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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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만화리뷰] 우리나라의 배트맨, ‘비질란테’

웹툰 <비질란테>는 이렇게 개선 없이 반복되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작중 범죄자들은 살해, 강간, 폭행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지만, 법의 선처를 받고 손쉽게 풀려난다. 이 과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오히려 처벌을 받아야 할 가해자들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듯한 모습을 집중적으로 비추어 법은 피해자의 편이 아닌 가해자의 편임을 어필한다. 이때 이런 법의 구멍 즉, 법과 국민 정서의 괴리감을 주먹으로 메우겠다는 신념을 가진 ‘비질란테 김지용’이 나타나 언제나 안하무인하던 범죄자를 폭력으로 다스리고 응징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2019-10-21 김재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표현에 공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확실한 의사전달이 되는 것은 만국 공통이겠지만, 특히나 한국어는 서양의 언어와 달리 서술어가 맨 마지막에 오기 때문에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는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이처럼 끝에 어떤 단어, 어떤 문장이 오느냐에 따라 내용이 180도 달라지는 언어적 특성은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에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미디어나 네티즌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컨텐츠를 제작하는 등,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대가 일상에서 법정으로 바뀌는 순간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닌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롤러코스터로 변한다.


 누구나 한 번쯤 뉴스나 신문을 통해 중범죄자들의 판결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판결문 초반에는 죄질 불량, 반인륜적, 반사회적, 극악무도, 엄중한 처벌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마치 피고인을 극형에 처할 것처럼 말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곧바로 ‘하지만’이라는 단어와 함께 쏟아지는 합의, 초범, 미성년자, 심신미약, 반성 등의 어처구니없는 감형 사유가 피해자와 유족들 나아가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릴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웹툰 <비질란테>는 이렇게 개선 없이 반복되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작중 범죄자들은 살해, 강간, 폭행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지만, 법의 선처를 받고 손쉽게 풀려난다. 이 과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오히려 처벌을 받아야 할 가해자들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듯한 모습을 집중적으로 비추어 법은 피해자의 편이 아닌 가해자의 편임을 어필한다. 이때 이런 법의 구멍 즉, 법과 국민 정서의 괴리감을 주먹으로 메우겠다는 신념을 가진 ‘비질란테 김지용’이 나타나 언제나 안하무인하던 범죄자를 폭력으로 다스리고 응징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주인공인 김지용은 낮에는 성실한 경찰대 학생으로 주말에는 범죄자를 처단하는 비질란테가 되어 사투를 벌인다. 비질란테는 전형적인 ‘다크히어로’다. 초한지, 홍길동, 배트맨, 비질란테에 이르기까지 정의로운 범법자들이 악을 응징하는 ‘다크히어로’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기 소재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범법 행위를 통해 주인공들이 대신 해결한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가해자의 인권 또한,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타났으며 실제로 법도 이에 맞춰 발전해왔다. 이 때문에 고전소설에서는 범죄자라 할지라도 장수로 등용하여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전개가 종종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국민과 국가를 대신해 범죄자들을 응징했다 하더라도 결국엔 범법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크히어로’들은 스스로의 정의를 실현하면서 수사기관에 잡히냐 안 잡히느냐가 작품의 주요 스토리가 된다. 




 다시 비질란테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비질란테 김지용은 체포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김지용은 작중에서 ‘천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천망은 악한 사람은 잡기 위해 하늘에 풀어놓은 그물이라는 뜻으로 언뜻 보기에는 느슨해 보이지만 절대 놓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김지용은 법이 범죄자를 풀어준다고 하여도 자신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의미를 담아 이를 범행현장에 남겨놓는데, 이 말은 비질란테로서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자인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에 ‘천망’은 김지용도 언젠간 체포될 것이라는 암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 김지용의 경찰대 수업 도중 우리나라 살인범의 검거율이 98.5%라고 언급되는 장면으로 말미암아 비질란테 김지용이 1.5% 확률로 천망을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비질란테>는 작중의 지명이나 사건, 인물은 실제와 연관이 없는 창작물일 뿐이라고 선을 긋지만 작중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모티브로 재구성된 것들이다. 현실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들을 각색하여 사용함으로써 스토리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독자들이 작품에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며 작중 사건의 범죄자들이 주인공인 비질란테에게 응징을 당할 때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쾌감이 크면 클수록 씁쓸함도 함께 커져만 간다. 웹툰과 달리 현실에서는 법의 허점을 선처라고 생각한 채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는 가해자들이 셀 수 없이 많으며 이 구멍을 메워줄 비질란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에선 비질란테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선량하고 유능한 사람들에 의해 사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여러 계기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쌓여왔던 부조리가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언젠가 판결문을 끝까지 듣지 않더라도 당연히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우리 모두 비질란테를 정주행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