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출판물은 어디서나 인기가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읽기가 힘든 이론서부터 조금 지루하다 싶은 문학류는 물론이고, 광고지조차 일단 종이에 쓰여져 눈으로 읽고 머리로 해석을 요하는 글자들이 나열된다 싶으면 한쪽으로 물러두기가 일쑤이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화면에 이쁘장한 주인공들이 즐비한 일본애니메이션의 범람과 인터넷을 통한 만화의 공급은 독자들의 손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는 마우스를 쥐게 만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잡지 역시 웹진의 탄생으로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러한 모습들이 긍정적이기도 하다. 만화에 입장에서 본다면, 부가가치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매체의 확장을 통해 창작의 다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음이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만화들은 출판되어지기 위해 창작된 만화를 스캔 받아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나날이 많아지는 웹진의 수만큼, 곧 사라지는 웹사이트도 비일비재하다.
오래 전부터, 안방극장에서 만화는 이미 일본의 만화영화가 자리잡고 있었다.(기술도, 자본도 빈약했던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또한,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무분별한 일본만회의 유입은 만화시장의 불균형과 만화매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낳게 했으며, 이것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문희의 『만화 상품의 경제적 특성과 만화잡지 제작산업구조에 관한 연구』는 현재 이러한 상황속에 출판만화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만화잡지와 단행본의 생산구조와 그것이 수요자에게 들어가는 유통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1995년 이색적인 만화관련서적을 만나게 되었다. 한창완의 「한국만화산업연구」는 당시까지 얘기되던 만화와 관련된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였다. 즉, 유해매체가 어떻고, 대본소가 어떻다는 상황에서, 만화를 산업적으로 분석해 본다는 것은 연구의 실질적인 유효성을 떠나 하나의 의미심장한 시도였다. 즉, 만화의 산업적인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만화가 가지는 파급효과를 알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당시에 불균형했던 만화산업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이제 만화의 산업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화하면 떼돈을 버는 기계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양문희의 『만화 상품의 경제적 특성과 만화잡지 제작산업구조에 관한 연구』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짚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피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통계자료를 근거로 하여 수치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들이 현실적임을 알리고 있다.
논문은 만화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만화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 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지의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즉, 만화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인 측면, 법·제도적인 측면, 문화적인 측면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 모든 부분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만화산업을 둘러싼 여러 특성 중에서 경제적인 특성만을 연구범위로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 경제라는 것이 정치나 사회 혹은 법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 - 국회에서 법이 하나 통과될 때마다 울고 웃는 주식시장을 생각한다면 예상할 수 있으리라 - 이 있는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 부분, 이 한계는 아쉬움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 이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점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는
우리나라 출판만화 시장의 작은 규모와 시장의 이원화 특성이 만화잡지 제작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며, 둘째는
만화는 복제가 용이한데 이러한 특성이 만화잡지제작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화상품의 문화적인 침투라는 특성이 우리나라 출판만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라는 점도 제기된다.
현재 이야기되는 만화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여점부분이다. 논문에서도 이에 대하여 얘기되는데 전국 서점의 수보다 도서대여점이 더 많다는 사실, 이에 따라 판매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따라서 산업구조가 왜곡 불균형하게 발전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또, 일본과 비교할 때, 전반적인 생활수준에 비해 서적의 가격이 높은 것도 국내 내수시장 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여시장(논문에 제시된 수치로는 규모면에서 판매시장의 거의 3배에 이른다)이 만화잡지 제작산업구조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침을 볼 수 있는데, 이유는 유통자본이 제작자본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출판만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만화 잡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그 근거 중의 하나로 다른 출판만화와는 달리 만화잡지는 광고 매체로 이용될 수 있고 따라서 제작비를 광고로 충당할 수 있는 점을 얘기한다. 이에 따라 연구자는
광고없이 만화잡지 산업의 전망은 밝지 않다 라고 까지 얘기한다. (여성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 야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만화잡지보다도 더 두꺼운 책들이 실상 안을 뒤져보면 반 이상이 광고로 덮혀 있다.)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가 국내에 배급되며 수입을 얻게 되는 이들은 누구일까? 저자는 역사적으로 외국문화의 침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제작·유통업자들임을 밝히고 있다. 즉,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제작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외국의 내용물을 싼 가격에 수입하여 수익을 얻고자 한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일본만화 역시 그렇게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청소년들은 일본만화라면 재미있기 때문에 본다라는 얘기를 하며, 한국만화는 유치하다고 한다. 만화잡지 역시 일본만화를 실지 않고서는 독자들의 손에 자신들의 잡지를 들게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만화의 주요수출국은 주로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인데, 수입국은 일본이 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기에 이르렀음을 연구자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더욱 문제인 것은 이제 일본만화에 친숙해져버린, 그들의 문화를 습득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일본만화의 침투력임을 강조한다.
양문희의 『만화 상품의 경제적 특성과 만화잡지 제작산업구조에 관한 연구』는 한편으로는 진부한 주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잊어버린 사실을 요목조목 따지고 있다. 그래서, 논문의 위치는 양가적이다. 통계의 제시로 출판만화가 처한 현실이 밝지 않음을 찬찬히 얘기하긴 하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함이 아쉬움이였다. 논문을 보며, 읽어야 하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불균형한 만화시장의 구조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모든 학문적 연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일진대, 그렇다면 연구의 성과는 현실에서 좀더 나은 모습으로 보여질 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종이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천년간 인류가 지식을 축적해 온 방식은 문자로 종이에 기록함으로서였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도 있지만, 그건 이후의 일이다. 적어도 역사가 시작된 후 최근까지 지식의 축적과 정보의 교환은 종이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확장은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정밀한 자료를 찾으러 가는 곳은 도서관임을 상기한다면, 만화 역시 출판만화가 모든 만화의 출발점임을 거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