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입
“나는 죄인이 아니야. 칼로 목을 칠 것을 요구한다. 자유를 위해 싸운, 자유의 투사로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만화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과 실제 역사가 결합되어 가는 독특한 과정 속에서 독자는 전에 없던 매우 흥미로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
2014-03-24
안경엽
“나는 죄인이 아니야. 칼로 목을 칠 것을 요구한다. 자유를 위해 싸운, 자유의 투사로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만화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과 실제 역사가 결합되어 가는 독특한 과정 속에서 독자는 전에 없던 매우 흥미로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역사를 해석하는 작가의 주관에 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웠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작가의 해석에 따라 백성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친 상상도 못할 악인처럼 그려질 수도 있고, 악의 축처럼 느껴졌던 인물이 사실은 고결한 이상과 신념을 지닌 혁명가로 그려질 수도 있다. 이것은 ‘지나가버린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는 역사 고유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다”는 매우 역설적인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불확정성에 작가만의 상상력과 주관을 결합시킬 때, 각자의 생각과 지식을 바탕으로 그 작품을 해석하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화학작용의 결과물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켜 전에 없던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줄지, 기존의 역사관을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훼손시켰다며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지, 또는 이 사건과 관련된 특정한 사람들에게 무지막지한 증오와 공분을 일으킬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은 “모든 판단은 후세의 몫”이라는 역사만의 독특한 해석기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역사를 소재로 창작물을 만들 때 작가에게 제기되는 심각한 딜레마다. 새로운 성공가능성일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지도 모를 두려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일본만화 “늑대의 입”은 14세기 초반에 실제로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스위스 침공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쏘아 맞춘 명궁(名弓)’,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위스의 영웅 “빌헬름 텔”이 활약했던 바로 그 시대와 장소다. “중세 후기, 알프스 지방. 산맥을 건너 독일과 이탈리아를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남북 교통의 대동맥이라고도 말할 만한 고개가 있었다. 장크트 고타르트 고개라 한다. 고개는 길이 난 이래로, 알프스 산맥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배되어왔다. 그들은 계곡마다 자치주를 형성해, 고개를 넘나드는 교역을 통해 큰 이익을 얻고 있었다. 13세기 말. 언덕의 권익을 지닌 슈바이츠, 운터발덴, 우리, 세 자치주는 동맹을 맺었다. 권익을 노리는 적과 싸우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맹약자단(盟約者團)’의 성립이다. 그들의 우려는 적중했다. 적은 봉건영주, 오스트리아 공 합스부르크 가. 공자 레오폴트는 군세를 이끌고 세 지역을 점령. 권익을 빼앗고, 저항에는 제압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압제는 반항심을 부채질하는 결과가 되었다. 맹약자단의 기사들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계속 저항해 세 지역에서 독립의 기운은 점차 높아져갔다.” 이렇게 끊임없이 망명을 시도하는 알프스 주민들이나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삼림동맹의 요인들이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壁)’이자 강대한 ‘적(敵)’이며 잔인하기까지 한 ‘악(惡)’인, “늑대의 입” 대관 볼프람은 잦은 등장이 없어도 그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인해 작품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도 ‘관문’을 소재로 삼아 굵직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팩션’, “늑대의 입”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다음 권이 매우 기다려지는 작품이다.