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고 있는 ‘미생’들에게 여행은 한번쯤 이루고 싶은 목표일 것이다. 여행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주며,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여행은 내면의 나와 마주볼 수 있는 기회와 자기 자신을 보듬을 수 있는 치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올레마켓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로딩>이라는 작품은 별다른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을 통해 목표 없이 무심히 흘려버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이 나아가는 한 편의 훌륭한 ‘힐링 로드 무비’다.
이 작품에서는 여행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메타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스물아홉 살 주인공에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여정의 시작은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그저 우연히 발견된 오래된 바이크 키와 10년 전 친구가 가르쳐 준 운전 방식의 기억으로 시작된 ‘시동’으로 갑작스럽게 출발한 여행이다. 여기서 여행이 갖는 의미는 자신을 ‘애물단지’ 취급하고 있는 집안으로부터의 ‘해방감’이다.
잘나가는 집안의 막내아들, 유능한 형제들의 막내. 이것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타이틀이지만 그 집안에서 주인공은 그저 철없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주인공의 20대는 짜증날 정도의 정지된 삶과 받혀주지 않는 능력, 첨가되는 귀찮음과 덧붙은 불편함이 묻어 있는 삶이다. 이 모든 것이 자기를 봐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이어지는 반항과 방황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주인공에게 더욱 무심해져 갔으며, 그들에게는 ‘소통’이 단절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뒤로 할 수 있는 해방의 창구로 여행이 활용된다. 20대 단 하나뿐인 친구 ‘용만’과 떠난 첫 여행의 목적도 단지 ‘집 밖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여행이라는 것을 결코 낭만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두 번의 여행 중 ‘첫 여행’에서 주인공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픈 기억을 남기고 중도 하차하게 된다. 그 아픔은10여 년이 지나는 세월 속에서 언제나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그 후 시작된 두 번째 여행은 이전과 다르게 목적과 목표가 없는 그저 일상에서의 이탈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현실적인 압박’과 ‘외로움’이 서서히 그를 찾아온다. 이때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우연히 자전거 여행을 떠나던 군인과 여행자들이 묶고 있는 한 숙소의 사람들, 그리고 어느덧 생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에 만난 사람들이다.
잘나가는 집안과 유능한 형제들 속에 있는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여행 중에 만난 인물들은 그에게 뭔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다. 여행의 고단함을 알고 그것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그들 나름대로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들과 함께 할 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소통’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이야기할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보듬어 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같이 고민하며 제시해 주었다.
Figure 2로딩의 또 다른 주인공, 올드 바이크 CG-125
주인공은 제대로 구르지 못하는 앞 바퀴와 신경 쓰지 않으면 제대로 직진조차 하지 못하는 핸들, 이제 간신히 버텨주기만 하는 시한부 고물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바이크를 타고 여행을 진행한다. 바이크에 문외한인 필자는 구형 바이크의 가치도, 화려한 모델의 가격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주인공이 다른 이동 수단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이 작품은 지금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평소 운동 한번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에게 자전거 여행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이 작품이 추구하고 있는 요소인 ‘소통’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여행 도중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잘 알지 못하는 바이크를 통해 여행하는 그에게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이들이 손 내밀어 도와 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대화는 어느덧 주인공이 닫혀 있던 마음을 열게 하였으며, 주인공 내면의 아픔을 같이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찾아온 아버지와의 대화는 단절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바이크는 ‘자아 성찰’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소통의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여행의 의미와 에피소드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바로 이런 무난한 요소들을 잘 엮어서 만드는 훌륭한 ‘힐링로드 무비’라는 점이다. 여행과 만남을 통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에피소드들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다. 바이크 사고 후 애써 잊었다고 생각했던 친구 용만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의 믿음마저 가리게 만든 소통의 부재는 주인공이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는 트라우마였다. 여행에서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가운데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치유하며 성장하는 모습은 현재 내적인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공감과 여운을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훌륭하게 풀어낸 드라마적 가치이다.
Figure 3 (좌)여행 이전 항상 찡그리고 모습 (우)여행 이후 웃고 있는 모습
최근 여행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작가의 여행담을 담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는 ‘일상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로드 무비를 꿈꾸는 <로딩>은 참 반갑고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현실의 쳇바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람으로서 다시금 여행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그런 ???품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바이크와 함께 국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금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 아닐까… 무료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여행의 재미와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로딩>을 가슴 속에 품으며 작은 일탈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Figure 4가끔은 로딩의 주인공처럼 여행 중의 밤 하늘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