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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선 : <인간의 숲>

2021-07-14 김진철


인간의 욕망과 선 : <인간의 숲>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자들이 실험을 위해 비밀리에 한곳에 모였다.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실험이 끝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될 운명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우연한 기회에 감시자들의 손에서 풀려난다. 이미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처리된 그들에게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제 통제된 건물을 벗어나기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런데 그들의 살인에 대한 욕망이 서로를 갈라놓는다. 

 사람을 죽이는 동기는 각각 다르지만 그들은 살인이라는 행위에 거리낌이 없다. 죄의식 없이 순간의 쾌락에 빠져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해친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소중함보다 자기만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탈출의 기회를 얻고서도 서로를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면서 다른 이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쾌락에만 심취한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건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과는 다른 부류의 인간인 하루가 함께 한다. 운이 없게도 그녀가 비밀 실험에 참여한 날 살인자들이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루는 혼자서 다수의 살인자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거기다가 상황은 더 최악으로 흘러간다. 하루는 살인자들에게 발각되고, 살인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목격한 하루를 없애기로 한다. 유일한 목격자를 없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인간의 숲> 3화

 과거에는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 체제가 변하면서 현대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인간 살해는 비인간적 행위로 비판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이라는 행위는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계획적으로 남을 해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자신의 부정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벌인 일들이다. <인간의 숲>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처럼 살인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은 인간의 악을 깨우는 일이다. 그들을 보면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이 맞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오래된 신화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살해하는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제주신화 <차사본풀이>의 과양생이 처는 자신의 마을을 지나가던 버무왕 삼형제의 재물이 탐이나 일면식도 없었던 그들을 살해한다. 이처럼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그들은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하루는 살인자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다. 살인자들을 피하면서 건물을 탈출해야 하지만 혼자서 살인자들을 눈을 피해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살인자 무리 중 하나인 박재준은 그녀를 돕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번번이 살인자들의 손에서 하루를 구한다. 하루는 위기를 넘길 때마다 여러 죽음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미소짓기까지 한다. 전기톱을 무기로 고르고, 다른 이들을 처단하려는 마음을 먹는다. 살인자들의 도가니 속에서 그녀 역시 그들처럼 변해버린 것일까. 누구나 하루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그들과 똑같이 대응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짐바르도의 교도소 실험은 인간이 환경에 의해 심리적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실험은 실험 참여자들이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각각 맡아 수행했다. 그런데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실제 간수들의 억압과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죄수를 맡은 사람들은 정말 죄수가 된 듯이 무기력하게 변했다. 평범한 사람도 환경의 영향이 있다면 악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결정적 차이점이 이성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성은 환경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그러니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루의 변화 역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루는 박재준이 구해준 열쇠로 비밀 실험실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살인자 중에도 탈출에 성공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하루를 없애려고 하루의 뒤를 쫓는다. 결국 하루는 살인자들에게 남자친구와 아버지를 잃게 되고,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기지를 발휘해 단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차사본풀이>에서 과양생이 처는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벌을 받게 된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그의 아들 삼형제가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온 최고로 기쁜 날에, 아들들이 한날한시에 갑작스럽게 죽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들은 그녀가 죽인 삼형제의 환생이었다. 이에 과양생이 처는 오히려 아들들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쳐달라며 떼를 써서 염라대왕이 이승에까지 강림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강림한 염라대왕에 의해 죄가 낱낱이 폭로되어 그에 걸맞은 처벌을 받고 저승으로 끌려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 

 하루의 선택은 어땠을까. 변한 줄 알았던 하루는 결과적으로 살인자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을 해치는 대신에 그들을 신고해서 정당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을 선택한다. 

“내가 너희를 죽인다고 그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내가 꼭 내 손을 더럽혀야 해? 난 넘지 않는 선에서 복수할 거야”

 하루는 마지막까지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숲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생태계가 존재하듯이, 인간이라는 숲에도 우리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많다. 내가 있는 숲은 어떤 모습일까. 삭막한 사막과도 같은 곳일까. 울창한 곶자왈 같은 숲일까. 살인자들처럼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하루와 같이 그런 환경을 극복해 내는 강인한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계속 변화하고 그래서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으로서의 선, 그것을 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우리를 보다 아름다운 숲속에서 살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필진이미지

김진철

동화작가, 만화평론가
《낭이와 타니의 시간여행》, 《잔소리 주머니》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