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들’, 거대하고 흉포한 그리고 ‘죽일 수도 없는’ 거인들의 공격에 인간의 태반이 모두 죽고, 살아남은 일부의 인류는 거대한 벽 안으로 숨어버렸다. 그로부터 100년, 이제 인류의 세계는 광대하게 펼쳐진 들판과 끝없이 이어진 바다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건설한 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 안의 공간으로 축소되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거인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는 인류는 무력했고 그저 도망치는 것, 벽 안으로 숨는 것밖에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벽 안에서 100여 년의 평화를 거치며 인류는 또다시 패를 가르고 위와 아래를 구분하였으며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서로를 상처 입히며 충돌하고 있었다. 한 번 축소되어버린 세계는 다시 넓히기 힘들다. 환경에 순응하고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이 벽 안의 세계에 적응을 끝낸 1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다시 나타났다. 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이번엔 장벽보다도 더 큰, 50미터가 넘는 초대형 거인을 앞세운 거인들은 인류가 만든 ‘세계의 경계’를 또 다시 무너뜨렸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짓밟고, 유린하고, 파괴했다. 인류는 또다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더 안쪽의 벽으로, 세계는 더욱 줄어들었고, 인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공포와 무기력감에 시달렸으며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선택해야 했다.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를.”
이사야마 하지메의 대작(大作), [진격의 거인]을 소개한다.
-本-
1. 작품 개요
[진격의 거인](進?の巨人)은 이사야마 하지메가 고단샤에서 발행하는 [별책 소년 매거진]을 통해 2009년 10월호(창간호)부터 연재하고 있는 만화이다. 작가의 첫 연재작임에도 불구하고 연재 초기부터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며 화제성과 작품성에 힘입어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문화산업 전 분야로 미디어 믹스를 활발히 전개 중이다.
단행본 누계발행 부수가 2014년 8월에 4,000만 부를 돌파했으며 2015년 상반기에는 만화시리즈 판매집계(5,047,158부)에서 4위에 올랐다.(이 추세라면 올해 안에 누계부수 5,000만부를 돌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만화가 대단해!’(2011) 남성부문 1위, 전국 서점직원이 선정한 추천코믹(2011) 1위, 2011년 제4회 만화대상 7위, 제35회 강담사만화상 소년부문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만족시킨 수상경력도 화려하다.(미국에서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코너에 게재되는 주간 만화 랭킹 2013년 10월 제2주 순위에서 1권이 1위를 차지하고 2위에 2권, 4위에 7권, 5위에 3권이 오르며 베스트 5작품 중 4권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25화로 구성된 TV애니메이션시리즈(제1기)가 방송되었고, TV애니메이션을 편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홍련의 화살](전편), [자유의 날개](후편)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였다.(애니메이션 1기가 원작만화의 35화까지 해당하는 분량이니 2016년에 나올 예정인 애니메이션 2기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본편 애니메이션의 외전격인 OVA시리즈도 있다.(총 4편인데 단행본 발매 시 특전영상으로 포함되는 것이라 ‘OAD-Original Anime DVD’시리즈라고 부른다고 한다), 2015년 여름에 전·후 2부작으로 나누어 실사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다.(실사영화는 미국시간으로 7월 14일에 LA에서 월드프리미어 행사를 열었고, 7월 21일엔 도쿄에서 프리미어 행사를 개최하였다. 영화개봉에 맞춰 본편의 스핀오프 형식으로 드라마도 제작된다고 한다.) 동명의 온라인 게임과 귀엽게 디자인된 플래시 게임도 있다.
작품의 외전(外傳)으로 다른 작가가 그린 또 다른 만화도 있다. 본편에서 인상적인 조연으로 활약하는 ‘인류 최강의 남자’ 리바이 병장의 과거를 그린 [진격의 거인, 후회 없는 선택], 본편의 70년 전을 무대로 ‘입체기동장치’의 발명과정을 다루는 [진격의 거인 Before the fall](소설도 있다), 거인과 주인공들이 같은 중학교에 다닌다는 설정의 공식 스핀오프 코미디 만화 [진격! 거인중학교]가 정식으로 발매 중이다.
한국에서는 현재(2015.07.23.) 본편 단행본이 16권까지 한국어판으로 발행되었고, 외전 3편([후회 없는 선택]-전 2권 완간, [진격의 거인 Before the fall]-현재 5권까지 발행, 소설은 3권 완간, [진격! 거인중학교]-현재 7권까지 발행)도 한국어판으로 발간 중이다. TV애니메이션 1기가 애니플러스 채널을 통해 25화 전편이 방영되었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홍련의 화살”도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2015.01.)하였다.(“자유의 날개”는 아직 한국개봉 예정은 없는 듯하다)
2. 작품내용
743년, 인간을 잡아먹는 다수의 ‘거인’이 갑작스럽게 출현, 거인의 압도적인 힘에 대항할 수단이 없던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처한다. 일부의 살아남은 인간들은 거대한 벽(50미터 높이로 지어진 3중 벽이며 바깥부터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로 부른다. 벽과 벽 사이에는 신분에 따른 거주구가 있다)안으로 대피하고, 100여 년의 일시적 평화를 얻게 된다.
845년, 월 마리아 바로 안쪽의 시간시나 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소년 엘런은 소꿉친구 미카사, 아르민과 함께 언젠가??? 성벽 밖으로 나가 바깥 세계를 탐험하기를 ???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벽보다 더 큰 초대형 거인에 의해 월 마리아가 파괴되고 부서진 구멍을 통해 다수의 거인들이 거리로 침입, 마을이 폐허로 변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던 ‘주둔병단’ 소속의 병사 한네스의 기지에 힘입어 겨우 목숨을 건진 엘런이었지만, 그의 눈앞에서 어머니가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후 분노에 사무쳐 복수를 맹세한다.
월 마리아의 붕괴로부터 5년 후, 엘런, 미카사, 아르민은 제104기 훈련병단에 입단, 동기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하고, 엘런(5등)과 미카사(수석)는 가장 성적이 좋은 상위 10명에 뽑힌다. 인류가 거인의 습격을 피해 벽 안으로 도망쳐와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벽 안의 정치 체제는 왕정(王政)의 형태를 띠는, 왕족과 귀족 밑에 평민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봉건제도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인류를 지키는 벽 안의 군인들은 3개의 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벽을 강화하고 각 도시를 지키는 ‘주둔병단’, 죽음을 각오하고 벽 바깥으로 나가 거인의 영역을 조사하는 ‘조사병단’, 왕 밑에서 백성을 통제하고 질서를 지키는 ‘헌병단’이 그것이다. 인류의 의지는 그 성향에 따라 ‘거인과 싸워 인류의 권리를 되찾자’는 혁신파와 ‘벽 안의 안정과 균형적 발전’을 주장하는 보수파로 나뉘어 있었고, 이 두 개의 거대한 의지가 어떤 때는 충돌하고 어떤 때는 맞물리면서 ‘벽 안의 세계’는 삐걱거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훈련병단에서 상위 10명에 뽑힌 자는 신병 때부터 가장 안쪽 벽인 월 시나 안의 가장 안전한 도시에서 왕과 기득권 세력의 지근거리에 있을 수 있는, ‘헌병단’에 지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엘런은 거인과 직접 싸울 수 있는 ‘조사병단’에 들어가기를 원했고, 그런 엘런을 미카사와 아르민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정식 배속을 앞둔 어느 날, 월 로제 남쪽 성벽도시인 트로스트 구의 성벽을 둘러보던 엘런 일행 앞에, 5년 전 월 마리아를 부순 초대형 거인이 갑작스럽게 출현, 훈련병 신분이었던 엘런 일행은 거인들과의 첫 전투를 치르게 된다. 그토록 꿈꾸던 실전이었건만 거인의 ???도적인 무력 앞에 엘런 일행은 극한의 공포를 맛본다.
당시 인류가 거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입체기동장치라 불리는, 허리에 찬 가스추진기를 조작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밖에 없었다. 거인의 압도적인 크기와 힘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인간이 가진 총이나 대포 같은 무기로는 거인의 몸에 일시적인 상처만 입힐 수 있을 뿐 ‘결코 죽일 수 없다’는 절망감이, 인류가 거인에게 가진 공포의 근원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그러나 100여 년의 항쟁 속에서 ‘조사병단’ 병사들의 무수한 희생과 몇몇 영웅들의 노력을 통해 밝혀진 거인의 유일한 약점은, ‘거인의 뒷목덜미’를 집중공격 했을 때, 육체의 재생력과 생명력을 잃고 거인이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인류는 대(對)거인 전투용으로 입체기동장치를 개발, 고도의 조작훈련을 받은 ???사가 입체기동장치를 이용하여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장치에 부착된 날카로운 검(두 자루)을 활용하여 거인의 급소인 뒷목덜미를 공격하는 방식을 확립하였고, ‘조사병단’을 중심으로 대(對)거인용 전투병을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육성한 전투병으로도 거인과의 전투는 여전히 힘겨웠으며, 희생의 숫자가 예전에 비해 조금 줄어들었고 거인을 죽일 수 있다는 가능성만 비약적으로 상승했을 뿐, 인류가 거인에 비해 무지막지한 열세에 놓여 있다는 비관적인 현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트로스트 구에서 벌어진 거인들과의 첫 전투에서 엘런은 난전 중에 거인에게 잡힌 동료를 구하다가 동료 대신 거인에게 먹혀버린다. 얼마 후 혼잡한 전투의 와중에 궁지에 몰린 미카사 일행을 구해주는, 아주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거인이 있었으니, 그 특이한 거인은 미카사 일행을 잡아먹으려는 다수의 거인들을 막강한 전투력으로 제압한 후 힘을 다해 땅에 쓰러졌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놀랍게도 엘런의 모습으로 변한다.
거인에게 잡아먹혔다가 거인으로 변해서 ‘인간의 의지와 마음’을 유지한 채 거인들과 싸우는, 엘런의 존재는 새로운 인류의 가능성으로 대두되었고, 거인화(化)한 엘런은 몇몇 전투의 선봉에 서서 값진 공적을 세운다. 그러나 인간도 거인도 아닌 엘런의 애매모호한 존재는 세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로 간주되어 수많은 음모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그와 함께 ‘거인들의 세계’에서도 갑작스러운 변화가 발생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거인들의 치명적인 비밀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한다.
3. 작품 분석
[진격의 거인]은 거인이라는 아주 참신한 소재를 통해 만화적 재미와 철학적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킨, 오랜만의 수작이다. 실로 오랜만에 일본만화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인 이사야마 하지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인 [완다와 거상]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말이 통하지 않는 취객들에게 느낀 공포심에 착안해 이 작품???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실 작가인 이사야마 하지메조차도 거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거대한 공포를 은유하는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야마 하지메의 여러 인터뷰를 보면, 작가가 거인의 모티브를 얻은 것이 어느 하나의 강력한 소스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정이나 사회경험 속에서 얻어진 다양한 이미지들이 혼용되어 이루어진 것임을, 추론할 만한 여러 근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어쨌든 존재의 대부분이 비밀에 가려진 채로 인간의 존재를 말살하려 진격하는 거인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자본의 압박과 착취로, 누군가에게는 폭력과 협박을 통해 일상의 평화를 파괴하는 야쿠자로, 누군가에게는‘관리와 통제로 국민들을 감시하는 국가로 상징되곤 한다. 사실 명확한 정답은 아마 작가도 모를 것이다. 하나의 상징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하게 유추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잘 만들어진 만화의 힘이고 훌륭한 예술의 가치니까 말이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그로테스크한 화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개해 다양한 철학적 함의가 담긴 오리지널을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진격의 거인]이 처음 주목받은 것은 ‘식인 거인’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작가가 그려낸 암울하고 어두운 세계관 때문이었다. 만화 평론가 이즈미 노부유키는 “거인의 압도적인 힘과 저자의 독특한 감성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세계를 보고 싶다’는 독자와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하며 “절망적인 설정은 1970년대 우메즈 카즈오의 [표류교실]등을 떠올리게 하지만 캐릭터가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모습이라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이에 관해 작가인 이사야마 하지메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 속에 나오는 절망적인 상황 묘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외계인과 싸우는 인류의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 [마브러?? 얼터너티브]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품에 투영된 일본의 현실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며 [진격의 거인] 안에 ‘일본 현재 사회의 모습이 숨어 있다’는, 다소 사회학적인 분석도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사회, 국가, 자본, 시스템 등)이 습격해오고, 승산은 희박하지만 그에 대항하여 고군분투하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이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며 이것이 이 작품의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하는 시각인 것이다. 일본에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원하는 것 없이 살아가는 사토리 세대’의 내적 욕망이 판타지로 구현된 만화라는 분석도 있다. 즉 현실에서의 자신은 무기력하게 ‘벽 안에 숨어’ 세상과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에게도 무섭고 잔인한 현실에 대항해서 세상을 바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내면에 숨어 있으며, 이러한 젊은이들의 답답한 가슴을 ‘똑바로 파고든’ 만화가 [진격의 거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작품 속에서 그??지는 세계의 모습(벽 안의 인류)은 현실의 리얼함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류는 신분과 재산에 따라 3개의 장벽을 쌓아 거인의 습격에 대비한다. 가장 안전한 벽인 제일 안쪽의 월 시나 안에는 왕족과 귀족, 거상(巨商)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과 기득권 세력들이 살고 있다. 주인공인 엘런이 살던 월 마리아 근처의 시간시나 구는 거인이 습격했을 때 일종의 방패막이 또는 시간을 벌기 위한 희생양으로 거인에게 내던져진, 심하게 얘기하면 먼저 피해를 입기 위해 고안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평범한 사람들과 사회 빈민 계층이 뒤섞여서 살아가고 있으며, 치안 상태도 좋지 않고 교육혜택과 주거환경 등의 삶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 군인들은 능력이 있을수록 안전한 곳으로 발령받기 때문에 기득권의 지근거리에 있는 ‘헌병단’에 편입되려 노력한다. 이즈미 노부유키는 “거인에게 짓밟힌 인류의 모습이 경제 등의 문제로 압박 받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싸우는 주인공의 자세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진격의 거인>은 장르적으???는 ‘다크 판타지’로 분류할 수 있고, 소년 만화로는 드물게 잔혹한 묘사도 많이 나온다.(작가의 말에 따르면 ‘인체의 단면을 그려서는 안 된다.’ 정도의 규제밖에는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원래 이사야마 하지메가 19세 때,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인 2006년에 편집부에 제출하기 위한 단편작품으로 구상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극한적인 상황을 연출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 “거인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세계관을 구상했다.”고 밝히며, 이 구상을 구체화시킨 단편 “진격의 거인”을 소년 매거진 편집부에 제출한 것이 편집부 주최 신인상, 2006년 7월 MGP(매거진 그랑프리)에서 가작을 수상하게 된다.(사실 단편 “진격의 거인”은 다른 잡지사의 편집부에도 송부하였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 편집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건이다) 이후 2009년 9월에 창간 예정이었던 [별책 소년 매거진]의 연재 작품을 결정하기 위한 ‘다크 판타지 공모전’이 개최되고 이때 담당 편집자가 공모전 콘셉트에 맞추어 “진격의 거인”을 연재용으로 만드는 것을 이사야마에게 제안하게 되면서, 현재의 [진격의 거인]이 창간호부터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독자의 반응이 조용했지만, 연재 개시 후 3개월 정도 뒤부터 독자의 설문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편집부에서도 무언가 ‘대박의 예감’이 있었는지 신인작가의 단행본 초판 발행부수는 2만 부라는 그간의 관례를 과감히 깨고 이 작품은 4만 부를 찍었다. 그리고 2010년 3월, 드디어 단행본 제1권을 발행, <진격의 거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단행본 10권 발매 시점에서 누계부수 1,200만 부를 넘어서고 애니메이션이 방송된 후 매출은 더욱 증가하여 11권 발매 시점에는 발행 부수 누계가 2,300만 부를 돌파하였다. (한국에서는 2011년부터 정식 한국어판이 학산문화사를 통해 출간되었고 2014년에 50만 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식인 거인’에 대한 단초는 이사야마 하지메가 초등학생 때 우연히 시청한 특촬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괴수 산다 대 가이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사야마는 “그 영화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같은 시기에 읽은 만화 [지옥선생 누베]에 등장하는 ‘식인 모나리자’로 부터도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는 이사야마가 특히 좋아했던 ‘괴수 특촬물’이나 ‘거대 히어로물’에 대한 오마주가 많이 담겨 있다.(또한 이사야마는 격투기 마니아로 유명한데, 관심이 많았던 격투무술이나 특정 선수를 보며 전투 장면을 디자인한 부분도 꽤 많다고 한다)
초기 투고한 단편에서는 거인이 단지 상징적인 이미지의 거인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년 매거진>의 편집장인 모리타 히로아키가 ‘거인을 조금 더 공포스럽게 만들면 어떨까?’하고 조언하였고, 이후 이사야마는 자신이 넷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한 만취한 손님으로부터 구체적인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인간에 대한 두려운 경험이 거인을 단지 상징적인 ???재가 아닌, 그로테스크한 외모에 기묘한 생동감이 넘치는 존재로 디자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작중에 나오는 일부 용어들은 북유럽 신화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북유럽 신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초기 단편작품으로 집필할 당시에는 작품의 배경을 현대의 황폐한 세계로 삼으려 했다가 중세 유럽을 연상시키는 판타지적인 세계로 바꿨다고 한다. 또한 ‘강자에 대한 약자의 도전의식’은 어릴 때 무척이나 왜소했던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스스로 열등감에 빠진 청소년기를 보내며 절망감을 맛보고, 쓰라린 과거의 경험에 대해 현재 느끼는 후회와 좌절감 같은 감정이 <진격의 거인>에서 나타나는 잔혹한 보복장면이나 굴복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 같은 것에 그대로 녹아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입체기동장치’를 활용해 거인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인데, 원작에서 작가가 보여준 만화적 연출을 한 차원 더 업그???이드 한 애니메이션의 카메라워크는 원작의 팬들에게 가장 호평을 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원작만화보다 애니메이션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는데, 이 의견에 반박하기가 힘들 정도로,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은 정말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임이 틀림없다.
-末-
<진격의 거인>은 인류를 잡아먹는 압도적인 존재인 ‘거인’의 정체에 대해 쉽게 밝혀주지 않는다. 거인이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왜 인간을 잡아먹는지, 머리가 부서져도 바로 재생하는 거인의 비밀은 무엇인지, 거인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등 16권까지 진행되었지만 속 시원히 명확하게 밝혀주지 않는다. 그저 작가가 매 권마다 ‘그간의 전투 경험’과 ‘항쟁의 역사 및 연구결과’를 통해 습득한 일부의 단편적인 지혜와 정보를 조금 조금씩 독자에게 풀어내는 형태로 알려주는 것이 다이다.
이렇게 독자로 ??여금 답답하고 조바심 나게 하는 이사야마 하지메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진격의 거인>이 수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여러 요인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독자들은 주인공 엘런을 중심으로 마치 양파껍질 까듯이, 스토리 진행을 따라 하나하나 벗겨지는 거인의 비밀이 곧 이 세계의 비밀임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거인의 비밀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피력하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공포이자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의 정체임을 독자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에 대한 해석은 어차피 각자의 몫이다.
어쩌면 작가인 이사야마 하지메는 <진격의 거인>을 통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힘과 거대함, 끝없이 재생하는 생명력을 무기로 나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악의를 지닌 거인의 공격 앞에서,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대항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신은 싸울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벽 안으로 도망칠 것인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