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창천항로 (蒼天航路)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 ...

2015-12-08 석재정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 두산백과 인용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량... 조조, 순욱, 곽가, 가후, 하후돈....손견, 손책, 손권, 주유....여포, 동탁, 사마의, 방통, 마초, 원소 등등.... 한국, 중국, 일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삼국지의 유명한 등장인물들이다. 서기 184년에 실제로 일어난 중국의 농민항쟁인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되는 최강의 재미를 가진 이 대하사극은 시대를 거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지 짐작조차 안 될 만큼, 장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시아 최고의 베스트셀러일 것이다.

주인공급의 캐릭터(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조조 등)를 빼더라도, 전체적인 스토리 속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등장인물만 6백여 명이 넘고, 영·미 권에서는 [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란 영문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소설을 원작 삼아 만들어진 관련 콘텐츠(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들은 이 지면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그 수가 상당하다. 상업적으로 변용된 장르 역시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그야말로 중국이라는 장구한 대륙의 역사가 만들어낸 최강의 소스(SOURCE) 중 하나다.

“진나라 진수(陣壽)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토대로 하고 〈한진춘추(漢晉春秋)〉와 〈삼국지주(三國志注)〉를 참고로 하여 얼마간의 가공적인 인물을 가미하여 재미있게 꾸며 놓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사(正史)와 연의(演義)의 비율은 전자가 7이라면 후자는 3 정도로서, 70퍼센트 이상이 정사에 있는 역사적 사실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인용 

“진나라 평양후 진수가 남긴 역사 전기를 후학 나관중이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라는 첫머리의 글처럼 <삼국지연의>는 말 그대로 소설이며, 요즘의 용어로 설명한다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되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팩션(faction)’의 원조와도 같은 소설이다(‘연의(演義)’라는 말 자체가 """"사실에 내용을 보태서 재미나게 설명한 책이나 창극""""이라는 뜻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소설이며, 그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삼국지 정사와 연의를 헷갈리는 이가 매우 많다. 정사를 뼈대로 하되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담이나 설화 등을 채용하여 재미의 추구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대략 7할의 사실과 3할의 허구라는 청나라 학자 장학성(章學誠)의 평이다.

<삼국지연의>가 우리나라에서 읽히게 된 것은 조선(朝鮮)시대부터이며, 그 당시에도 신분을 막론하고 매우 폭넓게 읽히면서 최강의 인기를 구가한 작품이었다고 한다(16세기 초에 조선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으로 간행되었다). 가장 최근의 한국어판 삼국지의 근간이 되는 것은 박종화(朴鐘和, 1901~1981), 김구용(金丘庸, 1922~2001)이 번역, 각색한 판본일 것이며, 판매량으로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사실 현대판 삼국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에서 번역, 각색해서 만들어진 일본어판 삼국지들이다. 삼국지의 기원은 중국이지만, 삼국지의 상업화는 일본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일본에서 수많은 작가나 개발자들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각색되어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진 삼국지는, 소설이나 만화 같은 출판 콘텐츠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영상 쪽으로도 그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고, 담고 있는 내용 역시 원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깊이 있게 갖추고 있다. 삼국지라는 중국의 ‘소스(SOURCE)’를 다양한 문화산업 콘텐츠로 개발하고 세계적으로 저변을 넓힌 것이 일본이라는 것은 사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일본어판 삼국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황하(黃河)는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로 시작되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일 것이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가 쓴 삼국지연의 평역본은 1939~1943년까지 도쿄마이니치신문에 연재됐으며, 1948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연재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고, 이후 일본어판 삼국지의 정석이자 표본처럼 여겨지고 있다(과거 한국에서 출간한 삼국지도 이 작품을 중역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2013년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여러 완역본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세세한 고증보다는 읽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소설적 재미는 뛰어나지만 정통 판본과 비교하면 허구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평가를 종종 받곤 한다.

“도원결의 시작 장면을 ‘황건적을 물리칠 의병을 구한다는 방문 앞에서 우연히 세 사람이 만났다’고 하면 연의를 따른 것이고, ‘유비가 낙양선에 차(茶)를 사러 갔다 황건적 마원의를 만나 위기를 겪고 장비 덕에 목숨을 건진 뒤 장비에게 가보인 칼을 줬다가 어머니가 열 받아 차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라고 하면 요시카와 본이다. 초선이 연환계를 실행하고 나서 자살했다는 내용 역시 이 요시카와 에이지 본에 나온 것이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처음 만날 ?????가 극적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며 ???비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인 홍부용은 이 작품에서만 등장한다. 무엇보다 제갈량 사후는 달랑 몇 페이지로 그야말로 날아다닌다. 유명한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 정비석 삼국지, 배철수의 만화열전 등은 모두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를 기초로 삼고 있다. 참고로 인물들의 호칭을 성+이름+자로 붙여서 네 글자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원래 이름과 자는 같이 사용하지 않으므로 유비 or 유현덕이 되어야하지만 유비 현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성(한자 두 글자)+이름(한자 두 글자)로 한자로는 네 글자인 경우가 많아서 이를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은 복성을 쓰는 인물의 경우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제갈량 같은 경우는 제갈량 공명이 아닌 제갈공명으로 네 글자를 맞춘다.” -나무 위키 인용

어쨌든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촉(蜀)나라의 군주 유비다. 유비가 사망하는 시점에서 제갈량이 주인공으로 변경되고 제갈량이 사마의와 겨루다가 사망하면 주인공이 강유로 바뀐다. 강유는 종회의 반란 직후까지 주인공으로 활약하다가 사망하며, 삼국지연의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사실상 종료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출간된 삼국지연의는, 대부분 제갈량이 사망하면 완결된다. 연의의 시작이 184년 황건적의 난이고 제갈량이 죽은 건 234년으로 딱 50년이다. 제갈량 사후에 진이 삼국을 통일한 것이 280년이므로 실제로 제갈량의 죽음은 역사상에서 보면 중간 반환점 정도인 셈이다. -나무위키 인용

삼국지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꼽는다면,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여포와 유비·관우·장비가 대결하는 ‘호로관 전투’, 유비의 ‘삼고초려’와 제갈량 출사, 적벽대전 등인데, 가장 재미있다고 평가받는 장면들은 모두 유비가 등장해 주역으로 활약하는 장면들이다. 관우 홀로 등장하는 명장면도 만만치 않다. 백마진 전투에서 단기필마로 출진하여 원소군의 맹장인 안량·문추를 베어버리는 장면이라든가, 조조의 후대를 뿌리치고 유비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하고 여섯 명의 장수를 참살하는 허구의 설화)’, 적벽대전에서 패해 달아나는 조조의 목숨을 살려주는 ‘화용도 회군’, 방덕과의 전설적인 ‘일기토’와 명의(名醫) 화타와의 인연, 적토마와 청룡언월도, 죽은 후 유령이 되어 복수를 행하는 이야기 등의 장면에서 관우의 존재감은 결코 주인공의 의형제가 아닌 ‘실제적인 주인공’이다(오죽하면 중국의 민간 신앙에서 최강의 신(神) 중 한 명이겠는가). 이뿐만 아니다. 제갈량의 천재적인 활약이나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을 홀로 막아서는 장비의 위용, 주군의 아들을 갑옷에 품고 적진을 단기 돌파하는 조운(조자룡)의 무위는 그 자체로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처럼 <삼국지연의>의 중요한 배역과 최고로 재미있는 장면들은, 모두 “촉(蜀)”나라를 세운 유비와 그의 가까운 주변 인물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극적 재미를 위?? 작가의 편향적 배치는 후세에 더더욱 큰 영향력으로 작용하여, 실제로는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위(魏)나라의 군주 조조 같은 경우가 독자들에게 최강의 악역으로 굳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실제 역사 속에서도 조조의 위상과 의미가 그 정도에 그쳤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조조를 평하기를,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일에 대처했으며, 구악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대처해 사람을 등용했다는 의미로 간주되고 춘추시대 패자의 덕목이라는 견해와 일치하는 것이다.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두목(杜牧)은 ‘조공(조조)은 손무의 병법 13편에 주석을 달아 후세에 전했다’고 하면서 조조의 군사적 재능을 칭찬했다. 조조는 정치와 군사뿐만 아니라 문학 방면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손자병법 전문에 남기는 주석 작업을 끝마치고 난 그는 소박한 민요였던 악부(樂府)를 공식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고, 꾸준히 당시 최??? 시인의 한명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단가행(短歌行)’, ‘구수수(龜雖壽)’, 주석으로 전해지는 동도가사 등 수십 편이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조조(曹操)를 간신이라고 하는 것은 봉건정통관념이 만들어낸 것으로 반동사족들이 봉건정통을 유지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조조의 복권을 말한 바 있다. 그는 조조의 제도 개혁과 둔전제 등의 정치적 공적과 탁월한 군사 재능, 그리고 조조의 문학 재능을 칭찬하면서 조조를 공식 석상에서만 서른두 번 언급하여, 마오쩌둥이 가장 많이 언급한 역사인물이 조조(曹操)라고 한다.” -나무위키 인용

이와 같이 삼국지연의 최강의 악역이었던 조조는 현대에 들어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며,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는 ‘삼국지’라는 소스(SOURCE)에 또 다른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 변화란 바로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삼국지’인 것이다.

조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삼국지는 당연히, 조조의 시각과 위나라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는 그동안 유비와 촉나라 위주의 정통파 삼국지의 구도와 내러티브를 전복시키고, 기존의 삼국지 팬들에게 아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실제 업적에 비해 저평가되거나 삼국지연의에서 매우 부족하게 묘사되었던 조조의 사람들, 즉 위나라 측의 맹장들과 책사들도 새롭게 재해석되어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삼국지의 장점은, 그간 소설적 재미에 치우쳐서 역사적 사실이 다소 가공되고 왜곡되었던 <삼국지연의>의 단점을 보완해주면서, 균형이 잡힌 역사적 시선으로 삼국지의 시대를 한층 더욱 더 재밌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2 창천항로01.jpg

이 리뷰를 통해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삼국지’ 중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재일교포 작가인 故 이학인이 스토리를 쓰고 킹 곤타(본명 왕흔태)가 작화를 맡은, 엄청난 재미와 깊이 있는 감동을 선사하는 만화 삼국지 <창천항로>다. 


1. 작품개요
강담사의 주간 만화잡지 <모닝>에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단행본 전체 36권으로 완결되었으며 판매부수도 1,200만 부를 넘어섰다.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삼국지’ 중에서는 많은 팬들이 단연코 최고 중 하나로 꼽는 명작으로, 재일교포 2세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작가 故 이학인이 원작 스토리를 쓰고 킹 곤타(본명 왕흔태)가 작화를 맡았다. 작품의 연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98년에 이학인이 간암으로 별세하면서 그 이후로는 작화를 담당해 왔던 킹 곤타가 글, 그림을 모두 맡아 완결을 했다. 작화가인 킹 곤타는 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엔 ‘제갈공명의 이름은 들어보았다’고 할 정도로 삼국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었다고 한다. 이학인이 별세한 후, 아마도 관도대전 이후로 작품의 재미나 감동이 전반부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고 얘기하는 팬들이 많은데, 그전까지 둘이 하던 일을 작화가 혼자서 ??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기본 줄거리는 이학인이 생전에 완결까지 써놓았다고 하는데, 확실하진 않다.

2 창천항로02.jpg

2009년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방영되었다. 제작은 매드하우스, 니혼TV에서 방영되었다. 총감독에 아시다 토요오, 감독에 토미나가 츠네오, 각본은 타카야시키 히데오, 총 26화로 구성되었고, NTV를 통해 2009년 4월 7일부터 9월 29일에 걸쳐 방영 되었다. 한국어판 단행본은 대원씨아이를 통해 36권 전부 발행되었다.

2. 작품내용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삼국지이다 보니, 아무래도 첫 장부터 기존에 널리 알려진 <삼국지연의>와는 아예 이야기의 결을 달리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의 시작은, 황건적의 난을 통해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고 셋이 도원결의를 맺는 것부터이지만, <창천항??>는 주인공인 조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1권의 첫 장부터 소년 아만(조조의 어릴 적 이름)은 서슴없이 사람을 칼로 베어 죽이고, 청소년기에는 친한 이들과 활빈당 같은 전투 집단을 결성해 도적단과 대결한다거나 당시 최강의 권력자의 집에 침입해 자신의 첫사랑을 구하려 한다거나 하는, 좀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보여주지만 재미가 없진 않다. 특히 하후돈이나 하후연, 조인이나 허저 같은 조조의 곁을 평생토록 지키는 맹장들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부분이 마치 ‘한 편의 호쾌한 청춘드라마’처럼 그려지는 모습이 좋았다. 그 뒤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조조’의 젊은 시절(관직 생활)이 다소 무리한 각색을 통해 재미있게 표현된다.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등장, 동탁 토벌전 같은 경우에도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조조’와는 아주 다른, 영웅적이고 매력적인 묘사가 쉼 없이 이어진다(심지어 조조가 여포와 일기토를 벌이기도 한다).

동탁이 죽은 이후 조조가 난세의 군웅 중 한 명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던??,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하나로 커가는 과정들이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사실 <창천항로>의 내용적인 큰 틀은 기존의 <삼국지연의>나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조조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조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나 사건이 진행되며, 특히 조조와 원소가 대결하는 관도대전 같은 경우는 아주 길고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적벽대전 같은 경우는 달랑 몇 장으로 끝나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창천항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 꼽는다면, 기존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비중이 매우 적은 조조 휘하의 맹장들과 책사들이 아주 멋있고 강렬하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사실 위, 촉, 오 3국 중에서 가장 광대하고 비옥한 영토와 최강의 무력을 가진 나라는 위나라다. 그런 나라의 공격과 방어를 담당했던 맹장과 책사들이 결코 평범할 리 없다. 조조 휘하의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매우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영웅적 면모를 가진 사람들로 묘사된다.
2 창천항로04.jpg

<창???항로>의 결말은 조조가 하후돈의 곁에서 평안하게 눈을 감는 것으로 끝이 나며, 이후의 굵직한 이야기들(촉나라와 오나라의 전쟁이라든가, 유비,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의 이후 인생들)은 더 이상 그려지지 않고 아주 짧게 몇 페이지로 급하게 마무리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매우 아쉽고 찝찝한 느낌이 든다.  

3. 작품분석
<창천항로>의 내용적인 가장 큰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파격(破格)’일 것이다. 아시아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고전이자 최강의 인기를 구가하는 소설 삼국지의 플롯과 구성, 캐릭터들을 말 그대로 전복(顚覆)시켜버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기개와 용맹을 자랑하는 동탁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전까지 필자가 읽은 삼국지들에서 동탁의 모습은 항상 ‘황제를 농단하는 간신배, 주색과 재물만 밝히는 소인배, 겁 많고 탐욕스러운 돼지 같은 외형’으로 묘사되었다(필자에겐 ??창 시절 정말 재미있게 읽은 <고우영 삼국지>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다).

<창천항로>에서의 동탁은 맨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짓이겨버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무력을 지닌, 강철 같이 단련된 육체와 비상한 두뇌, 거대한 야망과 두려울 정도의 포악성을 보여주는 최강의 인물 중 한 명이다. 동탁의 주력 군대는 그가 서량으로 가서 정벌한 이민족 ‘강족’의 강병들이며, 그의 휘하에 있는 장수들은 어느 전투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맹장들이다.

동탁은 <창천항로>에서 “폐허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라거나 “천하 만민이 나를 따른다! 천하의 모든 패권이 내 손아귀에 있고, 천하를 뜻대로 쥐고 흔든다! 욕망과 쾌락을 모두 누린다! 온갖 사치를 다하여 선악의 구분조차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존귀한 왕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왕의 모습을 지금 막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인상적인 대사를 날리며, 폭력과 공포로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폭군’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기존의 <삼국지연의>에서도 전국의 군웅들이 모이게 되는 첫 계기가 “낙양의 황제를 동탁의 손에서 구출하자”는 명분으로 집결한 ‘17로 근왕군’이 아니던가. 그랬던 근왕군조차도 초전에선 동탁군의 힘에 밀려 패전을 거듭하였다(물론 여포의 힘이 큰 것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동탁이 <창천항로>에서 묘사되는 능력과 카리스마 정도는 갖추어야 이러한 스토리 전개가 납득이 되고 실제로도 균형이 맞지 않을까 싶다. <창천항로>에서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나 여포의 손에 최후를 맞는 장면은 자못 웅장하기까지 하다. 그 외에도 아주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은데, 초반의 재미와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최강의 캐릭터다.

<창천항로>에서 동탁 다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파격적으로 변신한 캐릭터는 바로 ‘제갈???’이다. 첫 등장 때만 해도 미소년으로 그려지며 마치 신선 같은 백면서생으로 묘사되었지만, 삼고초려 때는 여자들과 문란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옷도 잘 챙겨 입지 않고서 변태 같은 언행을 일삼는 기인으로 등장한다. <창천항로>에서의 제갈량은 “천하란 외설스럽고 천하며, 관능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특이함을 보인다. 적벽대전 이후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로 되돌아오기는 한다.

이처럼 기존의 <삼국지연의>와는 매우 다른 삼국지 <창천항로>는, 파격적인 인물묘사와 전복적인 스토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연출을 통해 기존의 삼국지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달한다. 만화적 기법을 최대한 활용한 ‘특별한 삼국지’라 할 만하다.

“작품 내용을 보면, 여느 삼국지 기반 미디어믹스 중에서도 특이하게, 조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조조 외에도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작가의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했다(예: 웅대한 동탁)중요한 것은 그렇게 재해석된 인물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연의에 별 비중도 없이 사라지는 ??물들조차 제각기 저마다의 멋을 뿜어낸다. 킹 곤타의 예술적인 그림체와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주옥같은 명대사에 의해 한층 더 빛을 발한다. 스토리 작가 이학인은 원래 영화감독 출신이라 대사와 연출 감각이 여느 작가에 비해 도드라진다. 훌륭한 삼국지 기반 만화를 선정한다면 분명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삼국지의 만화화(comicalizing)’라는 전제나 밸런스 붕괴를 따진다면 거의 동인지 수준이라고 봐도 될 만큼 최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파격적인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중간 중간 펼쳐지는 대담한 표현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질 정도. 특히 붓을 이용한 과장 등의 효과는 정말 볼 만하다.” - 나무위키 인용

기존의 <삼국지연의> 팬들이나 <창천항로>의 팬들 모두가 인정하는 이 작품의 단점이 있다면 주인공 조조의 능력치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무력, 정치력, 학???, 인망, 통찰력과 지휘능력, 예술적 재능, 카리스마, 이성에게 어필하는 성적 매력 등 능력 자체가 거의 신에 가까워, 심지어 ‘조느님’이라고 부르는 팬들도 있다. 주인공이다 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차분하게 읽다보면 아무래도 거부감이 드는 장면들이 간간히 있다.

2 창천항로03.jpg

물론 기존의 <삼국지연의> 주인공들도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처음엔 건달에 양아치처럼 묘사되던 유비가 점점 군주의 면모를 갖추어 가며 묵직하게 변신해가는 과정이라든가, 관우의 신(神)적인 전투력과 카리스마, 장판파에서 장비의 위용,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은 조운의 활약 등등 ‘기존의 인기 캐릭터’들에게도 아주 멋진 장면과 인상 깊은 묘사를 덧붙임으로서 기존의 <삼국지연의> 팬들에게도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등장인물의 전체적?? 재해석과 파격적인 묘사, 만화적 연출기법의 극한을 보여주는 스펙터클한 전투장면,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대사와 역사와 허구의 적절한 조화 등을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창천항로>는, 삼국지라는 정형화된 거대한 전설에 과감히 도전한 작품이다.

그간 삼국지를 파격적으로 다룬 여타의 다른 작품들이 결국 원작의 완성도와 팬들의 충성심을 넘어서지 못하고 자멸하듯 스스로 무너진 것에 비하면 <창천항로>는 매우 성공적으로 완결한 작품이다. 나무위키의 표현처럼 “이 정도로 마구 건드리고도 초반의 기세가 마무리까지 살아 있었던 것은 굉장한 성과”인 것이다.       


2 창천항로05-1.jpg
 
“이 몸은 바로 의협의 뇌동(雷動), 장비! 자는 익덕이다! 
우리 백성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하겠다.”

작?? 전체를 통틀어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인 ‘장판파의 장비’의 대사로 이 리뷰를 마무리한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만화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