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진짜’ 이야기에 대하여 – 웹툰 <메리지레드>
가족과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던 당신. 통화를 하고 있던 남편은 일단 받아보라며 당신에게 핸드폰을 넘긴다. 전화를 받으니 저편에서 들려온 말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이야기. “나 당신 남편 여자친구인데, 지금 호텔 로비에 있어요. 잠깐 내려와요.” 알고 보니 전화를 건 사람과 남편의 관계는 당신의 결혼생활보다 더 오래되었다. 남편에게 외도에 대해 추궁하자 남편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내연녀가 이혼하지 않으면 이 관계를 알리겠다며 몇 년 동안 협박을 하는 통에 너무 힘들었다느니, 당신 돈으로 위자료라도 쥐어줘서 해결 좀 해달라느니. 반복되는 다툼에 아이는 불안해하고, 당신은 아이를 생각해 한번은 남편을 용서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그 여자는 다른 내연녀들의 증거를 보여주며 자기가 너무 괴롭고 힘드니 당신에게 내연녀 소송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내연녀가 한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침 드라마 시놉시스 같은 이 이야기는, 이혼 전문 변호사인 작가가 실제 상담 사례를 각색해 연재하는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의 한 에피소드다. <메리지 레드>는 3~4화에 걸쳐 한 사연을 전달하고 또 다른 사연으로 넘어가는 단순한 구성에 그림체나 캐릭터성을 부각한 작품도 아니지만, 2021년 7월 현재 26만 5천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인기 웹툰이다. 즉 <메리지레드>의 경쟁력은 형식보다는 그 내용에 있다.
완전히 허구인 드라마 외에도 <짝>, <하트 시그널>, <연애의 참견> 등 일반인의 실제 연애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시청자가 ‘진짜’ 이야기에 더욱 감명받기 때문일 것이다. <메리지 레드> 또한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 그중 가장 복장 터지고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끈다. 황당한 상황이나 사건의 국면이 달라지는 장면에서 한 화를 마무리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연출 방식도 작품에 흥미를 더한다. 막장 드라마식 소재와 전개를 보이지만, 막장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드라마라는 점이 <메리지 레드>의 원초적인 매력이다.
더불어 눈에 띄는 부분은 독자들의 반응이다. 각 사연에는 귀책사유자를 비난하거나 피해를 입은 배우자 또는 자녀를 동정하는 댓글이 달린다. 남편과 아내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에 대해 댓글 창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쩐지 네이트판 같은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민글의 댓글 창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연애, 결혼, 시댁이나 처가와 관련된 갈등을 담은 글은 특히나 화제가 되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 퍼 날라지고 더욱 많은 사람들로부터 평가받는다. 결혼한 사람들의 갈등을 소재로 하는 <메리지 레드> 또한 그러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효과적인 썰 풀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타인을 재단하고 비난하기 좋아하는 온라인 세상 속 사람들의 수요가 <메리지 레드>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다만 <메리지 레드>가 단순한 ‘썰’들과 확연하게 다른 부분은, 자극적인 소재로 이목을 끄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주제 의식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양육권 다툼의 과정에서 상처받게 되는 아이들을 다룬 사연의 마지막에 작가는 “아이가 비양육권자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한다면, 양육권자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를 사랑할 자유를 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을 지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을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가족과 관계에 대한 고찰과 응원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른 회차에서는 ‘나 때는’이라는 말로 자기 자식과 이혼하는 며느리나 사위를 비난하는 어른들에 대해 “남자의 경제력, 여자의 인내력. ‘라떼’엔 그런 것들에 대한 강요가 담겨있다. 그렇게 생각할 밖에 없었던 삶을 살아왔던 분들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라며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건네기도 한다. 이혼이 감출 일이 아니라 공유하고 위로받아야 할 일이며, 이혼한 사람들에게 비난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응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작가의 목적성이 드러난다.
2000년 5월에 방영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인간극장>이 올해로 21년이 넘었다. 매일을 살아내며, 평범해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도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쓰린 일들이 많은지를, 각자의 삶이 ‘인간극장’임을 우리는 알아간다. <메리지 레드> 또한 삶을 비추는 휴먼 드라마로서 오래도록 우리에게 사람들이 살아가며 울고 웃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