타난 만화의 일반성을 전제로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특질의 일상적 표현으로서의 매체적 특수성을 발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만화사는 신문 만화와 잡지 만화가 거의 같은 시기에 싹이 터서 함께 성장했고 함께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90년대라는, 아직은 건드리기가 다소 힘겨운(?) 시대를 선택한 이유는 ‘만화’라는 매체의 선택과 함께 논문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에 대하여 연구자의 시선은 객관을 유지하고 있다.
90년대의 신문만화는 대중의 탈정치화와 발맞추어 개별화된 소시민적 관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놓여 있어 위의 두 가지 성향이 중흥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 주체적 자기 삶의 이야기들을 담는 문화, 살아 있는 역동태, 진정한 민중적 의미의 제공자로서 무관심해지고 무기력해지기 쉬운 대중에 대해 풍자적?해학적 방법을 통해 진정한 삶의 방식과 문제를 제기하는 활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긍정태로서의 기존의 특질은 90년대 한국 신문 만화에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사실, 이러한 점은 바로 본 연구가 실행될수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가령, 80년대를 비추는 신문 만화와 90년대를 담아내고 있는 신문 만화가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목소리를 내었다면, 이러한 작업은 무의미해진다. 시대의 역동성과 함께 만화적 생명력은 끊임없이 발전한 것이기 이러한 작업들을 계속되어져야 하는 셈이다.
글쓴이는 ‘한국신문만화의 분석을 위한 틀을 마련키 위해 ‘한국신문만화구조분석을 위해 도입된 제 이론’이라는 단락을 따로이 두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시된 3가지 방법론, 즉 매체산업론?문화산업론?미디어정치경제학 등은 실제 신문만화구조 분석시 내용분석과 관련을 지을 뿐, 신문만화의 유형분석이나 조형형식 분석과는 그다지 관련성을 갖지 못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 부분을 큰 단락으로 둔 것은 다소 논문 전체의 평형을 깨뜨리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조형형식 분석틀로써 ‘한국신문만화의 내용성 분석’ 內에 제시했다면 오히려 무게중심이 맞는 균형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쓴이 자신도 논문의 중심을 1990년대라고 밝혔듯이, 제시되는 만화와 그에 대한 초점이 1990년대에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1990년대에 대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개관이 어느정도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신문만화가 담아내는 현실비판은 그 역사적 상황자체에 생명력이 있기에 당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감동이 줄어듬은 물론, 오히려 내용에 대한 수용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한 신문만화를 분석한 글이기에 더욱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더구나, 논문자체의 생명력을 길게 가질려면 시간이 많이 지난뒤에도 이 논문을 보는 이로 하여금 내용이 습득되도록 해야하니까 말이다)
‘신문’에 관하여는 미디어적인 측면에서 많은 연구들이 있어 왔다. 그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신문안에 두고 있는 만평이나 4단 만화는 여타 만화장르보다 연구의 성과가 쌓여 있음직 하다. 즉, 정치적인 관련성이나 사회적인 측면에 관한 논의들은 저널리즘의 범위에서 이야기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안에 담기는 내용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신문만화 자체가 가지는 미적인 측면이나 형식적인 면에서의 고찰은 빠뜨리기 쉬운 부분이다. 주완수의 『韓國 新聞漫畵 硏究 - 90년대 新聞漫畵를 中心으로』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양면에서 분석을 시행함으로서, 이러한 점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9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과 연관하여, 신문만화를 통한 시대읽기의 방식을 보여준다.
연구자는 글의 끝에서, ‘현실적으로 이와 유사한 연구가 진행된 예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로 입문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음’을 얘기한다. 그에 따라 주관적 판단의 개입 역시 문제가 되긴 하지만, 오늘날 다른 만화 장르에 비하여 대중적 담론에서 제외되고 있는 신문만화의 영역을 포괄한 것은 다음 연구의 토대가 될 것이다.
國文抄錄
다가올 21세기가 정보 산업화 시대이고, 그 첨병의 위치에 만화 및 만화 관련 산업이 놓여 있다는 세간의 담론은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또 이런 담론의 수준에서 자치 단체나 기업체 등을 중심으로 만화 관련 산업의 하드 웨어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노력들은 베이스로서의 다양한 하부 운용 시스템을 전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회성, 전시성 행사에 머물러 있다.
또 이 담론 속에서 신문 만화는 제외된 듯 하다. 신문 만화가 근대 개화기 이후 국내 만화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해 왔다는 점을 전제하면, 이는 만화에 관한 담론의 공백에 해당한다. 신문 만화는 여론 주도층이 갖는 만화에 대한 인식의 중요한 변수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 연구는 이러한 공백의 한 대안의 형식으로, 신문 만화를 예술 만화 및 만화 산업의 국가적 운용 체계의 한 축으로 위치시켜 그 개괄적인 역사, 개념, 90년대 신문 만화의 유형등을 분석했다. 특히, 이홍우, 장봉준, 박광수의 작품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위의 작가들이 각각 90년대 한국 신문 만화 내 4컷 만화, 만평, 줄거리 만화를 대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