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생>의 힘은 공감 가능한 이야기를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완성도 있게 구현한 스토리텔링에 있다. 스토리텔러로서 윤태호 작가의 비범함은 초기작부터 이미 알고 있던 바이지만, <이끼> 이후 그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은 무척 실험적이고 그만큼 흥미롭다. <내부자들>이나 <인천상륙작전>의 스토리텔링이 <이끼>만큼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시도만큼은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미생>의 완성도나 대중적 지지의 근저에도 스토리텔링의 실험이 있다. 종합상사라는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을 철저한 취재를 기반으로 확보하고, 바둑이라는 인생의 메타포를 그 위에 솜씨 좋게 얹은 후에 마이너리티적 감성의 자극을 통해 대중적 공감을 확산하려는 <미생>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압도적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미생>은 아직 살아있지 못한 마이너에 주목함으로써 향유자들이 스스로 심정적인 투사를 통하여 동일시 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메이저의 성공신화보다는 마이너의 악전고투에 동조하는 대중의 심리적 기저를 잘 파악한 결과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미생>이 지닌 텍스트의 내적 리듬이다. <미생>에서는 미시서사의 일정한 마디마다 촌철살인의 대사나 내레이션을 통하여 지나친 정보 제공으로 인하여 이완될 수 있는 서사의 긴장을 당기고 있다. 종합상사가 배경인 까닭에 무역 전문용어 등이 불가피하게 제공되어야하는 까닭에 자칫 서사가 늘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이것을 미시서사의 전환이나 대사나 내레이션의 미적체험을 강화함으로써 극복하였다. 매주 2회 연재, 2-3일의 연재 간격을 유지해야하는 웹툰의 특성상 향유자의 관심을 유지하고 흥미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주단위의 미시서사 전개가 요구되지만, 그렇다고 매주 새로운 미시서사를 제공한다거나 미시서사 단위의 극적 긴장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미생>의 시도는 웹툰의 장르적 변별성과 대중의 취향에 대한 뚜렷한 자의식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미생>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미덕은 장그래의 성장담(Initiation story)에만 머물지 않고 원인터내셔널 전체 구성원을 캐릭터화하고, 그들 사이의 긴장과 미시서사의 유기적인 조합을 완성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들에게 고루 시선을 나눠주고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엄혹한 현실의 맨얼굴과 그 안에서 고분분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비춰 보게 함으로써 공분(公憤)과 공감(共感)을 공유(共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웹툰 <미생>의 작품성과 정서적 공감을 공유하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성공은 원천콘텐츠의 후광효과(halo effect)와 One Source Multi Use(이하 OSMU)의 전략적 전개 그리고 빼어난 텍스트적 성취에 기인한다.
우선 드라마 <미생>의 텍스트의 변별성은 스토리텔링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드라마 <미생>은 웹툰에 비해 업무의 사실성보다는 그것을 수행하는 캐릭터들의 대응에 중점을 두어 다양한 캐릭터군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 매주 2화로 구성하는 미시서사의 주제 단위가 선명하다는 점, 주제단위별 중심 캐릭터를 다양하게 등장시킨다는 점, 장그래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조하고 성찰하게 함으로써 거시서사의 흐름을 유지한다는 점, 지금 이곳에서 예민한 소재들을 전략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 등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하였다. 특히 눈여겨 볼 지점은 장그래, 장백기, 안영이, 한석률을 ‘취업준비생→인턴→신입사원(정직원/계약직)’의 과정에서 구현하고, 그들이 대응할 세계를 긍/부정의 다양한 캐릭터 군상과 갈등하게 함으로써 사건을 전개한다. 이러한 갈등 과정은 오과장, 김대리, 장그래의 영업3팀을 긍정적 공동체로 그리고 대비적으로 각 팀을 그리고, 그 안에서 장백기, 안영이, 한석률의 미시적 갈등을 다시 구현하는 영리한 서사 구조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정규직/계약직의 문제, 성차별의 문제, 회사 내 정치의 문제, 일중독, 조직의 부속품일 뿐인 개인의 문제 등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향유자와의 심리적 접속을 유도하고, 공감과 공분을 확장하는 효과를 성공적으로 거두고 있다. 프로진입 실패, 고졸 학력, 낙하산을 중심으로 마이너적 캐릭터를 구현한 장그래, 회사 내 정치와는 무관하게 올바른 자세로 윤리적 우위성과 보편적 양심을 확보한 분명한 오과장, 빼어난 실력에도 성차별을 받는 안영이(마치 헤르미온느처럼),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본능적으로 합리화하는 냉혈한 최전무 등의 캐릭터는 향유의 지향과 정서적 동조가 가능한 수렴점으로서 성공적으로 기능한다.
<미생>의 OSMU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OSMU는 장르전환(adaptation), 창구효과(window effects), 상품화, 브랜드 창출 효과 등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마케팅 활동을 의미한다. OSMU (1)의 동력은 원???콘텐츠의 후광효과 여부, 원천콘텐츠의 전환 적합성, 거점콘텐츠의 최적화 여부, 연동 콘텐츠 간의 상호 프로모션, 다양한 창구로의 확산, 브랜드 가디언의 효과적인 통제에 의한 상품화, 지속적인 브랜드 창출 등에 있다. 그동안 콘텐츠 업계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하여 강력한 원천콘텐츠의 확보 방안, 전환의 최적화 장르 파악 및 전략 탐색, 상호 프로모션 방안, 상품화 전략 등에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콘텐츠의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콘텐츠의 리스크 헷지(risk hedge) 전략으로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원천콘텐츠를 중심으로 장르전환(2)에 중심을 두면서 블록버스터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강력한 원천콘텐츠였던 웹툰 <미생>은 드라마 방영에 맞추어 프리퀄(prequel)에 해당하는 사석을 5화 연재함으로써 원천콘텐츠는 물론 거점콘텐츠인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환기??켰다. 사석의 연재로 <미생>은 일종의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3) 을 매우 흥미로운 형태로 구현했다. <미생>은 원천콘텐츠에서 거점콘텐츠로 전환하면서 원천콘텐츠의 프리퀄을 첨가하면서 원천콘텐츠의 전사에 해당하는 오과장의 신입사원시절을 추가하였다. <미생>의 프리퀄은 여타의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과는 다르게 새로운 서사를 추가함으로써 보다 완성된 ‘서사 세계’(narrative universe)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점콘텐츠의 방영에 맞춘 일종의 프로모션 툴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프로모션 툴은 뜻하지 않게 상품화의 결과로서도 성취되었다는 점이다. <미생>은 웹툰의 성공에 힘입어 드라마 이전에 이미 단행본 출간, 캔커피, 종이컵, 헛개수, 노트, 티셔츠 등의 상품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은 부가가치는 물론 <미생>이라는 브랜드 창출에 긍정적인 부메랑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미생>??? 성공적인 PPL(Product Placement)을 통하여 미시콘텐츠(micro contents)를 활성화였다. 낯선 이물감 없이 전체 서사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등장하??? 숙취음료, 홍삼, 복사지, 일회용커피 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PPL의 경우 상품당 1000만원이지만 <미생>의 경우에는 4000만원 수준이라는 것만 봐도 그 효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시콘텐츠의 활성화는 단지 수익의 극대화뿐만 아니라 향후 콘텐츠의 수명 연장 및 프랜차이즈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4)을 담당할 수 있다는 면에서 주목해야할 요소다.
(2)일단 전혀 다른 장르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 원천콘텐츠의 성공이 거점콘텐츠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원천콘텐츠→거점콘텐츠로 전환할 시에는 매스미디어와 결합되기 때문에 제작 규모가 ???지게 됨으로써 위험부담이 커진다. 특히 이미 인지도가 있는 콘텐츠를 전환하는 까닭에 원천콘텐츠와 연관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독립성을 지녀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또한 전혀 다른 장르로의 전환인 까닭에 장르별 문법이 다르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몇몇 웹툰들이 웹툰으로서의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영화로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은 장르별 문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3)헨리 젠킨스가 [컨버전스 컬처]에서 주장한 용어로서 여러 개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하나로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를 생산/향유하는 것을 말한다. 즉, 멀티플랫포밍(multiplatforming)을 통해 개별적인 스토리들이 모여 하나의 ‘서사 세계’(narrative universe)를 구성하는 일종의 상업주의적 팬덤(commercial fandom) 현상이다.
(4)작가에 따르면 2015년 3월 웹툰 <미생 시즌Ⅱ>가 시작???다고 한다. 웹툰 <미생 시즌Ⅰ>을 2013년 8월에 마쳤고, 다행히 드라마가 2014년 12월까지 방영이 됨으로써 <미생>의 인지도 및 관심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었다. 웹툰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기간 동안 <미생>이 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행본과 관련 상품의 기여가 컸다. 따라서 미시콘텐츠의 활성화는 곧 부가 수익 극대화는 물론 콘텐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유지에 큰 몫을 한다는 점에서 프랜차이즈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