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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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화

쌍둥이 자매가 전하는 ‘가족’의 의미김성훈(만화평론가)마을버스 정류장에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녀의 손에는 꽤 큰 가방이 들려 있다. 아마도 어딘가 멀리 떠나려는 듯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차도를 바라보면 때마침 버스...

2017-04-19 김성훈
<우리, 선화>
쌍둥이 자매가 전하는 가족의 의미
 
김성훈(만화평론가)
 
마을버스 정류장에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녀의 손에는 꽤 큰 가방이 들려 있다. 아마도 어딘가 멀리 떠나려는 듯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차도를 바라보면 때마침 버스 한 대가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전면 무채색 유리창 너머로 모자를 눌러쓴 운전사의 모습의 얼핏 보인다. 가방을 든 여인과 마을버스 운전사, <우리, 선화> 표지가 담고 있는 광경이다. 아마도 작품은 두 사람에게 얽힌 사연을 들려주려는가 보다.
 
같지만 다른
 
그러나 섣불렀던 예상과 달리 작품은 나는 쌍둥이다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두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언니 선화와 동생 우리가 그녀들이다. 그제야 작품이 지니는 제목의 의미가 명확해지고, 쌍둥이 자매가 전하는 사연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들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 까닭에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존재는 그녀들의 속사정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모성의 부재로 인한 결핍보다는 주인공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로 그녀들의 본격적인 속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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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부재마저 초라하게 만드는 그녀들의 이름에 담긴 사연, 그것이 지닌 임팩트씨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봉선화와 봉우리, 듣는 이에 따라서 매우 예쁘다고 느껴질 만한 이름이건만, 유독 동생 우리의 반응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냉소적이다. “친절하기도 하셔. 별명을 따로 지을 필요도 없으니.”라는 엄마를 향한 분개속에는 자신들을 버리고 갔다는 사실보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에 대한 항변이 더 큰 듯 보인다. 이처럼 속마음을 스스럼없이 드러??? 보이는, 그래서 조금은 되바라져 보이기도 하는 동생과는 달리 마음에 들지 않는 아버지 얘기에 결코 마뜩찮은 표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언니는 유순하다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 그렇듯 두 사람은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은 너무도 다르다.
 
겉모습은 같지만 성격이 판이하다면 분명 그로 인한 억울한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언니 선화의 속상한 과거사가 열거된다. 친구와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우고 집에 들어온 동생으로 인해, 다음 날 친구가 데려온 친구 언니로부터 동생(우리)으로 오인 받아 다짜고짜 뺨을 맞아야 했던 선화의 사연은 당사자에게는 필시 억울한 일이겠지만 보는 독자들에게는 왠지 희극적이다. 그런데 그 이후 보여준 그녀의 대웅 또한 왠지 선화답다. 동생에게 억울한 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칠판 글씨가 안 보인다는 이유를 붙여 아버지로터 안경을 얻어낸다. 이제 겉모습이 달라진 두 사람은 확실한 변별점이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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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자주 다니던 어린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된 자매는 우연한 기회에 절에서 살게 된다. 마을버스 기사인 자매의 아버지가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으로부터 절??? 빈방이 있으니 기거해도 된다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삼부녀가 살던 곳이 장마철이면 방에까지 물이 넘쳐 들어오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산동네다보니 실리적으로 따지면 반가운 제안이긴 하지만, 사실 절에서 산다는 것 자체를 사춘기 소녀들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얘기를 꺼내자마자 우리의 성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선화마저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라며 조심스럽게 거부 의사를 내비친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선택의 여??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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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 우리와 선화가 보여주는 다름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언니는 적당히 착하고 적절히 눈치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이 되자 절의 일을 도우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토하나 달지 않고 묵묵히 거든다. 반면 짜증나라??? 대사부터 내뱉는 동생의 모습에는 10대의 거침없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동생 몫까지 일을 거들어야 하는 선화의 배려 속에는 우리는 또 나갔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친구가 생일이래요라며 동생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까지 해줄 줄 아는 사려심까지 더해진다.
 
다르지만 같은
 
그렇다고 해서 착하고 올바름은 애오라지 언니의 몫은 아니다. 취업 면접을 위한 화장품과 옷을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우리 역시 긍정적으로 보자면 제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다만, 언니와 비교해 다소 표현이 거칠 뿐이라고 한다면 적당한 변명이 될까. 하지만 그러한 외면으로 인해 아버지의 안쓰러움은 언제나 언니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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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등학교 시절까지 두 자매의 서로 다른 모습들 보여준 것이 작품의 전반전이었다면, 후반적의 시작은 동생 우리의 독립에서부터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이미 취업이 결정된 우리는 졸업 직후 집을 떠나 독립하려고 마음먹는다. 명목상으로는 회사와 보다 가까운 곳에서 살기 위해서이지만 어쩐지 그동안 살아왔던 절집??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듯하다. 결국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친구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며 짐을 꾸려 아버지와 언니 곁을 떠난다. 그러니 책 표지에서 만났던 가방을 들고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여인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의 뒷모습이었던 것도 같다.
 
한편, 홀로 아버지 곁에 남은 선화. 지금껏 아버지에게 효녀였던 그녀의 어깃장이 시작되는 것 역시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다. 대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겠다는 그녀의 선언은 아버지를 납득시키기가 어렵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던 우리와 달리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름 착실하게 다녔던 선화였기에 아버지로서는 당연히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믿음을 주었던 착한 딸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정도(正道)를 벗어나 결과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아버지로서는 취직하자마자 독립이랍시고 집을 떠나버린 둘째 딸보다 지금껏 착실하게 성장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부모의 기대감을 ???너뜨리는 첫째 딸이 더 미울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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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성격적으로 분명 극과 극이던 우리와 선화가 다시금 닮은꼴을 향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측면에서 두 자매는 그야말로 쌍둥이다. 그러니 표지에 등장했던 가방을 들고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여인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선화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찌됐든 아버지로서는 자신들의 뜻대로 나아가려는 딸들을 이제 막을 도리가 없다. 절집에 대한 선택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을지언정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의지는 오로지 그녀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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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속에는 눈에 띌 만한 큰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큰 사건이 없으니 이른바 위기절정도 콕 집어 찾기 어렵다. 가령 로맨스물이라면 남녀 관계를 흔들 반전이 있을 것이며, 액션물이라면 주인공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고통 정도는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이 작품은 그와 같은 소란스러움 대신 자매의 일상에 관한 담담한 시선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을 즈음 가슴 속에 따뜻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유는 명확하다. 실은 이 작품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작품은 누구에게나 있는 성장통을 우리와 선화에게 조금 특별하게 부여했고, 그 속에서 언니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라는 관계가 어떻게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어왔는지 보여준 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아버지도 절집을 벗어나 자신의 집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마철이 되어도 더 이상 방으로 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바퀴벌레도 보이지 않는, 방 세 칸짜리 아늑한 가족의 공간이다. 그리하여 선화는 동생에게 함께 살 수 있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건넨다. 어쩌면 표지에서 등장했던 가방을 들고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여인은 가족의 울타리로 다시 복귀하는 우리의 뒷모습이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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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