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들 알겠지만, 이런 시가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1)
그러나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엉망인 것에 가깝다. 그 사실이 우리를 또 한 번 슬프고 노엽게 할 뿐이다. 다가올 내일이 최소한 오늘만큼은 슬프고 노여울 것이 분명한데 어찌 안 그럴 수 있을까. 우울한 날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온다고? 대체 언제. 그렇게 말하는 시야말로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낙관의 말을 믿고 고통에 초연하기에 우리는 기록이 너무 많은 시대에 태어났고, 오늘에 혹사당하고 내일에 배반당하는 선조들을 보며 의심만 많아졌다. 허풍 심한 자기계발서를 보듯 시를 보는 눈에 쌍심지가 켜지는 이유다.
지나간 것이 소중하다면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소중한 것이 지나가 버렸거나 아주 뭣 같았던 것이 드디어 지나갔거나. 끔찍한 것들은 눈치도 없어서 지나가는 속도도 더디다. 모든 시간이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소중해지지는 않는다.
1) 알렉산드르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최선 역, (서울: 민음사, 1997).
01.
끔찍한 것들 사이에 소중한 것을 끼워 넣는 이유는 그래서다. 우울한 날들을 견디기 위해 현대인들이 터득한 삶의 지혜랄까. 이를테면 퇴근 후 마시는 맥주, 돈 많은 백수를 꿈꾸며 사는 복권, 삭막한 공간을 밝혀줄 작은 화분, ‘최애’를 기리며 지르는 모든 것들… 달리 말해 결제, 결제, 결제, 결제…. 그렇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해주는 것은 한 떨기 시보다 당장의 ‘사는 행위’다. 슬픔은 존재론적 고민보다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오니까. 웹툰 <그래서 오늘도 삽니다>는 바로 이 자본주의적 슬픔과 기쁨을 그려낸다.
설정은 얼핏 판타지 같다. 로망과도 같은 작은 개인 서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 ‘하루’가 매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잘생기고 다정한 두 명의 남자와 일하는데, 스스로는 전혀 자각이 없고, 당연히 이 둘은 하루를 좋아한다. 일러스트처럼 세련되고 산뜻한 그림체에 걸맞은 연애 ‘판타지’ 설정이 아닌가.
그런데 이 귀엽고 예쁘기만 할 것 같은 만화가 프롤로그부터 욕으로 시작한다. 일명 ‘ㅅㅂ비용’ 때문이다. ‘ㅅㅂ비용’은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로 이 만화의 핵심 소재다. <그래서 오늘도 삽니다>는 연애 판타지가 아니라 하이퍼리얼리즘 직장인 생활툰으로 봐야 한다. 판타지 같은 설정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뭣 같은, 돈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스트레스 요인들이 만화 곳곳에 지뢰처럼 재현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슬프게 하며 그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주인공 하루의 구매 이력을 통해 엿볼 수 있다.
02.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동료로 있고 좋아하는 책에 둘러싸여 일하고 있으니, 하루가 일하는 서점이 누군가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장은 결국 직장이다. 고상해 보여도 책을 나르는 일은 결국 육체노동이고, 잊을 만하면 진상 손님들이 등장하니 정신노동은 그 이상이다. 거기다 한때 작가를 꿈꿨기에 이루지 못한 꿈이 열패감을 주고, 차선으로 선택했던 편집자 일은 폭력적인 노동 환경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ㅅㅂ비용’이 괜히 퇴근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이 복권처럼 말이다.
일확천금이 다소 허황된 꿈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해방을 기대하며 복권을 지르는 사람은 하루만이 아니다. 그 누가 복권을 무시했나. 생각해보면 만 원으로 한 주가 행복할 수 있다니 이만큼 가성비 좋은 합리적 소비가 어디 있을까. 더욱이 수익금은 공익을 위해 쓰이니 선순환도 이런 선순환이 없다.
다만, 사소한 소비 하나에도 이렇게 구구절절 사유를 늘어놓으면서 어쩐지 지는 기분이 되는 것은 왜인가(물론 복권의 효용은 절대 의심할 바 없지만). 열심히 일했으면 그것으로 될 것을, 망할 신자유주의 사회는 돈까지 똑바로 쓸 것을 강요한다. 성실히 저축하고 눈치를 발휘해 재테크까지 해야 하니 충동적 소비는 ‘멍청하다’ 말한다. 가련한 현대인은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도 구차히 사유를 밝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필요한데…’와 ‘아니, 내가 그 고생을 하는데 나한테 이 정도도 못 해주나?!’의 사이 어디쯤. 하루의 구매 이력에 품목, 가격과 함께 ‘사유’가 적혀 있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다. 신자유주의적 감시자가 체내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오긴 하지만, 장난스레 적어놓은 구매 사유를 보는 것이 이 만화가 주는 독특한 재미 중 하나다. 집에 수십 장도 더 있는 앨범을 왜 또 사는지, 키워서 돈 나오는 것도 아닌 식물은 뭐 하러 사는지, 따지고 보면 결국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그냥’에 가까운 이유지만. 없는 장점까지 만들어 그럴싸하게 합리화하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솔직한 심정을 고백해가는 일련의 전개 과정이 짠하고 재미지다.
03.

<그래서 오늘도 삽니다>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되는 또 하나의 슬픈 진실은 자꾸만 ‘ㅅㅂ’을 외치며 돈을 쓰게 하는 현실이 유독 ‘여성’에게만 더욱 하드 버전이라는 것이다.
PMS(Premenstrual syndrome, 월경전증후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사 먹을 일 없었을 ‘믹스베리초콜렛케이크’가 그 단적인 예다. 옆 사람 숨소리마저 거슬리고, 평소라면 심상히 넘겼을 것들이 세상의 음모로 곡해되는 기이한 한 주(개인에 따라 그 이상). 그나마 하루에게는 눈치껏 차분한 피아노곡을 틀어주고 따땃한 고양이까지 안겨주는 서점 사람들이 있지만, 두 남자의 존재는 이 만화의 유일한 판타지적 요소다. 현실에선 내색할 수 없어 진통제로 버티며 일해야 하고, 운이 나쁘면 ‘뭐 그렇게 유난이냐’며 면박 주는 하루의 전 애인 같은 인물들을 마주칠 수도 있다. 개복치한테도 그것보다는 친절할 텐데. 이러니 안 쓰고 배길 수가 있나. 세상의 호의를 기대하느니 당장 내 돈으로 디저트를 사 먹는 것이 2만 배 낫다.
애석하게도, <그래서 오늘도 삽니다>가 그려내는 여성 스트레스 요인은 이게 시작이다. 남자 좀 만나라는 (부탁한 적도 없는) 충고를 털어내기 위해 먹는 훠궈, 구애를 빙자한 스토킹을 피해 타는 택시비, 오빠만 챙기는 엄마와 싸운 뒤 화해하기 위해 산 맥주 네 캔 등…. ‘여자라서’ 겪는 수모들이 낱낱이 재현돼 분통을 터뜨린다. 어느 댓글의 말대로 “공감 가는 거 너무 많아서 화”가 나는 것이다. “다독여주고 같이 분노해주는 짱친 같은 웹툰”과 밤새도록 푸념을 주고받는 느낌이다.
PMS도 성격 문제로 치부했듯 누군가는 또 의심하고 부정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이 일들이 증명해야 하는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를 지닌 현실이라는 것을. 무시당하고 위협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맞대응할 수 없고, 어쩌다 누군가 도와줘도 기쁘기보다 무력감과 수치심이 앞서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루가 아저씨들로 가득해 매번 참고 지나쳤던 돼지국밥집에 들어서며 “이것을 해내야 오늘의 수모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비속어를 쓰듯, 최소한의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돈을 쓸 때가 있다.
04.
비속어 사용이 고통을 경감시켜준다는 연구결과를 차치하더라도, 그냥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계까지 차오를 때, 차라리 욕이라도 하면 어딘가 조금은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던가. ‘ㅅㅂ비용’의 효용은 비속어의 효용과 같다. ‘ㅅㅂ!! 비용’. 크게 느낌표를 붙여 소리 지르듯 박력 있는 결제가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구제한다. 매일같이 제멋대로 자라나는 감정의 심지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길을 터준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삽니다>라는 제목에 걸맞게 매 에피소드 ‘ㅅㅂ비용’을 치르는 이 만화도, 두 가지 상황에서만큼은 결제 없이 지나간다는 점이다. 바로 출근하지 않는 날, 그리고 엄마와 다퉈 상심이 너무 큰 날이다. 달리 말해 ‘ㅅㅂ비용’을 쓸 만큼 화낼 일이 없는 날과 ‘ㅅㅂ비용’으로도 해소할 수 없이 힘든 날. 결국 가장 좋은 것은 그냥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현생이 개선될 리가 있나. 없으니까 현생이다. 바르고 고운 말만 쓰자는 말은 언젠가 바르고 고운 세상에서나 쓰도록 하자. 그보다 가까스로 넘긴 하루를 소소하게 위로할 만화 한 편은 어떨까. 현재니 미래니 다 됐고, 일단 재밌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삽니다>!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도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결제해서 봐도 괜찮다. 그것이 당신을 즐겁게 한다면 괴팍해도 좋다. 왜냐하면, 나도 질렀으니까. 말이 나온 김에 마감하느라 고생했으니 다음 편도 결제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