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만화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려보면, 여러 해를 거쳐 연재가 이루어지는 작품의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특히 인기작의 경우는 잡지의 간판이었으니 한두 해 정도 연재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에 반해, 웹툰의 경우 1~2년의 연재기간을 넘기는 작품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주간 업데이트가 일반화된 형편 속에 새로운 작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취향이 반영될 것일 수 있으며, 웹툰이 전하는 이야기의 최적화된 분량이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른바 ‘서사형 장편웹툰’이라는 것은 다양한 웹툰 가운데서도 웬만한 인기와 작가의 끈기가 동반되지 않은 이상 만나보기 쉽지 않은 사례다.
이종범의 <닥터 프로스트>는 그런 측면에서 꽤나 희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00여 편의 작품이 넘게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에서 무려 3여 년 간 연재를 이어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즌3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천변만화하는 웹툰의 지형 속에서 그 우직함은 도드라진다. 어쨌든 주간 연재로, 컬러작품으로, 웹툰으로 3여 년의 시간을 채웠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매력’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 보인다. 이제 그 매력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보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재, 심리학
2011년 초부터 연재된 <닥터 프로스트>는 시즌1, 시즌2를 거쳐 2015년에는 시즌3가 연재될 예정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연재가 지속된다는 사실은 그만큼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작품의 공식 팬카페(http://cafe.naver.com/doctorfrost)에 가입된 회원 수만 하더라도 1만 명이 넘는다. 게다가 독자만화대상 온라인 만화상(2011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2012년)까지 수상했으니, 여러 모로 작품의 인기가 입증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이 작품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주인공 프로스트는 밤에는 """"미러""""에서 바텐더로 일한다.
어둠이 내린 저녁, 바(Bar) 미러(Mirror)에는 한 쌍의 남녀가 손님으로 들어선다. 남자는 바텐더들에게 그녀가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소개하고, 그녀에게 반지를 선물한다. 하지만 잠깐 전화를 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가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이대로 안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라며 이야기를 건네는 바텐더가 있다. 근거도 없이 이상한 말을 한다고 외치는 남자에게 곧이어 “급하게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라는 여자의 문자가 도착하게 되니, 예측이 곧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남자는 바텐더에게 어떻게 알았냐며 따지듯 묻고, 바텐더는 여자가 몸과 행동으로 말한 거짓말의 징후를 알려준다. 관찰력과 논리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 바텐더의 정체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 프로스트다. 작품은 이처럼 시작부터 독자에게 ‘혹할 만한 무언가’를 던진다. 그것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 타인의 몸짓, 손짓 하나하나를 파악해 그 사람의 진위를 알 수 있다는 것, 바로 심리학의 세계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심리학에 대해 접근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입문서 역할도 겸한다. 공황장애, 트라우마 등과 같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용어들의 기본적인 개념에서부터 라포르(공감대) 혹은 종단연구처럼 생소한 용어까지 등장시키며 심리학에 대한 자연스러운 접근을 유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이러한 이론을 실제 사례에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상담’이라는 수단이 채택된다. 즉,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는 프로스트가 낮이 되면 또 다른 명함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용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면서 또한 학내 상담소에서 상담도 겸하고 있다. 그의 본업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조력자로서 상담소 조교 윤성아가 등장한다.
닥터 프로스트는 용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상담소을 담당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상담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그 원인이 되는 테마들이 ‘생활밀착형’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즉, 이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남성이나 평범한 여고생이 등교를 거부하는 사례 등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런 친숙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후 예상 밖의 결말로 인도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있다. 가령, 연애할 때마다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되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평강공주의 눈물’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윤성아의 친한 언니라는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매우 헌신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연애할 때마다 ‘나쁜 남자’를 만나 고생하는 케이스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 만났던 고시생은 3년이나 수발들었지만 합격하자마자 떠나버렸고, 군대에 있는 동안 기다렸던 두 번째 남자친구도 제대하자마자 다른 여자를 만났다. 취업준비생이던 다음 남자친구도 떠나버렸고, 최근에는 몸이나 돈을 위해 접근하는 놈들까지 생겼다.”고 고백할 지경이니 굿이라도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이해가 될 만하다. 그런 여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윤성아는 프로스트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그리고 프로스트는 그녀의 문제가 그녀가 만난 남자들에게 있다기보다는 그녀의 내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런 과정에서 최면이나 성격장애처럼 평소 한두 번은 접해보았을 만한 단어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심리학이 우리의 일상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상담소 조교 윤성아는 프로스트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웹툰에서 드라마로
프로스트와 윤성아,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2014년 하반기에는 만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 3일 개봉한 <타짜: 신의 손>을 시작으로 <내일도 칸타빌레>가 10월 13일, <미생>이 10월 17일, 그리고 <라이어게임>이 10월 20일에 안방극장을 통해 출사표를 던졌고, 11월 6일에 개봉한 <패션왕>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타짜: 신의 손>은 400백 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고, <미생>은 케이블채널임에도 불구하고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을 갱신하면서 원작으로서 한국 만화의 기를 세웠다. 이처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종횡무진 하는 작품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는 11월 23일 첫 방영을 시작한 <닥터 프로???트>다.
<닥터 프로스트>의 드라마 방영은 이미 작년 말 공표된 바 있다. OCN에서 다음해 선보일 몇몇 작품들에 대해 티저영상을 공개했고, 그 가운데 <닥터 프로스트> 역시 큐브퍼즐을 맞추는 모습으로 소개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당시에는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공개하지 않아서 시청자들에게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베일을 벗은 드라마는 주인공인 프로스트 교수역을 송창의, 그리고 윤성아 조교 역을 정은채에게 맡겼다. 여기에 성지루, 최정우, 이윤지 등 상당한 연기 경력을 보여주는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원작의 천상원, 송선 역할을 연기하는 최정우나 이윤지와는 달리 원작에 없는 성지루의 ‘남태봉 형사’ 역할은 원작이 보여주지 못한 드라마만의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방영을 일주일 앞둔 11월 18일에는 제작발표회를 열어 안방극장을 향한 ‘출정식’을 가졌다. 드라마 시작 전, 이벤트를 벌이면서 당첨자에 대한 상품으로 원작만화를 내걸어 원작과 드라마의 관계를 널리 알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원작과 같은 제목으로 방영됨과 동시에 주인공의 이름 등 주요인물의 특징에 대해 원작의 그것을 계승함으로써 웹툰 독자들로 하여금 이른바 ‘싱크로율’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시킨다. 주인공의 외모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흰색머리는 드라마 속 연기자에게로 그대로 전이되어 원작이 지닌 아우라가 드라마로 계승되는 대표적인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에 대해 해당 배우는 어느 언론을 통해 “흥미진진한 원작의 힘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좀 더 드라마적이고 관계 안에서 사연을 지닌 한층 넓어진 인물, 단순히 차가운 천재가 아닌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낼 것이다.”(<텐아시아> 2014년 11월 24일, ‘또 한편의 만화 원작 드라마 ‘닥터 프로스트’ 온다, 웹툰 넘어설까’ 기사에서 인용)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드라마 홈페이지(http://program.interest.me/ocn/frost)를 살펴보면,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와 함께 주목할 만한 카피가 눈에 띈다. 프로스트의 얼굴 옆으로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습니다.”라는 글이 보이고, 다시 장면이 넘어가면 윤성아의 얼굴 위로 “어떻게 공감 없는 상담을 할 수 있죠?”라는 글귀도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요등장인물이 함께 보이면서 “범인의 마음을 읽는 시간 0.2초”라며 심리를 소재화한 작품의 핵심테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가 원작과 달라진 점도 드러난다. 즉,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극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상담’이 이야기의 주요 전개방식이었던 원작과는 달리 드라마는 범인을 쫓는 ‘수사’극으로 그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작품 외적으로 <닥터 프로스트>가 가지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이 작품이 네이버에 연재된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다는 점이다. 바꾸어 ??하면, 지금까지 네이버에서 연재된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TV 방영이 이루어진 사례가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가령 또 다른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발표된 작품의 경우,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원수연의 <매리는 외박 중>, 곽인근의 <아빠는 변태중>, <사춘기 메들리> 그리고 윤태호의 <미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의 사례가 있어왔다. 반면 네이버의 경우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사례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기에 ‘다음은 서사만화, 네이버는 개그만화’라는 한때 저잣거리의 소문을 반증해 보이는 일종의 데이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적 팽창과 함께 네이버 웹툰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개그, 서사, 판타지,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을 만큼 다양성을 확보시켜 왔으며, 그런 측면에서 드라마 <닥터 프로스트>는 ‘네이버발(發) 서사만화의 TV드라마 출발점’이라는 나름의 의미도 지니는 셈이다.
프로스트가 상담자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모습은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과 같다. 상담자를 둘러싼 상황이 어떠한지 하나씩 짚어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문??의 근원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독자는 프로스트와 같은 시선으로 상담자가 지닌 문제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이제 그 퍼즐조각들이 드라마로 다시 재구성되었으니, 해결의 실마리는 독자가 아닌 안방에서 브라운관을 마주한 전국민에게 맡겨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