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본능적이다. 고작 생후 6개월 아기조차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에게는 호의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된다. 물론 사람들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이 누구에게나 외모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외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매미와 희세 작가의 <마스크 걸>은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집착과 광기, 그리고 파멸을 그린다. 얼마 전 네이버에서 2부 연재가 종료된 이 작품은 큰 키와 완벽한 몸매를 가졌지만 얼굴은 그다지 예쁘지 않은, 네이버에 실린 웹툰 소개를 그대로 옮기자면 “얼굴은 끝내주게 못생기고 몸매는 끝내주게 좋은 여자, 김모미”의 이야기이다.
모미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이 되면 가면을 쓰고 “아메리카 TV”에서 “별캐쉬”를 받는 “마스크 걸”이 된다. 주인공은 콤플렉스인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완벽한 몸매를 드러내고 모니터 너머 수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즐긴다. 첫 회에서 모미가 마스크와 금발 가발을 쓰고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장면부터 이 웹툰은 독자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선사한다. 네이버에서는 보기 드물게 성인 인증을 해야 열람할 수 있는 만 18세 이상 웹툰이기는 하지만 실재하는 모 플랫폼과 선정적인 인터넷방송을 떠올리게 하는 이 설정부터 <마스크 걸>은 범상치 않다.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어 가면서 첫 회의 충격은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린다. 독자들은 매회 극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놀라지 않겠노라 선언을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극은 ‘막장’으로 치닫는다.
1부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코믹극이었다. 이야기는 완벽한 몸매와 못생긴 얼굴이라는 극단적인 부조화가 가져오는 모미의 뒤틀린 자격지심과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비트는 풍자로 시작한다. 그러나 모미 주변인물들의 위선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작품은 막장 드라마가 되었다가 2부에서는 스릴러로 진화한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완벽한척 하지만 실은 어리고 예쁜 부하 여직원과 불륜관계인 박부장,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포장하지만 정작 자신은 온갖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모미의 직장동료 상순, 예쁜 얼굴을 무기로 무난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별 죄의식 없이 유부남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아름,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과 성차별적인 발언이 일상인 고과장처럼 모미의 주변에 선하고 상식적인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불행의 시작이다. 회사에서 받는 차별과 인터넷 방송에서 받는 찬사는 모미의 일상을 낮과 밤으로 구분 짓고 모미조차도 혼란스러운 이중생활을 만든다. 결국 모미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이 살인은 계속되는 비극을 낳는다.
성형으로 미인이 된 모미가 얼굴과 이름을 바꾸고 등장하는 2부는 1부에서 보여줬던 웃음기가 완전히 가시고 스릴러가 된다. 모미는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며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새로운 인생을 훔치려고 갈망한다. 그토록 원하던 아름다운 얼굴을 갖게 되었지만 모미의 삶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모미가 손에 넣은 미모도 결국 타인들에게는 ‘성형미인’이니 ‘성괴’라는 이름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이다. 가면을 써야 주목을 받았고 가면을 벗었지만 거짓 얼굴과 이름을 갖게 된 모미가 누구에게도 솔직할 수 없듯이 그녀의 곁에도 겉과 속이 다른 인물들만 모여든다. 인위적이긴 하나 미모를 갖게 된 모미의 욕심은 그만큼 커지고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악행은 더욱 치밀하고 잔인해진다. 여기에 1부에서 모미에게 희생된 주오남의 어머니인 김경자의 모미를 향한 복수극이 가세한다. 김경자는 아들을 향한 비뚤어진 애정 때문에 아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민을 결코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김경자는 아들이 죽은 후에 자신의 죄책감을 모미를 향한 맹렬한 분노와 복수로 상쇄시키려 한다. ??미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라라는 연인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파멸해가는 캐릭터이다. 2부에서는 보다 복잡하고 상식으로 설명하기 힘든 뒤엉킨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걷잡을 수 없는 진흙탕으로 빠져든다.
더 이상의 막장 드라마는 없을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스토리이지만 <마스크 걸>이 던지는 화두는 꽤 심각한 것들이다. 성차별, 여성혐오, 남성혐오, 외모지상주의, 이기주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댄 언어폭력과 미디어의 선정성까지 현대사회의 모순이 모두 한 그릇에 담겨있다. 이 다양한 모순을 그대로 투영하는 인물들 또한 정상적인 부분을 찾기 힘들만큼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자신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범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들의 행동에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 혹은 원인을 제공한 악인의 존재가 전재된 것이므로 책임감 또한 느끼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조차 최소한의 측은함과 동정을 보낼 수 없는 상황에 독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웹툰은 꽤나 자극적이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작가는 권선징악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참회나 회환 또한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독자들은 불량식품 같은 이야기를 실컷 즐기더라도 교훈적 결말로 홀가분해지고 싶어 하지만 작가들은 더 암울할 것 같은 암시만을 던진 채 2부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처럼 이 작품이 단순한 막장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악인들의 섣부른 뉘우침을 그리지 않는 데에 있다. 이야기는 제 멋대로 아주 활기차고도 거침없이 흘러간다.
김모미라는 아름다운 몸매에 형편없는 얼굴을 가진 여자. 그리고 형편없는 얼굴보다 훨씬 더 최악의 내면을 가진 인물은 이야기를 나락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모미가 처음부터 추악한 내면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기는 했지만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실재의 삶과 인터넷 TV 안의 삶을 나름대로 잘 양립시키던 모미가 내면에 있던 악의 본성을 끄집어내는 계기는 그녀에 대한 주변의 차별적 시선과 위선이었다. 모미를 절대악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못 생긴 얼굴이라는 약점과 콤플렉스의 원인을 제거한 후에도 그녀는 악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쁜 얼굴을 갖게 된 2부에서 모미는 위선자가 되고 철저한 가해자가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 했던 거짓이 거듭되면서 모미는 어느새 자신의 죄는 잊은 채 새로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처참하게 망가진다.
구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스토리이지만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이유의 하나는 스릴러 보다는 개그 만화에 가까운 심플한 작화 스타일에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온갖 모순과 상식의 충돌은 실제로 우리들이 그 동안 보아온 것이다. 뉴스를 통해 접했고 소문처럼 들었던 이야기이며 드물게는 주변에서 목도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웹툰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서서 관조할 수 있는 것은 컬러 사용을 절제한 단순하고 부드러운 그림체가 독자들과 웹툰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긋기 때문이다. 참혹한 이야기 이지만 모미를 제외한 인물들의 생김새는 오히려 따뜻하기까지 하다.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에도 흔들림 없이 이야기를 말끔하게 마무리한 매미 작가의 스토리도, 흑백을 기본으로 노란색(1부)과 오렌지색(2부)만을 활용해 다양한 분위기를 전달한 희세 작가의 작화도 서로 잘 어울린다. 작가는 후기에서 흑백톤에 한 가지 색상만 사용한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 기묘한 색상 조합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스토리의 흐름에 잘 녹아든다. 두 작가의 호흡과 역량이 대단하다. 모미의 악행이 어떻게 끝날지, 과연 그녀에게 구원이 존재할지 3부의 연재 재개가 몹시도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