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이 글을 쓰고 양규 작가가 그린 웹툰 <한도수>는 영화 시나리오의 웹툰 사전제작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관련 업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간 웹툰은 콘텐츠IP(지적재산권)의 측면에서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다. 특히 시각화되어 영상미학적으로 구현된 시각적 이미지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를 통해 기존의 인기 흥행 웹툰의 팬들을 영화 관객으로 유입할 수 있으며, 웹툰의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어떤 현역 배우들과 매칭되는지에 대한 대중의 많은 관심이 쏠리는 등 마케팅 관점에서도 효용가치가 높았다.
<한도수>는 웹툰 플랫폼 ‘투믹스’에 2018년 12월부터 시작하여 2019년 5월까지 총 28화를 연재한 웹툰이다. 제호(題號)는 작중 주인공 이름으로, 그의 40대 초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큰 칼'을 차고 나온 그의 사주에 대하여 부모를 힘들게 할 팔자라고 점쟁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작품 초반, 증권맨 한도수 팀장은 다른 증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직하지만 함정에 빠져 많은 채무를 진 채 빚쟁이 신세가 된다. 한도수는 채권행사를 하러 온 이초라는 인물이 거주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이 TV방송에서 떠오르는 역술인으로 소개된 것이 인연이 되어, 이초와 함께 한 팀으로 역술원을 차리게 된다. 이후, 재계서열 3위의 대기업 후계자 권력다툼의 정점에서 역술인이자 책사로 활동을 펼친다. 그는 대기업 후계자 구도의 다툼에서 ‘칼잡이’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연희라는 여성 무당을 만나게 되며, 새로운 꿈을 품고 해외 진출을 도모하지만 배신을 당하고 곤경에 빠진다. 주인공 한도수는 과연 그의 사주대로 제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연출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사주’는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일반적 소재이기는 하나, 역술인들에 대한 인물 중심의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이 신선하다. 주인공의 내면의 고뇌와 본인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힘겨운 노력은 신에게 부여받은 '각자의 받은 몫'을 어떻게 감당해내는지에 대한 역경의 과정이다. 그 이면에는 ‘대권주자’라는 정치권과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재계의 담합이 스토리에 녹아 있어, 웹툰 속 갈등구조와 사건들의 전개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간 사주와 관상 등을 다룬 만화로는 허영만 화백의 <꼴>, 영화로는 <관상> 등이 있다.
영화는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장르 중 하나다. 전국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다수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적게는 수십 억에서부터 많게는 수백 억의 투자금이 들어간 고가의 작품이다. 충남영상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60억 이상 투입되는 영화제작이 늘어난 만큼 BEP(손익분기점)를 넘기는 데에 대한 제작사의 부담감이 커진 상황이라고 한다. 이처럼 웹툰 사전기획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살핀다면 흥행에 대한 자신감을 갖거나, 실패와 부진에 대한 리스크를 대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복수의 관계자 의견이다. 최근 영화 투자ㆍ배급사 대표 또는 임원들이 웹툰회사가 설립한 회사로 이직한 사례가 많은데, 레진코믹스나 카카오페이지 등 웹툰IP로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언론사 발표가 줄을 잇는 이유이다. 이미 검증된 콘텐츠IP(Intellectual Property)로 부가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과거 영화산업은 극장 매출 외에 DVD, 디지털 유통(IPTV, OTT 등), 해외 판권 수출로 부가수익을 올리던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웹툰의 공동기획 및 제작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창출 윈도우를 늘리는 형국이다. 영화에 제작과 유통에 투입되는 비용인 순 제작비와 P&A(Print & Advertizing)비로 구분되는 상황에서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웹툰 제작비용이 부가 판권 '매출' 즉, 수입원으로 재환원되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기획은 게임-만화, 공연-만화, 음악-만화 등 다양한 장르와의 크로스 오버로 확대되고 진화할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으로는, 만화가 자생적 콘텐츠 장르로 자리매김을 강화하지 않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
웹툰 <한도수>의 시나리오를 쓴 곽경택 감독이나 웹툰 <스틸레인 3>의 시나리오를 맡은 양우석 감독의 경우처럼, 영화계 인사의 웹툰 제작 참여는 성공한 웹툰 IP의 영화화라는 멀티윈도우, 또는 OSMU로 표현되는 콘텐츠 IP의 다각화 전략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웹툰-영화 공동기획,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첫째,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웹툰이라는 저비용의 콘텐츠 제작을 통해 수십 억에 육박하는 영화 투자에 앞서 사전 검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댓글 문화가 자리 잡은 웹툰 생태계에서 생생한 독자들의 반응을 토대로 연출의 완급을 조절하고 검증할 수 있다. 지난 몇몇의 흥행 웹툰 작품의 영화화 사례를 보면, 웹툰 원작의 흥행이 영화 흥행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보장은 어렵지만 다양한 투자처에서 자금을 펀딩 받아야 하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웹툰의 흥행 성공이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냉담한 반응 또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 개봉 전까지 대중의 반응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콘텐츠의 생리적 특성상 사전공개 웹툰의 흥행 실패는 이 작품을 보완해서 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에서 멈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웹툰의 독자-영화의 관객을 아우르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통합마케팅이 펼쳐질 것이다. 영화와 웹툰의 공동기획은 웹툰 플랫폼 구독자와 영화관 이용객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마케팅 전략 수립에 근거한다. 흥행한 웹툰을 놓고 영화화를 고민하고 이후 각색과 그에 적합한 배우 캐스팅 등 제작팀 구성 등은 절대적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의견 조율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기간은 트렌드 변화가 급변하고 있는 시장환경 속에서 적기를 놓쳐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영화화를 염두에 둔 웹툰 연출은 점점 더 웹툰이 영화를 닮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다. 웹툰은 출판만화와 달리 페이지의 구분과 경계가 없다. 영화의 스크린처럼 웹툰의 배경은 독자가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 화면이다. 페이지의 구분이 사라진 웹툰에서 스크롤의 내림은 마치 영화 필름의 롤과 같아서 시간의 연대기적 변화를 구성한다. 이러한 매체적 특성은 비쥬얼 스토리텔링에 있어 영화에서 사용되는 연출방식을 공유하고 차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며 시각적으로 영화적 표현을 닮아가기 쉽다.
<한도수>를 읽고 나서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긴 여운은 비단 영화화를 목적으로 제작한 시나리오 사전 공개작이기 때문이라고 넘겨짚을 수 있으나, 웹툰 <한도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며, 독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낸 작품이다. 그간 역술인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장르가 공포나 미스테리, 또는 스릴러에 가까웠다고 한다면, 웹툰 <한도수>는 사내정치 또는 권력다툼을 배경으로 한 한도수라는 역술인의 성장드라마에 가깝다. 또한 사회비판적으로 실력 있는 대권주자와 엄청난 부와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진 대기업 장녀조차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역술인 한도수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행태를 꼬집는다. 그러나 정작 역술인 주인공 스스로도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저 현상의 기저를 읽어내는 방법론으로 사주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오는 화를 깨닫고 자신의 생활에 자족하는 인생관을 갖추게 된다는 성찰 과제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미래’는 모든 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내가 스스로 개척해야 할 미지의 영역임을 웹툰 <한도수>를 통해 확인해본다.
임재환 (만화학 박사)
충남문화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포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