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뜨거운 사랑이야기
- 쥘리 마로 <파란색은 따뜻하다>
김소원 (만화연구가, 만화포럼 위원)
“내 사랑, 네가 이 글을 읽을 때면 난 이미 이 세상을 떠났겠지”
쥘리 마로의 <파란색은 따뜻하다>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독자들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며 시작된다.
하늘과 바다의 색인 푸른색은 보편적으로 시원하고 차가운 색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파란색은 따뜻하다>라는 제목은 그래서 꽤나 역설적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클레망틴은 어느 날 길을 걷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엠마와 우연히 마주친다. 엠마는 파란색으로 물들인 머리칼만큼이나 강렬하게 클레망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열여섯 소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첫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것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렬한 욕망과 떨림을 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여성이라는 것에 클레망틴은 절망한다. 클레망틴과 엠마의 사랑은 ‘파란색은 따뜻하다’고 외치는 작품의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한 도전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엠마와 달리 어린 클레망틴은 죄책감에 휩싸여 주문처럼 중얼 거린다. “난 여자애야. 여자애는 남자애들이랑 사귀는 거고”. 그러나 결국 클레망틴은 엠마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늘과 바다의 색인 푸른색은 보편적으로 시원하고 차가운 색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파란색은 따뜻하다>라는 제목은 그래서 꽤나 역설적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클레망틴은 어느 날 길을 걷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엠마와 우연히 마주친다. 엠마는 파란색으로 물들인 머리칼만큼이나 강렬하게 클레망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열여섯 소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첫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것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렬한 욕망과 떨림을 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여성이라는 것에 클레망틴은 절망한다. 클레망틴과 엠마의 사랑은 ‘파란색은 따뜻하다’고 외치는 작품의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한 도전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엠마와 달리 어린 클레망틴은 죄책감에 휩싸여 주문처럼 중얼 거린다. “난 여자애야. 여자애는 남자애들이랑 사귀는 거고”. 그러나 결국 클레망틴은 엠마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작품은 주인공 클레망틴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그녀의 과거와 그녀가 병으로 죽기 직전의 현재를 그린다. 수채화로 표현된 현재와 달리 클레망틴이 회상하는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잿빛 세상에 유일하게 파란색으로 빛나던 존재가 바로 그녀의 연인 엠마이다. 많은 회상장면이 그렇듯 클레망틴의 과거는 흑백으로 묘사되는 가운데 엠마의 머리칼만이 파랗게 칠해져 있다. 작품에는 제목처럼 파란색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활용된다. 이 파란색은 클레망틴이 바라보는 세상에서 행복과 사랑을 의미한다. 클레망틴이 호감을 느끼고 데이트를 했던 3학년 선배 토마의 티셔츠가 푸른빛이었고 엠마의 머리카락도 파란색이다. 클레망틴이 처음으로 엠마와 전화 통화를 한 후 그녀의 방과 하늘은 푸른색으로 바뀐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은 색깔만이 아니다.
이야기는 클레망틴의 시점에서 그려지는데 이미 성인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엠마와 달리 자신의 감정을 포기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클레망틴의 불안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대부분의 페이지가 질서 있게 나뉜 직사각형의 칸 안에 그려지지만 때때로 하얀 여백을 활용해 클레망틴의 고독을 표현하기도 하고(p.24) 어지러운 배경 위로 자유롭게 배치된 등장인물들과 말풍선은 클레망틴의 행복하지만 초초한 모순적인 심리를 표현하기도 한다.(p.82~83) 두 사람의 격한 감정 변화를 모두 그리기에 지면은 부족하지만 작가는 십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클레망틴이 썼던 일기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해 섬세하게 표현한다.
<파란색은 따뜻하다>는 2011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독자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보다 담담하게 그린다. 비극적인 결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엠마가 유언장처럼 전해진 일기장을 읽는 것으로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할 뿐이다. 표현의 농도는 다르지만 만화와 영화 모두가 주목하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 자체에 있다. 쥘리 마로는 두 사람이 싸우고 헤어지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이 본질이며 이러한 애정과 두 사람의 성별은 무관함을 작품 속 대사를 통해 역설한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 발랑탱이 엠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고민하는 클레망틴에게 해 주는 충고가 그것이다.
“끔찍한 건 말이야, 석유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인종청소를 해대는 거지,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끔찍한 건,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건 나쁜 일이라고 사람들이 네게 가르친다는 거지. 그녀가 너와 같은 성(性)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