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문자에 접하기 전에 도상적 기호를 체득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이 논문의 연구자가 가장 먼저 논문의 독자에게 건네는 말이다. 시각적 사고는 문자적 사고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새삼 우리는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의 70를 시각을 통해 얻는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시각적 사고는 점차 상징으로 상징은 결국 더 깊은 상징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만큼 간단하면서도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화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캐리커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점점 더 시간을 다투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매체 역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또 그 안에 담는 내용 역시 급박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빨리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해 매체는 시각적이 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시점 안에서 만화에 대한 논의는 ‘소박한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것은 기존의 만화에 대한 단편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나 실제 적용 상황에서는 만화가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만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한 것으로 만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시사만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서의 만화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노력하였다.
먼저 이 논문에서는 시각커뮤니케이션의 개념과 기호학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1장에서 개괄하였고 이것을 토대로 2장에서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의 시사만화의 사적 고찰, 시사만화의 개념 및 특성을 살펴 본 후 3장에서는 시사만화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분석을 위한 기호학적 접근으로 이르기 위해 만화기호학의 개념을 통해 비언어적 기호의 본질파악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더불어 시사만화의 구성요소와 구체적 사례를 통한 분석이 포함되어 있다. 4장은 시사만화의 생성과 발달과정에 나타난 문제점 도출과 그에 따른 개선방안을 찾아보고 이를 통한 국내시사만화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 만화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위한 순서로 되어 있다.
사실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주목한 것은 불과 반세기가 간신히 지난 정도의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를 하는 사회학에서는 인간의 의사 소통을 위한 언어, 몸짓, 문자, 암묵적 지시 등에 대해 연구를 하였지만 쌍방적이 아닌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다소 덜 주목했음을 시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필자가 찰스 쿨리의 말을 인용한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집단 생활 즉, 공동체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필요한 어떤 상징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러한 의문은 최근에 오면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와 그것들을 이용한 소통 방식에 대해 연구해 오면서 결국 다른 많은 커뮤니케이션 상징체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목은 사회학의 발전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다른 학문과의 조우에서 실현되었다.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주목은 미술계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가 이것이 결국 현대의 매체와 산업에 연결되면서 홍보와 마케팅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기존에 생각되어 오던 문자, 음성, 몸짓 등의 것들보다 더 광범위한 것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자기장으로 설명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홍보, 광고 마케팅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주목하였듯이 현대인들은 쉽고 빠른 영상이나 만화 등의 ‘비언어적,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 더 밀착되어’있다. 필자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서 만화를 ‘철두철미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과장하며, 또한 정수를 뽑아 내거나 왜곡하기 때문’인데 그만큼 정보를 제공하고 습득하는 손쉬운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화가 전달하는 정보는 만화적으로 포장되어 ‘도상적 유사성’과 ‘현실성’의 ‘무수한 수준들 위에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이 때 ‘만화의 결정적인 의도는 만화적 현실을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구조화하여 그것이 실제의 현실인 양 제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수용자에게 일정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만화가 수용자가 함께 속해 있으며 그 속에서 서로 관계 맺고 있는 전체의 사회적 맥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만화가 결코 사회에 대한 감각 조직을 잃고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그리고 그것이 결국 사회 안에서 어떤 기호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밝히는 부분이다.
결국 만화가 사회 안에서 어떤 기호를 갖고 있음은 만화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기호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샘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만화가 ‘그림과 문학사이에 존재하는 기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만화기호학은 때로 그림 기호학의 하위 부류로 또는 문학기호학의 하위 부류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 특성상 상징(symbol), 집단표상(representation collective), 이념(ideaologie), 그리고 심미적 경향(courant esthefige)의 전달과 표현 방식을 취하는 영상 기호학 쪽에 가깝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화는 회화나 문학의 자식이라기 보다는 회화와 문학, 그리고 영화의 기묘한 혼혈아이면서 동시에 그것들의 서자라는 나 개인적인 생각과도 일면 부합되고 있다. 이것은 만화가 갖고 있는 소위 ‘홈통에 흐르는 피’라는 고유의 독특한 특징을 갖기까지 영화로부터의 수혜가 막강하지 않았나 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은 비록 일순간에 정지된 동작에 불과하나 소위 말하는 홈통에 흐르는 피에 의해 만화의 그림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날뛰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의 어떤 한 시퀸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만드는 만화는 그러므로 회화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다분히 영상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면 더 합당하리라는 판단이다.
다분히 영상적인 만화라는 면에 동의하는 필자는 인지심리학적 자료를 이용해 도블린(Doblin)이 만든 정보전달 경로를 이용해 만화가 어떤 방식을 통해 그 기호를 성립하게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함을 유지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만화의 전달 내용은 도상(Iconographic)에 담기게 되고 이는 곧 시각(visual)을 통해 인지되는 과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만화적 도상은 어떤 것들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것에 대해 ‘만화의 외연으로서의 표현 유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바로 만화의 부호라고 불리는 특수 기호에 관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평면화, 첨예화, 동화(단순, 왜곡, 과장)등과 같이 만화의 특징들에 대해 덧붙이고, 또한 만화의 특별한 감정 표시 - 예를 들면 행복한 사람을 표현할 때에는 ‘위로 둥그렇게 올라간 입술로 표현’되어지고, 슬픈 표정은 입의 모양이 아래로 내려가고 ‘놀랐을 때처럼 눈은 떠지는데 아래 눈꺼풀에 긴장이 서려’있게 된다.-로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만화의 이런 커뮤니케이션 기호들은 실제 생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면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앞서서 언급하였던 감정 표시를 위한 표정이라든지, 현실감 있는 표현과 묘사는 만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만화적 기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과장과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도 응당 기호이다. 필자가 만화를 ‘철두철미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는 것에 진지하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만화가 기호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감에 따라 그리고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발전한 기호학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분에 이식됨에 따라 만화 역시 만화기호학이라는 명칭을 얻게됨에 이르렀다. 그러나 만화가 문화적 엄숙주의와 미비한 다원주의로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 만화기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이 논문이 만화기호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적절한 평가일 것이다. 기호학의 전통에서 만화가 명확하게 대입될 수 있고 그 학문적 가능성 역시 훌륭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은 가히 높이 살만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다소 시사만화에 만화기호학을 적용함에 있어서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지 못한 점, 기호학의 전통은 충분히 인용, 정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화기호학이라는 것에 만화를 적용 분석함에 있어 그 개념에 진지하게 다가서지 못하고 다소 겉 핥기 식으로 마무리가 된 점 등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만화기호학이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함으로 더 나은 연구들이 계속해서 진행되기를 바라고 이 논문이 후의 연구들에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1993 석사 유성봉 초록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