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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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변을 위한 변(辯) - 컷부, 서은영(백석대 외래강사, 만화포럼 위원) 최근 한 포털 사이트의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최근의 개인적인 경험이 겹쳐지면서 격렬히 공감했다. 「50대는 백 번 말해도 ...

2016-05-30 서은영
변을 위한 변(辯)
- 컷부,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은영(백석대 외래강사, 만화포럼 위원)

최근 한 포털 사이트의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최근의 개인적인 경험이 겹쳐지면서 격렬히 공감했다.
 
  「50대는 백 번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는 ‘병맛’ 보실래요?」(국민일보, 2016.4.19.일자)
 
그렇다! 10대들은 직감적으로 아는 이 단어/감각을 50대는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웃지 못한다. 50대가 병맛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게 왜 웃겨?"다. 그들은 노력을 거듭해 이 ""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에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병맛 가운데서도 이해할 수조차 없는 영역이 있었으니 그것이 ""변맛""이다. 도저히 불쾌해서 용서할 수 없고, 저질스러워서 이해는커녕 읽고 싶지 않다는 만화가 바로 병맛을 넘은 변맛 만화다. 그들에게는 도무지 웃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신성불가침 같은 영역이다.  
흔히 병맛은 기-승-전-병이라는 내러티브로 설명한다. 병맛만화를 이야기할 때면 일본의 개그만화 가운데 소위 B급의 정서를 가진 만화에서 원류를 찾기도 하는데, <괴짜가족(うらやすてっきん家族)>은 그 중 하나다. 물론 <괴짜가족>은 한국 병맛의 ‘기-승-전-병’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허를 찌르며 웃음을 자아내는 비논리적 전개, 어처구니없는 반전, 과도하면서도 리얼한 (리액션을 표현하는) 캐릭터의 표정연기는 절묘하게 합을 이루며 개그코드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특징은 병맛의 기본구도와 유사하다. 그리고 <괴짜가족>이나 한국의 병맛 만화는 적어도 일상을 기반에 두고 시작된다. <이말년 4컷 스페샬> 가운데 ""커피"" 에피소드는 이말년이 스타벅스에서 시킨 커피 값에 놀라 잠이 깬다는 설정이다. <괴짜가족>과 <이말년 시리즈>는 평범한 일상을 뒤집어 봄으로써 허를 찌른다는 발상으로, 적어도 상황 자체는 지극히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변맛은 이러한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대표적인 변맛 만화인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이하 <소무하>)는 2014년 1월 26일부터 2014년 11월 4일까지 네이버에서 연재된 웹툰으로, 총 125화로 완결되었다. <소무하>의 작가 후기에 의하면 처음은 <소년들의 미션은 무엇일까>(이하 <소미무>)라는 만화에서 <소무하>로 연재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소미무>는 2013년 네이버의 도전웹툰에서 연재하던 것으로, 점차 인기를 끌면서 <소무하>라는 제목으로 변경해 네이버 웹툰으로 정식 데뷔했다. <소미무>와 <소무하>는 기본 컨셉과 줄거리는 동일하게 이어갔지만, <소미무>의 명랑만화와 같은 캐릭터가 <소무하>에서는 잘생긴 꽃미남 캐릭터로 변하면서 소위 병신미의 묘미가 더욱 살아났다.
흔히들 변맛 만화는 "기-승-전-병"의 수준을 넘어 "기-승-전-변"으로 까지 이어지는 변맛의 코드로 설명한다. 혹자는 왜 이렇게까지 망가져야 하는가, 왜 이렇게까지 추해져야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만화가 하위문화이기 때문에 변의 수준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병맛이 저급함과 마이너적 취향을 획득하고 거대 서사에 대한 냉소를 뿌렸던 장르였다면, 변맛은 그보다 확대된 마이너리티라는 것이다. 이것이 청년세대의 일종의 저항의 방식이라고까지 확대해석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어찌됐든 B급 정서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정석을 깨버리려는 시도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일종의 학문적 접근이 변맛의 코드를 저항의 문제로까지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짐짓 권위 있는 ""체""하는 학자가 인기 있는 하위문화에 대한 당혹감을 자신의 영역 안으로 제어하고자 하는 욕망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과연 ""기-승-전-변""인가 하는 것이다. <괴짜가족>의 에피소드 가운데 변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권위 있고 점잖은 체 하는 국회의원이 ""변""이라는 인간의 본성인 생리활동을 참지 못하고 큰 실례를 하고 만다. 그의 변은 단순히 권위 있는 국회의원도 (변을) ‘싼다’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놀이동산의 관람차 안에서 싸는데, 그 변은 관람차를 넘어 도시 전체를 변바다로 바꿔버리는 수준으로까지 나간다. 그렇다해도 에피소드의 시작 자체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해서 결론 부분에서 허를 찌르며 기존의 관념을 전복시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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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소무하>의 1화 ""숲속의 집""은 시작부터 허를 찌른다. 자동화된 일상을 ""기승전-병""으로 해체 시켜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 자체의 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는 일상적 행위는 1화의 시작에서부터 부정된다. <소무하>의 집은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똥집을 함으로써 들어갈 수 있다. 112화 <동네 뿡상집>은 기존의 관상집을 패러디해 방귀냄새로 사람의 운명을 맞추는 뿡상집이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기승전결""의 세계관을 ""결""에서 뒤집는 병맛과 달리 시작에서부터 아예 새로운 차원의 세계의 진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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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상을 한번 부정하고 출발한 세계관은 ""결""에 이르면 또 다시 부정된다. 1화에서 가히 새로운 차원의 비밀번호를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틀린 비밀번호로 판명되어 방귀를 뒤집어쓰게 되고, 결국 방귀와 변이 향긋한 숲 속에서 난무한다는 모순적인 총체적 결론에 다다른다. 112화에서 뿡상점은커녕 방귀를 뀌다 변을 본다는 설정은 해체한 것을 한 번 더 해체해 버린다.
 
이처럼 변맛 만화는 과도한 과장과 말도 안되는 상상력-소위 ""만화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라 일컫는-으로 스스로를 추락시킴으로써 텍스트 자체를 아예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이 낙차의 폭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독자는 기-승-전-결의 완전한 세계에 대한 회귀의 의무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다. 변맛은 기존 질서와는 다른 차원이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변맛을 두고 혹자는 "퇴행의 일종"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기승전결의 세계가 완벽하다는 세계관을 답습한 결론일 뿐이다. 기존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자동화된 일상을 탈자동화시키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 컷부의 <소무하>는 이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되려 진실된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여기에서의 진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또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저 즐기면 되는, 놀이의 문화일 뿐이다. 기존의 세계관에 갇힌 세대들은 이 변맛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