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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은 일본이 메이지 천황 때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정치적 변혁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단순한 사건적 정의로만 보자면, 정치·군사·외교 등 국가의 치세(治世)에 관한 모든 행위를 ‘막부(幕府)’라 불리는 도쿠가와 가문을 정점으로 한 ‘무사 연합체’가 대행하던 것을 ‘천황(天皇)’이라 불리는 일본의 왕가(王家)가 직접 행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일본을 둘러싼 급박한 국제정세와 서구열강들의 식민지 정책이 팽창일로에 다다른 시기에, 이런 중요한 내적(內的) 변혁 과정을 외세의 개입 없이 스스로 이룩할 수 있었던 힘이, 일본이 향후 서구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 근본적 동력으로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메이지 정부는 학제·징병령·지조개정(地租改正)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 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官)주도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결국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이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첫 발을 ‘메이지 유신’으로 이루어냈고, 유신 성공 이후 신분을 철폐하고, 민주화, 산업화에 주력하는 근대국가의 길로 나아갔지만, ‘부국강병’에만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키다가 결국 ‘제국주의’로 국가의 방침이 흐르게 되었고, 이후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을 강제적으로 합병하여 식민지를 만들고 만주와 태평양으로 진출, 후세에 제 2차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침략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기록으로만 보는 역사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모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 일본의 시대 구분에서 ‘메이지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 즉 1868년 1월 3일부터 1912년 7월 30일 메이지 천황이 죽을 때까지 44년 간을,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심도 깊게 파고들지 않아도 한 가지 확실하게 떠오르는 것은 있다. 아마 당시의 일본인들은 몇 백년 간 지속된 시스템이 무너지고, 갑자기 밀려온 거대한 변화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역사의 변혁기’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매우 혼란스럽다. 갑작스러운 체제변화로 인해 생활 자체가 혼돈에 빠지고, 때때로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시키는 모순 탓에 심한 고통을 받기도 하며, 시대정신과 실제 삶 사이의 괴리 때문에 심신이 괴로워지기도 한다. 지식인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생활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중심’을 찾고자 애쓴다. 그러나 ‘변혁의 시기’ 또는 ‘혁명의 시기’란, 원래 정서적으로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시대’를 뜻한다. 애당초 혁명 또는 변혁이란 것은, 기존의 안정감 있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시기를 직접 자신의 몸으로 겪어야만 하는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혹여 시대에 뒤떨어지지나 않을까 괜히 조바심이 나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며, 마음이 혼탁해지고, 육체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개하는 다니구치 지로(그림), 세키가와 나쓰오(글)의 <도련님의 시대>는 바로 이 ‘메이지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당시에 실존했던 일본 문학계의 몇몇 거성(巨星)들의 시선을 통해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혼란과 변혁의 시대’였던 메이지 시대를 다시금 깊이 반추하고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후손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작화가인 다니구치 지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그만의 개성 넘치는 필력’을 그야말로 극한까지 발휘하여 당시의 시대풍경을 완벽하게 지면 위에 되살려내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잘 만들어진 시대극 한 편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 문학평론가인 작품의 원작자 세키가와 나쓰오는 ‘메이지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거쳐, 일본문학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메이지 시대 문인(文人)들’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대사와 독백’이라는 만화의 형식을 빌려 새롭게 재구성한다. 제22회 일본만화가협회 우수상(1993)과 제2회 데즈카 오사무상(1998)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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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시대>는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 나쓰메 소세키 편, 제2권 무희 편, 제3권 다쿠보쿠의 일기 편, 제4권 메이지 유성우 편, 제5권 거북한 소세키 선생 편, 이렇게 다섯 편이다. 이야기의 연속성은 없지만, ‘메이지 시대’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통일성이 느껴지는 구성이다. 각 권 별로 중심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시선으로 본 시대상과 삶의 궤적을 만화로 엮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1권 ‘나쓰메 소세키’ 편은 (작품의 제목에 들어 있기도 한) 그의 소설 중 하나인 <도련님>을 나쓰메 소세키가 구상하고 집필하던 시기의 모습을 만화로 구성하면서 ‘메이지 시대’의 전반적인 시대풍경을 지면에 재현해내려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제1장의 제목부터가 아주 특색이 넘친다. 1장의 제목이 ‘소세키 선생 맥주에 취하셨을 때의 행색에 대해’이며, 첫 장의 지면은 ‘메이지 38년 11월 도쿄시 혼고구 센다기 57번지’라는 설명과 함께 당시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앵글로 2페이지가 꽉 채워져 있다. 대사는 달랑 두 개로 “짹짹짹”하는 새 소리와 “새로운 소설을 써볼까 하네.”가 전부다. 몇 장을 더 뒤로 넘기면, 툇마루에 앉아 발톱을 깎는 소세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디테일한 설명들이 이어진다. “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 이때 만 38세 10개월, 도쿄 제국대학 문과대학 강사 연봉 800엔, 제 1고등학교 영문학 강사 연봉 700엔, 매달 120엔이 넘는 큰돈이 들어오지만...참고로 메이지 40년 이와테 현 시부타미 진죠 소학교 대리교사였던 다쿠보투 이시카와 하지메의 월급은 8엔에 지나지 않았다...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이 해부터 메이지 대학에도 출강해 월급 30엔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또 몇 장을 뒤로 넘기면, “호리 시로, 협객, 30세”, “아라하타 가쓰조(간손), 전 요코스카 해군공장 직공, 19세”, “모리타 요네마쓰(소헤이), 제 1고등학교 학생, 21세”, “오타 주자부로, 인력거꾼 겸 메이지 대학 학생, 18세” 등의 설명과 함께 발톱을 깎고 있는 소세키 뒤로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바둑을 두거나, 사색에 잠긴 사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주변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작품의 도입부를 시작한다.

1권의 시대배경인 ‘메이지 38년’은 서력으로 고치면 1905년에 해당한다. 즉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37년이 지난 시점인 것이다. 이 ??대의 일본은 마치 ‘혼란을 동력으로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와 같았던 모양이다. 도입부에서 보여준 ‘나쓰메 소세키와 4인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가 1장의 핵심 줄거리인데, 이들은 긴자 오와리쵸의 ‘마사무네 홀’이라는, 당시의 첨단 유행이었던 맥주직영점인 비어홀에서 만났으며, 그들이 혼잡한 비어홀의 한 좌석에 우연히 동석하여 각자의 이야기로 열을 올리다가 소세키의 주사로 인해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일화를 유쾌한 필치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혼잡한 비어홀의 북적거리는 풍경을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배경으로 깔면서, 신경증이 유발한 두통으로 괴로워하는 소세키 주변에 4인의 젊은이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당시의 혼란스러운 일본의 시대상을 ‘술 취한 남자들의 술자리 대화’로 ‘한꺼번에 처리’해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부연설명으로 “러??전쟁은 이 해 9월에 끝났다. 하지만 포츠머스에서 조인된 강화조약의 조건은 일본서민에겐 커다란 불만이었다. 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얻?? 게 적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전쟁수행으로 얻은 외채와 막대한 통화발행은 필연적인 인플레이션을 불렀다. 9월 5일에는 히비야 공원주변이 홀라당 탔다. 일본국민은 러일전쟁으로 국가와 국민의 일시적인 일체화를 경험하고 고양되어 종전과 함께 국가와 국민의 이화(異化), 또는 근대적인 소외로 고민하기 시작했다.”라는 구체적인 시대상에 대한 설명도 뒤따르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부연설명일 뿐이다.
소세키 주변의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 국제정세와 국내정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갑론을박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서 술을 마시던 소세키가 신경증으로 인한 발작을 일으키며 비어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다니구치 지로의 연출은 정말, 고수의 솜씨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유려하고 생기가 넘친다. 필자가 가장 놀랐던 것은 1권 1장을 읽으면서, 몇 장의 술자리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전혀 사전지식이 없었던 ‘메이지 시대’의 혼란상과 시대분위기를 쉽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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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대로 <도련님의 시대>는 각 권별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 있다. 첫 번째 권이 나쓰메 소세키와 그 주변 인물들이라면, 두 번째 권에서는 2권의 제목이기도 한 <무희>라는 소설을 쓴 오가이 모리 린타로, 세 번째 권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인 다쿠보쿠 이시카와 하지메, 네 번째 권에서는 일본 최초의 사회주의자로서 ‘대역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사형을 당하게 되는 고토쿠 슈스이와 그의 동료들, 다섯 번째 권에서는 다시 나쓰메 소세키에게로 돌아와 앞의 네 권에서 등장했던 인물들과 굵직한 사건들을 총 정리해서 보여주는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중심소재인 ‘메이지 문학’에 대한 지식이 필자에겐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야 워낙 유명한 일본의 문호라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정작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모리 린타로나 ??쿠보쿠 하지메 같은 문인들은 이 책을 통해 그 존재를 처음 알았으며, 고토쿠 슈스이 같은 경우도 필자의 기억으로는 문인이 아니라 사회주의자 또는 혁명가, 테러리스트 같은 정치적인 인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메이지 시대’라는 시대에 대한 무지나 ‘메이지 문학’이라는 사조에 대한 무지는 이 작품을 읽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데 있어 적잖은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고, 난해함으로부터 오는 ‘지루함’이 결국 몇 번에 걸쳐 책을 나누어 읽게 되는 번거로움을 불렀다. 이것은 사실,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편하게 권하지 못하는, ‘커다란 장벽’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이 책을 ‘일본 메이지 시대의 문학사조에 관한 어려운 만화’라거나, ‘일본 역사의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 미세하고 디테일하게 고찰한 난해한 만화’라거나 하는 선입견만 없앤다면, 장인(匠人)의 손길로 아주 잘 만들어진 ‘일본사극(史劇) 한 편’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 확신한다.
2권의 말미에 원작자인 세키가와 나쓰오가 밝힌 이 작품의 창작 동기를 보면, “원래 이 시리즈 <도련님의 시대>는 저자들의 억누르기 어려운 흥미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흥미란 ‘일본인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지금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어떤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의 태도와 성향 대부분은 전후 시대보다 훨씬 전인 메이지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정되었다는 가설을 전개한 것이 이 작품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다니구치 지로와 세키가와 나쓰오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고찰하고자 했고, 무엇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메이지 시대’와 ‘메이지 인(人)’이다.
첫 번째, ‘메이지 시대’의 풍경과 생활상은 다니구치 지로에 의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지면에 복원되어 있어서, 그저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의 일본을 편안하고 정확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 ‘그림의 힘’이야말로 소설이나 문학이 갖지 못한 ‘만화의 힘’일 것이다.
두 번째, ‘메이지 인’에 대한 것은 그 시대를 살다간 ‘위대한 문인들’의 삶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해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리얼하게 지면 위에 표현하고 있다. ‘메이지 인’이란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메이지 정신’인 것이고, 세키가와 나쓰오가 위에 밝힌 대로, 2015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본인의 이미지, 일본인의 가치관, 일본인의 틀’이 바로 이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그래서 그 시대를 표현하고 있는 메이지 문학이 일본 근대화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포괄적으로 그 안에 품고 있음을, 작가는 만화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도련님의 ??대>는 결코 쉽게 권할 만한 작품이 절대 아니다. 솔직히 매우 난해하고 생경하다. 하지만 한 번 마음먹고 정독해본다면 결코 후회할 작품이 아니다. 이 분야(일본 문학이나 일본 역사)의 전공자나 이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축복과도 같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어가다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나 무슨 뜻인지 모르는 장면이 등장하면 스마트폰으로 관련 단어나 관련 사건을 열심히 검색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랬다. 공부를 하면서 만화를 읽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 모든 요소들을 차치하고서 딱 한 마디만 더 한다면, <도련님의 시대>는 이런 노력과 수고를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명작’이라는 칭호가 절대로 그냥 붙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만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작’이니, ‘다니구치 지로 일생의 역작’이니 하면서, 왜 이 작품을 몇몇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아마도 납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