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좀 더 그럴듯하게 표현하자면 시대를 잘 타고난 작품만이 현세에 빛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고흐처럼 훌륭한 예술가조차도 때를 잘못 만나면 별 수 없다. 때를 잘못 만난 이 비운의 예술가는 생전에는 불우한 삶을 보내고 사후에야 비로소 인정받았다. 아니, 거창하게 비운의 예술가까지 갈 필요도 없다. 각종 예능과 유튜브 채널 '와썹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전 GOD 멤버 ‘박준형’씨만 보아도 그렇다. 한결같이 산만한 태도와 자유분방한 어휘를 고수했던 박준형씨는 이러한 태도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최근에 와서야 빛을 발했다. 심의가 엄격했던 과거에는 과하다고 판단되어 매번 편집되었던 말투가, 지금에 와서는 참신하다는 평가와 함께 박준형씨만의 개성이 된 것이다.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하는 것은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빠르게 소비되는 스낵컬처의 특성이 다분한 웹툰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하다. 공모전 입상을 통하여 네이버에 정식으로 연재된 <공감.jpg>라는 웹툰이 그 예이다. 대부분의 별점이 5점 미만1)인 이 작품은 형편없는 작화로 인하여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맛’2)이라는 유행 코드에 편승하여 1년간이나 무사히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네이버에서 무려 4년 동안이나 연재되었던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이라는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ABO식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유사과학이 터무니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금 이런 작품이 나왔다면, 각종 굿즈까지 출시할 정도로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 시대의 유행을 영리하게 이용했던 「공감.jpg」(왼쪽)와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1) 네이버의 점수 체계는 10점이 만점이다.
2)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자 비속어. 주로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마찬가지로 시대를 잘 타고난 작품 <개를 낳았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선’작가의 <개를 낳았다>는 주인공인 ‘다나’가 반려견 ‘명동’을 입양하면서 겪는 일상을 그린 네이버 웹툰이다. 인간이 개와 함께하게 된 것은 매우 오래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반려견 수가 최근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올해 발표한 ‘2019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까지 등록된 반려견의 총 숫자는 209만 2,163마리로 조사되었다. 등록된 반려견만 이 정도이니, 실제 반려견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자체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반려 동물과 관련된 단어에 특히 잘 드러난다. 귀여워하고 즐긴다는 뜻의 ‘애완견’은 인생의 짝이 된다는 뜻의 ‘반려견’으로 바뀌어 자리 잡았으며, 동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의 ‘주인’은 ‘보호자’로 바뀌었다. 부정적인 인상을 주던 ‘도둑고양이’가 중립적인 ‘길냥이(길고양이)’로 바뀐 것만 보아도 반려 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려인구 수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동물은 인간의 소유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주를 이루었던 이전 세대라면 이러한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개를 낳았다>가 시대를 잘 타고 난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은 강아지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이 증가하고, ‘짱절미’, ‘이웃집의 백호’ 등 강아지가 에세이까지 출판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를 낳았다>가 「공감jpg」처럼 시대의 유행에만 편승하는 졸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개를 낳았다>는 편안한 그림체와 공감 가는 스토리를 통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하 반려인)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이하 비반려인)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행복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 필자같은 비반려인은 반려견이 주는 행복감이 어떠한 종류의 경험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반려견이 있으면 왜 좋은지에 대하여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비반려인을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복감은 흑백이었던 다나의 세상이 명동이와의 만남으로써 컬러로 바뀌는 0화에서 부터 묘사된다.
△ 만날 친구도 없고 나 자신이 닳아버린 것 같던 다나의 인생은 명동이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실제로 다나의 인생은 명동이를 만나고 바뀐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결과적으로 명동이 덕분에 자기 자신을 책임감 있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바꾸게 된다. 다나에게 명동이는 삶의 태도를 변하게 할 만한 존재임이 잘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설명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반려인들만 공감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려인에게 당연시되는 ‘개=행복’의 공식이 비반려인에게는 쉽사리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품의 주인공인 다나는 물론이요, 작가 자신도 반려인인 상황이므로 비반려인을 배려한 이러한 세세한 설명은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를 낳았다>는 명동이가 주는 영향력을 작품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표현함으로써 비반려인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며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개를 낳았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반려인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다나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명동이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나가 바쁠 때에는 같이 사는 동생이 명동이를 돌본다. 부모님도 반려견에 대해 호의적이다. 비교적 이상적인 조건의 반려인인 셈이다. 반면 다나의 고향 친구인 주희는 평범한 직장인이며 동거인도 없다. 주희의 반려견인 ‘주주’는 주희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긴 시간을 홀로 보내고 이로 인해 분리불안, 식분증, 짖음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밖에도 개는 좋아하지만 마당에서만 반려견을 키우기로 결정한 다나의 부모님이나, 형편상 개를 묶어놓을 수밖에 없는 달래네 할머니 등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한다.
△ 「개를 낳았다」에는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반려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반려인들은 다분히 현실적이어서, 마치 내 주위에 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특히 1인가구를 대변하는 주희의 상황은 많은 반려인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외로워서 입양한 반려견이 도리어 인생의 짐처럼 느껴지고, 이제와 무를 수도 없는 그 짐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주희의 상황은, 섣불리 입양을 결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점잖은 경고를 보낸다.
무엇보다도 <개를 낳았다>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내가 구매하지 않으면 안락사 당할 것이 분명한 애견숍의 강아지를 구매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인가?’ ‘집 밖보다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이가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지탄받을만한 일인가?’ 등 가치판단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 독자가 고민하게 만든다. 아직 반려동물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하여 논의가 더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개를 낳았다>는 섣불리 한쪽 편을 드는 대신에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서 멈추고, 이에 대한 논의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품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대를 잘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를 낳았다>는 읽어 봄직한 좋은 작품임이 분명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반려인들과 반려견들이 선사하는 감동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데, 반려동물과의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에 생각할 거리까지 던져주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