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강을 건너서
“저는 때때로 죽은 자의 영혼이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저의 조부가 보이고 있어요.” “사바스카페”, “장난감들의 꿈”, “내일의 왕님”, “네가 사는 꿈의 도시”, “스구리의 계절” 등 많은 작품을 통해서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많은 ...
2012-04-27
김진수
“저는 때때로 죽은 자의 영혼이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저의 조부가 보이고 있어요.” “사바스카페”, “장난감들의 꿈”, “내일의 왕님”, “네가 사는 꿈의 도시”, “스구리의 계절” 등 많은 작품을 통해서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내공이 느껴지는’ 순정작가 에미코 야치(Emiko Yachi)의 단편집 “머나먼 강을 건너서”가 한국어판으로 서울문화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에미코 야치의 작품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정통파 순정만화’라 부를 수 있으며, ‘정신없이 재미있게 읽고 나면 어느새 가슴 속에 밝고 활기찬 기운이 넘치게 된다.’는 독자들의 평이 이 작가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한다. “자네, 물에 나쁜 짓을 했군.” “머나먼 강을 건너서”는 일본의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1926)’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서사극이다.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심각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절대 아닌 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만큼 절묘하게 이야기와 소재가 믹스되어있다는 뜻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주인공인 무구루마 토키오는 ‘기묘한 이야기 소식’이라는 뜻의 인기 없는 잡지 ‘기텐열보’의 편집자이며 호기심이 향하는 대로 불가사의를 찾아 동으로 서로 분주히 움직이는, 기묘한 현상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이 작품의 큰 얼개는 주인공인 무구루마 토키오가 만나고 접하게 되는 여러 종류의 기묘한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별로 완결성 있게 엮어놓은 것이다. 굳이 따로 제목을 정한다면 ‘토키오의 기담(奇譚)’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주인공인 토키오가 자리하고 있으며 매 화마다 이야기에 맞는 매력적인 조연들이 등장한다. “난 포기 안 해. 수상하다느니 저속하다느니 하는 말을 듣더라도 ‘기텐열보’는 내 소중한 책이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잔뜩 있거든, 일본뿐만이 아닌 전 세계로 가서 더욱 더 굉장한 불가사의를 보고 싶어.” 이 작품은 총 다섯 편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자산가의 유산을 놓고 벌어지는 첫 번째 이야기인 “흉조의 우울”로 시작해, 신묘한 무녀를 소재로 아주 잘 만들어진 두 번째 이야기 “금성의 무녀”, 훈훈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세 번째 이야기 “바람의 아이 신의 아이”, 가장 길고(전, 후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심각한 느낌의 네 번째 이야기 “머나먼 강을 건너서”, 마지막으로 작품의 에필로그이면서도 프롤로그 같은 느낌의 외전(外傳)인 다섯 번째 이야기 “미러클 서머타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작가를 좋아하는 팬이던, 아예 모르고 있던 사람이건 간에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쉬지 않고 읽을 만한, 강력하게 추천할만한, 작가의 공력이 느껴지는 깔끔하고 재미있는 ‘기담(奇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