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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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 MISSION

만화 “프론트 미션” 은 스퀘어 에닉스에서 발간하는 격주간 만화잡지 <영 간간>에서 연재된 작품이며, <문라이트 마일>과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만화가 오타카키 야스오가 스토리를 쓰고, 한국 작가인 윤찬희가 ‘C.H.LINE’이라는 필명으로 작화를 맡았다.

2015-08-28 유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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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로 유명한 게임 제작사 “스퀘어 에닉스”가 합병 전 “스퀘어 소프트”였을 때, (“파이널 판타지” 영화 사업에 실패한 ‘스퀘어’와 “드래곤 퀘스트” 외에는 딱히 히트작이 없었던 ‘에닉스’가 2003년에 합병하여 “스퀘어 에닉스”가 되었다.) 회사의 주력게임 중 하나로 제작한 SRPG(simulation role playing game) “프론트 미션”은 O.C.U.와 U.S.N.이라는 두 국가연합 간의 전쟁을 다룬 스토리보드를 가지고 있다. 이 전쟁에서는 “번쳐”라는 인간형 로봇이 주력 병기로 등장하는데, 게임 플레이어는 O.C.U.와 U.S.N. 양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해 “번쳐”를 타고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프론트 미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파츠와 무기를 조합해서 “자신만의 기체”를 만들어 시나리오 상의 커맨드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1995년에 첫 발매된 “프론트 미션” 시리즈는 “하프만 제도”라는 가상의 섬을 무대로 양 진영의 “개성 넘치는 번쳐”들이 격돌하는 시스템이며, 각 진영 별로 2명의 주인공에게 각각 부여되는 “두 가지 시나리오”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각 파일럿마다 레벨 시스템을 두는 등의 흥미로운 요소로 게임의 재미와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프론트 미션”을 게임으로 접한 많은 이들이 이 시리즈의 장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는 탄탄한 스토리였는데, 마치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게임 “프론트 미션”의 세계관을 가져다가 만화로 만든, 이라는 ‘웰메이드’ 코믹스가 한국어판으로 정발되어 있어 이 지면을 빌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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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프론트 미션” 은 스퀘어 에닉스에서 발간하는 격주간 만화잡지 <영 간간>에서 연재된 작품이며, <문라이트 마일>과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만화가 오타카키 야스오가 스토리를 쓰고, 한국 작가인 윤찬희가 ‘C.H.LINE’이라는 필명으로 작화를 맡았다. 총 10권으로 완결되었으며,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묘사한 수위 때문인지 ‘19세 미만 구독불가’의 빨간 딱지를 붙이고 있다. 서적 비평전문지 <다빈치>(2009년 5월호)에서 주관하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한 만화 150편’에 수록되었고 ‘이번 달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플래티넘 서적’에 선정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2090년, 두 개의 국가연합이 격렬하게 대치 중인 남태평양의 하프만 섬이 무대이다. 현재 하프만 제도에서는 ‘제2차 하프만 분쟁’이라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전쟁을 수행 중인 양 국가연합은, O.C.U.(Oceania Cooperative Union : 오세아니아 공동연합의 약칭,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동아시아 국가들이 만들어낸 정치, 군사 연합체)와 U.S.N.(United State Nations : 미합중국을 중심으로 중남미 각국이 모여서 만들어진 국가)이다.

이 작품의 가장 특징은 ‘명확한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1권부터 등장하는 수수께끼의 전쟁 카메라맨 이누즈카 켄이치가 전쟁의 실상을 ‘여과 없이’ 취재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며,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그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드라마’ 형태의 구성방법을 택하고 있다.



원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 “프로트 미션”에서 세계관과 설정을 가져왔기 때문에 작화가가 가장 중점을 두는 장면은, 아무래도 ‘번쳐’가 등장하는 ‘역동적인’ 전투장면으로 보인다. 작가 인터뷰를 보면 정식연재가 처음인 신인 작가라는데, (아무리 스토리 작가인 오타카키 야스오가 많은 도움을 준다 해도) 이만한 수준의 메카닉 작화와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선보인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한국어판 1권에 별지로 수록된 오타카키 야스오의 인터뷰를 보면, 동양과 서양의 대립으로 설정된 ‘하프만 분쟁’의 영감을 얻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곳곳을 취재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1화 ‘전장의 투명인간’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하프만 섬의 분단에 관한 설정을 한국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전장의 투명인간’(총 6화), ‘군인의 노래’(총 2화), ‘사냥개들’(총 4화), ‘낙원의 과실’(총 14화), ‘영웅의 십자가’(총 9화), ‘Unlucky Days’(총 3화), ‘양치기의 귀환’(총 46화), ‘에필로그, 그리고 일본’(총 2화)이다. 구성만 살펴봐도 5권 중반부터 10권의 에필로그 바로 전까지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양치기의 귀환’ 편이 가장 재미있고 알차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다 읽어본 필자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큰 틀로는 ‘번쳐 용병부대’를 등장시켜 전쟁의 잔혹함과 그 안에서 갈등하는 여러 인물들의 휴머니티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냈고, 작은 틀로는 ‘형제애’에 바탕을 둔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읽는 이의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게임의 설정과 세계관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만화만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전투 장면이나 스토리 진행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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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무대가 되는 ‘하프만 섬’은, 20세기 후반에 해저화산이 폭발하는 바람에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갑자기 떠오른,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섬’이다. 홋카이도와 비슷한 면적이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여 섬의 개발을 시작한 것이 2065년, 강대국들의 경쟁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눈부신 고속성장을 하게 된 ‘하프만 섬’에서 O.C.U.와 U.S.N.이 전쟁까지 불사하며 대립한 이유는 섬 지하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 탓이었다. 미국이 주변국을 흡수하는 형태로 발족(2020년)된 U.S.N.이 섬의 동쪽 절반을 통치령으로 선포하자 거기에 맞대응하듯이 환태평양 국가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신(新)국가 O.C.U.가 서쪽 절반을 자국 영토로 만든다. 2070년, 제1차 하프만 분쟁이 벌어지고 격렬한 전투 끝에 UN의 개입으로 휴전, 20년이 지난 2090년, 제2차 하프만 분쟁의 서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전장의 투명인간’은 작품 전체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과 동시에 향후 작품이 나아갈 방향에 관해서 아주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시해주는 에피소드다. 에피소드의 첫 장을 열면, 작품의 화자(話者)이기도 한 전쟁 카메라맨 이누즈카 켄이치가 짧게 자신을 소개하며 전장의 풍경을 취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두 번째 장에서 작품의 상징과도 같은 ‘번쳐’의 전신 모습이 나오고, 바로 다음 장에는 이누즈카가 ‘여과 없이’ 촬영한, 전쟁의 참상이 담긴 잔혹한 사진들을 보여준다.(인간의 머리를 총 끝에 매단 번쳐 사진이라던가, 번쳐의 발에 밟혀 상반신이 고깃덩어리로 변한 여성의 시체 사진이라던가, 인간의 손을 물고 있는 들개사진, 여자를 윤간(輪姦)하는 병사들의 사진, 포로의 뒤통수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총으로 날려버리는 병사의 사진 같은 것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엔 하프만 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는, 평화로운 도쿄의 풍경 속에 NNTV의 방송기자 마츠다 아키라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중인 장면을 배치하는데, 이런 작가의 극단적인 연출은 읽는 이에게 ‘강렬한 대비효과’를 준다. 마츠다의 질문은 이렇다. “혼돈으로 치달아가는 제2차 하프만 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되돌아오는 시민들의 답변은 말 그대로 ‘평화롭다’(러브 앤 피스를 외치며 허세를 부리는 레게머리의 청년들,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전쟁을 하지 말라는 젊은 여성들, 전쟁 덕에 주가도 오르고 경기도 좋아졌다는 샐러리맨,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걱정스런 표정의 할머니, 최신병기의 시험장인 하프만 섬을 주목하고 있다는 오타쿠 남성 등등) 그들에게 남태평양 어딘가의 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츠다에게 신분증을 내보이며 두 명의 남자(공안 경찰)가 다가온다.



경찰서로 임의동행하게 된 마츠다는 3개월 전의 하프만 섬 특파원 발령 때 알게 된 ‘이누즈카 켄이치’에 대한 것을 모두 다 털어놓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경찰의 설명은 이렇다. “3개월 전까지 당신 밑에서 일하고 있던 이누즈카가 매일매일 전쟁터의 잔혹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매우 난감하다. 해외서버를 이용해서 잔혹영상을 올려 막대한 돈을 벌고 있기까지 하다. 하프만 분쟁은 일본도 가맹되어 있는 O.C.U.가 벌이고 있는 대규모 전쟁이라서 반전여론이 생겨나면 곤란하다. 이누즈카가 귀국하면 바로 체포할 예정인데, 어째서 그는 당신과 함께 귀국하지 않았는가?” 경찰의 심문에 가까운 요청에 마츠다는 이누즈카의 사진을 바라보며 3개월 전, 2차 분쟁이 발발한 하프만 섬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오타카키 야스오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하프만 섬의 분단 상황과 휴전 풍경에 대한 묘사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취재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이 확실하다. ‘전장의 투명인간’ 편에서 ‘일본인 기자의 눈에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풍경’으로 묘사되는, 휴전과 분단 상황이 초래한 ‘다양한 풍경들’은, 1950년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상황’이다. 마츠다가 한국의 휴전선을 그대로 본 딴 국경선에서 철책 저편의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가, ‘현지 코디네이터’인 ‘군사 오타쿠’ 이누즈카의 대사처럼 “20년 전의 하프만 분쟁은 UN이 개입해서 휴전이 되었지만 종전협약이 체결되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전쟁이 터지면 개전 3일째에 사상자가 100만 명이 넘어갈 거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어서 양쪽 다 쉽사리 도발을 못하고 있다.” 같은 설명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휴전상황’이자 ‘분단형태’인 것이다.(‘전장의 투명인간’ 편에서 제일 씁쓸했던 장면은, 전쟁 발발 직전 지하철에서, ‘동원령’이 떨어져 소집되는 예비군의 모습이었다. 예비군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마츠다에게 ‘예비역과 동원령, 국방의 의무와 예비군 제도’에 대해 설명해주는 이누즈카의 대사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일본인인 오타카키 야스오에게는 한국의 예비군 제도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휴전과 분단의 풍경’이었나 보다)

‘전장의 투명인간’ 편의 무대가 되는 하프만 섬 최대의 도시이자 서(西)하프만의 수도인 ‘프리덤 시티’는 냉전시대의 베를린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공항을 중간에 끼고 섬이 동서로 나뉘어 있는 점이라던가, 입국할 때 양 진영으로 나뉘어 입국심사를 하고 ‘식별코드’를 손가락에 각인시켜 서로의 진영에 들어갈 때 ‘감시’를 받아야 하는 설정 등등 지나간 ‘냉전시대’의 풍경을 차용해 스토리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작중 전임 특파원인 쿠리하라의 대사처럼 “이 섬의 상황은 20세기 때 서독과 동독,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상황과 닮아 있다.”는 설명이라던가, 연간 사용되는 군사비만 6조 엔을 넘는다던지 고층건물 옥상에는 반드시 대공포와 미사일이 설치되어 있다든지 하는 설정들은, 원작자인 오타카키 야스오가 ‘전쟁이 임박한 도시의 풍경’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 ‘실제의 어떤 도시들’을 섞어서 만화의 디테일한 요소를 만들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전장의 투명인간’ 편에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묘사는, 2001년 뉴욕에서 벌어진 ‘911 테러’를 연상케 한다. U.S.N.군의 다목적 범용 공대지 미사일 “AGM668(매버릭2)’이 프리덤 시티 한복판의 고층건물에 날아와 박히는 개전(開戰)상황은, 한가롭게 거리를 거닐던 시민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고, 연이은 미사일 공격으로 평화롭던 도시는 순식간에 지옥처럼 참혹한 풍경으로 뒤바뀐다. 이후 ‘전쟁’이라는 극단상황을 겪으며 급속도로 피폐해져 가는 마츠다와 쿠리하라의 모습과 숨겨왔던 광기를 드러내며 뭐에 홀린 것처럼 전쟁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내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누즈카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전쟁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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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의 원작은 ‘번쳐’라는 인간형 로봇병기를 운용해 임무를 완수하는 SRPG이다. 만화에서도 역시 ‘제2의 주인공’이라 할 만큼 ‘번쳐’의 작중 비중은 매우 크다. 특히 ‘번쳐’가 등장하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이라던가, ‘번쳐’를 활용해 임무를 수행하는 디테일한 묘사는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서 쓰러질지도 모를 정도로 정말 ‘압권’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탄탄한 스토리였다. 미디어 믹스의 아주 좋은 사례랄까? 원작의 정서와 강점을 해치지 않으면서 또 다른 장르로의 변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방법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특수상황에 내던져진 인간의 광기와 의지를, ‘감동’넘치는 스토리에 완벽하게 녹여내면서도, SF적인 설정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만화적 재미’를 충분히 살린 이 작품에 정말 ‘만점’을 주고 싶다.



‘전장의 투명인간’ 편에 나오는 마츠다의 독백으로 이 글을 갈음코자 한다.

“겨우...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화면 너머에서 벌어지는 현실, 내가 매일같이 뉴스 원고를 읽으며 전하던 세계 어딘가에서 내전...테러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그 숫자 하나하나에 나와 같은 슬픔이 존재한다는 걸...”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