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년
넘쳐나는 미디어들 속에서 우리는 브라운관 속 싱글녀들을 구경한다. 늘 미용실을 갓 나온듯한 헤어스타일에, 쇼 윈도우를 그대로 옮겨놓은 패션. 그리고 완벽한 바디라인. 그녀들은 금방이라고 부러질듯한 킬힐을 신고 입으로는 외친다. “아~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지루해!”라고...
2012-04-11
김진수
넘쳐나는 미디어들 속에서 우리는 브라운관 속 싱글녀들을 구경한다. 늘 미용실을 갓 나온듯한 헤어스타일에, 쇼 윈도우를 그대로 옮겨놓은 패션. 그리고 완벽한 바디라인. 그녀들은 금방이라고 부러질듯한 킬힐을 신고 입으로는 외친다. “아~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지루해!”라고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미디어들이 만들 놓은 싱글녀들의 이미지다. 하지만 돌아본 현실은 어떠할까? 늘 헤어스타일은 정리 정돈이 되지 않고, 옷매무새는 늘 부스스 하다. 매일 다이어트에 도전하지만, 늘 터질 것 같은 허벅지 라인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현실속의 우리다. 이 만화 “몹쓸년”은 이러한 현실속의 여성들을 가감없는 시선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붓으로 그린 그림 조차 일말의 환상을 부여하지 않는다. 조금은 둥근 얼굴들. 그리고 약간은 살이 찐 듯 안 찐 듯한 몸매. 더 이상 화려하지 않은 패션들은 투박하지만 섬세한 붓그림을 따라 책장 하나 하나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만 그럴까?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이 만화는 수많은 “몹쓸년”들에 대한 이야기다. “딸이어서 힘들었다. 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생각이 앞섰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몹쓸년’이라는 호명으로 시작된다. 내가 내 엄마에게 몹쓸년이었고, 내 스스로에게 몹쓸년이었던 기억들의 이야기여서 그렇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만, 시차를 둔 우리의 시간을 이해 못 해 서로 꽤나 ‘몹쓸’ 사람들 좀 되지 않았나. 그래도 ‘몹쓸년’, 이 어감에는 애틋한 무언가가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개를 숙이게 되지 않나 싶다. 후회스러워, 못 지워 그런 걸까. 스스로도 떠올리고 싶지 않아 그런 걸까. 그 시간들이 지금도 오늘의 나에게로 흘러온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의 나와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참 애썼다고 안아주고 싶다.”(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의 딸인 우리가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일상들의 굴곡 없이 한 장 한 장 펼쳐진다.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혹은 엄마나 아빠와의 대화에서 끊임없이 결혼을 강요받는 30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늘 벼랑 끝에 몰려 선택을 강요받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확실히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떠밀려가듯이 결혼이라는 새로운 굴레에 몸을 던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 주변의 걱정을 한몸에 사며 불안한 싱글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맞는것일까? 일상의 미혼의 30대 여성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살아간다. 만화 “몹쓸년”은 단편들을 통해서 이러한 여성들의 삶을 정확히 펼쳐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친구는 결혼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헤어짐 앞이다. 티 내지 않으려 애쓰던 감정이 터진다. 우습고, 질린다면서도 끈을 쉽게 놓지 않는다. 누구는 능력이 없으니 가라고 하고, 누구는 능력 키워 가라 한다. 우리 엄마들은 말이다.”(내 친구의 결혼식 中) 물론 30대 미혼 여성의 삶에서 결혼만이 최고의 화두는 아니다.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한 엄마의 삶을 엿보게 되는 “어머니의 텃밭”이라든가, 더러운 운동화를 빨아신지 않는 딸내미의 행색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애잔함을 엿볼수 있는 “아빠를 위하여” 나, 혹은 우연히 타게된 버스안에서 운전기사와 나누는 대화속에서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풍”과 같은 단편들은 흔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면들은 담담히 그려내는 작가의 재능을 맘껏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늙어버린 엄마 미안... 그런데, 엄마가 늙어서 편해.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였을 그때는 어려웠던 시절. 부리도, 발톱도 곧추 세운 암탉이어야 했을거야. 언제나 멋졌지만, 아팠어. 그렇게, 엄마는 내가 아는 최고의 암탉. 서른을 맞았을 때는 놀라웠다. 겁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서른넷을 맞고 보니 겁을 못 준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이대로 팔려갈수 없다 中) 10여년간의 단편을 모아 책으로 만든 작가 김성희는 “가까이 있는 불행이 살아가는 힘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순간 웃고 소비되는 것일 뿐이다.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힘은 불행이다. 이유 없는 긍정론보다 이유 있는 부정론을 대면할 필요가 있다. 괴롭겠지만 그래야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인 인터뷰 中) 인생이 마냥 핑크빛 만은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그래도, 행복하게 사랑을 하면서 살아고 싶다는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 이 책 “몹쓸년”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특히 단편의 마지막인 “이대로 팔려갈 수 없다”편에서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든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아무리 팔려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혹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혼자라는 고독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내려고 하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이라는 걸, 작가는 말해주고 싶었는게 아니었을까? 작가가 남긴 굵은 손글씨와 인생의 무게 느껴지는 그림을 마주하며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