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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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개의 날

“1년간 몇 명의 탈영병이 발생하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탈영병은 외계인이나 유령과 같은 존재다. 얘기만 들었지, 아무도 본 적은 없거든. 매달 전국적으로 약 60명의 탈영병이 발생한다는 걸...

2015-08-28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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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몇 명의 탈영병이 발생하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탈영병은 외계인이나 유령과 같은 존재다. 얘기만 들었지, 아무도 본 적은 없거든. 매달 전국적으로 약 60명의 탈영병이 발생한다는 걸 알면 대부분의 반응은, ‘어? 그렇게나 많아? 전혀 몰랐네.’, ‘요즘 군대가 얼마나 편한데, 하여튼 애새끼들이 빠져가지고는...’, 이렇다. 현재 군인의 수는 약 60만 명, 매년 30만 명이 제대하고, 또 30만 명이 입대를 한다. 연평균 탈영병 수는 약 700명. 대략 900명당 한 명이 탈영을 하는 셈으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다. 요즘 젊은이들이 나약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과거에는 탈영병이 없었던 걸까? 최근 들어 탈영병이 눈에 띄게 느는 걸까?” 
-1권 2~4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2015년 4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끔찍한 뉴스가 전파를 탔다. 뉴스의 발원지는 육군 28사단, 선임병들의 폭력으로 인해 꽃다운 젊은이 하나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었다. 피해자가 전입 후 35일 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행된 구타와 비인간적인 가혹행위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사건 발생 초기에 ‘우발적 사고’로 진실을 축소, 은폐하려 했던 군 고위 관계자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스물 두 살의 청년이 인생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국방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 간 ‘군대에서 살해’당한, 이 안타까운 사건은 한 달 가까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고, “윤일병 사건”이라 명명된 이 “군 잔혹사”는, ‘신병’ 때에는 피해자였던 사람이 ‘고참’이 되면 가해자로 변하는 ‘시스템의 부조리’가 수십 년 간 반복되면서 쌓인, ‘병영 내 각종 폐습’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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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윤일병 사건” 직후 전 부대에 긴급 전수조사를 실시해 선임병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를 약 3,000건 적발하였고, 병영 악습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취지로 해·공군, 해병대에서도 병영 악습 적발을 위해 소원수리 및 설문조사를 각 부대별로 진행하였다. “윤일병 사건”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병영 내의 가혹행위 실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속적으로 드러나면서 6사단에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장남 남 모 상병이 가혹행위 가해자로 형사입건 되기도 했다. 사실 군대와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는 군 창립 이래로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윤일병 사건”은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일상화된 병영 문제에서 “이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각심을 사회 차원에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한다. “윤일병 사건”이후로 과연 ‘대한민국 군대’가 진짜 달라졌을까?

“나는, 헌병이다. 그중에서도 군무이탈체포전담조로, 탈영병을 체포하는 것이 주업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는 군인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도 몰랐고, 탈영병도 모를 것이다.(아마도)” - 1권 5~6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선고를 받은 한 젊은이의 투병일기를, 담담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려낸 웹툰 <아만자>로, 자신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묵직하게’ 알린 신인 만화가 김보통, 그가 한겨레신문 토요판과 유료웹툰사이트 레진 코믹스에 신작연재를 시작했다. 작품의 제목은 [D★P] , 작품의 소재가 아주 특이하고 신선하다. ‘탈영병을 쫓는 헌병의 이야기’인데, 작가 본인이 실제로 ‘군탈체포조’였던 군 생활 경험을 십분 살려서 창작의 모티브로 삼아 ‘리얼하고 날카로운 드라마 한 편’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탈영은 소속 부대의 담장을 넘는 현지이탈과 휴가를 나와 사라지는 휴가미귀로 나뉘는데, 현탈(현지이탈)의 경우 소속 부대원이 밤새 인근 지역을 뒤지며, 대부분 당일 발견된다. 상당수의 탈영은 휴가미귀로, 발생시 탈영병의 연고지 헌병대와 소속 부대 헌병대의 군탈체포조가 동시에 활동하게 된다. 탈영병의 연내 검거율은 95%가 넘는다. 체포되지 않는 경우는 철저하게 신분을 숨기고 몇 년씩 숨어 지낸 소수의 장기군탈자뿐이다. 결과적으로 현탈이건 휴가미귀건 대부분의 탈영병은 체포된다는 말이지만, 그 과정의 막막함과 어려움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그 자체다.” - 1권 7~8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필자도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헌병대 조직 내에 이런 탈영전담부서가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면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군대 얘기’인데도 ‘군탈체포조’ 이야기는 나에게 무척 생소했고, 그래서 그런지 1권을 읽는 내내 재미도 있었지만, 군대 시절 좋지 않은 옛 기억이 떠올라 한편으론 기분이 씁쓸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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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군 복무시절에 이 책에 등장하는 탈영병들처럼 ‘탈출’을 꿈꿨으리라. 본문에도 등장하지만, ‘동년배의 건장한 수컷 침팬지들을 우리에 가둬놓고 모든 욕구를 통제하며 엄격히 상하를 구분하는’, 군대라는 시스템은 그 조직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부조리와 모순’이 내부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이 작품에 ‘오승환의 묵직한 돌직구’ 같은, 심각한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탈영병들을 쫓는 주인공 안준호 상병이 수사의 출발점에서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그들은 왜 탈?????을 하는 것일까?”- 에서부터 ‘대한민국 군??’를 무대로 한 ‘리얼하고 잔혹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걱정과 달리 체포는 저항 없이 끝나곤 한다.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내밀 뿐. 우발적인 탈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체념도 빠른 것일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해도 재판을 받고 죗값은 치러야 한다. 상당수는 기소유예로 풀려나지만 실형선고를 받고 전과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입맛이 썼다.” - 1권 18~19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작품의 주인공인 안준호 상병은 헌병대 소속의 사병으로 주특기는 ‘근무헌병’이다. 그러나 부여된 임무가 매우 특별한 관계로 ‘머리를 기르고, 활동 시에 사복을 입으며 부대 안보다는 주로 부대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일반적인 사병의 눈으로 보면 ‘군인인 듯, 군인 아닌, 군인 같은’ 매우 이질적인 존재다. 그는 후임병인 박성준 일병과 한 조를 ??뤄 전국을 돌며 탈영병들을 잡으러 다닌다. 

탈영병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김중선 일병처럼 휴가를 나왔다가 ‘우발적으로’ 복귀하지 않은 경우(피씨방에서 밤새워 게임하고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있던 것을 체포)부터 선임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휴가미귀로 탈영, 6개월 넘게 신분을 감추고 도망 중인 ‘장기군탈자’ 최창식 일병까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탈영병들의 모습은 사실 매우 안쓰럽고 불쌍하다. 위에 인용된 안준호 상병의 독백처럼 “그들에게는 악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군대라는 곳에 ‘의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끌려와서 겪게 된, ‘탈영을 결심하게 된 그 상황, 그 사건’을 ‘체포조 안준호 상병’의 행보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 작품에 숨겨진 진짜 주제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탈영에 대해 우리는 원인을 알지 못한다. 맞았는지, 성추행을 당했는지, 군생활이 힘들었는지,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 그저 자취를 쫓는다. 원인이 밝혀지는 시점은 대부분 체포 이후이며, 원인을 안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되진 않기에 우리는 그저 몇 안 되는 실마리에 매??려 산지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꼴이다. 그런 눈 감고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상황에서 추적의 근거로 삼는 건 탈영병이 탈영병이기 이전에 내 또래의 평범한 젊은이라는 사실이다. 평범한, 너무도 평범한 젊은이. 그런 평범한 젊은이가 어느 날 탈영병이 되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군대라는 곳 자체가 평범한 젊은이들이 가는 곳이니까, 평범한 젊은이가 어쩌다 탈영을 했을 뿐이다. 내가 특별히 선해서 탈영병을 쫓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탈영병도 특별히 악해서 탈영을 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그 상황이, 사건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1권 62~64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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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천천히 한 장 한 장 읽어가다 보면, ‘법적??로는 범죄자이지만 악인은 아닌, 평범한 젊은이들일 뿐인 탈영병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을 느끼게 된다. 특히 강력계 형사들이 지명수배범을 추적하는 수준 이상으로, 오랜 노력과 기지를 발휘해 안준호 상병이 체포하게 된 최창식 일병의 경우, 탈영의 이유를 묻자 ‘잠을 자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정말 안쓰럽고 화가 났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군기’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행과 가혹행위에 대해 가슴 깊이 분노하게 될 것이다.

[D★P]는 탈영병의 입장과 그를 쫓는 체포조(DP)의 입장이 교차되며 두 개의 관점에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1권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최창식 일병’의 경우, 선임병들의 구타와 언어폭력, 가혹행위가 거의 매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무서웠던’ 최일병은 ‘어쩔 수 없이’ 도망을 선택한다. 6개월이 넘게 신분을 숨기고 도피생활을 하면서, 불법 안마시술소 같은 ‘떳떳한 신분증명이 필요 없는 곳’에서 잡일을 하고 고시원의 조그만 방에서 불안에 휩싸여 살고 있는 ‘탈영병 최창식’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저 막막하고 외로울 뿐이었다. 체포된 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며 ‘이제 돌아갈 거야.’라며 울먹이는 최창식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게 오랫동안,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사실 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안준호 역시 같은 사병 신분으로 ‘끌려온 자’의 하나일 뿐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들 역시 부대로 복귀하면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며 부대 밖을 돌아다니는 DP를 못마땅해 하는- 선임병의 ‘폭력과 갈굼’이 기다리고 있고, 직속 간부(수사과장)의 책망과 협박을 받으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탈영병을 잡으러 전국을 동분서주한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기 위해 도망친 탈영병’ 최창식을 체포해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안준호는 생각한다. “가혹행위를 한 자들은 처벌받겠지만, 그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잠들지 못할 테고, 그 중 누군가는 탈영을 하겠지. 돌아간다. 변한 것은 없을지 모른다.”라고.

“그러던 어느 날, 한 침팬지가 생각한다. 나는 정말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일까?” - 1권 167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작가인 김보통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만화로 그리고 싶었던 조직이 군대, 회사, 학교예요. 사회 구성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직이잖아요. 저도 군대를 다녀왔지만 경계에 있던 사람이었어요. 어설프게 발을 걸치는 사람이었죠. 보통 ‘디피(DP)’라고 부르는 탈영병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였어요. 바깥에서 탈영병 잡다가 한 달 만에 군대에 들어와 이틀 자고 나가는 생활을 했는데, 중간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가끔 군대에 돌아와 보면 저번에 맞던 애가 이번에는 다른 애를 때리고 있어요. 섬뜩했어요.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게 올바른 군대이고 조직일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필터링을 거친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고. 군인이면서 군인 아닌 내가 군대를 도망친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어요.” 
또 이렇게도 얘기한다. 
“나는 개였어요. 개. 냄새를 맡으라고 주면 그 냄새 맡고 악착같이 쫓아다니는 개, 충실한 군견. 그런데 ??영병의 어머니에게 아들을 찾았다고 하면 너무너무 행복해하고 고마워하고 주저앉아 우셨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나는 군견이지만 또 충실한, 양치기 개구나. 잃어버린 양을 찾아주는. 어차피 개일 거면 군견보다 양치기 개로 마음을 먹고 찾자. 그 생각을 하며 군 생활을 했어요.”

아마 위에 인용한 작가의 인터뷰가 이 ‘흥미진진하면서도 날카로운 만화’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이야기인 것 같다. 이 작품의 부제가 “개의 날”인 것은, 아마도 위의 인터뷰에서 작가가 말한 것처럼, ‘비록 신분은 군견이지만, 잃어버린 양을 찾아주는 충실한 양치기 개’였던 한 젊은이의 군생활을 비유한 것일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DP”는 어원을 찾아봐도 잘 나오질 않는다. 어디에서는 “Deserted Person”의 약자라고도 하고, 또 어디에서는 “Desert Police”의 약자라고도 하는데 잘 모르겠다. 끝으로 이 작품을 소개하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본문 내용을 하나 인용하며 리뷰를 끝맺으려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헌병대 군탈체포조로 다들 디피(DP)라고 불렀는데, 무슨 약자인지 아무도 몰라 우리끼리 농담으로 ‘더티 플레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내가 탈영병을 쫓는 이야기이며 누군가의 아들을, 형제를, 연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1권 19p, 안준호 상병의 독백 中에서   

후속권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작품이다. 얼른 2권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2015.07.17. 한겨레출판에서 1권이 나와 있다.)
책 끝에 수록된 ‘작가의 말’도 무척 인상 깊다. 본문을 다 읽은 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