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탕진 프로젝트〉 : ‘네돈네산’, 다정한 마음으로 소비하기
△ 〈바른탕진 프로젝트〉 6화
현대 한국 사회는 소비가 금기도 미덕도 아닌 하나의 유행으로 존재하는 시대를 통과중이다. ‘YOLO’, ‘소확행’, ‘플렉스’ 등의 유행어들은 이제 일종의 시대정신으로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시기에 맞추어 웹툰에서도 소비와 관련된 청년들의 세태와 욕망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2014년부터 연재된 〈일단 질러! 질렐루야(이하 질렐루야)〉의 주인공 ‘닭둘’과 ‘나리’를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들은 주로 일상적이고 소소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이러한 물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소비는 단순히 좋은 물건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여정이고, 바로 이러한 점이 청년 독자층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2021년, 여전히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청년들의 마음을 이끌 작품이 등장했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웹툰 〈바른탕진 프로젝트(이하 바탕프)〉다. 점삼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야말로 ‘바른 탕진’을 위한 프로젝트를 보여주는데, 바로 이 프로젝트가 〈바탕프〉의 중심소재이자 매력 포인트다. 소소하게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화끈하게 탕진해버리는 게 목표라는 것.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개인이 홀로 해내야 하는 업무가 아닌, 타인과 서로 도우며 함께 진행해야 하는 팀 프로젝트라는 것. 이러한 요소들이 〈바탕프〉만의 분위기, 캐릭터, 서사를 만들어낸다.
〈바탕프〉는 ‘탕진’과 관련된 두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4개월차 계약직 사원인 ‘준희’는 자그마한 소득과 거대한 소비욕 사이에서 빠듯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스무 살부터 꾸준히 일을 해왔지만, 대부분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탕진해버려 저축금 한 푼 없이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유지중이다. 준희가 세 달이라는 기간 안에 천만 원을 갚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탕진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한편, 준희와 같은 회사에 재직중인 과장 ‘나영’은 온갖 업무를 도맡아 완벽하게 해내는 엘리트로서 소비, 낭비, 충동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레 10억을 전해주고 떠난 후, 나영에게는 세 달 안에 최대한 빠르게 그 금액을 모두 탕진하여 처리해버리겠다는 목표가 생긴다.
△ 〈바른탕진 프로젝트〉 4화
〈바탕프〉는 준희와 나영이 소비에 대한 미션을 서로에게 부여하고, 또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팀 프로젝트를 이루어 나가는 이야기다. 탕진을 멈춰야 하는 준희, 탕진을 해내야 하는 나영. 〈바탕프〉는 대조적인 두 인물을 보여주지만 어느 한 쪽을 정답으로서 제시하지는 않는다. 탕진이라는 소비 양상을 아름답게 그려내지도 않고, 냉철한 시선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불안하고 막연한 미래 앞에서 당장의 소비에 급급한 준희의 모습은 일견 다소 충동적이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나영은 준희를 비난하거나 꾸짖지 않는다. 다만 세 달이라는 기간 안에 자신에게 천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준희에게 제약과 목표를 부여해줄 뿐이다.
‘소확행’은 즐겁지만 그것이 삶을 구원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작품 속 인물도, 작가도, 독자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점삼 작가와 나영이 준희를 적극적으로 나무라지 않는 이유는 냉소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바탕프〉에서 보여주는 소비란 단순한 수단, 충동, 낭비 등이 아니라, 행위자의 꿈과 목적을 보여주는 방식이자 삶의 방향이다. 그러니 그것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킬 수는 있어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나영은 준희의 삶을 존중하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준희 역시 나영에게 같은 태도를 취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작품 〈질렐루야〉는 기본적으로 ‘내돈내산’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내돈내산이란 ‘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이라는 뜻이다. 닭둘과 나리는 모두 자신만의 취향이 있고, 각자의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기 위해 상품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확고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바탕프〉의 나영은 그렇지 않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재직 중이며, 경제적 궁핍이 없는 엘리트이지만 자신의 취향이라고는 조금도 갖고 있지 못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디 가서 폐 끼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아라. 너만 잘하면 돼.”라는 말에 묶여 살아온 나영에게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는 즐거움이 아니라 낯설고 괴로운 부담일 뿐이다. 당장 자신이 집에서 앉아 있을 소파조차 스스로 고르지 못할 만큼.
△ 〈바른탕진 프로젝트〉 13화
그래서 준희는 구매한다. 나영의 돈으로, 나영의 물건을, 나영을 위해서. ‘내돈내산’이 아니라 ‘네돈네산’인 셈이다. 준희는 나영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답답해하는 대신, 상품 목록을 모두 확인하고 정리하여 나영만을 위한 카탈로그를 제작해준다. 타인의 돈으로나마 소비를 하는 데에서 오는 대리만족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위해 물건을 고르고 구매한다는 것은 결국 너의 삶의 방향에 내가 기여하겠다는 마음이 담긴 행위다. 나영의 탕진을 돕는 과정에서 준희는 마구잡이로 아무 물건이나 구매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나영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 위해 기꺼이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할 만큼 정성을 들인다. 그건 단순히 소비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결국 상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준희와 나영이 함께 참여하는 ‘바른 탕진 프로젝트’는 정말 오로지 10억을 탕진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미션이 아니다. 네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네 삶의 진행 에 기꺼이 협업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보겠다고 말하는 다정한 다짐이다. 그래서 독자인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두 가지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비싼 가구와 고급 서비스를 마음껏 누리고 구매하는 것을 구경하는 데에서 오는 대리만족,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오는 다정한 협업의 마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탕진 프로젝트〉가 아니라 〈‘바른’탕진 프로젝트〉가 이 작품의 제목으로 낙점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청년들이 소비 열풍 속을 헤매며 막연한 희망을 갈구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소소하게나마 확실한 행복을 얻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확행’을 바라는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