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이유로 시작되는 간사한 괴롭힘. 그냥 기분 나쁘니까, 만만하니까. 그렇다. 괴롭힘에는 이유가 없다.
<허니블러드>의 신내림은 깡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왕따다. 내성적인 데다가 무당 딸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배경은 왕따를 주도하는 이들이 왕따를 하게 만드는 빌미로 작용한다. 이 빌미는 역설적이게도 왕따를 당하는 현실에 순응했던 그녀가 어쩌면 자신을 구할지도 모르는 이를 만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만화는 전학생이 오면서부터 시작한다. 신내림은 전학생을 반기기보다 전학생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를 보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렇게 독자에게 나를 설명하며 내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게 한다.
이 작품은 영리하게도 무거운 소재를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상황은 어둡지만 주인공의 생각(또는 감정)을 표현하는 내레이션과 그림은 조금 과장하자면 발랄하기까지 하다. 속마음만이라도 주눅 들지 않고 가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한다든가, 잠깐이었지만 저항을 하기도 한다. 비록 그 시도는 바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거기에 수학여행을 떠난 내림이 가해자 무리에 의해서 다 쓰러져 가는 교회 안으로 내몰리고 그곳에서 뱀파이어 페테슈를 만남으로써 극의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진다. 기존의 뱀파이어 소재의 콘텐츠라면 여자주인공과 금방 사랑에 빠지거나, 우울한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허니블러드>는 그렇지 않다.
페테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마녀의 피가 필요했다. 그가 살던 곳에서 마녀의 씨가 마르고 말았다. 동양의 마녀(무당)라도 찾기 위해 한국으로 넘어온 그는 무당의 딸인 내림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계약을 맺게 된다.
계약의 조건은 간단하다. 계약기간 동안 피를 얻는 대신 마녀의 개가 되어 마녀의 목숨을 구해준다. 억지로 맺게 된 계약이었지만 스스로를 ‘개’로 일컫는 페테슈로 인해 내림은 웃게 되고 위로받는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반려견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처럼 페테슈는 그렇게 내림이에게 안정을 준다. 내림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페테슈의 행동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페테슈는 ‘필요하기 때문에 잘해준다’고 대답한다. 조건 없이 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에겐 필요에 의해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페테슈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꽤나 복잡한 인물이다. 뱀파이어답게 섹시하면서, 대형견처럼 충직하기도 하다. 타인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서도 돌직구를 날리기도 한다. 게다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의 과거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작품을 흥미롭게 한다.
<허니블러드>는 내림과 페테슈와의 관계만으로 극을 이끌어 가진 않는다. 내림의 곁에는 아직 왕따를 주도하는 가해자가 있고, 이를 목격하는 전학생이 있으며, 묵인하는 선생이 있다. 거기다 내림을 시험에 들게 할지도 모르는 이질적인 신 또한 있다. 이 모든 복합적인 요인들 덕분에 긴장감이 유지된다.
단기간에 누적 30만-카카오페이지는 만화를 여러 번 봐도 집계되는 것은 단 1번뿐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15화가 연재가 된 작품을 한 화도 빠짐없이 다 보았을 때 집계되는 수는 15번이며, 복습해서 본다고 하더라도 카운트되는 것은 최초 접속 회수인 것이다.-을 돌파한 저력은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함께 풀어가는 강약조절이 훌륭한 잘 짜인 스토리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페테슈가 등장함으로써 내림이의 주변은 떠들썩해졌다. 어렸을 적 자신을 따르던 찌질이 효열이는 멋지게 변해 등장했다. 거기에 내림이를 좋게 보는 교회 오빠 무진이까지 나왔다. <허니블러드>의 등장인물 관계는 순정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이지만 그게 진부하지 않고 <허니블러드>만이 가진 독창적인 설정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나 고민을 담고 싶다며 캐릭터들의 대사나 감정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한다. 만화적 재미를 위해 판타지가 가미되지만 그런 소재라도 한국인이라서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 노력의 대가는 감상평을 봐도 알 수 있다. 내림이 왕따를 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면 같이 울어주고 욕해주는 독자가 있으며, 침울한 분위기의 내림이 예뻐지고 밝아질 땐 자신의 일인 것처럼 좋아한다. 단순히 못생긴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이 예뻐졌기 때문에 환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당의 딸이라고, 주눅 들어 있는 주인공이 달라진 외모로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가해자 무리에게 통쾌하게 한방 먹여주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달라진 외모만큼이나 내면 또한 완전히 치유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요원해 보이지만 말이다. 전학생 미나는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판을 흔들기도 한다. 모두가 쉬쉬 하며 은폐하던 왕따 문제를 wee 클래스로 내림이의 학교로 부임한 무진에게 언급했다. 갓 부임한 무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오히려 왕따는 없다고 일언지하 무시당한다. 왕따가 있다고 말하다가 보복이 두려워 말을 아낀 미나. 반대로 왕따는 없다는 담임 선생. 그 사이 무진은 어떻게 행동할까?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허니블러드>는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내림의 성장, 페테슈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등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작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어쩌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흔한 소재를 흔하지 않게 느끼게 할 것,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또는 캐릭터)에 대해 독자들이 공감하게 할 것, 그러면서도 제일 중요한 작품 자체에 재미가 있을 것. 이 모든 것을 만족하면서 매주 다음 주가 얼른 오도록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까? 미국에서의 활동으로 다져진 내공으로 본격적으로 국내 팬들과 만나기 시작한 <허니블러드>. 연재된 분량이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매력 있다. 앞으로 볼 게 많으니까.
오랜만에 재밌게 볼 수 있는 만화가 등장해서 참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