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과 새해를 관통하는 이번 겨울은 유독 그 추위가 상당하다. 기록적인 한파만이 아니다.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관심을 호소하지만 차가운 겨울바람만큼 냉정한 무관심이 겨울왕국 못지않은 한기를 뿜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들이 맺은 따뜻한 우정과 연대의 소식들이 삭막한 현실을 잠시나마 견디게 해 준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같은 세상을 버티는 힘은 그러한 가족과 이웃들이 전해주는 관심의 온기에서 비롯된다. 만화에서도 겨울은 다양한 의미와 주제로 표현된다. 차갑고 딱딱한 껍질 속에서 여리고 고운 싹을 틔울 봄을 기다리는 속성 때문이다. 이준 작가의 ‘다정한 겨울’은 그런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사람과 사랑 그리고 마법을 믿으며 더 행복한 미래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그린다. 이준 작가의 ‘다정한 겨울’은 2011년 11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포털 사이트 다음의 만화속 세상에 연재된 웹툰이다. 19살이지만 7살의 외모를 가진 다정이와 17살의 몸을 가졌지만 7살의 지능을 가진 민성이는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첫 만남부터 둘 다 보호자 없이는 오해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편견 없는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기 원하는 다정과 민성이 인연을 맺게 된 겨울은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혹독하다. 둘 다 고통스런 기억을 안고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만도 벅차다. 외부로 보이는 모든 것으로 속성을 결정하려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다정과 민성의 시간은 힘겹기만 하다. 거친 말투로 여린 마음을 감추는 다정과 철없는 행동에서 어른 못지않은 성숙함을 가진 민성은 ‘자라지 않는 마법’이 풀려서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다정한 겨울’은 특수한 상황과 조건의 제약에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을 차분하게 해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여러 사건의 매듭이 한 번에 풀리는 마법 같은 결말을 배치해서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정한 겨울’의 따뜻한 마법은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2014년 대한민국 콘텐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영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언제나 아동복만을 입어야 하는 다정은 마트 안 옷 매장에서 아빠와 말다툼을 한 뒤, 혼자 있는 자신을 보호자를 잃은 어린이로 생각하는 점원을 피해 처음 보는 민성에게 친한 척하며 자리를 피한다. 그러자 고등학생 몸집을 한 민성은 도리어 엄마를 찾아달라며 다정을 붙잡고 눈물을 쏟는다. 다행히 엄마를 찾은 민성의 뒷모습을 보며 다정은 자신과 다른 듯 비슷한 민성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우연히 민성이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본 다정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주위 어른들의 시선을 모은다. 위기를 넘긴 민성과 다정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 뿐만 아니라 자라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진 처지를 공유한다. 각자 자라지 않는 마법에 걸렸다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외부의 시선과 폭력적인 세파에 받은 상처에 고통스러워한다. 다정은 거친 세상에 맞서서 소리치고 걸어오는 싸움 앞에 뒷걸음치지 않고 받아친다. 민성 또한 겉으로는 오해와 폭력에 무력한 듯 휩쓸리지만 조금씩 성장을 하려고 노력한다. 둘 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엉엉 우는 장면이 종종 반복된다. 특히 다정이 친엄마와 만나거나 심리적으로 큰 사건을 겪을 때면 큰길이나 바깥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쏟으며 펑펑 운다. 거친 성격으로 여린 마음을 감추려는 19살의 다정이 성장통을 겪는 동안 민성은 그 옆을 지킨다. 민성도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거나 이용당하기도 하지만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냉혹한 세상에 적응하기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자라지 않는 마법에 걸린 19살 소녀와 7살 소년은 겨울처럼 혹독한 세상 속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감싸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른 듯 같은 처지에 있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둘 다 어른들로부터 버려졌다는 기억을 가슴 깊이 품고 있다. 어릴 적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다정의 거칠고 쌀쌀맞은 성격이 비롯됐듯 민성 또한 억지로 엄마와 떨어졌던 기억 때문에 7살 어린아이가 할 법한 투정이나 눈물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착한 아이로 사는 것만이 민성에게는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런 둘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고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우정이 깊어갈수록 뿔뿔이 흩어졌던 두 사람의 가족들이 조금씩 화해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다정한 겨울’은 각자의 상처와 기억을 보듬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디고 화해와 성장이라는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가족 드라마이다.
‘다정한 겨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된 현실에 괴로워하지만 가족애와 이웃과의 연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다정의 아빠는 고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크나큰 실수를 저지를 뻔한 기억을 상처처럼 갖고 있다. 민성의 엄마도 아버지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성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가진 조건과 한계를 현실적이지만 차가운 시선으로 그리지 않는다. 다정과 민성이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반복함으로써 불행에 무력한 피로감과 신파성 짙은 드라마를 피하고 있다. 오해와 갈등으로 생긴 고통을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물을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응원과 공감을 얻고 있다. 민성이 아동 성추행 범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사람들의 멸시와 외로운 구명 과정 속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대신, 마음의 문을 닫고 대화를 거부하는 민성에게서 더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다정한 겨울’은 무정한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고된 현실과 슬픔을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가족의 울타리를 넓히고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봄을 담백하지만 따뜻하게 그린다.
작가의 힘든 시절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그렸다는 이 작품은 여러 독자들이 남긴 댓글과 수상 소식이 증명하듯 많은 이들에게 상당한 즐거움과 응원을 전해주었다. 고달픈 세상살이를 저만의 방법으로 견디며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삶에도 봄기운 같은 온기를 꿈꾸게 한다. 빛에 가장 가까운 그림자가 가장 짙은 것처럼 추위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다가올 이번 봄이 다정과 민성의 그것처럼 따뜻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